◈보통 사람의 자리로 늘 돌아가야... 행10:26 펀 글 정리
▶“그냥 피곤해서 앉았어요!”
1955년 12월 1일, 당시만 해도 미국은 아직 인종차별이 만연했다.
특히 남부에서, 흑인들은 버스를 타더라도 뒷자리에 앉아야 하거나
그나마도 필요시엔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해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 로자 팍스(Rosa Parks)여사는 버스의
앞자리에 앉았다. 이내 백인 승객이 올라왔고, 그녀는 자리를 양보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없었다.
결국 그녀는 알라바마 주 몽고메리 지역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런 “범죄”(?)로 체포된 흑인은 로자 팍스가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거부”는 마틴 루터 킹 목사註1) 의 흑인인권운동으로
이어지면서, 그녀는 일약 흑인 인권 운동가로 자리매김 된다.
1955. 12. 5. 킹 목사 주도로 흑인들은 몽고메리 버스승차거부운동
을 전개한다. 수많은 흑인들이 도보로 걸어서 출근하거나
차를 가진 흑인들은 동료 흑인들에게 카풀을 제공했다.
어떤 흑인은 노새mule를 타고 출근하기도 했다고 한다.
많은 기자들이 몰려와서 취재에 열중했고, 그 중심은 로자 팍스였다.
기자들이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용기있는 행동을 했습니까?”
로자 팍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용기라뇨? 그냥 피곤해서 앉았을 뿐이예요!”
(버스 뒤쪽까지 걸어가기에는 그날 너무 피곤했다는 뜻)
▶누가 갑자기 내 등을 떠밀었어요!
여름 강가에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여자가
강물 깊은 곳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음이 발견되었다.
강둑에 늘어서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발을 동동 굴렀지만
누구 한 명 선뜻 강물로 뛰어드는 사람이 없었다.
저 여자를 구하다가, 자기까지 빠져죽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용기 있는 청년이 강둑에서 강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헤엄쳐가서 그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여자를 건져내었다.
강둑에 늘어선 많은 사람들은 손뼉을 치기도 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용기 있는 그 청년을 일제히 칭송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용기를 다 낼 수 있었습니까?”
그 질문에 청년은 담담히 이렇게 대답했다;
“누가 제 등을 떠밀어서 얼떨결에 강물에 떨어지고 말았어요!”
누가 그 청년을 강물 아래로 떠밀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어쩌면 아우성치는 인파에 떠밀려서 우연히 떨어졌는지도...
▶제2차세계대전이 윈스턴 처칠을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사실 그는 평소에 잘 나가던 정치가는 아니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일약 그는 영국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일류 정치지도자가 되었다. 註2)
‘우연’이 위에서 말한 모든 위인/명사를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대중은 그들의 탁월성을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명사들 당사자는, 스스로 위대하게 여겨서는 큰 오산이다.
명사는, 스스로 말하기를, 우연히 유명하게 되었다고 겸손해야 한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서 보니 유명하게 되어있더라고...’
▶태국의 위대한 승려의 탄생 계기(태국에서 파는 책에 나온 이야기, 우화인듯)
어떤 태국인이 사업에 실패하고 부도가 나서 깊은 절에 피신했다.
주지승은, 굴속에서 일정기간동안 일체의 말을 금하고,
또한 금식하는 계율을 그에게 주었다.
당시에 우연히 한 유럽신문기자가 태국 여행 중에 그 절을 방문했다.
신령한 승려를 만나고 싶다는 그의 요청에,
주지승은 난데없는 기습적인 질문을 받고는 당황한 나머지
응겁결에 굴속에서 수도중인 수도자(도피자)를 소개했다.
유럽신문기자는 그 수도승을 만나고 크게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굴속에서 음식도 제대로 먹지 않아 몰골도 해괴하고,
묻는 질문에 대답도 전혀 없으니까....
그는 유럽에 돌아가서 자기의 신비한 경험을 신문에 대서특필했다.
그러자 유럽에는 ‘욘사마 열풍’ 비슷한 것이 불었다.
그래서 수많은 유럽 인들이 태국의 그 유명한 수도승을 만나러왔다.
이제 그 수도승은 점점 더 신격화되어서 ‘도사’가 되었다.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이제 그는 도사처럼 행동하고 살아야만 했다.
이제 그 ‘도사’는 주지승보다도 더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는 유럽의 다른 언론에도 더욱 대서특필되었으며,
그 절도 늘어나는 방문객을 받기 위해 증축공사로 바빴다.
그래서 주지승 및 절 관계자들도 계속 그가 도사로 남아 있기를 원했다.
그 도사는 자기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심지어는 유럽 인들도 그것을 절대 원치 않았다.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서 계속 도사의 모습을 보기 원했던 것이다....
종교인들은 스스로 우상화/신격화 되는 것을 끊임없이 탈피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스스로 속는다. 자신이 정말 도사인 줄 알고...
바로 그 때는 종교가 타락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김일성교’ 및 이단종교가 탄생되는 것도 이런 시스템을 밟아 가리라....
'황우석교' 역시 이런 황교수 우상화, 언론 띄우기 과정이 있었다.
국가는 그에게 최고과학자 칭호를 주었고, 항공기 일등석도 배정되었다.
자기 난자를 제공하겠다는 여성이 꽃을 들고 줄을 설만큼 종교화되었다.
그러나 그는 일찍 보통 사람의 자리로 제발로 걸어내려왔어야 했다....
(이런 면에서 어쩌면 그도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그의 재기를 바라며...)
모든 명사, 위인, 도사들은 보통사람의 자리로 늘 되돌아와야 한다.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행 10:26)
▶하나님이 물으실 때
천국 문 앞에서 하나님이 물으실 것이다.
“너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느냐?”
.
.
“하나님 은혜로, 그냥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네요....”
반면에 "하나님, 저는 남다른 능력이 많은 특별한 사람이잖아요!"
라고 대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스스로 속은 사람 빼고는....
..............................
註1)
마틴 루터 킹 Jr(주니어) 목사가 암살당하자
미국 언론은, 그를 국민적 영웅으로 추대하고 우상화하며
그의 진정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미화시켰다.
그러나 킹 목사의 여동생은
‘그는 성인이 아니며 단지 한 보통의 평범한 사람’
이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진정한 성인이었다.
「유식의 즐거움」필립 & 리처드 로건 저, 휘닉스 출판사, p. 105.
註2)
처칠(1876~1965)은 1930년대 10년간은
따돌림을 당하며 황량한 정치 인생을 걷는다.
당시 그는 히틀러와 나치의 위험성을 일깨웠지만,
대중은 그의 경고를 대체로 무시했고, 영국의 지배 계층은
처칠이 나치의 위협을 과장한다고 생각했다.
처칠이 60세가 되었을 때 세계무대에서 그의 역할은 미미했고,
그는 자신의 정치 생명이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나이 66세 즈음, 마침내 그의 때가 왔다.
1940년 그는 전시 총리가 된 것이다.
'분류 없음 > 2006'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는 “말씀으로” 세워 진다 (0) | 2019.12.29 |
---|---|
스코틀랜드 교회 목회자들의 죄 고백 (0) | 2019.12.29 |
기적도 지나치면 해(害)가 된다 (0) | 2019.12.28 |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자 (0) | 2019.12.28 |
지미 카터, "종교적 근본주의가 미국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 (0) | 2019.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