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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1

구속의 완성을 위해 종말도 필요하다

LNCK 2019. 12. 30. 16:01

 

◈구속의 완성을 위해 종말도 필요하다              벧전3:20          스크랩

 


우리가 알고 있는 종말론 중에는,

일찍이 아인슈타인 박사가 주장했다고 하는 <꿀벌로 인한 멸종설>이 있습니다.


이 가설은, 이 땅에서 꿀벌이 사라지게 될 경우,

꿀벌을 통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들이 자랄 수 없게 되어서,

불과 4년 내에 식량부족으로? 인류도 멸망하게 된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휴대폰을 비롯한 전자기기의 사용이 아주 많이 늘어나면서,

꿀벌들이 집단으로 폐사하는 사례가, 전 세계 각지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관련 학자들이 그 원인규명에 열을 올리고 있거니와,

‘꿀벌을 살리자’는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뉴스를 통해서 잘 알고 있듯이,

최근 들어 세계 곳곳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로 인하여 수백 명이 죽는 가하면,

여름에는 이곳저곳에서 폭염과 홍수로 인한 재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구 온난화, 환경오염, 기상이변, 지진과 화산폭발 등,

이런 저런 천재지변이 아주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심판보다 구원을 더 원하십니다.

   

주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말하기를

‘주께서는 단 한 사람도 멸망당하지 않게 하시려고,

죄인들이 모두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참고 기다리신다(벧후3:9)’고 밝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고 따르는 주 예수님은,

우리 인류를 심판하거나 멸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오직, 죄에 빠져 살고 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여

올바른 인생을 살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요12:47절에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말을 듣고서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겠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고, 구원하고자 왔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요3:17참조


물론, 주님은 이 말씀과 관련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모두,

마지막 날에, 내가 말한 진리에 따라 심판받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요12:48


그러니까, 한 사람이라도 더 복음의 진리를 알고,

그 진리 안에서 새롭게 살기를 원하시지만,

끝내 진리를 거부할 경우에는 그 진리에 의해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종말도 ‘구원의 완성’ 차원에서 우리가 이해해야 합니다.

성도의 <구속의 완성>을 위해서.. 종말이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 와중에.. 죄인들이 심판을 받는 일이 곁들여 지겠지만요,

종말의 원래 목적은, 심판보다는, 구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구원과 구속의 완성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멘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하며

종말을 기다리는 자세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계22:20


물론 평소에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성도만,

‘아멘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하며 종말을 기다릴 것입니다.


▲종말과 심판은.. 어떤 의미에서 자연법칙입니다. 반드시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만, 인생도 그 시작이 있으면,

그 종말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 끝 날이 이르면, 모든 사람은 그 살아온 결과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농부가 한 해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 가을에 이르러 추수 때가 되어,

그가 수확한 열매로써 한 해 농사에 대한 심판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이 다 끝나고 하나님 앞에 서면,

우리는 우리의 지난 행적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에 따라 ‘인생’이라는 시험을 치르지 않겠다고 한다면, (종말을 부인한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격도 없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시험을 치르기도 전에, 이미 탈락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든지 복음의 진리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찌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시험을 치를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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