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David Pawson's Unlocking the Bible

Unlocking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P2 / David Pawson

LNCK 2020. 1. 19. 21:14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P2 / 데이빗 파슨 - YouTube

Unlocking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P2                  출처

David Pawson                           

 

◑ 딤전후, 디도서 3권을 다시 봅니다

디모데서와 디도서는 목회서신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다른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이 편지들을 메시지의 관점, 즉 교회의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왜냐면 비록 이 서신들은 개인에게 전달되었지만

이 편지들은 모두 교회를 돕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디도와 디모데가 교회 문제 해결을 위해 파견되었지만 그 두 사람의 임무는 매우 달랐습니다

간단히 우선 장로의 문제를 봅시다

반드시 좋은 장로가 세워져야 사도는 떠날 수 있고, 다른 곳에 가서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레데에는 장로가 없었습니다

교회는 그레데의 도시들에 있었지만 거기에 현지 장로들은 아직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지 지도자를 세우는 문제가 시급했죠

그리고 그들에게 교회를 맡기고 돌보게 해서 교인들을 돕고 성장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디도의 임무는 장로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오래된 문제가 있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잘못 세워진 장로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그들을 해직하고 새로 합당한 장로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왜 바울은 디도를 (에베소에) 보내서 그 일을 하게 하지 않고,

디모데를 보내서 장로를 세우려 했는지.. 저는 모릅니다 (*기질상 디도가 에베소에 더 적합)

아마도 바울에게 뜻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에) 보내어 합당치 않는 장로를 해직하고

새로운 합당한 장로를 세우게 했는데, 둘은 임무가 매우 달랐습니다

 

교회 상황으로 말하자면 디도서에서 바울이 염려했던 것은 그레데 교회의 성도들이었고,

그 성도들의 자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이 성도들은 뒤죽박죽 이었습니다

그들은 배경이나 성품이 불량했습니다

그레데 사람들의 소문은 항상 좋지 않았으며 실제로 그들은 악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연히 그레데 교회에 들어온 것이지요

반면에 에베소는 지도자가 잘못되었고 성도들은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서신의 강조점이 서로 달랐습니다

 

디도서는 성도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디모데전후는 리더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썼죠

 

두 편지를 합하면 한 폭의 완전한 그림이 될 수 있습니다

 

두 교회가 모두 문제가 있었는데, 모두 잘못된 가르침이 유입되었고, 나쁜 가르침이 들어왔습니다

그레데의 문제는 중앙에 있지 않고 주변에 있었습니다 (성도의 문제니까)

그레데 문제는 교회의 변두리에 있었습니다 교회의 가장자리인 (리더가 아니니까)

성도들 사이에서 어떤 이상한 생각들이 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베소 교회는 잘못된 가르침은 오히려 중심부인 리더들에게서 왔는데,

이런 잘못된 가르침은 교회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컸습니다 이해되시죠?

 

그래서 디도서에서 잘못된 가르침을 논했는데, 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전후서에서는 이 옳지 못한 교사들은 전면에 부각된 문제였고,

그래서 교회는 반드시 해결해야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에게 세 가지 임무를 주었는데,

그러나 상황이 달랐기 때문에 강조점도 달랐습니다

 

1. 그 세가지 임무 중 첫째는 <인계 작업>을 완수해야 했습니다

교회는 사도의 인솔을 받았지만 이제는 현지 지도자가 이끌어야 하는데,

이 리더십 양도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래야 좋은 의미에서 교회가 독립적이 되고,

처음에 교회를 세운 사도를 의지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지도자는 점점 사람들이 자신을 덜 의지하게 이끌어갑니다

 

좋지 않는 지도자들은 사람들을 더욱 자기를 의지하게 합니다

그러나 훌륭한 지도자, 훌륭한 부모는 자녀를 부모 도움없이 독립하도록 키웁니다

좋지 못한 양육법은 자녀가 자꾸 엄마 앞치마를 붙들도록 키웁니다

 

그래서 훌륭한 교사는 학생들이 점점 더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이 되게 하며

스스로 해결해 가도록 지도합니다

좋지 못한 교육법은 학생에게 자꾸 교사를 찾게 만듭니다 제 말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래서 교회의 리더십 인계를 완수하기 위해선

훌륭한 지도자와 훌륭한 성도들에게 맡기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다음에 양적 성장도 뒤따를 것입니다

 

교회 초기에 중요한 것은.. 여기 앉은 분들 중에도 개척하시는 분이 계실 텐데요

아마도 많은 고생을 하면서 차츰 교훈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먼저 질적인 지도자와 질적인 성도들이 있어야 됩니다

먼저 기초를 잘 닦으십시오 그 다음에야 많은 사람들이 회심할 것입니다

 

그런데 개척초기에 지도자들이 약하고 성도들도 약하면,

성장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2. (디도와 디모데의) 두번째 임무는 교회의 혼란을 일으키는 자들을 해결하는 것이며,

교회는 혼란 중에 있었습니다

 

(문제 일으키는 자를) 맞서는 것은 교회 지도자에게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지도자가 문제를 무시해 버리면, 그것은 더 악화됩니다

 

만약 문제가 보이자마자 직면하고 해결하기를 주저한다면,

그걸 오래동안 카페트 아래 숨겨둘 수 있는데 하지만 문제는 악화되기만 할 것이고,

결국에는 당신 면전에서 폭발하여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까?

 

교회가 어떤 문제가 나타났는데, 하지만 지도자가 바로 해결하지 않고, 직면하지 않으면

지도자들은 그걸 무시하거나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하는데요

그러면 모든 게 터져서 교회가 쪼개집니다 여러분도 그런 일을 보셨지요, 그렇죠?

 

중요한 것은 문제유발자들을 반드시 대항해야 합니다

그들이 성도이든 아니면 목회자이든 그들은 해결되어져야 하며

그들이 한 일을 교회가 직면해야 합니다

 

그들의 교회 내에는 (세부적으로) 세가지 일들이 다루어져야 했는데,

후에 다시 돌아와서 이 내용을 강의하겠습니다

 

3. 교회의 기초를 놓는데 있어서 세번째 중요한 일은 교회가 진리를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궁극적으로 교회를 가장 안정되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좋은 가르침을 주는 것입니다

이 점을 제가 매우매우 강조하겠습니다

 

교회가 만약 체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쉽게 여러가지 모든 피해에 노출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대면하여 가르치고,

복음의 진리를 전하면 많은 교회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성령'이 교회에서 결합되는 것을 보기를 원하며 둘은 모두 필요합니다

성령이 없는 말씀은 교회가 매말라지고, 말씀 없이 성령만 있으면 교회가 터져버립니다

그러나 성령에 말씀이 더해지면 여러분은 성장할 것입니다"

 

이 말은 제가 들은 명문장을 인용한 것인데, 여러분께 전해 드렸습니다

'(방금 인용한) 이 말은 미쁘도다' 3:8, 딤전4:9

 

이제 우리가 이 세가지 사건을 상세히 논하겠습니다

디모데와 디도는 가급적 빨리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1, 2번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떠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말하길 '가능한 빨리 해결하고 내게로 오라' 3:12, 딤후4:9

 

1 질적인 지도자들

이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제가 자주 목회자와 교회지도자 세미나를 여는데

제가 항상 그 지도자들에게 '여러분의 성도들의 가장 큰 문제는

지도자를 (/단점을 모두 다) 따르는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왜냐면 지도자들은 항상 제게 불평하는데, 성도들이 자기들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여러분의 말에는 따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행함을 보고 따릅니다 필연적으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지도자를 따르게(배우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그들은 지도자의 말에 따르지 않고, 지도자의 행위를 보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지도자의 한 가지 놀랍고도 무서운 책임은,

교회에서 지도자의 강점과 단점이 (자연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1인 지도자 체제의 위험입니다

왜냐면 그 한 명 지도자의 성격이, 교회 전체의 성격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수 지도자, 복수의 장로(목회자를 뜻함)가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강점들이 더 많아지고 또 여러 지도력의 균형이 더 잘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한 지도자만 있을 경우 개인의 장점과 단점을 교회에 나타내게 됩니다

왜냐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지도자를 닮는 성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도자의 말을 닮는 것은 아니고, 지도자의 사람됨과 그 행함을 닮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목회서신에는 교회 장로와 집사의 자격에 대해 나옵니다

 

딤전3, 1장 여러분이 파악하셨겠지만

그 자격요건은 은사나 능력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지도자가 뭔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보고 지도자를 세우는 게 아니라,

지도자의 인격을 보고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가 가정에서는 어떻게 행하며, 또한 사회에서는 어떻게 행하는지...

세상은 그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여러분의 교회가 장로를 선택할 때,

여러분은 교회 바깥 불신자들에게 그의 추천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래본 적이 있습니다 한 번 그렇게 해 봤어요

우리가 장로 후보자의 직장 동료에게 그의 견해를 받아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동료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이 사람을 (장로로) 세우게 되어 참 행운입니다'

 

'럭키'라는 말은 크리스천이 쓰는 말이 아닙니다

그건 세상 사람들이 선한 사람을 언급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 사람을 선발하는데 매우 큰 신뢰를 갖게 하였습니다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딤전3:7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바깥에서도 증거를 얻어야 합니다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자질은 '급히 분내지 않고' (1:7) 불의의 재물을 탐내지 말아야 하고,

그리고 자신의 집을 잘 다스려야 하며 (딤전3:4)

 

그리고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제게 여자가 장로(목회자 의미) 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말하기를 '그가 한 아내의 남편이기만 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왜냐면 이것은 성경에서 나열한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에서의 장로의 직분은 남자의 책임이라고 믿습니다

마치 가정에서의 징계 책임은 아버지에게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교회의 징계 책임을 남자에게 주셨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는 것은, 제가 쓴 <지도자는 남자에게 속하느니라>는 책을 읽어보세요

성경에서 집사와 여집사 모두 언급했고, 그들은 교회에서 봉사로 섬기는데

하지만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그들의 인품이 중요합니다

 

재정 집사도 인격적인 성품을 갖추어야 하고, 식사 봉사하는 집사도 성품을 갖추어야 합니다

왜냐면 교회에서 봉사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고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능력은 당연히 도움이 되지만 흥미로운 것은 지도자의 자질이 능력에 있지 않았습니다

장로의 자격에서 유일하게 언급된 능력은 가르침을 잘 하며인데,

왜냐면 장로는 가르치는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일어나서 설교하는 능력이라기 보다는 말로 잘 소통하고 타이르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디닥티코스

 

한 사람과 소통할 수도 있으면, 이게 되면 천 명도 소통할 (가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하는 조건입니다

 

이 세 권의 서신에는 지도자의 자질에 대해 많이 묘사했으며, 바울의 다른 어떤 서신보다 많았습니다

 

제가 전에 섬겼던 두 교회를 아직도 기억하는데, 당시 장로를 선발할 때

제가 그들과 먼저 디도서와 디모데전후서를 강해해 드렸습니다

두 교회 모두 제게 장로 추천 명단을 달라고 해서 제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당신들에게 선택하는 것을 가르쳤는데, 하지만 당신들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이 택한 사람들은 바로 제 마음에 두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반드시 장로가 갖추어야 하는 자질이 어떤 것인지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자신의 지도자를 알아봅니다 왜냐면 양은 목자의 음성만 따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는 어떤 지도자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지도자인지를

알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그 지도자들과 함께 협력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무턱대고 목자를 따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

 

러나 성도는 (바른 지도자) 그들의 가르침을 들어야 하고,

그 목자들이 인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다면 <성도의 자격>은 무엇입니까? 디도서에서 볼 수 있는데,

이 성도의 자질은 교회, 가족, 직장과 사회에서 나타나는데, 보시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2

 

디도서는 교회 <성도>의 훈련 교제와 같습니다

성도가 어떻게 복음의 진리를 치장해야 하는지를 논했는데 adorn 이란 말은 참 좋은 말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치장해야 (adorn 장식해야) 합니다 매력적으로 보이게 해야 합니다

바울이 이 서신들에서 계속 관심가졌던 것은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 반드시 모범이 되어야 하고,

장로(목회자)는 교회 밖에서도 좋은 명성을 얻어야 합니다

 

교회는 자체적으로 가르침을 좋게 보이게 해야 하고 adorn 은 좋게 보이게 하고

사람들에게 매력적이 되게 한다는 거죠

우리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그들을 끌어당기게 해야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이 서신에서 나열한 덕목은

크리스천들이 생각하는 그런 덕목이 아니었고, 헬라인들이 생각하는 덕목이었습니다

헬라인들도 덕목에 대해 스스로의 견해가 있습니다

 

비크리스찬들도 무엇이 좋은 덕목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뜻밖에도 이방인들이 덕목으로 생각하는 리스트를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하길 '크리스천들도 이방인들이 생각하는 바 선한 삶(덕목)을 여러분도 살아야 한다!'

아주 흥미롭지 않습니까?

 

성도의 자격은, 교회가 생각하는 자격이 아니라, 세상이 생각하는 자격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세상 사람들의 표준에 도달해야 하고, 또한 그 표준을 넘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울의 뜻이었어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표준도 고려해야 합니다

 

여러분 비신자들은 그렇게 우둔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판단력이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도 예수님에 대해 들었고,

그들은 크리스천이 예수님을 닮았는지도 볼 줄 압니다

백성들은 '임금님이 벌거숭이' 라는 것을 압니다 (우화 인용, 세상 사람들도 현명하다는 뜻)

그들은 신자들을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비신자들은 선한 삶과 악한 삶의 차이를 분별해서 알고 있습니다

신자 중 누가 의롭게 살고 누가 잘못 살고 있는지 그들은 다 보고 있습니다

혹시 그들의 표준이 아마 크리스천의 표준보다는 못하지만

그들도 선한 사람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견해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디도에게 말하기를 '너희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 반드시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적어도 이방인의 기준까지는 살아야 한다'고 권면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근친상간을 범한 사람을 비판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때 그는 '그건 이방사람도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죠

'그런데 너희는 교회에 허용하는구나'

 

신자는 크리스천의 표준에만 맞게 살아서 되는 것이 아니고,

세상 사람들의 표준을 초월해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 사람을 보면 그들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진심으로 그들 신자들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좋은 지도자, 좋은 성도여야 합니다 성도가 좋은지는 성도 서로의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특히 남녀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나는데, 교회에서 남녀가 여전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중성이 아닙니다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행해야 하며

세상 사람들이 참 남성상을, 참 여성상을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아마 성소수자) 자기 생겨난 모습 그대로 살기 원하는데

교회는 이런 사고구조에 반대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의도하신 남자와 여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도 복음을 멋지게 보여주는 일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사람들을 끄는 거죠 아세요?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신자들이 정말 참 남성상을 보여줄 때 그들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남성 사역'을 시작한지 4~5년 밖에 안되었는데

2주 전에 230명 남자들이 여기에 왔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보시는 진정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니 마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최근에 제가 두 번 가서 설교했던 교구 교회가 있는데, 그들의 남녀 비율을 1:5였는데,

이는 복음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남자와 여자에게 모두에게 주어졌는데,

저는 가능한 교회의 남자들을 견고하게 세워 주려고 하는데,

이것이 복음을 아름답게 드러내는 일입니다 진짜입니다

 

여성들도 복음을 아릅답게 드러낼 수 있는데 참 여성상을 보여줌으로써 그렇게 됩니다

 

▲이 분야는 이 서신서에서 아마 가장 논쟁적인 가르침인데,

여권주의자들은 그래서 이 (목회)서신서를 아주 싫어합니다 정말 그래요

그래서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서신서를 공격합니다

 

제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많은 신학자들이 쓴 책을 보았는데, 저는 그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싶고,

그들의 관점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이 서신서에 대해 5가지를 언급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진짜라고 믿습니다

 

1) 우선 그들은 이것이 바울이 쓴 편지가 아니라고 하고,

이것은 기원 2시기 때 바울의 이름을 위조한 것이라고 합니다

 

2) 만약 이것이 진짜로 바울이 기록한 것이라면 그가 회심 전의 견해를 말한 것이라 주장합니다

바울의 랍비 시절의 견해인데, 늙은 바울이 말을 할 때 (부지불식간에)

옛날 젊은 유대인 관점으로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3) 그들이 이는 완전히 문화와 연관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오늘날 태어났다면 반드시 남자 6명과 여자 6명을 택하여

사도가 되게 하였을 것이라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기 가장 좋아하는 말은 "바울은 당시의 문화속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데, 여러분은 이런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12명 남자를 택하여 사도가 되게 한 것은 당시의 문화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교묘한 주장입니다 왜냐면 주님이 만약 당시에 여자를 사도로 택했다면

그시대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들어보세요 예수님이 어느 때에 교묘하셨습니까(눈치보셨나요)?

그분이 어느 때에 당시 문화의 흐름에 순응했습니까?

이는 명백하게 예수님을 거짓증거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전에 예수님을 칭찬하면서 말하기를

당신은 사람들의 견해를 아랑곳하지 않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막12:14 22:16

예수님은 그렇게 하는 일이 옳으니까 그 일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시 문화에 순응했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4) 그들이 반박하는 것은, 설령 바울이 썼다고 해도 (여성 차별의) 내용은 이단적이라는 것입니다

 

5) 이것은 당시에는 여인들이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현대는 여인들은 교육받을 기회가 있으니 이 가르침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만약 이렇다면 바울이 교육을 받지 못한 남자들을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당시 예수님이 택한 12명 사도 모두는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도 독학은 했겠지만 '학력'의 관점으로 볼 때 그들은 배우지 못한 남자들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구별해) 지으셨고, 남녀는 서로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에게 서로 다른 역할을 주셨고 서로 다른 책임을 주셨습니다

 

만약 남자가 여자 같이 행동하고, 여자가 남자 같이 행동하게 되면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움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복음을 돋보이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이 오늘날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하지만 성경에 명백하게 쓰여져 있습니다 부인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바울와 디모데의 파견의) 두번째 중요한 임무는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정면 대면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들은 (밀레도) 해안에 와서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바울이 눈물을 흘리며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안다 내가 떠난 후 이리가 양 가죽을 쓰고 너희 가운데 들어와 안에서 너희들을 파괴할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예언이 그대로 응하였습니다 행20:29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어 양무리 속에 있는 늑대를 쫓아내야 했으며,

예수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기록한 근본 원인이며, 이것은 바울의 마지막 편지가 아닙니다

 

우리가 늑대들을 대처하는 세가지 방법을 보겠습니다

우선 먼저 그들이 각종 이상하고 잘못된 가르침을 퍼뜨렸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사건은 오래 전에 이미 지나간 일이고, 지금은 한가지 부활만 있다고 하였는데,

바로 중생하여 구원 받을 때 영적인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도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직접 들었는데,

하지만 우리는 장래에 부활할 것이며, 바울은 디모데에게, 가서 이런 가르침을 교정하라고 하였습니다

 

헬라인들은 몸에 대해서도 비슷한 견해가 있습니다

그들은 금욕주의로 말미암아 육신의 음식과 성욕을 금하였고,

그러면 더욱 거룩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 점도 교정하게 하였습니다

 

또 교회 내에서 어떤 이들은, 유대 문화에서 강조하는

족보와 정결음식법 Kosher을 강조하였습니다   딤전1:4, 딤전4:34

 

각양각색 잘못된 가르침과 세속 문화들이 융합하여 교회로 들어왔고,

또한 많은 어리석은 논쟁과 아무 가치 없는 철학적 토론이 일어났었습니다

그게 뭐든지 아무 가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항상 우리같은 성경교사들에게 묻는데,

어떤 문제는 매우 진지하고, 어떤 문제는 매우 중요하고, 어떤 문제는 매우 어리석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질문에 대답해 주는데,

만약 문제가 매우 어리석으면 우리가 답을 알려주더라도 그들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논쟁을 피하세요)

 

예를 들어 지난 10일동안 (몇 차례) 기가 죽은 한 사람이 제게 와서

자기가 고민하는 문제 하나를 질문하기에, 제가 뭐냐고 물었죠

그는 "제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이야기를 읽었는데,

여기에 중요한 신학 원리가 있다는 것을 놀랍게 발견하였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여러분은 아마도 웃긴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이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당시 그는 제 표정을 보고 말하기를 "당신이 보기에 내가 미친 것 같습니까?"라고 묻기에

제가 "그렇다"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우리의 대화는 비로소 끝났습니다

 

여러분, 의미가 없는 토론을 절대로 하지 마세요 중요한 주제들을 토론해야 하고,

많은 중요한 질문들을 물으실 수는 있습니다

 

여러분은 중세의 신학자들이 시간을 투자하여 무슨 문제를 논의했는지 아십니까?

'1개의 바늘 끝에 천사가 몇 명 설 수 있을까?'

이 문제를 신학자들이 연구하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데,

이것이 바로 의미 없는 토론의 고전적 예입니다 잘못된 가르침은 의미가 없는 토론을 가져오게 됩니다

 

어리석은 문제에 고집하지 마세요 그걸 되씹는 것은 우리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일례로) 천국과 지옥에 관한 (상세한) 문제인데, 저는 답을 줄 수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답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답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답을 주시지 않았으니 제가 아무렇게나 답을 줄 수 없습니다

 

제가 중요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부모들은 자기 아기가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는지를 묻는데,

저는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답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했어요 '저는 한가지는 확신하는데, 하나님이 무슨 일을 (아기에게) 행하셨든지

그건 모두 옳으시다는 것입니다'

 

'당신(부모)들이 저처럼 하나님을 믿으시면,

그분이 당신의 아기에게 옳은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비록 그 질문에 정확한 답을 얻지 못하셨더라도요! 아시겠어요?

 

우리는 추측성 발언을 쏟아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시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바울은 디모데에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에 추측하는 것을 금하게 하라' '무의미한 토론을 하지 말라' 딤전1:4, 3:9

 

왜냐면 이런 토론은 교회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런 의미 없는 토론과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명확한 답이 없는 논쟁(변론)에 빠지는 일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무익한 논쟁에 빠지는 것을 보면 놀랍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잘못된 가르침을 퍼트립니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좋지 못한 예를 (거짓교사들이 삶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메시지만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장로가 갖추어야 할 선한 성품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행간의 뜻을 자세히 읽어보면 어떤 사람이 나쁜 장로인지 읽을 수 있습니다

즉 가정도 제대로 관리 못 하는 사람, 재물을 탐내는 사람, 급히 성내는 사람..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열한 장로가 갖추어야 할 조건은 바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이 갖추지 못한 조건들입니다 이해되시죠? 그래서 여러분은 서신의 행간의 뜻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장로들은 성격이 오만하고 탐욕스러웠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좋은 장로는 응당 두 배의 보수를 받아야 한다' 저는 이 구절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영어성경 번역본이 잘못 번역했습니다

설교와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라고 했습니다 *딤전5:17

 

제가 알기에 많은 교회들이 장로에게 존경honor은 주지만 사례비honorarium는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딤전5:17절의 번역이 '배나 존경'보다 '두 배의 사례비'가 더 맞습니다

왜냐면 이어지는 구절에 '일꾼이 제 몫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했거든요  *문맥상

 

장로(오늘날 목사)는 사례를 받는 직분입니다

장로는 '말씀preaching과 가르침teaching에 수고하는' 이라 했는데,

둘의 차이는, preaching은 비신자들에게, teaching은 신자들에게 하는 것입니다

 

장로는, 교회 밖에서 복음을 전하고, 또한 교회 안에서는 성도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장로들은 배나 사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구절이라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청중이

주로 목회자들 그런데 이렇게 외부, 내부 두 가지 사역을 겸한 장로는 드물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배나 사례를 드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좋지 못한 장로는 그에게 아무 것도도 주지 말며, 그게 교회에 안전하지 않습니까?

특히 재물을 탐내는 자에게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바울의 뜻은 지도자는 반드시 '깨끗한 마음, 선한 양심, 신실한 믿음'에서 섬겨야 하는데,

나쁜 장로는 이 세 가지 자질을 다 갖추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딤전1:5

그들은 잘못된 가르침을 퍼뜨릴 뿐만 아니라 좋지 않는 삶의 본까지 보여 주었습니다

 

세 번째로 그들이 미친 영향의 결과는 치명적이었으며, 황폐함이며,

그들은 교회에 질병과 같았습니다 마치 몸의 괴저(썩은 살)와 같았어요

왜냐면 그들은 방종 liscence 과 율법주의를 섞어서 행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두 가지가 같이 갑니다

 

종종 겉으로 율법주의적인 사람은 속으로는 대단히 성적으로 방종적입니다

왜냐면 둘 다 똑같은 육신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타인에게 율법주의를 강조하는 사람은 이상하게도

그들 내면 속에는 과도한 방종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가 낯부끄러운데, 하지만 의지가 약한 여자들이 이렇게 되기 쉽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개인적으로) 상담하든, 여자가 남자를 상담하든 모두 위험합니다

이런 남자들은 자주 과부나 혹은 의지가 약한 여자들 집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딤전5:13, 딤후3:6

 

그림이 그려지십니까? 교회에서 항상 여성과 시간을 잘 보내는 지도자를 지켜보십시오

의지가 약한 여성들을 맴도는 사람은 그게 그(장로)들이 옳지 않다는 분명한 싸인입니다

그건 마치 (그리스도의) 몸에 질병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울이 이것은 마귀가 훼방놓는 것이며, 마귀적이라 하였습니다

 

이제 디모데는 특별히 이 문제유발자들을 맞서야 했습니다 그들이 행하는 일을 직면해야 했습니다

빨리 그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들을 몰아내고 선한 장로들을 빨리 세워야 했습니다

왜냐면 그러면 교회가 안으로부터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양무리가 곧 늑대들에게 잡아먹힐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가 외적으로 오는 각종 공격을 막을 수는 있는데, 하지만 안에서 일어난 공격은 매우 치명적입니다

 

디모데와 디도의 마지막 한가지 임무는 진리를 전하는 것이었는데,

왜냐면 진리만이 이런 문제들로부터 교회를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교회는 조만간 모두 반드시 진리로 대항해야 했습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렸는데, 하지만 제가 다시 한번 더 강조하겠습니다

 

잘못을 교정하는 가장 좋은 해독제는 진리입니다 나쁜 가르침을 교정하는데

가장 좋은 대책은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며, 나쁜 행위를 교정하는데 가장 좋은 대책은 좋은 행위입니다

잘못된 신앙을 교정하는데 가장 좋은 해독제는 좋은 신앙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제 사역을 이해하시면, 저는 제 모든 시간을 설교나 강의를 준비하는데

최우선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방금 제작한 비디오 (바로 이 강의) 시리즈를 제가 일년 동안 준비한 것인데,

저는 준비 없이 서지 못합니다

 

제가 강단에서의 5분 메시지를 위해 대략 1시간을 읽고 연구합니다

저는 현재 가장 급한 것이 바로 성경 전체의 조직적인 가르침이라고 믿습니다

정확한 가르침만이 성도에게 배의 밸러스트(균형잡는 장치)를 줍니다

그래서 전체 성경을 가르침은 (잘못된 교사와 가르침을 대항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왜 이단들이 기독교를 '우리 대 문'이라 부르는지.. 몰몬과 여호와의 증인들이요

그들 이단들은 대부분 자기 새신자들을,

교회에서 적절히 가르침을 받지 못한 기존 신자들로부터 (그 대문으로) 영입하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이 잘 하는 말은 '우리는 계시록을 가르친다'

그러면 교회 신자들은 계시록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거기 이단에 빠지는 것입니다

왜냐면 신자들은 계시록에 대해 건전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 성도들이 접하는 모든 잘못된 해석에 대하여 바른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래서 말씀을 잘 가르치는 것이 아주 필요합니다

 

그런데 말씀은 말로써 뿐만 아니라 본보기로 가르쳐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씀을 귀로 들을 뿐 아니라 그 진리를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진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전달됩니다

'디모데야, 네가 선포해야 할 메시지가 있는데,

하지만 동시에 네가 반드시 그 말씀대로 사는 모델이 되어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성경 교사들의 도전입니다

 

우리가 독일에 있었을 때 그들이 저의 아내를 매우 칭찬했습니다

우리가 Women's Aglow(환히 빛나는 여성들) 선교회의 유럽 대회에 가서 강사를 했는데,

거기는 제가 익숙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여성 모임이라서

 

저는 마치 다니엘의 사자 굴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모임 후 어떤 사람이 제게 말하기를

'파슨 씨, 우리는 당신에게서 진리를 들었는데, 하지만 당신 아내에게서

이 진리가 (삶으로)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사실 그들이 제게서도 (삶을) 보았어야 했었는데요 이게 그들이 한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메시지를 전해야 되고 동시에 그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모델이 되지 못하면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신자들은 들을 뿐 아니라 진리를 눈으로 봐야 됩니다

그러면 양떼들은 모든 침입하는 왜곡된 가르침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질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몇 권 서신의 메시지를 적용할 수 있을까요?

제가 한 두 가지 간단한 방법을 말씀드리는데 그걸 적용하시면 됩니다

 

먼저 말씀의 원리를 찾고, 그 다음에 적용할 계획을 세우면 됩니다

이 서신서에서 많은 목회 원리에 대한 힌트를 줍니다

 

첫번째는 교회에서 여전히 연령과 성별의 구분이 있어야 하는데, 이 점은 현재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젊은 크리스천은 나이 든 크리스천을 존경해야 하고, 남자는 여자를 존중해야 하고,

여자는 남자를 존중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여전히 연령과 성별의 구분이 있어야 하며, 우리는 이 구분을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번째는 교회(성도)의 선함의 표준은 세상 사람들이 선함의 표준과 동등하거나 더 초월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원리입니다 왜냐면 세상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며

그들은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또한 교회에서 그런 선한(좋은) 사람을 보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비신자는 사회에서 교인의 행위를 보고서

저렇게 사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라면 나는 안 믿겠다라고 합니다

 

세번째 원리는, 교회 지도자의 자질로, 그의 인격적 성품이

그의 업무수행 능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원리는 '목자'는 양무리의 상태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양떼들'보다요!

(*2~3장 등을 볼 때) 성경은 양무리의 상태에 대해서 결코 양들을 탓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목자들을 꾸짖죠

 

(저도 그렇게 하지만) 많은 목사들이 교회의 상황을 성도들 탓으로 돌리는데요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목자가 양무리의 상태에 책임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다음 원리는, 건전하고 건강한 교리에는 우리의 믿음(신념)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동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리라는 단어가 너무 협의적 의미로 쓰이고 '정확한 신념'만 가리킵니다만

성경에서 말하는 '건전한 교리'(신념과 아울러) 올바른 행위도 포함하며

신념이 행위로까지 연결되는 개념입니다 *sound doctrine '바른 교훈' 딤전1:10, 2:1

 

다음 원칙은 교회는 가정인데, 하지만 지상의 아버지는 없고, 육신의 아버지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사람은, 지도자든지 성도든지 모두가 형제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아무 사람에게나 '아버지'(신부님)라고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 원리는, 교회가 성도를 복지(구제)할 때 반드시 구별이 있어야 하고,

교회가 아무 사람이나 (돕는) 책임을 지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만약 과부의 친척이 그를 도울 능력이 있다면

교회는 이 과부를 도와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나친 구제는 잘못된 자선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 고아 과부를 돌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를 대신 책임을 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해가 됩니까? 교회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과부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친척이 있는 과부가 아니라 교회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과부를 돌봐야 합니다

 

교회가 약자를 돌볼 때 판단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원칙입니다

 

▲마지막 한 가지 원칙이 가장 중요한데, 제가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결말을 짓겠습니다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우리가 대면하는 가장 큰 전쟁은 <교회 내부>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만 하지만 가장 큰 전쟁은 교회 안에서 일어납니다

교회 바깥에서의 전쟁도 안 중요하지 않습니다(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바깥 전쟁이 가장 주된 전쟁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대면하는 가장 큰 전쟁은 참 복음과 복음의 진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정치 이념이나 페미니즘, 상대주의, 시대사조와 뒤섞이는 것을 보호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지금 우리나라 교회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디모데처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딤후1:7

 

우리는 복음의 진리에 대한 이런 공격들에 맞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앞서가신 성도들이 전해준 신앙을 위해 우리가 싸워야 합니다 딤전1:18, 6:12, 딤후4:7

 

이는 침울하고 후회가 될 수 있는 싸움입니다(내 피해도 크니까)

제 아내가 이에 대해 증거할 수 있습니다(암투병 중) 우리의 가장 큰 전쟁은

바로 교회 안에 있으며, 복음의 진리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를 (보호하기) 위한 싸움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해서 세상 사람들을 구하는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반드시 교회 내부에서 싸워야 하는데 '복음의 진리'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왜냐면 만약 사람을 자유케 하는 진리를 잃게 되면 교회는 세상 사람들을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가 이 몇 권 서신에 대한 마지막 결론입니다

만약 당신이 (오늘날의) 디모데나 디도라면, 복음의 진리를 위해 싸우십시오

또한 교회적으로는 복음이 매력적으로 보여서 세상 사람들이 교회로 이끌려오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복음)을 선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삶으로 보여줌을 통해서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