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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locking 베드로전후서 P1 / David Pawson

LNCK 2020. 2. 21. 04:15

 

Unlocking 베드로전후서 P1                                       출처

David Pawson                                                    Unlocking the Bible  

    

166692, 런던에서 큰 화제가 있었는데,

한 빵집의 오븐에서 화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런던 동부의 거기에 가 보실 수 있는데, 그 곳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기념비의 꼭대기는 동으로 도금한 불꽃 잎사귀들이 있는데,

만약 그 기념비를 바닥에 눕히면 당시 발화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당시 그 큰 화제는 막대한 손실을 입혔는데, 20만명이 거주하는 집들이 불에 탔고,

당시 대다수가 목조 가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실액은 1천만 파운드에 달했는데, 이는 당시의 가치로 계산한 것입니다.

90개의 교회가 파괴되었고, 그 후 많은 교회가 건축가 크리스토퍼 랜에 의해 재건되었는데,

성바울 성당도 거기에 포함되었습니다.

 

재난이 발생하면 어떤 인간성을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비난을 쏟아부을 속죄양을 찾는 것입니다.

 

Lockbie 대재난이나 다른 재난도 마찬가지고,

사람들은 뒤집어씌울 누구를 찾습니다. 그래서 누구를 항상 찾죠.

결국 종종 죄없는 사람이 뒤집어쓰게 됩니다.

런던 대화재 때는 프랑스계 가톨릭신자들이 속죄양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불을 질렀다고 뒤집어쓰게 된 거죠

 

주후 64719, 로마 도성이 불에 탔는데,

그 피해지역이 광범위했고, 큰 불이 사흘 동안 타올랐습니다.

그 후에 불길이 잡혔는데 후에 바람이 바뀌어 두 번째 큰 불이 다시 일어나면서

로마의 중심지와 이방 신전들, 많은 집들이 파괴되었습니다.

 

로마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그들은 속죄양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그들은 로마 황제 네로를 비난하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네로가 야심적으로 낡은 건물들을 모두 철거하고,

새롭고 웅장한 건축물들을 세우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 네로가 불을 질렀겠지! 그가 누구를 시켜서 불을 붙였을거야!’

하지만 네로는 그 일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네로는 다른 속죄양을 찾았는데

이때 크리스천들이 뒤집어쓰게 된 것이죠.

 

이 때부터 크리스천에 대한 극심한 핍박이 시작되었고, 심지어 순교까지 하였습니다.

그 박해가 바로 로마의 대화재에 의해 촉발된 것입니다.

 

그들은 고문을 당했고, 또 짐승 가죽을 바느질해서 뒤집어 쓰고 

경기장 사방을 기어다니면서 사자와 다른 맹수들에게 던져졌습니다.

개들에게 공격 당하기도 했고 십자가에서 처형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로마의 콜로세움 경기장을 등지고 서 있었는데,

그 콜로세움 (바깥) 옆에는 낮은 잔디 언덕이 보였고,

그곳이 바로 네로 왕궁의 정원이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당시를 상상해 보았어요. 당시 그가 그 정원에서 바베큐 파티를 열었고,

그는 크리스천들의 몸에 타르와 역청을 발랐고,

그리고 그들을 정원 주위의 기둥에 묶어 놓고 산 채로 불을 붙여

자기 바비큐 파티를 위한 우아한 횃불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충격파는 로마제국 전역의 여기 저기 교회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들이 이 소식을 들었던 거죠.

 

이런 충격파 속에서 베드로가 짧은 편지 한 통을 보냈습니다.

그는 신자들에게 핍박에 대면할 준비를 하라고 한 것인데, 그는 핍박이 퍼질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베드로 자신도 이 핍박에서 곧 순교할 것인데,

예수님의 예언처럼요. 요21:19

 

그 후 30년동안 자신이 장차 십자가에 못박히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것이 그의 마음에 계속 생각났을 것인데, 아주 즐겁지는 않았을 것이에요

네로가 핍박하는 기간동안에 베드로가 로마에서 십자가에 못박힐 때

그는 특별히 십자가를 (땅바닥) 바위에 거꾸로 박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과 똑같이 똑바로 달리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짧은 서신을 기록했는데 우리가 지금 읽고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이 서신을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던 크리스천들에게 써서 보낸 것입니다

지금의 터키, 터키 북서부입니다 베드로가 전에 그 지역에서 사역했던 것입니다

전에 바울은 터키 남부에서 사역했고, 베드로는 터키 북부에서 사역했었습니다

 

베드로가 편지를 써서 말하기를 '준비해라 너희가 곧 환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전서는 환란을 당하는 크리스천들에게 보낸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것은 오늘날 각 곳에서 두려워하는 자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걱정하는 크리스천들에게도

(이 편지가) 합당하며, 사실 (오늘날) 세계 각 곳에서 많은 크리스천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베드로가 그들에게 핍박을 피하라고 말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에게 그것을 견디라고 가르쳤습니다

어떻게 빠져나올까가 아니라 계속 머물러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핍박이 닥칠 때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말한 것입니다

 

크리스천들은 가면 갈수록 포악해지는 사회에서,

반기독교 정서가 증가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쳤습니다)

 

이 메시지가 지금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이는 우리 영국에서 지금 핍박이 나타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빙산일각일 뿐이지만 다음 투표에서 만약 레프트로 기울면 적대심이 더욱 증가될 것입니다

 

는 어떤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우파들이 크리스천을 대적하는데, 영국에서는 좌파가 그렇습니다

 

우리가 훗날에 더욱 큰 전쟁을 대면하리라고 믿습니다

성차별 (금지)법령 뿐 아니라 교회에서 동성애 문제, 교회의 여자 장로(목사) 문제들에서 속박을 받을 것입니다

인종차별(금지)법 아래서 다른 종교를 비평하거나 혹은 자기 종교가 다른 종교보다 좋다고 하는 것

모두가 위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은 크리스천에 대한 압력이 이미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은 베드로가 당시 편지를 보낼 때 정도만큼은 아닌 거죠

 

▲이제 저자에 대해 보겠는데, 우리는 그분에 대해 잘 압니다 베드로는 크게 사랑을 받는 인물이고,

그의 서신도 크게 사랑을 받으며, 크리스천들이 베드로전서 읽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이 서신은 따뜻한 마음이 배여있고 읽어보면 매우 우리 마음에 감동됩니다

 

1장에서 그는 크리스천들에게 말하기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1:8

읽으면 감동되고, 아주 아름다운 편지입니다

 

성격이 충동적이며, 말을 자주 실수하고, 행동이 앞섰던 베드로입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죠 즉 말하면서 즉시 (생각 없이) 행동으로 옮기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성격 때문에 그가 때때로 입을 열었고 예수에 관해 놀라운 것(주는 그리스도시요)

처음으로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베드로에 대해 또 어떤 이해가 있을까요?

그의 원래 이름은 시몬인데, 갈대라는 뜻이며, 아주 신기하게도 아이에게 '갈대'라는 이름을 지어 주다니,

마치 잡초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예수님이 처음 베드로를 보았을 때 이 이름을 좋아하지 않아서 다른 이름을 지어 주셨는데 반석(베드로)입니다

이것(반석)이 후에 이 충동적인 사람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베드로를 보았을 때 베드로는 마치 갈대처럼 임의로 흔들렸지만,

예수님이 떠나셨을 때 베드로는 견고한 반석으로 변했습니다

 

제일 감동적인 것은 베드로가 세번이나 주님을 부인한 후,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를 만나셨고,

부활 후의 예수님이 고기를 굽고 있었는데, 이것은 매우 확실한 사건입니다 (어떤 주교들은 부활을 믿지 않아요)

이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위해 아침을 지었는데, 베드로도 거기에 있었고,

베드로는 갑자기 그 숯불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숯불은 두 곳에서만 나오는데, 한 번은 대제사장의 마당에서죠,

당시 베드로가 거기서 불을 쬐고 있었는데, 한 소녀가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예수님의 친구 아닙니까?’ 하자

베드로가 아니, 아니다라고 하였어요

 

하지만 당신이 북방 사투리를 하고 있잖아요하니 베드로는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하느니라’,

하지만 당신이 그와 함께 하신 것을 보았어요고 하자 내가 맹세하건데 나는 그를 모르느니라

이렇게 말할 때 예수님이 법정 마당을 지나가셨고, 베드로가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때 그가 다시 그 숯불을 쳐다 보았는데(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는 그때 상황이 다시 생각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베드로야, 나는 네가 첫 번째 목회자가 되기를 바랬지만

지금보니 너는 찬송가나 나누어 주려 하는구나’ *안내인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No!

우리는 이렇게 말하겠지만 (예수님은 아니죠)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베드로야, 너를 일년동안 지켜봐야겠다 (징계기간)

네가 다시 제대로 되는지 봐야겠다' (하지 않으셨죠)

일 년을 지켜 본 후에 다시 너의 상황을 평가하고, 그때 너의 위치를 결정하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베드로야, 나는 한가지 일만 신경쓰는데, 한 가지만 묻겠는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래서 베드로가 이 서신에서 독자들에게 강조하기를

비록 너희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그를 사랑하느니라벧전1:8

 

그리고 나중에 (심판대에서) 이것이 제일 중요한 관건인데'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수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참으실 수 있어요 누구든지 사랑한다는 사실만 확실하면 다른 것은 참을 수 있어요

부부는 서로의 추한 것을 제일 잘 압니다 그건 극복할 수 있어요 서로가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 같이 가게됩니다

 

...........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을 물으셨고, 이에 베드로가 반석으로 변하였으며,

베드로는 첫 번째로 일어나서 설교한 사람입니다 (오순절에)

 

제게 베드로의 삶에 관한 10편의 설교테이프가 있는데,

제가 여기 남겨둘 테니 여러분이 들어보세요

여러분께 아주 좋은 연구가 될 것입니다

원래는 갈대 같았지만 후에는 반석으로 마친 분입니다

 

마가복음은 사실상 베드로의 복음이라고 해도 됩니다

마가가 베드로에게서 모든 자료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는 베드로의 약점을 많이 논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마가에게 자기 과거 약점들을 알기를 원해 불러주었고, (겸손)

그가 전에 세 번이나 주를 부인했던 것 같은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전반부에서 베드로를 논했는데,

사실 우리가 베드로에 대해 아는 것은, 바울만 제외하면, 다른 사도들보다 더많습니다

 

갈라디아서에도 베드로와 바울의 의견이 맞지 않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베드로는 여전히 잘못을 할 때가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첫 번째 목회자가 된 것입니다

 

첫 번째 교황이 아니고 교회의 첫 번째 목회자입니다

(교황과 달리) 그는 이미 결혼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그의 장모의 병을 치료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금 고향을 떠났고, 그 후

30년 동안 그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서 살았어요 요21:18~22

현재 그는 로마에 있으며, 핍박이 로마에서부터 터져나왔죠

 

그는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있는 터키 북부의 교회에게 1:1

잘 준비하라고 편지한 것입니다

 

사실 사도행전2장에서 오순절 때 사람들이 그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왔었죠

아마 그 지역의 교회가 바로 이렇게 시작된 것 같습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1:1)

 

그 지역의 몇몇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를 듣고서

바로 반응했고, 세례를 받고, 성령충만하였고,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후에 그들이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당신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었으니,

한 번 우리에게 오십시오

 

아마 그 지역에서 교회가 그렇게 시작된 것 같습니다 더 자세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그들에게 유대적 칭호(흩어진 나그네)를 주었습니다

 

당시에 이미 많은 이방 신도들이 교회에 속해 있었음에도

그는 그들 이방인에게 (‘디아스포라라는) 유대적 칭호를 주었고,

그들을 모두 흩어진 나그네로 불렀습니다 1:1

 

이는 원래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칭호였는데, 이제는 교회에 주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 또 몇 개의 칭호가 나오는데,

너희는 거룩한 나라요 왕 같은 제사장이니라

이 모든 것들은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칭호였고,

베드로가 원래 이스라엘을 부르던 호칭을 교회에 적용시켰습니다

 

마치 각 곳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세계 각 곳에 거주하고 있는 것처럼

(이방인도 포함해서) 크리스천들도 흩어져 있는 백성이고,

우리는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외인이요, 나그네라고 베드로가 불렀는데,

이것이 여러분이 신자가 될 때 가지는 하나의 문제입니다

주님을 믿으면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서서 이렇게 간증할 수는 없어요

내가 예수를 믿고 나서는 나으 모든 문제가 다 사라졌습니다

저는 이런 말을 처음부터 믿지 않고,

이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잘못된 신앙으로 이끌림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간증은 더 간단합니다

저는 17세 때 예수를 믿었고, 그때부터 제게 () 문제들이 시작되었습니다

몇 해 후에 제가 성령으로 충만해졌는데, 그러자 () 문제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자주 묻는데, ‘성령 충만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때 저는 항상 한 단어로 대답하는데, “trouble(문제)” 이라고 합니다

 

왜 예수 믿을수록 문제가 더 생기는가 하면

성령충만했을 때 즉시로 나타나는 일은

담대하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담대한 말)’은 사도행전에서 방언보다 더 자주 나옵니다.

헬라어로 파레이지아인데, ‘담대하게 말하게 되었다입니다.

이러면 당신이 친구를 사귀거나 영향을 주는데 어려울 수 있어요

오히려 친구를 잃게 되고, 이로써 그들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초대 제자들은 바로 이런 거룩한 담대함이 있었고,

여러분도 이렇게 주변과 어울리지 못할 수 있어요

 

중생하여 구원 받은 증거 중 하나는 유머가 다르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즉 원래 웃긴 이야기가 더 이상 자기에게 웃기지 않고,

원래 웃기지 않던 것에 오히려 이제는 웃게 되는데요,

이렇게 유머감각이 다르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과 소통이 어렵게 변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당신이 현재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려운 것은 만약 부부 사이에서 한쪽이 먼저 주를 믿었을 때인데,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되는 것이지요

 

두 사람은 많은 일들을 함께 하지 못하는데,

이것을 하나님이 의도하지 않으셨어요 (같이 멍에 메지 말라 하셨죠)

      

그래서 신자와 비신자가 결혼하는 것을 금하였는데,

그러면 결혼관계가 긴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부부가 서로 뜻이 맞지 않기 때문에,

가장 불행한 가정이 되는 거죠

부부 사이에서 한쪽만 주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주변과 어울리지 않게 되었는데,

그것은 당신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죠

당신은 사실 다른 어느 곳(천국)에 속했습니다

 

당신이 비록 남은 평생 이 세상에서 살겠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당신은 이미 새로운 종자 spicies 로 변했으며,

당신이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고, 호모 노보스 (homo novus 새로운 사람)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아담 안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었고,

세상에서 새로운 부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당신은 주변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고,

이러한 사람은 반드시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전에 우리가 농장에서 많은 새끼돼지를 낳곤 했습니다

그중에 런트 runt’라고 부르는, 작고 무리와 다른 돼지가 태어납니다

결국에는 다른 새끼돼지들이 그를 괴롭히지요 무섭게 괴롭힙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없는 사회는 정글과 같습니다

우리는 마치 벌거숭이 유인원 같고, 하지만 유인원의 행동이 인간처럼 그렇게 악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유인원의 후손이라는 것을 저는 믿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더 악하다는 뜻)

 

사실 우리는 그들보다 더욱 열등한데, 이는 유인원은 인간이 하는 것처럼

그렇게 자기들끼리 서로 악하게 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매우 불친절합니다

뭔가 자기들과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잔인하게 대하는데,

이는 사람에게 원죄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에게는 환란이 온다는 것을 예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매우 솔직하게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는 너희가 큰 환난을 당하나16:33 

 ‘그러나 기뻐하라, 내가 환란을 초월해서 존재한다!’

    

제가 최근에 한 친구에게 잘 지내냐고 인사했더니

그가 말하기를 내가 나의 상황을 잘 초월하고 있어요!’

 

크리스천들만 이런 말을 한다고 제가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가 처한 상황을 초월했고,

기뻐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내가 그 환란 위에 초월해 있다 너희는 내 안에 있다

그래서 너희도 나와 함께 큰 환란을 당할 것이다

 

주님은 항상 우리에게 큰 환란을 약속하셨어요

 

당시 바울이 갈라디아 남부 지역의 교회에 (돌에 맞고 기절했다가) 다시 들어갔을 때

그는 그들에게 바로 이 메시지를 전하려고 거기 갔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14:21~22 루스드라 성에 다시 들어감)

 

우리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정직하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기뻐하십시오 예수님이 그 문제 위에 계십니다

이것은 진실로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정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제게 묻기를

어떻게 하여 야고보에 대해 그렇게 많이 이해하고 있냐고 합니다

 

저는 신약성경에서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초대교회의 문헌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이 문헌들은 믿을만 합니다

 

이 초대교회 문헌들이 엄선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알려진 선집은 <초대교회선집 Documents of the Early church>이라고 있는데,

헨리 베틴슨 Henry Battinson이 편집했습니다

 

이 자료들은 아주 괜찮습니다 비록 성경의 말은 아니지만,

사도의 권세도 없지만,

우리에게 초대교회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하게 합니다

 

1세기 초에 문헌 하나가 있는데

<디아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 Epistle To Diagnetus>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의 어떤 한 귀절이 아주 감동스럽습니다

 

이것은 당시 도시 당국에 크리스천들을 위해 변호하는 한 통의 편지였고,

당시 크리스천의 진정한 모습을 묘사했으며,

크리스천이 불량 시민이 아니고, 나라에 충성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우리 크리스천들은 좋은 시민이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아래 구절이 특별히 제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데요

크리스천은 이 세상에서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름답게 묘사했습니다

제가 인용하겠습니다

 

  크리스천들은 그들의 언어나 풍습으로 남들과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크리스천은 헬라 도시에서 살고, 또는 야만인 가운데도 사는데,

   하나님이 각자 거기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옷 입거나, 음식, 또 다른 사소한 생활에 있어서 그 지방의 풍속을 따랐지만,

   그러나 그들의 나라(천국)의 놀랍고도 열린 모순적 성격을 나타내 보여주며 살아갑니다.


    그들이 어디에서 태어나면 바로 거기에 거주하는데,

   그러나 잠깐의 나그네 신분으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시민의 의무를 다 감당하면서도,

   외지인이라고 받는 여러가지 불편을 참았습니다

 

   모든 외국 땅이 그들의 고향 땅이었고,

   그들의 고향 땅이 그들의 외국 땅이었습니다 

   그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지만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분명하게 묘사했네요

크리스천에게 세계 모든 땅은 그들의 고향과 같습니다

 

선교사들이 세계 각 곳에 가서 현지의 풍습, 옷 입는 것과 언어를 받아들이지만,

사실 거기는 타향인 것입니다

 

설령 당신이 지금 출생지에 거주하고 있다해도

당신은 여전히 타지인이고, 다른 곳(천국)에 속해있는 사람입니다

 

크리스천의 상황이 바로 이렇기 때문에 고난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남다르고, 주변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만약 시국이 안정되고, 사회가 번영하면

이런 번거로움을 만나게 되지 않을 것인데,

하지만 사회가 어려워지고, 위기가 임할 때

남다른 사람은 먼저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현재 실업률이 매우 높고 (1992년 경)

동부의 실업률이 50%에 달했는데, 결국에 고난을 받는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바로 터키 사람들이고, 외지인들이며,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입니다

 

당시 독일의 경제가 번영할 때 그들은 환영 받았죠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경제 불황으로 그들이 압박 받고 있어요

 

그래서 (당시 사회에) 환란이 임할 때 크리스천들이 비교적 압박을 많이 받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이 곳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르고, 우리는 이 무리나 세상 단체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 서신서에서의 하나의 기본 주제입니다

환란이 이 서신서의 중심 사상이죠

 

당신이 만약 이 서신서에서 환란이라는 단어에 밑줄을 치면,

서신서의 전체에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또 다른 두 개의 주제를 말했는데,

하나는 구원이고, 그는 그들에게 구원을 잊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환란을 대면했을 때 신자가 가질 근본적 태도입니다

 

그리고 실제적인 측면에서, ‘고난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논하였습니다

     

그의 조언(베드로전서)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고난에 복종하는 것을 배우고,

고난에 대항하지 말라는데 있습니다.

 

자기의 본래 소유를 되찾으려 하지 말며,

고난을 받아들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예사스럽지 않은 조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몇 방면에서 복종 submission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맹목적으로 복종하라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순종의 자세를 품는 것을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한가지 사건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홀로코스트 때)

바로 당시 유대인들을 강제수용소로 끌고 가서 말살하려 했을 때

그들은 놀랍게도 조용히 화장터로 걸어갔습니다.

 

그들의 태도는 뜻밖에도 이렇게 순종이었는데,

참으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은 곧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것이 바로 너희들이 가져야 할 태도라고 하였습니다.

당연히 이것은 인간의 본능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그렇죠?

 

이런 상황은 정의롭지 못한 일을 당할 때

우리의 정상적인 반응에 반하는 것입니다

 

불공평한 일을 만났을 때 우리는 보통 이렇게 반응합니다.

아이가 어릴 적에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이런 것이기도 하죠.

그건 공정하지 않아요!’

 

이렇게 말할 때 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지지요.

공장 밖에서 파업하는 사람들의 표정도 이렇습니다.

그들 모두는 똑같은 심정으로 불공정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불공정한 대우나 오래 고난을 받았을 때 나타내는

우리 육신의 (본능적) 반응입니다.

 

주먹을 꾹 쥐고, 자기 권리를 쟁취하려 하지요.

하지만 베드로는 말하기를

너희가 하나님 나라에서는 너희에게 자기 권리가 없느니라.

크리스천들은 닥칠 고난에 예비할 필요가 있는데,

그건 순종을 배우고 고난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놀라운 충고입니다.

당신의 본능은 (부당한 대우에) 순종하지 말고,

그것에 싸우며, 응당 막을 방법이나, 멈추게 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하죠.

 

그것은 불공평하고, 우리는 고난을 당해선 안 된다고 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잘못이 없기 때문에요.

 

하지만 계속해서 베드로는 이런 태도는 틀렸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완벽한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반항하지 않았고 단지 십자가를 거꾸로 땅에 박아 주십시오라고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대로 살았습니다.

 

 

  

이제 우리 이 서신서를 읽어보고 한번 느껴 feel 보겠습니다.

(파슨 박사는 성경의 '이해'보다 '느낌'을 더 중요시 여깁니다)

이 서신은 세 가지 주제(구원, 환란, 복종)를 따라 움직입니다.

 

그가 비록 구원에서 고난을 논하고, 다시 복종을 논했지만

이 세 개 주제가 서로 연결성이 있고,

세 주제가 항상 같이 갑니다.

 

벧전 1~2장은 중점을 구원에 두었지만

베드로는 교회가 스스로 고난에 대면할 준비를 하라고 경고했습니다.

 

고난이 임할 때 우리는 먼저 자기가 구원을 받았는지 여부를 확실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확실치 않으면 문제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면 구원은 제일 견고한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하기를

두 가지 면에서 자신이 이미 구원받았다는 것을 확신해야 하는데,

첫 번째는 개인적 방면이고, 두 번째는 공동체적 방면인데요,

이것이 구원받았다는 증거의 두 가지 부분입니다.

 

구원받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지만

우리는 확실히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가족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압박이 올 때 이 가정(신앙공동체)이 당신을 안정시켜 줍니다.

당신은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지탱할 수 없고,

당신이 속해있는 교제권의 일원으로서 함께 지탱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구원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오는데,

그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은 거듭났다고 말씀합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당신은 그 말씀을 통해 구원 받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세 가지를 이끌어 냈는데,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 마지막 부분에서 말하기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이라

 

이 세 가지 크리스천의 덕이 (고후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죠.

성경 전체에서 나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과거에 당신에게 하신 역사이고,

소망은 미래의 역사이고,

사랑은 현재의 역사인데,

믿음, 소망, 사랑은 바로 여러분 개인적 구원의 세 가지 측면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문제는

믿음, 소망, 사랑 세 가지가 함께 가는데,

그 중에서 가장 소홀히 되는 부분은 소망입니다.

이것이 정말로 비극입니다.

 

그래서 제가 전에 설교 비디오테이프를 만들었어요.

<Final facts 말세의 사실>이라는 비디오였어요.

 

제가 영국 전국 각 곳을 다녀보았는데,

미래를 강의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가 현재의 하나님 나라를 강의하고 있었고,

모두가 지금 여기를 강의하였어요.

 

오늘 그 하나님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결혼 생활은 또 어떻게 해야 하고,

사업은 또 어떻게 해야되는지를 논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새로 생긴 교회들이 천국과 지옥,

그리스도 재림과 마지막 날의 심판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비디오를 제작하여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망측면을 회복하려고 하였습니다.

소망은 하나의 닻과 같습니다. 닻은 소망의 상징입니다.

 

폭풍우가 올 때 닻이 있으면 견고합니다.

당신이 만약 미래의 결말을 안다면,

위기가 임할 때 당신은 소망으로 여전히 견고하게 서 있게 될 것입니다.

 

만약 폭풍우가 닥칠 때 닻을 이미 내렸다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모든 고난을 대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믿음과 사랑을 강조하지만,

사람들에게 어떻게 소망을 가지라는 것은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전서는 하나의 소망의 서신입니다.

그는 베드로전후서 에서 소망을 강조했는데,

믿음과 사랑보다 더욱 많이 강조했습니다.

 

그가 말씀한 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의 죽음에서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살아있는 소망을 주셨고,

설령 사람이 우리를 죽여도 사망은 우리를 통치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살아있는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는데,

바로 죽은 후에도 새로운 몸과 새로운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알게 되면 사망도 대면할 수 있습니다.

 

제 친구 한 명이 호주 시드니에서 

칼을 가진 강도를 만났는데,

강도가 칼을 그의 가슴에 대고 말하기를

돈을 내놓지 않으면 내가 칼로 찌르겠다고 하니

 

제 친구가 말하기를 당신은 나를 겁줄 수 없다

강도가 왜 그런데요?’

친구는 만약 당신이 칼로 나를 찌르면 그건 나를 곧바로 천국에 밀어넣는 것인데,

나는 일찍부터 천국 가기를 갈망했었다

 

그의 이 말은 진짜였습니다.

강도는 칼을 내려놓았고,

친구는 그를 주님께 인도하였습니다.

 

이런 본능적인 반응은 참으로 멋있어요!

그에게는 매우 확실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저의 또 다른 한 친구는 감리교 학교의 학장인데,

한번은 강도가 그의 집에 들어와서 그에게 총을 겨누었습니다.

 

그의 서재에서 테이블 하나 거리에서 그를 겨냥했는데,

친구는 그에게 묻기를 당신이 어떻게 해서 이 지경까지 이르렀습니까?’

그가 걱정하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그 사람이었어요.

 

결국 그도 이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이는 정말로 아주 큰 하나의 도전입니다. 그렇죠?

 

당신에게 확실한 소망이 있을 때

사망도 당신을 위협하지 못하고,

그것이 여러분을 곧바로 주님 앞(천국)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

제가 허버트 실버우드 Herbert Silverwood 의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를 들어본 사람이 계십니까?

 

그는 이전에 술집에서 토크쇼를 하던 사람이었는데 복음전도자가 되었어요.

그는 전에 종종 야머스 Yarmouth 해변으로 가서 그 산책길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를 아시죠?

 

한번은 그의 친구들이 찾아와서 그에게 함께 수영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수영을 싫어했어요.

그는 화려한 색상의 버뮤다 반바지를 입고 그들과 함께 갔습니다.

그들은 그를 데리고 갔지만, 그는 수영을 할 줄 몰랐어요.

 

그런데 바다 물밑이 생각밖에도 아주 가파로웠고, 아무도 그런 줄 몰랐어요.

그는 물에 빠져서 끊임없이 물을 퍼덕거리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구조대원이 재빨리 그를 구했고, 물기를 닦아주었습니다.

구조대원이 묻기를 실버우드 선생님, 제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겠군요.

제가 한 주간 동안 계속 당신의 천국에 관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당신은 천국에 가는 것을 매우 갈망한다고 말하였는데,

 

하지만 당신이 방금 전에 천국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보고 물에서 꺼내달라고 하셨습니다

 

전직 펍 코미디언 이었던 실버우드의 실력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래를 한 번 내려다보더니 말하기를

당신이라면 이렇게 입고 가시겠습니까?’

 

하지만 허버트 실버우드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천국 가는 것을 확실히 갈망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는 크리스천과, 없는 크리스천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미래에 대해 소망이 없는 크리스천은,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원하면서도,

하지만 그들은 간절히 땅에 남아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소망이 있는 크리스천은

기꺼이 세상을 떠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가운데, 이 땅에 남아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제가 데이빗 왓슨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그와 함께 이 말을 나누었습니다.

 

이 말이 그에게 지극히 큰 영향을 주었고,

그는 <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Fear No Evil>라는 자서전에서

이 편지를 언급했습니다.

 

제가 편지로 그에게 묻기를

데이빗, 당신이 천국 가는 것을 진정 원하지만, 세상에 머물고 싶어요?

아니면 천국에 그저 가고 싶지만, 세상에 진정 머물기를 원하십니까?’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세상을 떠나고 싶지만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더 머물기 원하셔서, 나는 머물 것이다고후5:8~9

 

두 개의 차이점이 아주 큽니다. 그렇죠?

그래서 베컨스필드에 살던 한 사람은 편지하여

와서 크리스천이 (자기가) 어떻게 죽는지를 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떠나기를 갈망하는 것이 바로 소망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새 생명과

소망을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또한 우리에게 ‘(불로) 연단한 믿음을 주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너희는 (환란을) 걱정하지 말라

너의 믿음이 마치 금과 같고, 금은 항상 불로 연단됩니다.

너희 믿음이 불 같은 시련을 통과한 후에 정금같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벧전1:7

 

옛날 사람들은 금을 연단할 때 모두 큰 쇠그릇을 사용하였습니다.

그 쇠그릇을 불에 올려놓고 자신의 얼굴이 (금물에) 똑바로 보일 때까지

끊임없이 저었습니다.

 

그 때가 되면 정련을 멈추었는데,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로 (불 같은) 시련을 통과해야 합니다.

(순수한 믿음인지) 시험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에는 기쁨이 가득한 사랑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그를 보지 못했지만 그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큰 기쁨이 있는데, 벧전1:8

 

그런데 이런 사람은 절반만 구원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절반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공동체적인 측면인데,

하나님 자녀들 가운데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는 성경의 말씀을 통해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하나님 자녀들 무리에 가입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교회)’은 베드로에게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가 고난을 말하기 전에 먼저 이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는 이 두 가지를 잘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하고, 소망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또한 반드시 거룩한 제사장 무리의 일부가 되어야 하고,

거룩한 나라에 가입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너희는 살아있는 성전이고,

그리스도는 모퉁이 돌이시며, 너희는 산 돌이고,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벧전2:5~7

 

이 점을 꼭 기억하십시오.

크리스천 전체는 하나님이 지상에서 거주하는 곳이고, 그의 거룩한 성전입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건드리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왕의 제사장들이며, 우리 모두는 제사장들입니다.

 

한번은 제가 스위스 취리히의 세미나 강좌에서 모든 크리스천은 제사장이라고 나누었는데,

마치고 한 사람이 저를 찾아와서 말하기를

당신이 강의가 아주 놀랍군요. 제가 전에는 이런 메시지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당신의 신앙 배경은 어떠한지요?’

저는 가톨릭 신자인데요

세미나에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참석했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당신은 제사장입니까?’

그는 아닙니다 저는 가톨릭 평신도입니다

 

제가 또 말하기를 당신은 제사장입니다’ (*priest: 제사장, 신부 둘 다 됨)

하니 그는 아뇨, 제가 말씀드렸듯이 저는 가톨릭 평신도입니다’ (같은 말을 서로 다르게 이해)

 

제가 당신은 제사장입니다!’

그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는 제가 미쳤거나 청각장애인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제가 다섯번이나 반복하여 말하니 그가 갑자기 웃었습니다. (말뜻을 이해했음)

그가 맞아요 저는 제사장입니다!’

 

제가 말하기를 이제 당신이 제 메시지를 진짜로 알아 들었네요!’

많은 사람들이 설교 잘 들었다고 감사의 말을 하지만 사실은 잘 안 듣고,

잘 안 받아들입니다.

 

제가 그에게 묻기를 후에 누가 당신에게 만약 제사장이 맞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실 것입니까?’

그는 말하기를 네 제사장이 맞습니다

 

이 사람은 드디어 이해했고, 그는 이제 확실히 거룩한 제사장 중 한 사람입니다

 

마음속에 간직하십시오. 당신을 핍박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제사장이고, 당신은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제사장이니까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야 합니다.

당신은 그들의 제사장이고, 설령 그들이 당신을 향해 돌을 던진다 해도,

당신을 욕해도 당신은 여전히 그들의 제사장이고,

당신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아마도 유일한 제사장일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나라이고, 우리는 특별합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은 소수의 무리라고 비웃을 때,

이 확신이 당신에게 힘을 줄 것입니다.

당신은 특별한 (그의 소유된) 백성이고, 거룩한 나라입니다. 벧전2:9

 

이것이 베드로가 닦고자 했던 신앙의 기초입니다.

그는, 신자들이 만약 이 기초를 잘 닦았다면

고난을 대면할 준비가 이미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초는 반드시 올바로 닦아야 합니다.

 

개인적 방면에서 믿음소망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공동체적 방면에서는 신자들(교회)에게 속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그렇게 속해 있죠.

 

그래서 여러분이 산 돌이요 제사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속했고, 이 땅에서 하나님이 불러내신 새로운 거룩한 나라로 건설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고난을 대면할 준비가 이제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세 가지 사건을 논했는데,

1) 첫째는 죄를 지어 고난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이 만약 죄를 범하여 옥에 갇혀있다면

내가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 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2:12

 

우리는 종종 태도나 행실을 잘못해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합니다.

그 때 복음은 본래 남을 실족케 한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복음이 실족케도 하지만 그런 식은 아닙니다.

 

복음 외에는 다른 이유로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해서는 안 됩니다.

확실히 하십시오.

여러분이 감옥에 가게 되면, 그것은 여러분이 범한 어떤 잘못 때문이어서는 안 됩니다.

크리스천이 잘못을 저질러서 감옥에 가게 된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베드로는 악을 행해서가 아니라, 옳은 일에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죄를 지어 고난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2:19~20

 

2) 두 번째는 여러분이 고난을 받을 때 보복하지 말아야 하며,

절대로 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격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게 말하기를 자기가 산상수훈을 읽었는데

다른 뺨도 돌려대라하셨는데,

제가 다른 편 뺨을 돌려대겠습니다 하지만 즉시로 오른쪽 무릎으로 그를 가격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가 나를 모욕주면 나는 그와 다시는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나를 상하게 하면 나는 갚아줄 기회를 기다릴 것입니다.

보복은 인간의 본능이며, 반격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말하기를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라

예수님도 고난을 당하셨지만 결코 보복하지 않으셨다’ 2:22~23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침을 뱉었고..

(이런 고난을 받으면서도 보복하지 않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어떤 성도가 다른 교회 성도에게 극심한 공격을 당했습니다.

이런 사건은 우리 주위에서 확실히 자주 보는 일들입니다.

 

이 사람이 제게 말하길

그 사람은 자기에게 어떻게 했고, 남들에게 어떻게 말했고..여차 여차

 

제가 그에게 그가 당신에게 침을 뱉었습니까?’

그는 그까지는 아닙니다

 

제가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께 침을 뱉었고,

침이 주님의 얼굴에서 흘러내렸으며,

그들은 아무런 이유없이 예수님을 괴롭혔습니다

 

구약시대에 양을 도살해서 제사를 드렸는데,

죽일 때 그 양을 고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양의 목을 깔끔하고 신속하게 절개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으실 때는

그들이 모욕하고, 가시관을 그의 머리에 씌웠고,

자색 옷을 입혀서 (그를 희롱했고), 침을 뱉었는데,

그때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모릅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절대로 받은 대로 갚아줄 생각을 하지 말라

선으로 악을 대해야 한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그들을 축복해라,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너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라 이것이 제일 좋은 보복 방식이니라

 

이는 그들의 머리에 숯불을 얹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청년이 군대에 갔습니다.

첫날 밤 그는 병영에서 침대 옆에 꿇어앉아 기도했습니다.

 

맞은편 침대의 하사관이 그가 기도하는 것을 보고 군화를 던져

그의 한 쪽 귀가 찢어졌습니다. 군화가 아주 무겁습니다.

군화 못이 그의 귀를 베이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하여 기도했고,

그러자 하사관이 다시 다른 쪽 군화를 던져서 다시 그의 귀를 더 찢어지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계속 기도했고, 하사관이 포기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까 그 군화 한 켤레가 하사관의 침대 앞에 놓여있었고,

잘 닦여져 있었습니다.

 

그 하사관이 생각하기를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하도록 만든 것인지,

내가 반드시 알아야 하겠다! (기독교에 관심을 가짐)’

이것이 바로 베드로의 뜻인데, 보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마지막으로 그것 때문에 당신은 넘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넘어뜨리려고 하는데,

그들이 성공하게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혹시 당신의 몸은 상하게 할지라도

당신의 영혼은 상하게 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키워드는 몸과 영혼인데,

당신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당신의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당신의 영혼을 넘어뜨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당신의 몸은 그들더러 원하는 대로 하게 하되,

하지만 당신의 영혼은 만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아요 여러분, 시간이 다 되었네요.

우리가 다음에 계속해서 세 번째 부분3)을 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