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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가지셨던 삶의 자세 P2 히4:9, 빌2:5 P1 P3 출처
The Attitude Christ Had 잭 푸닌
제가 여러분께 격려하는 것은,
우리가 한 해의 연말을 맞이해서
이 구절을 내년 내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비록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었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신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는, 주님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가’를
(모델로) 나타내 보여주시기 원하셨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우리는 창세기에서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인류의 조상으로서) 아담이 어떻게 살았어야 했는지 보여주지 않았어요.
성경은 단지 말씀하기를
‘하나님이 내 형상으로 너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는 (안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는 나타내 보여주셨어요.
‘아담이 어떻게 살았어야 했는지를’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삶’이었어요. 빌2:5~8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제가 점점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무슨 이론이나 지식 또는 신념이 아닙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믿음’에 대해서 많이들 말하고 있는데요.
대부분은 돈을 잘 버는 믿음, 집이나 차를 갖기 위한 믿음,
치료를 믿는 믿음 등입니다.
그렇지만 ‘믿음’에 대한 제 정의는,
하나님을 (갓난아기처럼) 절대 의존하는 것이고,
그분이 결코 나를 버리지 않을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신다는 믿음,
또한 내가 아무리 부패하거나 타락하더라도 나를 용납하신다는 믿음,
이것이 제가 이해하는 바 ‘믿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축복하는데 관심이 많으시고,
나는 그 복을 받는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여러분께 제가 말씀드리는데
이런 믿음으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믿음을 갖고 계신다면,
우리는 그런 평온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에 있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9절에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무슨 뜻입니까?
많은 크리스천들이 여기 ‘안식’의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이 토요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고 봅니다.
출근도 안 하고, 시험도 안 보고,
토요일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즉 안식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요일로 바꾸어서,
일요일에 자기는 어떤 세상 일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직 성경만 읽고요.
저는 그렇게 하는 분들을 존경하고 좋게 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축복하시기 바래요.
적어도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자기처럼 해라고) 압박하지 않는 한!
나쁠 게 없습니다.
걸프 만의 중동 나라들에 가면, 그들은 (일요일이 아니라) 금요일에 쉽니다.
저는 그들과 논쟁하고 싶지 않아요.
거기는 크리스천들도 금요일에 모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금요일에 모이거나, 토요일에 모이거나,
일요일에 모이거나 그게 핵심은 아니라고 봅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안식’(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의 특정 날짜가 (1차적 중요성이) 아닙니다.
‘안식’은 내적인 쉼이며,
완전한 자유입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삶의 안달, 긴장감, 우울한 기분으로부터의 자유!
왜냐면 ‘나는 하나님밖에는 다른 자원이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은 결코 나를 버리시지 않을 거야’를 믿는 믿음에서 오는
안식입니다.
‘주님은 결코 나를 버리시지 않을 거야!’
하나님이, 자기의 아무 의지할 데 없는 자녀를 (무책임하게) 버리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은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들인데,
여러분의 어린 자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자녀가 배고프면, 자기가 굶더라도 자녀를 먹일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세상 아버지보다 더하십니다.
우리가 배고프면, 그분은 자신이 굶는 게 더 낫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필요를 채우시는 것을
당신의 필요를 채우시는 것보다 더 우선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보게 되는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빌2:5
(즉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무기력한 어린아이로 사는 믿음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필요를 채우시려고 이 세상에 오지 않으셨어요.
‘너희 속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5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기 위해서 오셨어요.
이것은 왜냐면 그분의 마음에 안식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의 모든 필요를 돌보심을 믿으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신을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데
내어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지상의 모든 삶은
‘희생’이었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죠.
‘희생’이란, 내가 그것을 가질 권리가 있지만
내가 기꺼이 그것을 내어놓는 것을 뜻합니다.
안정적 삶이나,
물질,
어떤 지위도 될 수 있죠.
그것을 기꺼이 포기하고,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그의 백성들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요!
이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빌2:5
▲천사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을 수도 있었어요.
‘주님, 왜 지상에 내려가십니까?’
‘왜냐면 거기 (구세주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사 :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이 얻으시는 게 뭡니까?’
주님 :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뭔가를 얻게 될 것이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섬기면!’
천사 : ‘주님이 가시면 고난받으실 텐데요’
주님 : ‘내가 고난을 받겠지, 그렇지만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고난이다
그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을 돕는 것이니까!’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을 함으로써
그것으로부터 얻으려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우리 CFC 교회에 다님으로써 여러분이 얻으려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스스로 질문해 보세요, 여러분이 교회 다녀서 무엇을 얻으려 하십니까?
여러분이 만약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그 교회는 다니기에 좋아!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우며 자랄 거야.
주일학교가 잘 되어 있으니까 우리 자녀들에게 좋을 거야!’
‘또 그 교회 다니는 게 (부모인) 우리에게도 좋아!
좋은 친구들과 교제권이 있거든..’
좋습니다만, 이런 상태는 어린아이 같은 크리스천의 수준입니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초신자 때는 그렇게 해서 교회에 다닙니다.
왜 탕자가 집으로 돌아왔습니까?
그는 아버지를 공경하려고 집에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배고파서 집에 돌아온 것입니다.
그것이 그가 집에 돌아온 이유의 전부입니다.
그런 그를 아버지가 받아주었습니까?
네 놀랍게도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환영했습니다.
아버지는 즉시로 잔치를 베풀며 축하했습니다.
그저 배가 고파서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탕자를 집으로 돌아오게 만든 것은 배고픔 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주님께 올 때는 치유를 원해서 였는데,
주님은 그를 고쳐주셨어요.
예수님은 ‘이보게, 자네는 먼저 죄를 짓는 것을 단념해야 한다네!’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그가 죄를 단념하든지 말든지
‘네게는 어떤 필요가 있다. 나는 치유하는 능력이 있어서 너를 고칠 것이다’
그래서 어린아이 신자 단계에서는
우리가 교회에 오는 것은 어떤 자기의 유익을 얻기 위해서 다닙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 (어떤 유익)이 내 생각 속에 항상 머물러 있다면,
‘그 교회는 우리 자녀들에게 좋아
아이들이 자라면서 훌륭한 배우자를 교회에서 찾을 거야’
‘만약 내가 재정적인 필요가 있을 때,
CFC교회가 사람들이 아플 때 재정적으로 도와준다는 말이 있어’ 등등
여러분이 만약 이런 상태에 있다면 반드시 자라나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 하는 것이 늘상 나의 삶의 자세가 된다면,
그들은 아직 ‘그리스도의 마음’의 ABC 기본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이, 성탄절 즉 예수님의 생신을 축하하는 그 의미를
이해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이해 못 합니다)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까?
그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구하지 않으셨어요.
오직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해서 오셨어요!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해서 교회의 일원이 될 때,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교회에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난 그저 다른 사람들을 섬기길 원해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복 줄 수(즉 도울 수) 있는지 내가 찾아볼 거야!
그들이 나를 도와주는 것을 바라지 않고..’
여러분은 ‘누가 나의 필요를 돌봐줄 것인가?’라고 말하십니까?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모든 필요를 그 분이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누가 돌봐 주셨습니까?
아무도 그분께 손을 대거나 죽일 수 없었어요.
왜냐면 하늘 아버지께서 항상 그곳에 함께 계셔서 지켜 주셨어요.
그분을 잡아가려 했지만,
주님은 세상의 특별 경호를 받는 모든 대통령과 왕들보다
더 큰 보호를 받고 계셨어요.
예수님은 자유롭게 걸어다니셨어요.
왜냐면 주님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들이 있어서
아무도 그분을 만지지도 못하도록 지켜주셨어요.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요!
그래서 여러분이 이렇게 하나님만 의지하는
절대 의존적인 (어린아기와 같이) 살기 원하신다면,
여러분, 저는 믿습니다.
우리에게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천사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어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왜냐면 저는 하나님앞에서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하나님, 저는 이 세상에서 어떤 야심도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서서 말씀드릴 수 있어요.
‘하나님, 당신은 제 마음을 아십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의 일에 야심이 제로입니다.
다만 제 삶에서 매일 당신의 뜻만 따르겠습니다.
어떤 순간에서든지 저는 명예를 추구하지 않으며, 돈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의 헛된 칭찬도 전혀 바라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 그렇게 말씀드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놀랍게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분이 여러분 곁에 서서, 여러분의 모든 질병을 고치시며,
여러분의 필요를 채우실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빌2:5
자기를 스스로 완전히 비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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