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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고난에 참예하려면..

LNCK 2020. 9. 30. 10:06

 

www.youtube.com/watch?v=rD3m2TIKllI

◈주님의 고난에 참예하려면..           벧전 4:12-16                11.04.03설교스크랩, 출처

 

▶1. 참된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주의 고난에 참예하게 됩니다.

 

딤후 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모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주님이 왜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다 준행하시고

또한 진리대로 행하시려다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주는 고난을 안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교의 유전대로 좋은게 좋은 것이라며 그냥 적당히 하셨다면

이런 엄청난 핍박이 없었을 텐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인 성경의 진리대로 행하시다가

세상의 핍박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처럼 세리나 창기 등 죄인을 미워해야 하는데

그들과 더불어 식사하고 말씀을 전하시고 또한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통 하는 병자를 보고도 안식일이라는 핑계로, 못 본체 하면 괜찮으셨을 텐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안식일에도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예수님을 모른 체 적당히 처세하면

사실 핍박이 없을 텐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전에 없던 핍박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요셉 자신은 누구보다 순전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던 자로

많은 신학자들은 요셉을 예수님의 예표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요셉도 아무 잘못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곳곳에서

애매하게 고난을 당했었습니다.

 

그가 보디발의 집에서 보디발의 아내가 원하는 대로 했더라면

감옥에 가는 고난도 없었을 텐데

그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하지 않고 바로 살려다가 감옥에 가고

어려운 일을 당하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본문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벧전 4:12-13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유 없이 고난이 오고 불 시험이 온다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나의 증표임을 믿어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 주님의 위대하심과 동참(고난 중에 동행)하심과 인도하심을 깨달아

기뻐하고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2.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자가.. 주의 고난에 참예합니다.

 

빌 2:5-7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했습니다.

 

이런 고난 주간에 경건한 사람들은 금식하며 주님의 고난을 묵상합니다.

이 기간에는 사치스런 일이나, 자기를 위한 일을 자제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고난에 참예하고 묵상하기 위해서입니다.

 

프란시스는 주님의 고난을 얼마나 묵상했든지

몸에 못자국과 창 자국이 생겼다고 합니다.

 

▶3. 고난당하는 자를 돕는 자가.. 주의 고난에 참예합니다.

 

마 25:40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하셨습니다.

 

마 25장의 심판대의 좌우편에 양과 염소의 기사가 나옵니다.

양은 세상에 불쌍한 사람들을 돌아보았다고 칭찬 받은 사람들이고,

염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소자들에게 한 것이 곧 주님에게 한 것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서 주님의 모습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천사를 대접했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변장하시기도 하시지만

변장하지 않더라도 불쌍한 사람들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에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또한 친척들이 또한 많은 자들이 병들었을 때

찾아가보고 옥에 갇혔을 때 돌아보고 배고플 때 먹여주고 입혀주어야 합니다.

 

약 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이것이 바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열고 눈을 들어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

주의 고난에 동참하시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4. 복음 전파 사업에 헌신하는 자가.. 주의 고난에 참예합니다.

 

딤후 2:3에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딤후 2:9에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사도 요한도 예수님의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계 1:9에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그렇습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주님을 증거 하지 않고 주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지 않으며

예수님을 증거 하지 않는 것은.. 주의 고난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증거로

매일같이 기회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언제든지, 복음전파 사업에 투신하시길 축원합니다.

 

▶5.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자가.. 주의 고난에 참예합니다.

 

골 1:24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했습니다.

 

왜 교회를 위한 수고가,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함입니까?

주님께서 세상에서 평생 하시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와 함께 이루시고자 하셔서, 우리에게 남기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그냥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베드로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냥 불러서 일을 시키시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물으시고

베드로의 대답을 통해 그를 회복시키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봉사하고 섬기는 일을 위해

양을 먹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일하고자 하는 자는 베드로처럼 먼저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며 세 번이나 물어 베드로를 회복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누가 교회 봉사를 통해 인정받고 직분도 올라가는 것이 부러워서 교회를 섬기려 했다면

먼저 주님을 만나 믿음의 고백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임을 알아

사람의 칭찬이 아닌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더욱 바라십시다.

 

우리 한국교회의 역사에 보면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바라보고 나가셨던 믿음의 좋은 본보기가 있습니다.

그는 위대한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입니다.

 

그분은 왜정 말기 신사참배 문제로 5년 동안 감옥에서 고초 당하시다가

결국 순교를 하셨는데, 순교하시기 직전에 쓰신 고난의 명상록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옵니다. 거기에 보면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이제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리이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내가 당하는 수욕을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주님이 너는 내 영광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였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어떤 말로 대답하리이까?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십자가를 어찌하였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할 수 있으리이까?"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은 이렇게 교훈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처럼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의 은혜는 물론 고난에도 참예함을 기뻐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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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를 죽이는 자가.. 주의 고난에 참예합니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엡 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우리도 거기 참여하여 함께 죽었고,

다시 사실 때 우리도 거기에 참여하며 다시 산바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복음에 굳게 서서 날마다 나를 죽이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빌 3:10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했습니다.

은혜 받아 예수님과 함께 내가 죽어지는 것 이것도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조종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