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화의 메커니즘 사2:18 편집자글
*메커니즘 mechanism : 기계적인 구조 원리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이사야 2:18
아래 이야기는 약간 과장이 섞여 있을 수 있으나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고 난이도의 사탄의 전략이므로
이렇게 스스로 속지도 말고, 남을 속이지도 맙시다.
A는 평소에 심장이 가끔씩 두근거렸다.
그냥 살면 살 수 있을 정도의 불편이었다.
하루는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보니 ‘큰 병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집 안에 돈이 없기도 했거니와, 무슨 병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A는 하루하루 그렇게 살았다. 두세 달에 한 번씩 심장에 통증이 오곤 했다.
어느 날 A는 부흥 집회에 참석했다.
그날은 특별히 선교사의 신유 기도가 있었다.
A는 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는 병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선교사의 안수기도를 받았다.
그는 선교사의 말씀에 따라 ‘나은 줄로 믿었다.’
정말 나은 것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약간 통증이 오는 것이 현저히 줄었다.
A는 이 사실을 우연히 주일날 회중 앞에서 간증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자신을 고쳐 주셨다고.... 선교사님의 안수기도로!’
▶여기서부터 눈에 잘 안 보이는 미세한 빗나감이 시작된다.
그의 간증을 통해 선교사는 일약 ‘능력의 종’으로 격상되었다.
그리고 A의 삶도 그 후부터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선교사가 다니는 타 도시의 집회에 ‘간증자’로 따라다녔다.
이유를 모르는 큰 병에서, 기도로 고침 받은 종으로....
A는 이후에도 가끔씩 미세한 가슴 통증을 느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치료를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이제 A는 선교회에서 점점 위치와 신분이 격상되었다.
거의 전도사 급이 되었다. 사람들의 대우도, 자신의 처우도 점점 달라졌다.
▶여기서부터 눈에 보이는 뚜렷한 빗나감이 시작된다.
이런 일이 몇 케이스 더 발생하자, 눈치 빠른 E는
자신에게 위장병이 생겼다. 그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약간 울상으로 선교사(이미 명성이 있음)에게 신유 기도를 요청했다.
기도를 받고 나서 E는 “기도할 때 뜨겁게 낫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도 기회만 되면 앞에 나가서 간증을 했다. 그리고 선교사를 띄웠다.
E는 점점 선교사의 총애를 받는 제자 반열에 들어섰다.
선교회 내에서 그의 지위나 물질적 지원도 점점 풍성해졌다.
영리한 F는 눈치가 더 빨랐다.
자기도 출세를 위해 처세술을 좀 발휘하기로 했다.
F는 선교사를 ‘말씀의 종’으로 치켜세웠다.
적당한 때를 봐서 ‘아멘!’을 크게 외쳤고
간증 시간에는 ‘주님이 선교사님을 통해서 제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선교사의 메시지를 듣고 나서 자기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말했다.
선교사는 자기 메시지에 은혜를 받는 F가 너무 사랑스럽고 좋았다.
그래서 수제자로 여기고, 그를 크게 등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선교사를 따라다니면서 작은 선교사가 되었다.
그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가 자기 인생의 첫째 계명이 되었다.
◑글의 요지는, 주의 종들이 ‘보통 사람’으로 늘 되돌아와야 하는 이유이다.
‘신령한 종’, ‘말씀의 종’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거기에 편승해서 줄을 서고, 필요 이상으로 떠받드는 부대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신령한 종’, ‘말씀의 종’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려 한다.
그것이 복음전도에 상당한 PR(선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자기 스스로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하는 소위 교만한 사람은
E, F 같은 아부 꾼이 등장하면 반드시 걸려들게 되어 있다.
그래서 자기가 특별한 능력의 종이라고 진짜 속게 된다.
오늘도 나를 필요 이상으로 높이고 선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조심해야 한다. 거기 편승하지 말고, 거기서 떨어져야 한다.
'빔beam 프로젝터'(교회에서 영상물을 비추는 큰 기계)가 등장한 이후,
세계 도처에서 이런 편집된 간증 영상물이 물결처럼 번져나감을 우려함.
*이 글을 읽고 난 다음, 남을 비판하면 잘못된 것임.
장차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서로 경계해 주고 중보기도해야 할 것임.
(아래는 펀글)
주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모든 사람들이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막11:9)라고 하였다. 그 때에 나귀 새끼는 사람들이 “호산나!” 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또한 그가 지나가도록 나뭇가지를 베어 땅에 펴고 겉옷을 벗어서 까는 것을 보았다. 겉옷을 직접 밟은 것은 예수님이 아니고 나귀였다. 만약 나귀가 말할 수 있다면 나귀는 주님께 고개를 돌려서 “이것은 당신에 대한 환호입니까? 내게 대한 환호입니까?”라고 묻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다면 그것은 형편없는 착각이다.
그 나귀가 다른 나귀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위에 타고 있는 주님이 다른 분이시다. 그 나귀가 찬양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 등에 타고 계신 주님이 찬양을 받으신 것이다. 사람들이 “호산나!”라고 외친 것은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며 땅에 옷과 나뭇가지를 편 것도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주 예수님에 대한 환호요 찬양인 것이다. 오직 어리석은 사람만이 자기가 잘나서 인기가 있는 줄 착각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님을 태우고 다닐 때 인기를 끌 때가 있다. 인기가 올라 갈 때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이 관심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이시다. 신언을 잘해서 박수를 받을 때 내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받으시는 것이다.
열매를 많이 맺어서 사람들이 칭송할 때 그 칭송은 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것이다. 예수님이냐? 나귀 새끼냐? 이 주제는 지난 20세기 동안 계속되어온 중요한 질문이다.
"주여! 당신만이 영광을 받으실 유일한 분이십니다. 제가 착각하지 않게 하소서! 저는 다만 당신을 태우는 나귀 새끼에 불과합니다. 주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큰 축복인지요! 주님!!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 사람들이 환영할 때 자신을 높이지 않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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