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일에 통달한 사람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통달한’
good understanding of the service
모든 레위 사람에게 위로하였더라 대하 30:22
▲섬기는 일에 통달한 사람이 되자
목회자는, 주로 말씀으로 섬기는 사람이니, 성경에 통달해야 한다.
찬양 팀은, 악보를 다 외워서, 보지 않고 찬양할 정도로 통달하면 좋다.
반주 팀도, 악보를 다 외워서, 보지 않고 반주할 정도로 통달해야 한다.
언젠가 홍대 앞에서 어떤 남자가 긴 머리카락 휘날리며 재즈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악보도 없이 한 시간 넘게 계속 쳤다.
재즈 음악에 저런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데...,
복음 사역에 우리가 가진 열정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이름을 외우는 데 통달하자
간사로서, 양떼들을 위해서 매일 기도한 사람은 그들 이름을 줄줄 외고 있다.
그 간사를 툭 건들면 양떼들 이름이 줄줄 쏟아져 나온다.
전에 있던 교회에서, 저는 하루에 15명씩 청년들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었다.
한 사람 이름을 부르고 약 10분씩 그를 위해서 중보기도했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약 1백 명 되던 청년회원 모두를 위해 기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달 지나니까, 1백 명 되던 청년들 이름이 조별로 줄줄 외어졌다.
당시 제가 장끼자랑을 나가면, ‘백 명 이름 외우기’를 했다.
의도적으로 외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다보니 저절로 외워졌다.
양떼 섬기는 일에 통달하려면, 기본적으로 이름을 잘 외워야 한다.
스포츠 중계 하는 해설자들을 보면, 그 방면에 통달한 사람을 보게 된다.
이렇게 각 분야에 전문가들이 다 포진해 있는데
우리 기독교계에도 섬기는 일에 통달한 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통달해야 예술이 나온다.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기계적인 수준은 넘어야 가능하다.
바이올린도, 기계적인 연주 수준을 통달해야 그 다음에 예술이 나온다.
뭐든지 통달해야 자유로움이 나온다.
자기 분야에 통달한 다음에,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하게 되기 바란다.
◑섬기는 일에 통달했던 훌을 살펴보자.
▲박지성 선수의 가치
요즘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는 박지성 선수 인기가 높다.
박지성은 남들이 골을 잘 넣을 수 있도록 패스나 어시스트를 잘 한다.
골을 잘 넣는 스트라이커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박지성처럼, 스트라이커에게 공을 잘 공급해 주는 사람도 있어야 승리한다.
맨유 같은 팀은 세계 최고 기량의 정상급 선수들이 모여 있다.
거기서 박지성 선수까지 골 넣겠다고 설쳐대면... 팀웍이 잘 되겠는가.
도리어 와해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세가 있으면, 아론과 훌 같은 조력자 또한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맨유 감독이 박지성 선수를 귀하게 여기는 이유이다.
패스를 잘 해 주는 2인자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기 때문이다.
▲농구 경기도, 선수 5명이 모두 스타플레이어이면 질 가능성이 크다.
스타플레이어는 2명 정도 있으면 되고
나머지는 눈에 안 띄지만 도와주는 선수가 될 때, 훨씬 강팀이 된다.
▲교회에도, 모두 모세와 같이 일인자로 나서면 팀웍이 흔들린다.
아론과 훌 같은 탁월한 2인자들이 동시에 나와야 한다.
아론이나 훌이 손을 든다고 아말렉과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었다.
반드시 모세가 손을 들어야 이스라엘이 이겼다.
그러니까 모세는 스타플레이어이고, 아론과 훌은 모세를 도왔다.
▲각 사람에게 줄 상은 각각 다르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주리라 계 22:12
주전(스타플레이어)대로 뛴 사람은, 주전대로 상이 있고
섬기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으로서 각자가 일한대로 갚아주시겠단다.
그러므로 섬기는 일을 결코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요즘 영화도 보면,
잘 되는 영화의 특징은 ‘조연이 좋을 때’이다.
주연만 너무 튀는 영화는 보는 재미가 반감되고 식상해 진다.
주연과 조연이 서로 적절한 역할을 나눠서 하는 영화가 훨씬 재미있다.
또한 옛날 탈렌트 가운데 정윤희 씨 같은 주연은 곧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미자, 강부자 씨 같은 조연은 계속 출연한다.
▲꽃다발도 보면, 안개꽃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안개꽃은 자기를 죽여서 주연인 장미꽃 등을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안개꽃 자체로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지만
꽃다발 전체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는, 안개꽃은 꼭 필요한 존재이다.
훌은 안개꽃과 같은 존재였다. 저도 이렇게 안개꽃처럼,
하나님 나라에 배경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드려본다.
자기 존재로 인해 장미꽃과 카네이션을 돋보이게 하는 것, 멋있지 않은가?
▲성격은 잘 안 변한다.
모세는 젊은 혈기로 사람을 때려죽인 전력이 있다. 늙어서는 자기 혈기를
많이 죽이기도 했지만, 결국 그 혈기 때문에 가나안에 못 들어갔다.
어떤 자매가 제게 와서 “믿음 좋은 사람과 결혼할까요?
성격 좋은 사람과 결혼할까요?” 라고 물으면,
나는 목사로서 당연히 “믿음 좋은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제 딸이 같은 질문을 물어온다면
아버지로서 당연히 “성격 좋은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이유는, 믿음은... 열심히 기도하고 성화되면 변하고 바뀐다.
그러나 성격은... 바뀌기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모세를 세심하게 섬겼던 훌
모세는 급하고 충동적이고 신경질 잘 내는 ‘성깔’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훌은 그런 ‘성깔 있는 모세’를 품어주는 역할을 잘 했던 것으로
보인다.
모세 옆에서 모세의 손을 받치고 있을 때에도
성깔 있는 사람은 그 모세의 사나운 비위를 다 못 맞추고
씩씩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훌은
“야, 팔 아프고 힘들다, 좀 더 잘 받칠 수 없냐? 그것밖에 못하냐?”
라는 모세의 짜증에도 “Yes, Sir!”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모세가 팔이 아팠을 때, 팔이 아픈데 다리 아픈 것까지 배려해서
돌을 가져다 놓을 정도로 세심했던 것을 봐서 그렇다. 출 17:12
▲우리는 ‘4백 개척교회’ 사역을 펼치고 있다.
개척교회 사역을 잘 도우려면,
평소에 그 교회를 위해 늘 기도하면서, 거의 '감정이입' 수준이 되어서
훌과 같은 세심한 배려의 정신으로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통달한 섬김이 될 수 있다.
▲저는 ‘옷걸이론’을 좋아한다.
어떤 옷걸이에는 비싼 옷을 걸기도 하는데,
종종 옷걸이가 자기 본분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걸친 옷 때문에
자기 신분이 덩달아 상승한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저는, 좋은 옷걸이에 일부러 싸구려 옷을 걸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옷걸이는 아무런 자만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점을
스스로 나에게 상기시킨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옷걸이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존귀한 존재가 되었는데
그 사실을 망각하고, 옷걸이가 옷 행세를 하며 착각하고 다니면 안 된다.
우리가 존귀한 사역을 감당할 때, 스스로 교만해지면 절대 안 된다.
반대인 경우로, 주인이 옷걸이에 비싸지 않은 옷이나 행주를 걸듯이
우리가 험난한 곳에 가서 어렵고 힘들게 사역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싼 옷이나 싸구려 옷이나... 그 안에 옷걸이라는 존재는 똑같다.
자기가 걸친 비싼 옷 때문에, 반대로 자기가 걸친 싸구려 옷 때문에
옷걸이가 스스로 자만하거나, 스스로 비관하는 일은 없는 게 좋다.
왜냐하면 둘 다 거의 그저 옷걸이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랑이 없어야 한다.
또한 비싼 옷만 걸치려 하지 말고, 가끔씩 험난한 옷도 걸쳐 봐야 한다.
꼭대기 사역도 할 줄 알고, 낮은 곳 사역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꼭대기 사역만 하다보면, 옷걸이가 본분에 벗어나서
자기가 대단한 존재라고 스스로 착각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옷걸이)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눅 17:10
(옷걸이론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대통령과 같이
오찬, 산행을 하다보니 자신의 신분을 종종 잊어버리고 우쭐해질 때
선배 언론인들이 충고할 때 잘 인용하던 말 이었다;
‘모 기자, 너는 옷걸이란 점을 명심해!’
왜냐하면 청와대 출입기간이 끝나면, 자신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높은 신분이
아니라, 그야말로 초라한 ‘옷걸이’란 점을 절실히 깨닫기 때문이다.)
▲섬기다 보면 주역이 될 수도 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종처럼 섬기다가 결국 모세 같은 주연이 되었다.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갈 때 여호수아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남아있는 회중을 지도하는 책임을 아론과 훌에게 맡긴다. 출 24:14
그러니까 잘 섬기다보면, 지도하는 위치에 서는 날도 온다.
모세의 팔을 붙들어주다가, 나중에 자기 팔이 모세의 팔처럼 되어서
모세처럼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되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간절히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나중에 그 사람처럼 되는 일들도 종종 벌어진다.
그를 섬기다 보면, 그 사람처럼 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바꾸어 말해서, 섬기지 못하는 사람은 리더도 되지 못한다.
▲잘 섬기면 후손들이 복 받는다.
자손들에게 남길 가장 큰 축복은 내가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다.
훌이란 이름의 뜻은 ‘존귀한 자’이다.
훌은 우리를 낳았고 우리는 브살렐을 낳았다. 대상 2:20
브살렐은 오홀리압과 더불어 성막을 만든 유명한 사람이었다. 출 31:2~5
이처럼, 조상이 잘 섬기니까, 거기서 훌륭한 믿음의 자손이 배출되었다.
그래서 후에 유다지파가 다윗 왕의 조상이 되는 명문 가문을 이루었다.
<인터넷 설교 발췌 요약 06.03.31. *원제목 : 섬기는 일에 통달한 자가 되라
[주제별 분류] 삶의 통찰력 http://blog.daum.net/bible3/7879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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