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세적 신앙과 내세적 신앙의 균형 약2:5 편집자 글 中文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그 나라를 상속하게 하셨다. 약2:5
현세와 내세의 균형... 어느 한쪽으로라도 기울면 떨어진다.
▲‘보이는 소망’이 득세하는 현실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있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롬 8:24)
그런데 실제로 통용되는 바는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니, 보이지 않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이다.
현세적 신앙 과 내세적 신앙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우리는 늘 현세적 신앙에 치우쳐서 ‘보이는 소망’만 전파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의 편식, 성경과 괴리를 우려한다.
▲‘믿음에 부요함’ 보다는 ‘현실적 부요함’이 득세하는 현실
성경은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그 나라를 상속하게 하셨다 (약 2:5) 고 했는데
우리는
하나님은 세상에서 부유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그 나라를 상속하게 하셨다 고 생각할 정도로
현세적 부요함과 출세를 자주 언급하고 강조한다.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믿음에도 가난한 자
세상에서 부유한 자를 믿음에도 부유한 자로 여기는 경향이 크다.
소위 ‘정직한 자가 형통하다’는 논리 때문에...
‘정직한 자의 형통’은 맞다. 잠언에 주로 나온다.
그것을 주장하되
동시에 ‘정직해도 가난할 수 있다’는 균형감각을 잡아야 한다.
핵심은, 세상적 가난함/부요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든지 부요하든지 상관없이, 믿음의 부요함이 성경의 중점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믿음의 부요함’이
‘물질적 부요함, 출세’보다 더욱 강조되어 가르쳐져야 한다. ★
물론 ‘물질적 부요함, 세상적 형통’도 가르쳐서 축복 받고 살아야 하지만
(성경에 그런 측면도 반드시 있다.)
그러나 성경은 ‘물질적 위험성, 세상적 형통의 위험성’을 몇 배 더 강조한다.
성경의 강조 빈도수와 오늘 날 메시지의 강조 빈도수는 반비례하고 있다. ★
▲‘부자와 나사로’처럼 된다!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그 나라를 상속하게 하셨다. (약 2:5)
이 말씀이 정말 맞는다면 (왜 틀리겠는가)
오늘 지상교회의 부자와 가난한 자는
미래 천국에서 ‘부자와 나사로’처럼 신분이 뒤바뀔 가능성이 크다.
둘 다 천국에 가더라도 영원한 상급은 정반대로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난한 자가
믿음에도 부요하고, 예비된 그 나라도 많이 상속받는다고 했으니까....
사실 가난하고 고난 당할수록 더 기도하고 매달리는 측면이 있다.
가난이 무조건 좋다고 옹호하는 논리가 아니라
가난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 논리, 위로하는 논리다. (잠14:31, 17:5)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이 부자가 되도록 가이드 하는 것과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의 형편을 위로하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복음과 성경에 더 가까운가?
▲‘현세’ 쪽으로 치우친 현실 때문이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7~18)
장래 영광을 기대하는 그런 신앙은 별로 매력 없고
현재 영광을 기대하는 그런 신앙은 매우 매력적이다.
그 결과 성경이 강조하는 현재적 고난은 자연적으로 덜 강조된다.
‘현세의 고난’과 ‘현세의 영광’ 둘 중에 성경 전체의 강조점은 무엇인가?
반면에 오늘날 강단의 강조 빈도수는 어디에 있는가?
‘장래의 영광’과 ‘현재의 영광’ 둘 중에 성경 전체의 강조점은 무엇인가?
반면에 오늘날 강단의 강조 빈도수는 어디에 있는가?
물론 내세를 지나치게 강조할 때, 현실괴리적, 현실도피적 신앙이 된다.
그러나 현세를 지나치게 강조할 때, 성경괴리적 신앙이 된다.
이쪽, 저쪽에도 떨어지지 않는 절묘한 균형감각의 외줄타기가 요청된다.
▲부활절을 맞이해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우리의 부활과,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광이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 참 소망이다.
지금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장차 얻게 될 하나님의 칭찬,
그날에 주실 영원한 존귀, 영광, 상급이 진정한 우리의 소망이다.
이 소망 때문에 우리는 고난을 당할 수도 있고, 가난할 수도 있고
아무 대가없이 희생하기도 한다.
(현세에서 형통하면 금상첨화겠지만, 성경은 그것의 현세의 누림보다는
그것의 위험성을 몇 배 더 강조한다.
그러므로 ‘신앙심 깊은 출세자’는 정말 성자임에 틀림없다.)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천국을 목표로 삼으면, 그 안에서 지상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상을 목표 삼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부활절을 맞이해서, 장래 소망, 내세적 신앙을 더욱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하며....
*관련글 : 가난과 부에 대해 헷갈림
주님은 가난한 서머나 교인들에게 부자라고 치켜세우신다.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계 2:9)
그런데 부자인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향하여는 가난하다고 하신다.
“너는 스스로 가난한 것을 알지 못한다”라고 책망하신다.(계 3:17)
뭐가 잘못된 것인가?
주님과 우리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보는 관점이 틀린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가르친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고후5:7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계속해서
불로 연단하여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고 하신다.(계 3:18)
이 금은 “믿음”을 뜻한다. (벧전 1:1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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