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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크리스천 직장 생활

LNCK 2006. 4. 24. 09:33

◈크리스천 직장 생활                    골3:22~25                                   -출처보기-

 


골로새서 3:22~25절은 <주인들과 종들의 관계>에 대해서 가르친다.

이것은 현대적 직장에 대한 교훈으로 적용될 수 있다.


 

▲로마 시대의 노예

바울 사도 당시에 로마 시대에는 노예만 약 6천만 명이 있었다.

그것은 로마 제국 인구의 절반에 거의 미치는 그런 엄청난 숫자였다.


우리는 노예, 그러면 얼른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몸으로 때우는 천박한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관념을 가진다.

그러나 바울 사도 당시에 저 로마제국의 노예들은 상당히 다양했다.

로마가 세계를 정복하는 곳에서 그들은 닥치는 대로 노예를 끌어왔다.

그들 중에는 아주 머리 좋은, 능력이 뛰어난 노예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일에 종사했는데,

노예 의사도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노예 가정교사,

심지어는 로마의 최고 학문 기관에서 박사 과정을 가르치는

박사 노예들도 굉장히 많이 있었다.

영화 ‘글레디에이터’에 나오는 주인공도, 로마의 그 유명한 장군이었지만

대적자의 음모에 몰려서 검투사 노예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사실상 로마 사회의 체제는

노예들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었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바울의 내면적 사회변혁 방식

노예 제도는 일종의 사회적 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노예 제도를 접근할 때, 이것을 구조악적 입장이나,

혹은 제도적 악을 대하는 입장으로 이 노예 제도를 접근하지 않는다.


물론 노예 제도는 분명한 사회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노예 제도를 당장 폐지해야 한다는 혁명으로 민중들을 선동하지 않았다.

바울은 노예제도에 매우 인격적인 방법으로 접근했다.

저는 이것이 보다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접근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주-종의 관계의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혹은 인간의 내면의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사회 속에 궁극적 변화를 시도한 접근방법이었다.

(하드웨어 보다 소프트웨어에 치중?)


다시 말하면 주인과 종들이 상호 존경하고

서로 인격적으로 대하도록 가르친다.

제도와 법적 차원의 개선도 필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정신 개선’이었다.


▲노예근성을 버리자

오늘날 노예 제도는 폐지되었다. 더 이상 노예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직장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있어서, 노예근성적인 태도는

아직도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이 예외 없이 앓고 있는 병 하나가 있다면

아마도 월요병일 것이다. 한 주간의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월요일,

직장으로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는 샐러리맨들 치고

이 월요병의 징후를 경험해 보지 않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직장으로 출근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해지고

공포에 빠지는 사람들의 의외로 많다.

억지로 출근을 하더라도, 만성적 우울증이나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자주 꾀병을 부리고, 일찍 조퇴하는 사람도 있다.


▲직장에서 비정상적으로 퇴근하는 유형 (우스개 소리)

①이순신 장군형 - ‘나의 퇴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②햄릿형 - ‘퇴근이냐 퇴직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깊은 갈등에 빠진다.

③나폴레옹형 - ‘나의 사전에 정해진 퇴근 시간이란 있을 수가 없다.’

④맥아더형 - ‘나는 퇴근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직장인은 하루에 적어도 8시간, 그리고 출퇴근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잠자는 시간을 감안하면, 어쩌면 하루에 대부분 시간을 직장에서 보낸다.

이런 직장에서 만족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는 그의 삶의 가장 중요한 영역에 있어서,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된다.

내 직장이라는 의식 없이 ‘내가 누구 좋으라고 이렇게 일하나!’

이런 생각을 가지면 영락없이 노예 생활이며, 노예근성만 남는다.


‘이곳은 내 직장이다!’ 이런 자유인의 의식, 진정한 주인의식을 갖고서

자기 일에 임하는 사람의 태도는 상당히 다르게 된다. 신바람이 나게 된다.


우리의 직장 생활에 참된 기쁨과 보람을 회복하기 위해서

바울은 두 가지 관점(종과 상전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한다.



1. 종(직장인)들의 태도


▲동기 : 주를 두려워하여... 일한다. (22절)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골 3:22 


바울은 먼저 종(직장인)들을 향한 교훈에 있어서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라”로 이 권면을 시작한다.

우리가 이 말씀을 겉으로만 읽고, 피상적으로 접근한다면,

바울이 마치 가진 자의 입장에서만 일방적으로 복종을 요구하지 않는가?

이런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본문의 흐름 속에서 의미를 살펴본다면,

바울이 종들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그 동기가, 세속적인 관점과 전혀 다르다

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왜 종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였을까?


그것은 자기를 다루고 있는 상전에게 아부하기 위해서나,

그렇게 하면 월급이 올라가기 때문에... 그래서 순종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3:22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가 아니다.’

즉, 우리는 누구의 기쁨을 위해서 존재하고 일하는가?


→하나님이다. 주님이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이런 직장에 와서 이런 일을 하게 된 것,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주께서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셨고, 여기서 일을 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동기로

그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


또한 눈가림을 하지 않는 이유도 “주를 두려워하여”이다.

‘내가 제대로 일하지 못하면 주인이 나를 해고할 것이다.’

그래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삶을 살든지,

우리가 가져야 할 정신 자세이다.


▲“무슨 일”이든지 모두 ‘주의 일’이다(23절)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 3:23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사회 변혁의 지도적 역할을 하려면

가정생활이나 직장 생활에 대한 관점이 변해야 한다.

‘주의 일’에 대한 우리의 이원론적 관념이 극복되어야 한다.


교회당 안에서 하는 일, 성경공부, 기도, 전도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하는 모든 일, 서류 정리, 컴퓨터 작업,

윗사람을 섬기며 커피를 타다 드리는 일도

똑같이 주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주의 일이다.


거룩한 일과 속된 일이 따로 없다. 그 일이 죄짓게 하는 일이 아닌 이상,

죄 짓는 직업이 아닌 이상, 그 일 자체가 거룩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임하는 동기, 그 일을 추구하는 목표가 그 일의 거룩성을 결정한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면 고전10:31

그 일이 주의 일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지 주께 하듯 하라,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하신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든지 모두 주의 일>인 것이다.


▲보상은 주님께 기대하라 (24절)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뭐 당신 그렇게 뼈 빠지게 일해야 누가 알아주겠어? 월급이 올라가냐?’

월급이 올라갈 수도 있고, 안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나를 몰라줘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여기 성경은, 성실한 태도에 관한 궁극적인 상을 누구에게 기대하는가?

주님에게 기대한다.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 사주가 끝까지 내 수고를 모를 수가 있지만 그래도 괜찮은 것이다.

그러나 모를 리 있겠는가.


그러나 궁극적 우리 보상은, 이 땅에서가 아니라 (이 땅에서도 받겠지만)

내가 주님 앞에 서는 날, 내 생애를 끝내고 천국에 가는 날,

주님이 나를 아시고 보상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성실성에 관한한 이 태도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마더 테레사의 일화

어떤 기자가 찾아와서 며칠 병원에 머물면서 마더 테레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 환자들의 고름을 짜내고, 상처를 치료하고 애쓰는 모습을 보다가

이런 얘기를 했다; ‘참 수녀님, 존경스럽습니다. 어떻게 인간에 대한

그런 놀라운 사랑을 가질 수가 있습니까?’


이때 마더 테레사가 이런 대답을 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요? 제가 사람에 대한 사랑만 가지고 일했더라면,

저는 벌써 오래 전에 일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것을 나에게 맡기셨다. 이것이 주의 일이라는 확신, 그리고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제가 오늘까지 이 일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께서 맡겨 주신 일이라면 그것이 주의 일이다.

주님이 나에게 고맙게도 이 일을 맡겨 주셨다.

그리고 내 주님이 맡기신 일, 주님을 향한 사랑의 동기를 가지고 일한다면

직장생활이 얼마나 달라지지 않겠는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한 것이다.’

어떤 작은 사람을 대하든, 어떤 일을, 작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대하든,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왔다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면,

우리는 직업에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 



◑2. 크리스천 직장 생활에 있어서 세 가지 중요한 태도


▲1st. 즐겁게 일하라

어떤 사람은 일 자체를 고통스럽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신학적인 근거로, 일을 마치 형벌처럼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창세기에 보면 아담이 범죄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얼굴에 땀을 흘리면서 수고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지어 놓으시고,

그들에게 주신 첫 번째 과제가 뭐냐면, 에덴동산을 지키고, 관리하고,

경작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노동이었다.

그러면 타락을 통해서 달라진 것이 뭐냐?

타락했기 때문에 노동하게 된 것이 아니라,

즐거운 노동이 타락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노동이 된 것이다.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사람은 지금도 즐겁게 노동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이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 새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직장 생활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그대로, 이제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일을 즐겁게 해야 한다. 구원이란, 창조의 본래 목적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피조물이 된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다.


여러분은 얼마만큼 하시는 일을 즐겁게 하시는가?

휘파람을 불며,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즐기면서, 월요일에 직장으로 가면서

아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즐겁게 출근하시라.


▲2nd. 탁월하게 일하라

‘주님이 나에게 이 일을 맡겨 주셨다.’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주께 하듯 그 일을 한다면, 그 일의 결과는 탁월하리라고 본다.

흔히 믿음이 좋은 사람들의 간증이나 신앙고백 속에서 이런 말을 들어본다;


‘내 첫 번째 직업은 뭐냐? 첫 번째 직업은 전도하는 것이고,

두 번째 직업은 교수입니다.

첫 번째 직업은 전도고, 두 번째 직업은 간호사입니다.

첫 번째 직업은 전도하는 것이고, 두 번째 직업은 나는 회사원입니다.’


이것은 매우 좋은 간증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 숨어 있는 의식 구조를 살펴보면,

그것은 좋지 못한 간증일수도 있다. 

 

만약 그 생각 때문에 직장에서 일할 때

‘나는 이 직장에 일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전도하러 왔다.’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 직장 일을 열심히 하게 되겠는가?

도리어 자기 맡은 일을 적당히 때우게 되고,

시간만 있으면 어떻게 전도할까? 궁리하게 된다.

 

그런데 자기가 맡은 일 자체를 성실하게 제대로 안하면서

우리가 입술을 열어 복음을 전할 때, 우리의 이웃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거 전도 안 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전도의 말에 설득력이 없어진다.


우리가 학교에서 전도하는 전도인이 되려면,

학생은 자기가 공부하는 분야에 있어서 탁월해야 한다. 뛰어나야 한다.

그 다음에 입술을 열어 복음을 전해보시라. 그러면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나는 전도하러 갑니다. 나는 교회에 갑니다!’

그래서 나에게 맡겨진 기본적인 일을 ‘적당히’ 처리하고 서둘러 퇴근하면,

사람들은 크리스천들을 역겹게 느낄 것이다.

 

이 말이 꼭 맞는 말은 아니지만,

자기는 교회를 다니는 크리스천 상사이지만, 직원을 뽑거나 팀을 조직할 때

크리스천은 가급적 뽑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다.

직장에서 크리스천들이 교회에 열심내는 핑계로, 자기 맡은 임무에 게을리

해서, 거기에 따르는 불이익을 상급자로서 감당하기 싫다는 뜻이다.

 

반대로 크리스천 직원은, 직원나름대로 고충이 있겠지만, 

그래서 영적으로 팽팽한 긴장감과 사무실 동료를 위한 기도가 늘 필요하다.  


▲3rd. 바르게 일하라 (25절)

크리스천으로서 잘 해 보려고, 지나치게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서두르다 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조금 결과가 더디더라도 바르게 하는 것,

우리가 도덕적인 간증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가 바울 사도 당시의 문서들을 읽어보면,

당시 로마에 똑똑한 노예들이 많았기 때문에, 지금도 그렇지만,

직장에 수익을 가로채는(삥땅하는) 노예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 같다.

바울은 아마도 그런 배경에서 이렇게 교훈했다고 생각이 든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골 3:25



◑3. 고용인의 태도 (4장 1절)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의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골 4:1


성경은 모든 상전들에게, 두 가지 단어를 강조한다.

의와 공평이다.


각종 청탁과 대가성 접대가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의와 공평을 행하는 상급자는

하나님 말씀의 약속을 따라, 그 가는 길이 평탄하고 장구할 것이다.


▲마치는 말

직장 생활이 불만족스럽고 짜증스럽기만 한 원인은

사실상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

나의 불성실함, 나의 불의함, 나의 불공평이

내 직장 생활의 보람과 기쁨을 빼앗아간 근본 원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제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먼저 저를 바꾸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새로운 의욕, 새로운 비전, 새로운 기쁨을 가지고

내 직장의 변혁자로, 전도자로 새 출발하게 하여 도와주시옵소서.”                    [주제별 분류] 복음과 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