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를 팔아서 존재를 사라
그러니 잘 들어라. 세상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라.
그러면 재물이 없어질 때에 (죽을 때 포함)
너희는 영접을 받으며 영원한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 눅16:9
아래 글은, ‘물질=행복’ 이라는 현대인들의 신념을 깨버린다.
‘물질=행복’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보여준다.
◑1. 부wealth는 사람과 사람사이를 갈라놓는다.
▲베두인 족의 혼란 원인
중동 일대에는 4천년 전 아브라함 때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유목민 생활이 더 익숙하다는 베두인 족이 있다.
그들은 이웃끼리 옹기종기 모여 텐트를 치고 살면서,
서로 가족이나 다름없이 가깝게 지냈다.
텐트라는 것이 사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더욱이 더운 낮에는, 텐트도 반쯤 열어 놓는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서구인이 다시 베두인 족을 방문해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들은 광야에 매우 튼튼한 집들을 지어 놓았다.
그들은 서로 갈라져서 불신하고 있었다.
마치 낮이 밤처럼 돌변한 천지개벽이었다.
그 원인은, 그들이 갑자기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유전을 팔았는지, 갑자기 거액을 손에 쥐게 된 그들 사이에
제일 먼저 생긴 것은, 서로 반목, 불신, 분쟁이었다.
그리고 저들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높고 튼튼한 벽을 쌓아야 했다.
아마 총도 여러 자루 준비했을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
이 이야기는 옛날에 화목하던 두 형제가
금덩이를 발견한 후에, 서로 다투고 갈라지게 되었다가
금덩이를 강물에 던진 후에야, 서로 다시 화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사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한국도 베두인처럼
시골은 물론이고, 도시의 모든 집들도
낮에는 모두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살았다.
동네 아이들과 아낙들이 이웃집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런데 부유하게 되었다는 지금은, 서로 철옹성을 만들어놓고 산다.
(요즘 새로 지은 고급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가보면,
성질 급한 사람은 짜증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다.)
‘부’라는 것은, 이상하게도 사람과 사람사이를 갈라놓게 만든다.
오늘날 한국은, 이웃 간의 담은 아예 기정사실이고,
형제간의 분쟁이 큰 사회문제로 대두 되고 있다.
과거에 부동산이 돈이 안 되었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이제 부동산은, 시골에 있는 것이라도, 큰 돈이 되자
형제간에 유산 다툼으로 ‘거의 모든 가정’이 형제간에 서로 반목하고 있다.
차라리 그 유산이 아예 없었으면 서로 우애하며 지냈을 터인데 말이다...
그러니까 소유를 팔아서 존재를 사야한다.
물질로 나눠주고 남을 도우면서 선한 일에 써야 한다.
그렇게 해야 ‘물질=행복’이 되고,
안 그러면 ‘물질=불행’이 된다. 형제간에, 부자지간에 서로 원수된다.
◑2. 부wealth보다 더 중요한 가족관계의 행복
▲가난이 부보다 더 좋다는 이유
한 서구인 선교사가 북아프리카의 도시 빈민들을 불쌍히 여기며 사역했다.
거기에 한 넝마주이 노파가 있었는데,
그녀의 집을 방문해보니, 사방에 넝마(쓰레기)가 가득 널린 오두막이었다.
선교사는 그들이 너무 불쌍해서, 노인들을 위한 깨끗한 기숙사를 지었다.
거기엔 좋은 침대, 좋은 음식, 그리고 돌봐주는 사람까지 완비했다.
그런데 그 넝마주이 노파는 한사코 그 기숙사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료이고, 모든 것이 깨끗했지만
노파에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와 행복은 - 가족관계였다.
‘아들아, 내가 너를 어떻게 떠날 수 있겠니..!’가 노파의 심정이었다.
▲날마다 가족간 축제가 있다
필리핀에서도 빈민사역의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깨끗한 수돗물이 있고, 그 비싼 전기를 무료로 쓸 수 있으며,
깨끗한 침대와 비교적 훌륭한 음식이 제공되는 선교센터를 제공해도
청년들은 저녁이면 모두 더러운 우물물, 얼기설기한 대나무집으로 되돌아갔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아리송했다.
선교센터에는 풍부함이 있었지만, 집에서 느끼는 ‘가족간 사랑’은 부족했다.
집에서 저녁마다 벌어지는 ‘가족간의 축제’가 없었던 것이다.
외국인들은 그런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니까, 경험해 본 적이 까마득하니까
그런 편의를 거절하는 현지인들을 도무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돈은 있는데, 행복이 없다.
유럽인은 혼자서 또는 부부동반해서 아주 비싼 공연을 볼 때가 있다.
공연 중에는 거기에 몰입되어서 모르지만,
공연장을 빠져나오는 얼굴표정은, 역시 대부분 굳어있다.
제3세계인들은, 그런 비싼 공연은 어쩌면 일생에 단 한 번도 못 보지만,
어떤 필리핀 청년은, 20살이 되도록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 표정은 비교적 생기발랄하다.
가족간의 우애, 이웃간의 우애 때문이다.
가난이 주는 유익인가?
▲글루미 제너레이션 : 혼자 노는 우울한(글루미) 사람들
오늘날 서구인의 문화, 또한 한국인의 문화 중에
<혼자 사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도 혼자 보고, 식당에도 혼자 가고, 커피도 혼자 마신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해외 크루즈 여행을 하더라도
혼자 하는 것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성경은 세상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권한다. 눅16:9
옛날에는 친구끼리 밥을 먹으면, 없는 형편에 서로 돈 내겠다고 난리쳤는데,
언제부턴가 더치페이(네덜란드 식 돈내기)가 좋다고 하다가
우리는 소중한 ‘친구관계’를 점점 잃어버렸다.
특히 친구관계, 부모자식관계는 사춘기 이전이 중요하다.
그 때 많은 사귐이 없으면, 커서 직장을 갖고 나서는 깊은관계가 형성 잘 안 된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더치페이를 해 왔으니,
20대 후반부터 벌써 혼자 다니는 ‘글루미(우울한) 제너레이션’이 되어버렸다.
(물론 이것 말고도 다른 요인들도 많다.)
돈은 있는데, 행복한 인간관계를 다 빼앗겨버린 것이다.
▲자녀 양육에 신경을 써야...
오늘날 대부분 한국 가정도, 자녀가 방과 후에 집에 오면, 엄마가 집에 없다.
돈벌러 직장에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녁에 퇴근하면, 자기 몸이 너무 고되어 녹초가 되기 때문에
자녀들과 같이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한다.
그렇게 사춘기 이전에 부모와 자식간에 대화, 놀이가 이뤄지지 않으면
아래와 같이 되기 쉽다.
◑3. 노인 부양의 핵심 문제는 '돈' 보다 '사랑'
▲양로원이 문화가 된 유럽
유럽은 노인이 되면, 많이들 양로원에 들어가고
양로원에서 자기 인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그것이 문화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자식들이 양로원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축한 돈을 가지고 있어도, 무 일푼 노인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임종 때에도, 혼자서 쓸쓸이 죽는 노인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돈’이 부모 자식 관계를 앗아갔기 때문이다.
옛날에 부모는, 돈 버느라 바빠서 자식과 놀아주지 못했고,
이제 반대로 자식은, 돈 버느라 바빠서 부모가 죽어가도 안 찾아온다.
그러나 가난한 제3세계는 그렇지 않다.
비록 판자촌에 상하수도 시설이 없이 살아도,
할머니가 임종이 가까우면
많은 자녀, 손자들이 그 곁을 지키며 애도한다.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행복한 노인이란?
오늘날 한국도 양로원 문화가 유행하고 있다.
우리는 항상 선진국 문화를 모방하니까 그렇다.
수원 근처, 부자 노인들만 입주하는 아주 현대화된 실버타운(노인 아파트단지)이
생겼다고 한다. 거기에는 노인 은행, 노인 식당, 노인 병원, 단지 내 셔틀 버스...
그러나 아무리 노인을 위한 문화시설이 많이 갖춰져 있는 실버타운 이라도,
그런 물질과 문명이 주는 많은 편리함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보다 더 큰 행복은 ‘가족관계, 인간관계’에 있다.
아무도 찾아오는 자식도 없고,
아무도 만날 친한 어릴 적 학창시절 친구도 없는 그런 노인에게,
넉넉한 은행잔고와 현대식 실버타운(양로원)이 진정한 행복감을 줄까?
▲마치는 말
이제야 확실히 방글라데시, 케냐 마사이족 같은 사람들이 무슨 ‘행복도 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로 조사된 것에는 이유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비록 물질이 없어서 ‘불편’하긴 하지만,
서구인들이 도저히 가지지 못하는 ‘가족, 이웃, 친구간의 행복’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부’가 사람사이의 관계를 갈라놓는다면,
‘가난’은 (좀 불편하기는 하지만) 사람사이의 관계를 갈라놓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에 유의하자.
나는 앞으로 외톨이 ‘글루미 제너레이션’을 택할 것인가?
양로원에서 혼자 쓸쓸이 생을 마감할 것인가?
아니면 약간 가난해지라도(풀어 쓰고 구제하니까),
행복한 인간관계속에 살 것인가? (성경은 구제하면 더 윤택해진다고 가르친다)
덧 부쳐서, 요즘은 신혼부부 때부터 재산관리를 아예 각자 따로 한다고 한다.
돈이 없으면 그런 일이 없을 터인데, 부부가 각자 돈을 많이 버니까 그렇다.
돈은 좋은 것이지만,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소유를 팔아서 존재를 사시기 바란다.’
‘불행하더라도 부자를 원한다’는 요즘 말은
아직 그런 '소외당하는 불행'을 겪어보지 못해서 하는 철없는 소리일 것이다.
양로원에서 혼자 쓸쓸이 지내보면, 그런 소리가 쑥 들어갈 것이다.
<김지윤 씀, 「풍요로운 가난」을 읽고서, 엠마뉘엘 수녀 저, 마음산책
◑친구의 존재로 인해 기분이 좋습니다.
이 글을 쓰다보니 이런 경험이 생각난다.
제가 필리핀에 살 때, 가까운 노천온천에 자주 갔었는데,
온천욕 입장료가 한화로 1천원이라서 맘에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루는 참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30대 남자들이 약 15명 정도 노천온천 탕 주위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은 서로 아무 말도 없이, 15명이 한결같이 서로 바라보며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저 사람들, 온천 처음 해 보나?’
척 보기에 그들은 상류층이 아니었고, 시골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런데 왜 저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저토록 오래 싱글벙글 웃고만 있는가?
그 광경이 하도 신기해서 저는 옆에서 십분 정도 오래 동안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서로 똑같이 반신욕을 하다가, 서로 똑같이 전신욕을 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매우 예의발랐다. 무슨 회의를 하는 모습 같았는데,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쳐다보며 그저 함박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이 글을 쓰다보니, 오늘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들은 서로가 좋다는 것이다.
서로의 존재로 인해 (말은 안 해도) 너무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염없이 서로를 쳐다보며 오래도록 서로 웃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과거에 친구가 좋아서,
친구 손을 꼭 붙잡고 다니기도 했다. 외국인이 보면, 동성연애로 오해할 정도였다.
그냥 친구가 있음으로 마음이 행복했고, 그의 존재로 인해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사촌사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쌓은 물질, 학벌, 지위 이런 것들 때문에
이런 것들이 좋긴 하지만, 도리어 사람 사이를 멀리 갈라놓고 말았다.
그 중간에 체면, 자존심, 자격지심 등이 잡초처럼 가득 자라났다.
이제 우리 소유를 부수어, 친구를 얻어야 하겠다.
물론 마음이 더 중요하지만, 뭔가 접촉점contact point이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속의 장례식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1천만 달러의 유산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 큰돈을 모두 써버려 70세가 됐을 때는 거의 무일푼의 상태였다.
말년에는 방 두 개짜리 집에서
딸이 보내주는 돈으로 근근이 생활을 유지할 정도였다.
그는 그 많은 돈을 도대체 어디에다 썼을까?
보통 사람 같으면 자신을 위해 흥청망청 썼을 테지만 그는 달랐다.
우리 돈으로 80억 원이라는 큰 돈을 유산으로 받자
그는 이것을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위탁하신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3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곤궁한 사람이나 불행한 사람,
불구자나 병자, 그리고 고아와 과부에게 베풀었다.
그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은 무려 3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가 죽었을 때,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천국에서 더 큰 유산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다. <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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