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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무명의 일꾼들을 통해서

LNCK 2007. 2. 20. 12:45

www.youtube.com/watch?v=-w40-yaHyT0

◈하나님 나라는 무명의 일꾼들을 통해서 건설된다             막9:35        여러 자료에서 수집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그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다. 막9:35

 

앞서 ‘#541, 백년을 주기로 부흥된다’는 글에서

개신교 역사 5백년을 이끌었던 위대한 인물들을 열거한 적이 있다.

루터, 캘빈, 존 오웬, 리처드 백스터, 휘필드, 웨슬리, 에드워즈, 피니, 무디 등

 

그 글에 보완적으로 꼭 기억해야할 내용이 있는데,

그 크고 위대한 부흥의 뒤안(뒤꼍)에는

그런 위대한 위인들과 더불어 ‘무명의 크리스천’들이 꼭 있었다는 것이다.

 

 

▲작은 일에 충성한 무명의 일꾼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에도, 무명의 일꾼들이 여럿 등장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말없이, 묵묵히 도왔다.

 

①오병이어를 드린 어린이는... 그 이름이 성경에 없다.

 

②한 여인이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을 씻기며 장례를 준비했다.

당시에 이 여인 한 사람만 예수님이 가르치고 예고하신 ‘십자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님이 마음에 큰 위로를 받으시고, 그녀를 크게 칭찬하셨다. 막14:9

그러나 이름이 없다. 막달라 마리아로 추측할 뿐이다.

 

③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 나귀를 말없이 제공한 사람이다.

그리스도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구약에서 이미 예언되었다.

그런데 이 예언의 성취가 가능했던 것은

누군가 작은 일에 순종하여 나귀를 주님께 내어드렸기 때문이다.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시니 다른 말(군소리)이 없었다.

 

이들 사건들의 공통점은 무명의 순종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처럼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들의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 미천하다는 뜻도 된다.

 

위의 세 사건들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있다.

사실 사복음서에 4번 모두 기록된 사건은,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가 주를 위해서 하는 작은 일이

하나님 나라에서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사실 우리는 그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

 

 

▲예수님도 자기 공을 나타내지 않으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신 후에, 자주 쓰신 표현이다.

 

이 말씀의 뜻은, ‘내가 기도해서 고쳐주었다!’가 아니다.

내가 안수도 하고, 기도도 했지만

‘네가 나은 것은 네 믿음 때문이다!’ 하시며

그 칭찬과 공로를 은근슬쩍 병 나은 신자에게 돌려버리셨다. 

 

우리는 기도해서 어쩌다가 막힌 귀가 뚫리고, 무슨 병이 나으면

그것을 방송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도 하는데,

그런 기적이 계속 일어나기 원한다면,

자기를 부인하는 겸손이 꼭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단락은 박완서 저,「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참조

 

 

▲마음이 정해진 자는 말이 적어진다!   心定者言寡 定心自寡言始

 

이 말은 이율곡 선생의 저작「율곡 선생 글모음」 중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 뜻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말 수가 적다’는 뜻이 아니다.

 

   心定者言寡 (심정자언과)        마음이 안정된 자는 말이 적다   *(寡=적을과) 

   定心自寡言始(정심자과언시)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은 말을 줄이는것 부터 시작한다

 

 

자기의 결심을 타인에게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의 공적을 타인에게 자세하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직 자신의 뜻(목적, 푯대)을 향해 매진함이 중요하며,

주변 사람들을 붙들고 뭘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한눈 팔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남들이 태클을 걸어와도(이의를 제기해도)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기 임무 수행이 더 중요한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세 명의 무명의 일꾼들도 공통적으로 별 말이 없었다.

군소리가 없었고, 긴 말이 없었고,

그들의 관심은 ‘말’보다, ‘묵묵한 섬김’에 있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사모님이신 Ruth Graham여사는 그의 자서전에서

자신은 어떤 갈림길에 설 때면, 항상 좁은 길을 택하며 살았다고 회고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외면하는 길, 더 힘들고 어려운 길,

더 많은 수고와 순종이 요구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

그의 인생에 항상 결정적인 것이었다고 말했다.

 

교계의 원로이신 모 목사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가 하나님 나라에서 칭찬을 받을 사람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탄광이나, 깊은 시골이나, 조그만 섬에서

평생 그 자리를 지키는 목사가 더 큰 칭찬을 받을 지도 모르겠다.’

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상(칭찬)을 많이 받은 사람은,

저 천국에서 받을 상이 없을(적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마6:5, 16.

 

성도는 마땅히 천국에서 영원히 받는 상을 사모하며, 이 세상에서는

말없이

이름 없이

주님을 섬겨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큰 부흥과 역사는

몇몇 위대한 주의 종들을 통해서도 일어나지만,

동시에 이름 없고, 말도 없는 

무명의 크리스천들이 반드시 존재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터넷 설교 토대로 김지윤 편집

 

 

 

◑'무명의 일꾼' 관련글 모음

 

이제까지 실렸던 글 중에서 ‘무명의 크리스천’과 관련된 글만

한 데 모아봅니다.

 

▲내게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무명의 일꾼들

내게 교훈을 주고, 내 삶을 실제로 변화시킨 사람은

어떤 자격증이나 표창장을 가진, 유명한 성취를 이룬 사람이 아니라,

내게 깊은 관심을 가진 보통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오늘도 실제로 세상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이들은

무명의 보통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당신도 바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하나님 나라(각 사람)는, 화려한 스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건강한 개미들에 의해서 변화되어지는 것 같다...

 

우리 인생에 더more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멀리 있는 주변 사람에 냉담하거나 무관심한 화려한 스타보다도,

자기 가까이 있는 주변 사람에 따뜻하고 관심 있는,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무명의 제자이다.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 나라도,

멀리 있는 유명한 몇 몇 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개미들이 사명감을 갖고 자기 자리에 가까이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사명을 다해야 한다.

그런 분위기가 더 확산되기를 바라며... <맥스 루케이도

 

▲예수님도 세속 역사에 무명의 인물

어느 자유주의 신학자가 쓴 글 http://blog.daum.net/ygbhygbh/8028156 은 대단히 흥미롭다.

그의 주장은 한 마디로,

예수는 역사 속에 실재했던 인물임은 부인할 수 없으나,

역사 속에서 손톱 아래 때만큼 미미하게 기록되었다는 이유로,

그렇게 위대한 그리스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예수가 친동생 야고보 보다 더 못한 존재로

역사가들의 평가를 받았음을 볼 때, (역사책의 언급을 기준으로 볼 때 그렇다)

도무지 예수를 그리스도(구세주)라 볼 수 없고,

단지 ‘한 무명의 유대인’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그의 주장에는 큰 진리가 숨겨져 있다.

그렇다, <예수님은 정말 무명의 유대인으로 사셨다.>★

그 분은 당대의 총독, 분봉왕, 로마 장군들보다 훨씬 낮은 대접을 받으셨다.

정말‘한 무명의 유대인’ 대접을 받으셨다. 그 뿐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수님의 일생의 목표는 ‘십자가’였으며, 결코 ‘유명인’이 아니었다.

5병2어의 기적 이후에 군중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을 때에도

예수님은 피해서 홀로 조용히 산으로 가셨다.

 

오늘날 같은 매스미디어 시대에, 사람들은 은연중에

필요 이상으로 홍보에 신경을 쓰게 된다.

 

그 결과, 교회도 유명해지고 사람도 유명해지는데... 예수님은 가려진다.

사람들이 예수님은 못 보고, 유명한 교회, 사람 쳐다보다가 돌아간다.

 

사람이나 교회가 저절로 유명하게 되는 거야 어쩔 수 없고, 막을 수 없지만,

유명한 것이 반드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편집자

 

이름 모를 한 하녀 a little maid

성경은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인생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성경은, 사람의 탁월함에 비중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그녀는 노예요, 어린 아이요, 여자요, 외국인이요,

그야 말로,  no power, no position, no possession 이었다.

이 잡혀간 하녀가 시리아 제국을 복음화 시키는 기초를 닦았다.

 

그녀가 전도한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 선지자에게 병 고침을 받은 후

앞으로 평생 여호와만 섬기겠다는 의미로, 이스라엘의 흙을 나귀에 실어간다. 왕하 5:17

 

그로부터 2백년 후,

요나 선지자 때에 니느웨(앗시리아 수도)에 큰 회개 운동이 일어난 것은

앞서 시리아의 나아만 장군이 고국에 돌아가 끼친 복음의 영향력 때문이며,

이것은 앞서 한 무명의 히브리 노예가 뿌린 복음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한 여자 아이는 정녕 겨자씨 한 알 같은 삶을 살았고

시리아(수리아) 전체를 변화시키는 한 숟가락의 작은 누룩이었고,

시리아의 모든 산을 불태우는 성령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었다.

 

시 2, 3, 4, 6, 7, 9, 11, 42, 43편과 그 외에도 많은 시편들이,

각각 다른 시대를 살던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는데,

거기엔 임금과 장군 등 지체 높은 사람도 있었으나,

성막에서 그저 봉사하던 이름 없는 사람도 있었다.

뛰어난 지도자도 있었지만, 무명의 사람도 있었다. <조봉희 목사님 설교 중 발췌

 

▲무명훈련

예전에 애굽에서 모세와 교제하던 사람이, 광야에서 모세를 만났다고 상상해 보자.

그는 번쩍번쩍한 마차를 타고 왔는데, 모세를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초라한 옷,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카락, 다듬지 않은 수염...

거기서 양을 치는데, 그나마 자기 소유도 아닌, 장인의 양떼를 치는

늙고 가난한 무명의 볼품없는 시골 영감을 상상해 보시라.

세계 최강국 이집트의 궁궐...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추락했다.

 

아무리 알아주지 않는 무명한 자리에 처했을지라도

온유하고 겸손하게 자신에게 맡겨진 목자의 일을 묵묵히 처리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무명훈련이다.

광야의 훈련과목 중에는 무명 훈련도 반드시 포함된다.<권성수 목사님 설교 중 발췌

 

▲주님 위한 헌신은... 무명한 자리로 뛰어드는 것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8~10

 

그리스도를 위해서, 복음의 승리를 위한 영적 전투 대열에 뛰어들면

여러 고난으로 인하여 속이는 자 같고, 무명하고, 죽는 자 같이 된다.

그러나 결국은 참되고, 유명하고, 사는 자가 된다.

가난한 자 같은데, 항상 부요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은데,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된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의 승리이다.

 

▲인기가 올라가면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들

무명의 스포츠 선수들이 현란한 플레이로 두각을 나타내면

언론과 집중 조명을 받게 되고, CF(Commercial Film, 영상광고)도 찍게 된다.

그러면 대부분, 그들의 기량이 점점 떨어지게 되더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공식이 성립된다; 인기+CF = 추락!

옛날에 이천수, 김남일 선수가 그랬던 것 같다.

(지금 그들은 심기일전해서 다시 대표급 선수들이 되었다.)

 

그러나 많은 인기를 누리고도 계속 승승장구하는 선수도 있다.

박지성 선수다... 

(그는 축구 말고 다른 잡기를 일절 하지 않는다.

수 년 동안 늘 똑 같은 가방만 매고 다니는 것도, 그가 절약 정신이 투철하기 보다는

쇼핑에 아예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양제헌 목사님 설교 중 발췌

 

 

▲무명의 데오도르 웰드

특히 미국의 노예제도 반대운동의 힘은,

대부분 챨스 피니의 신앙부흥운동에서 개종한 사람들로부터 온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 중에서 전 생애를 미국의 노예제도 반대운동에 헌신한 데오도르 웰드

(Theodore Weld)가 가장 유명하다.

 

그는 피니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개종하였으며 얼마 동안 그의 비서로 일했다.

그러나 웰드는 영국의 노예제도 폐지자 윌버포스와 견줄 수 있는 미국인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윌버포스처럼 국회의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미국에서의 노예제도 반대운동은 개혁의 몇 영웅에 의해서가 아니고,

1830년대의 대신앙 부흥운동을 일으킨 복음주의적 정신에 의해서 자극을 받은

수많은 무명의 사람들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 <소논문 중 발췌

 

무명의 설교자를 일으키시는 하나님

지난 2천년 동안의 교회의 역사를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이 강단에서 바로 선포되어질 때 교회는 흥하였고,

그렇지 않을 때 교회는 병들었다.

"기독교는 설교와 함께 흥하거나 설교와 함께 망한다!"

 

역사를 보면, 강단에서 설교가 올바로 선포되어지지 못할 때는

하나님은 종종 무명의 설교자를 일으키셨다. 휫필드, 피니, 무디 등이다.

그들은 거리에서, 시장에서,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모아놓고 말씀을 선포했다.

사람들은 그런 무명의 설교자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교계신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