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여정의 긴장감 창26:1~5
◑1. 나그네 여정의 긴장감이란?
▲1. 축복과 역경사이의 긴장감
이삭은 출생부터 축복을 받은 인물이었고
그의 일생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언약의 축복이 흘렀다.
그러나 그가 살고 있던 곳에 흉년이 들었다. 창26:1
이것은 모순이다.
아브라함에게 허락된 땅은 언약과 축복의 땅이었지만,
흉년이 임했다는 것은 이상한 말씀처럼 들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할 때까지는
항상 축복 속에서 역경이 임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신다.
△십자가를 생각해 보자.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그 분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피와 물을 모두 흘리셨다.
그 십자가로 인해서 우리는 구원을 받고 은혜를 받았다.
그러나 십자가는 수치와 고난의 상징이었다.
가장 은혜로운 것이, 가장 큰 고난의 상징이라는 것은 분명한 역설이다.
우리가 이 십자가를 붙잡고 의지하는 순간에 은혜가 충만해진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는 짐과 멍에가 된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는 축복과 아픔, 역경이 함께 간다.
이것이 나그네 인생의 긴장감이다.
이 나그네 인생은,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갔고, 우리가 똑같이 걸어가는 길이다.
▲2. 믿음과 두려움 사이의 긴장감
하나님은, 흉년을 피해서 애굽으로 옮겨가려는 이삭에게, 가지 말라고 하신다.
이 말씀을 듣고 이삭은 즉시로 가는 것을 포기한다. 이것은 큰 믿음이다.
자기 생계를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믿음이다.
그러나 당시에 이삭이 기거했던 그랄에서 그는 두려움에 빠지고 만다.
아내 리브가가 무척 아름다웠기 때문에, 이삭은 생명의 위험을 느끼게 되어
리브가를 자신의 누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이 같은 비겁한 행동은 아브라함이 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당시의 사회 질서는 지금처럼 안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름다운 아내를 둔 남편은, 늘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훌륭한 믿음을 보였던 이삭이었지만,
잠시 뒤에는 두렵고 떨림으로 인해서 거짓을 말하는 그였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과 동일하지 않은가?
우리에게도 갖가지 두려움이 있고, 그것 때문에 믿음이 흔들리지 않은가!
우리들은 천국에 가기 전까지 이 세상에서는
이삭처럼 이러한 부족한 모습을 보여준다.
믿음과 두려움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며, 긴장되게 살아간다.
▲3. 이김과 짐 사이의 긴장감
후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시므로 그가 번성해진다.
이삭이 이렇게 부유해지니까 그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질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당시 유목민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던 우물을 빼앗기게 된다.
그러나 이삭은 그들과 다투지 않았다. 그는 화평을 택하고 지는 것을 자원한다.
그는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하인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싸워볼 만 했지만, 지는 것이 그의 삶의 일부가 되게 한다.
진정한 승리는 궁극적인 승리를 의미한다. 성도는 이 땅에서는 질 수도 있다.
궁극적인 승리는 하늘에 있으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무조건 이기려고만 하는 신자를 보면, 우리는 부담감을 느낀다.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하고 궁극적인 승리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그네 인생길에 넉넉히 질 수도 있다.
우리의 미국 이민 생활이 이렇다.
우리의 생활 속에는 축복과 역경이 모순처럼 함께 공존한다.ⓛ
믿음 속에서도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②
이길 때도 있지만 지는 것이 오히려 현명할 때가 있다. ③
이것이 우리의 삶의 실제 현실이다.
우리는 나그네 믿음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2. 나그네 삶의 믿음이란?
우리가 가슴 속에 깊이 새겨야 하는 나그네의 믿음(생활)은 어떤 것인가?
▲1. 행복보다 성화를 추구하는 삶 (위1항. 축복과 대비)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 분의 자녀요, 백성이다.
그 분은 독생자를 죽이시고, 우리를 자녀 삼아주실 정도다.
그런 사랑하는 자녀이지만, 때때로 우리에게 역경과 두려움을 허락하실 때는
분명히 주님의 목적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거룩해지는 성화 sanctification이다.
△롬8:29절을 보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이유는
우리들로 하여금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큰 외형적 성과나, 큰 성취project에 있지 않고
오직 당신의 백성에게 있다. 그의 인격에 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는가!
주님은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먼저 원하신다.
우리가 ‘주님의 것’이 되는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려면, 그분처럼 성결해야 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당신의 형상을 닮은 당신의 백성으로 만들어서
‘너는 내것이라’ 부르시기를 원하신다.
△행복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다. 우리 모두가 이것을 원한다.
그렇지만 때로 주님은 우리에게 고난과 불행을 주셔서라도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점점 더 성화시켜 가신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그네(고난) 인생을 허락하셨다.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으며,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매달리고 기도하며,
아픔 속에서 하나님께만 소망을 갖게 하심으로
step by step, moment by moment, little by little, day by day
한 걸음씩, 순간순간마다, 조금 조금씩, 매일매일
주님의 형상을 점점 닮아가게 하시는 것이다.
△토저 목사님은 영적인 사람을 가리켜,
그들은 행복해지는 것보다 거룩해지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 이라고 정의하였다.
또한 대부분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지만
이러한 바램은 그 사람의 관심이 세상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하고 있다.
인간이 가장 궁극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것은 행복이나 육신의 건강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룩함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뜻은 언제나 성도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영원한 복을 쏟아내는 기계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단순히 우리를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 아니요,
우리가 거룩한 백성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엄청나고 힘이 있는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 보다 바로 사는 것을 원하신다.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에서는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를 외쳤지만
잘 사는 것 보다는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성도로서 이 세상에 빛을 발하며 살기 원하신다.
나그네 믿음(생활)이란
행복보다 성화를 추구하는 삶이라는 목표를 꼭 놓치지 마시기 바란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목표를 혼동하고 있다. 성화보다 행복에 치우친다.)
▲2. 믿음의 성장을 소망하는 삶 (위2항, 두려움과 대비)
히11:13절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은 모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들의 믿음을 지켰다고 하였다. 숨지는 그 순간까지!
계속되는 나그네의 역경과 긴장감 가운데, 그들의 믿음을 지켰다는 것이다.
엡4:13절을 보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오직 그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성장'하기 위함이다.
△미국 칼럼니스트인 Herb Caen이라는 사람이 이런 글을 썼다.
아프리카의 아침이 되면 가젤(염소의 일종)은 하루를 시작하면서
오늘 하루 동안 열심이 뛰지 않으면 사자의 밥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하루를 준비한다.
그리고 사자는, 자신이 오늘 가젤보다 빠르게 뛰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가젤이건 사자이건 상관없이, 아프리카의 아침 해가 뜨면 그들은 뛰어야 한다.
생존하는 길은 오직 뛰는 것뿐이다.
(믿음생활도 마찬가지다. 안 뛰면 마귀 사자에게 잡아먹힌다.)
△스펄전 목사님은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마귀가 우리를 찾아 나설 것이라고 말하였다.
우리가 오늘 아침에 깨어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단순히 존재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뛰라고 부르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소극적인 삶이 아니어야 하고
그저 교회나 왔다 갔다 하는 삶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 나서야, 뛰어야 한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복을 받았지만
믿음의 긴장감 속에서, 자기의 믿음으로 서는 법을 배워나갔다.
히11:20절을 보자.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을 바라보며 야곱과 에서를 축복하였다
자신의 믿음으로 후손을 축복하고,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나간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 어려움이 생길 때에 기억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연단을 주신다는 사실을...
비록 고달프지만 그것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생활)은 성장할 수 없다.
하나님은 믿음의 성장과 축복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나그네(고난) 인생을 허락하신 것이다.
▲3. 궁극적인 승리를 붙잡는 삶 (위3항, 질 때도 있지만...)
우물 때문에 이삭과 블레셋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났다.
그러나 얼마 지난 후에 그 지역의 왕이 이삭을 찾아와서 협정을 제안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하심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다. 창26:28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하시니 그와 싸워서 이길 수 없음을 알고
그와 화평의 협정을 이루고 싶은 것이었다.
나그네는 이 땅에 달리 자기를 도와줄 자가 없다.
나그네에게는 하나님이 유일한 힘과 도움이 되신다.
이삭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 누가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초대 교회는 매우 연약하였다.
숫자나 힘으로 보아도 그들은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그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들’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에
그를 지키고 있었던 백부장이 ‘이 분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말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고, 그 분이 하신 말씀을 들으며,
온 하늘과 땅이 흔들리는 것을 보니,
더 이상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 하심을 부인할 수 없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온 세상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세상 사람들이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갖고 살기 원한다.
우리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게 하자...
<인터넷 설교 정리 07.02.11. *원제목 : 나그네 믿음 (창26:1~5)
*주제별 분류 : 복음 관련 http://blog.daum.net/bible3/1051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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