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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한국의 비전 렘1:1~10 2007.06.06.설교스크랩
▲말씀이 심고 세우며, 말씀이 파괴하고 무너뜨린다.
예레미야는 지금부터 약 2천6백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다.
당시는 남유다 왕국의 마지막 멸망을 지켜보아야 했던 민족적 고통의 기간이었다.
이때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런 예언의 말씀을 주신다.
보라 오늘날 내가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그 열방(여러 나라)을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렘1:10
물론 예레미야 한 사람이 그런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주신다.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주겠다. 렘1:9
예레미야가 가진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다.
이 예언을 받을 때는, 이미 남유다의 국운이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이며,
머잖아 예루살렘이 망하고 마는 순간이다.
지금 나라가 망하는 그런 절체절명의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신다.
그러면서 이 말씀에 너희가 순종하면
이 말씀이 너와 너의 가정과 너희 나라를
세우고 심을 수도 있고,
반대로 너희가 이 말씀을 버리고 떠나면
이 말씀이 너희를 파괴하고 파멸하며... 넘어뜨린다는 것이다. 렘1:9~10
▲이 시대에 필요한 꿈 - 말씀 위에 새롭게 세워지는 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말씀 위에 새롭게 세워지기 원하셨다.
그것이 항상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부흥의 방법이다.
오늘도 동일하게 하나님은, 말씀 위에 우리나라가 새롭게 세워지기 원하신다.
말씀 위에 북한이 새롭게 세워지기 원하시고,
말씀 위에 모든 열국 나라들이 새롭게 세워지기 원하신다.
우리 모든 국민들이 나라를 사랑하지만
크리스천들의 나라 사랑은 그 차원이 더 높다.
그저 부국강병을 이루고, 경제적으로 보다 질적인 삶을 사는 것도 물론이지만,
그것도 포기할 수 없는 목표이지만,
그러나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들은 헛된 건축들이 되고 말 것이다.
한 나라를 세우기도 하고,
한 가정을 쓰러뜨릴 수도 있고,
우리 개인의 삶을 새롭게 심어 줄 수도 있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모든 것들이 새롭게 세워지는 꿈을
오늘 우리가 다시 한 번 마음에 품어야 할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이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즉, 사람의 참된 만족과 평안은 말씀의 은혜에서 온다.
단순한 경제적인 필요가 충족되는 것, 그 이상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진다고 아우성을 치는 이 때,
우리가 바로 예레미야가 가졌던 사명,
예레미야가 전했던 희망 - 말씀으로 뽑고 무너뜨리거나... 말씀으로 세우는 희망을
오늘 우리도 똑같이 가질 수 있어야 하겠다.
오늘날 세상은, 소득 4만 불, 5만 불을 전하는 메신저들이 인기가 있다.
좀 더 많은 소득, 좀 더 질이 높은 삶의 환경.. 이런 것들도 무시해선 안 되지만
그러나 심령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그 모든 것들이 공허한 것임을 우리가 철저히 깨달아서,
내 삶이, 우리 가족이, 우리나라가
하나님 말씀 위에 새롭게 세워지는 꿈을 다시 꾸게 되기를 원한다.
▲어린 자를 택하신 하나님
이 말씀이 누구에게 주어졌는가?
어린 청년 예레미야에게 이 말씀이 주어졌다.
예레미야에게 소명을 주실 때, 그는 말했다.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렘1:6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다.
그는 21세 쯤 되던 때였다. (요시야 13년, 렘1:2, 주전627년경)
신학자들은 예레미야가 요시야 왕과 동갑으로 추정한다.
그럴 경우, 요시야는 8세 때 왕이 되었으므로 (왕하22:1)
요시야 재위 13년에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그가 예언 활동을 시작하였다면
그의 나이 21세 쯤 되는 나이였다.
이 어린 청년에게
온 세상 열국이
내가 네 입에 두는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세워질 수도 있고 무너질 수도 있다.
그 말씀을 직접 들었을 때, 그 청년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세상 열국의 모든 사람들은,
내가 지금 밥벌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결혼과 직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집이라도 한 칸 가지고 살 수 있을 것인가?
예레미야도 한 남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기 인생에 대한 그런 염려가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자기가 말씀을 받은 선지자라도
자기 앞가림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랍게도 이 어린 청년을 통해
온 세상 열국이 세워질 수도 있고, 무너질 수도 있는 말씀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그것이 바로 예레미야 1장의 내용이다.
▲당시는 젊은이가 무시당하던 세상
여러분, 요즘과 옛날은 세상이 달라서
과거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젊은이들은 어디에 나설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옛날 사회는 책도, 지식 전수를 받을 수 있는 교육기관도 부족해서
대부분 지식이 주로 경험을 통해서 습득되었다.
경험하지 않고는 아는 것이 없었으므로
당연히 경험 많은 나이든 분들이 가장 지식이 많았고,
반대로 연륜이 짧은 젊은이들은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과거 사회는 노인들이 당연히 사회의 주축이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당시 약관 20세 경의 예레미야는
사회에서 젖비린내 풍기는 애 취급을 당하기 딱 알맞았고,
자기 자신도 그 사실을 고백했다. 나는 애라고! 렘1:6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 사회가 되면서
젊은 사람들이 주가가 더해지고 있다.
국가 원수도 과거에 비해 젊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기업들의 이사, 임원진에도 과거에 비해 젊은 임원들이 속속 진입하고 있다.
더욱이 교육과 인터넷을 통해서,
요즘 젊은이들의 지식 습득은 놀라운 정도이다.
세상이 그렇게 변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드신 분들은 요즘도 여전히 중요하다.
그래서 흰 머리 앞에서 일어서라는 말씀은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
그런 요즘에도 20살 청년은 애 취급을 당하는데,
2천 6백 년 전 당시에 20살 청년은, 애 취급을 받기에 딱이었다. 노인 중심 사회였으니까!
▲어린아이를 쓰시는 이유
“하나님, 저는 어린아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백을 가진 사람을 쓰기 좋아하신다.
아니, 그런 사람이라야 쓰실 수 있다.
하나님이 이십대의 ‘어린 애’를 택하신 이유는
그래야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뭘 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을 받기가 사실 어렵다.
어떤 수상구조대원의 수기에 보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 힘이 반쯤 빠진 사람을 구하다가는
둘 다 죽는다고 한다. 그 때는 더 내버려 둔다고 한다.
그 분 표현으로 ‘머리카락 하나만 당겨도 딸려올 정도가’ 될 때,
비로소 그를 구조한다고 한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완전히 항복하고, 완전히 기절한 사람을 찾으신다.
그래서 ‘애 같은’ 예레미야를 택하신 것이다.
‘하나님, 내가 먹을 것도 좀 있고, 경험도 좀 있고,
제게 뭘 맡겨주시면, 제가 좀 잘 해 보겠습니다!’
- 이런 사람은 쓰임 못 받는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그 말씀 위에 세울 수 없다.
내 경험, 내 경력, 내 물질... 이런 것은 있으면 좋지만,
만에 하나 그것 믿고 설치다가는... ‘말씀 사역’은 뒷전에 빠지게 된다.
2천6백 년 전이나 오늘이나,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사람은
‘나는 어린 아이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주신 이 말씀이 아니면, 아무 것도 대안이 없습니다!’ 라는 사람을
주님은 지금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아니고는,
하나님이 주시는 그 성령의 지혜와 능력이 아니고는,
오늘 우리 가정을 세울 수 없고
우리나라를 세울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 드리자.
말씀 위에 이 나라를 세우는 꿈은,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우리 모두 예레미야처럼 어리고 가난하고 철저히 낮아져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붙들림을 받는 귀한 말씀의 대언자들이 되자!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07.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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