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7

744 빈익빈 부익부를 돕는 나

LNCK 2007. 6. 18. 23:50
   ◈빈익빈 부익부를 돕는 나

 

이익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 잠22:16

 

 

◑번번이 뉘우치는 일

 

*이 단락 출처: 박완서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에서

 

▶어제는 가서 축하해 줘야할 결혼식이 두 건 있었다.

둘 다 잘 아는 집인데, 한 집은 사회적 지위가 있는 부잣집이고,

다른 한 집은 착하긴 한데, 근근이 살아가는 집이다.


부잣집엔 하객도 많을 테니 나 같은 사람은 참석을 안 해도 그만이다.

그러나 근근이 살아가는 집엔 손님도 많지 않을 테고,

나 같은 사람이라도 그 자리를 빛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제가 어쨌는 줄 아시는가?

부잣집 잔치 집에 갈 때, 제일 좋은 옷으로 멋을 한껏 부리고

축의금도 내 형편에 과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얄팍한 봉투도 하나 더 마련했는데,

그나마 그 약소한 봉투를 인편이 생긴 김에 그쪽에다 부탁을 해 버렸다.

요즘 같은 교통난에 같은 날에 두 탕 뛰기 어렵다고 스스로 변명을 삼았다.


▶나는 부잣집 결혼식에서 줄서서 기다렸다가

한 구석에서 잘 얻어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나 자신이 모래알처럼 초라하고 왜소하게 느껴졌다.


부잣집 잔치에서 비싼 옷 입은 사람, 유명한 사람을 하도 많이 봐서가 아니라,

그제야 내가 일을 거꾸로 처리했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없는 사람에게 한 푼이라도 더 주어야 하는 게 사람의 도리인데

왜 번번이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내 입으로는 빈익빈 부익부를 개탄하면서도,

내 행동으로는 번번이 빈익빈 부익부를 돕는 짓을 하고 만다...

 

사람들이 부잣집 잔치집에 잘 가는 이유는

좋은 음식을 먹는 것 보다는, 실은 거기에 오는 유명 인사들을 만나러 간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유명인사들은 대리인을 보내서 봉투만 전달하거나,

아니면 직접 와도 금방 얼굴만 내비치고 자리를 떠난다고 한다.

 

그래서 잔치집에 오래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정작 그 상류층에 끼고 싶은데,

그만큼의 유명세나 부가 없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말이다. 

 

큰 교회에 헌금할 때와 개척 교회에 헌금할 때도 마찬가지다.

박완서 씨처럼, 나 한 사람이라도

이런 점에 스스로 ‘내면적인 갈등’을 느끼며 살아야 하겠다...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를 회개시킨다?


- 서 로벨또(본명 로버트 스위니)신부      *출처 축약

▶가난한 성자 마하트마 간디는, 예수의 정신과 삶을 존경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본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소박한 삶으로 인도의 민중운동을 이끌어간 간디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실로 너무나 거대한 제도로써만 느껴졌습니다.

예수의 기본적인 가르침인 ‘가난함’이 빠진 교회가 매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간디에게 매력이 없었던 교회가

이제는 우리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교회는

사회, 경제적으로 있는 사람들의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생활수준, 문화 그리고 의식수준을

자신들의 삶과는 무관한 것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탐욕의 원리와 발전 이데올로기가

교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기에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예수의 복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세계는 개인의 탐욕과 국가의 탐욕을

합리성과 발전이라는 거창한 이념을 가지고 최대한을 성취하려고 합니다.

인간다운 공동체 건설보다는

누가 더 부귀와 명예와 권세를 누리느냐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거대한 세계의 메커니즘 앞에

소박하고 단순한(가난한) 삶의 공동체(교회)는

언뜻 왜소해 보이고 무력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삶에서,

그리고 예수를 추종했던 살아있는 사람들에게서,

그 공동체는 세상의 희망으로서 드러납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진리를 위하여

기쁘게 자신의 삶을 내던지고 있습니다.

이 분명한 생명의 길을 교회가 외면한다면,

교회는 더 이상 예수의 제자들이 아닙니다.


이제 교회는 예수의 생명력이 교회 아닌 다른 곳에서

용솟음치고 있음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를 회개시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생계가 어려우신 분들은 너무 한탄만 말고,

죄송합니다만... 가난함 가운데서 자기 사명을 찾으셔야 하겠습니다!

암환자가 암과 더불어 살듯이,

가난과 더불어 살면서, 자기가 깨달은 삶의 깊은 의미를 세상에 증거해야 되겠습니다!


 

◑ 빈 배  (관련 글)

 

사람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난하고 자기를 비우면

남과 부딪힐 일이 없다는 주제의 글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가 그의 배와 부딪치면

그가 아무리 성질이 나쁜 사람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배는 (제 혼자 떠내려 오는) 빈 배이니까.


그러나 배 안에 누구라도 사람이 있으면

그는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래도 듣지 못하면 그는 다시 소리칠 것이고

마침내는 욕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 배가 비어 있다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그대 자신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상처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 장 자 (펀 글)     ▣ 리더쉽, 목회자  

 

'분류 없음 > 2007' 카테고리의 다른 글

746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  (0) 2007.06.20
745 환상의 새  (0) 2007.06.19
예술과 영감  (0) 2007.06.18
742 밭에 감춰진 보화  (0) 2007.06.16
성서 한국의 비전  (0) 2007.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