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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성의 위대함

LNCK 2007. 10. 27. 16:17

 

◈단순성의 위대함                          눅10:42

 

 

선택과 집중의 원리를 강조한 설교문,

마지막에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필요한 일은 하나뿐이다. 눅10:42

누가복음 10장에서 유명한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마 이 본문만큼 많은 오해와 잘못된 해석을 하는 성구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중세 수도원운동이 발달하는 동안

마르다는 세상일에 몰두하는 인간의 전형으로

마리아는 수도생활에 전념하는 영적 인간의 전형으로 잘못 이해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일행은 하나님나라 활동여행 중 어느 마을에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마르다는 존경하는 랍비예수를 집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마르다는 접대하는 일로 분주했습니다.

적지 않은 귀빈들이 집안에 들이닥치게 되었으니,

손발 씻는 물 떠다드리랴, 음식 준비하랴, 상차림 준비하랴

손발이 바빴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얄미울 정도로 언니를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않고

예수님의 발 곁에 앉아서 예수님 말씀을 듣는 일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던 것입니다.

 

언니 마르다가 보다 못해 선생님에게 다가와

"주님, 제 좀 언니를 도와주라고 야단 좀 쳐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참으로 묘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대답은 결코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듯이

‘마르다더러 쓸데없는 세상일로 너무 많은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나라 말씀 듣는 일에만 몰두하라’는 그런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옛날 성경번역본은 그런 오해를 일으키기 쉽게 번역되었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이 번역본을 잘못 이해하면

반찬거리 장만에 너무 걱정 말라,

많은 반찬이 없어도 혹 한 두 가지 반찬만 있어도 좋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뜻으로 오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택해 읽은 표준새번역본은 좀 더 분명하게

예수님의 말씀 의도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충고한 것은 이런 요지였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그러나 필요한 일은 하나 뿐이다. but only one thing is needed.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했다. Mary has chosen what is better

그러니 그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눅10:42

 

 

예수님은 마르다가 평소 존경했던 랍비 예수님과 그 일행을 위해

정성을 다하려는 여인으로서의 마음이나,

많은 음식을 고루 장만하려는 주부로서의 관심을 나무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사 일 다 팽개치고 말씀만 들어라는 수도원적 영성을 강조한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마르다의 마음이 평소에 많은 일로 염려하는 타입이며,

무슨 일을 당하면 차분하지 않고 들떠서,

집중력과 차분함을 잃고 분주한 사람이라는 데 있습니다. ★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단순성의 위대함을 일깨워 주시려고 타이르셨습니다.★

단순성이란 단일성과도 다르고,

더욱이 다양성을 이해 못하는 획일성과는 전혀 다른 개념인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하나뿐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은 삶에 있어서

단순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시고 일깨우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현대인들은 마르다처럼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있는" 상태입니다.

현대문명의 속성 자체가 우리들로 하여금

단순성의 위대성을 체험하지 못하도록 몰아갑니다.

 

복잡다단한 관계구조로 얽혀있는 현대적 사회생활은

하루걸러 큰일들이 터져나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매스컴을 비롯한 각종 현대문명이기들은 우리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우리의 관심을 분산시키고 들뜨게 하며, 끊임없는 욕망충동을 재생산해 냅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우리는 "단순한 것이 가장 위대한 것" 이라는 경구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단순성은 경박함이나, 사려 깊지 못함과

전혀 다른 마음의 상태라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단순함을 경멸하는 사회

우리는 종종, 우리주위에 마음은 다시 없이 좋고 악의가 없는 사람인데

행동과 판단이 다소 경박하고 속단하는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은 너무 단순한 사람"이라고 곧잘 말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그런 ‘성격적 단순함’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오늘날 사회 분위기는 ‘단순한 삶’ simple lifestyle을 경멸합니다.

CEO적 능력이 강조되면서, 여러 분야를 총괄해서 주도하는 것을

위대하게 쳐 줍니다.

 

그러나 훌륭한 CEO가 되려고 해도, 단순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 분야에 깊이 빠져들어야 하고,

그 이외 분야에는 바보스럽다고 할 만큼 무관심해야 합니다.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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