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무슨 상관이냐? 요21:18-23
*출처 : http://blog.naver.com/kco6567/120044464106
아래 설교문은, 한국인의 사회 문화 저변에 자리 잡고 있는
경쟁심과 비교의식을 지적하면서
교회도 너무 경쟁하지 말고
교인도 과도하게 서로 경쟁하지 말 것을 촉구합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아브라함과도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고 하는데요...
◑백로와 고속도로
철새 백로가 시베리아 이국에서 이 땅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 백로는 한국에 처음 오는 친구 백로를 데리고 왔습니다.
둘은 고속도로가 보이는 소나무 위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거기서 줄지어서 마구 달리는 자동차들을 보고, 처음 온 백로가 물었습니다.
‘저 길은 무어야?’
친구 백로가 대답했습니다.
‘고속도로라고 해, 빨리 달리기 위해 만들었대.’
‘왜 빨리 달려야 하지? 멀리 내다보려고?’
‘아니야, 코앞의 일이 급해서래.’
새로 온 백로는 계속 물었습니다.
‘저렇게 급히 달리다가는 부딪히기도 할 텐데?’
‘그렇지, 죽기도 해.’
‘저 길을 달리는 인간들이 생명을 걸만큼 바쁜 일들이야?’
‘아니야, 놀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어.’
‘놀러 다니는 사람은 천천히 가야지, 가는 동안에 보는 것도 구경이잖아?’
‘그렇지. 그러나 저 길에는 죽어라고 달려야 된대.’
‘바쁘지도 않아도?’
‘응, 앞 사람이 달리고, 뒷사람이 쫓아오니까 달려야 한대.’
‘그러다가 죽기도 한단 말이야?’
‘그렇다니까!’
‘알다가도 모를 게 인간들이야.’
두 마리 백로는 훨훨 하늘 높이 올라갔습니다. 아주 천..천..히..
정채봉 님이 쓴「백로와 고속도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렇게 바쁜지 그 이유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그저 정신없이 무조건 달려만 가는 오늘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고속도로 같은 교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빨리 달려야 하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한 주간 일터에서 삶의 현장에서 피곤하여 지친 상태로 교회에 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늘 교회에서 듣는 소리는
‘너무 세속적이다, 너무 영적이지 못하다,
너무 이기적이다, 너무 헌신이 없다,
너무 기도가 없다, 너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귀가 따갑게 훈계를 듣습니다. 안식이 없습니다.
‘좀 더 신앙을 가지라고, 좀 더 열심히 기도하라고,
좀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하라고, 좀 더 깊이 교회 들어와 봉사하라고,
좀 더 열심히 전도하여 교회를 부흥시키라’고 말입니다.
◑지금 문화가 ‘고속도로’
▲우리의 문화가 그렇습니다.
우리의 문화는 계속해서 우리를 향해 소리칩니다.
좀 더 좋은 이미지를 연출하라, 좀 더 적극적이 되어라,
좀 더 운동을 해라, 좀 더 뱃살을 빼라, 좀 더 S라인을 유지해라입니다.
▲우리의 문화가 교회 안에 얼마나 깊숙이 파고 들어와 있는지요?
우리가 이 세상의 가르침에 너무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고,
이 시대의 정신 속에 너무나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좀 더 많이 죄를 고백하고, 좀 더 많이 착한 일을 하고
좀 더 많이 교회에 복종하고, 순종하라는 훈계를 귀가 따갑도록 듣습니다.
우리는 실패로 인해 축 처진 상태 아니면, 기진맥진한 상태로 교회에 옵니다.
▲우리는 ‘삶’이라고 불리는 치열한 경쟁의 한 가운데서
그나마 안식을 얻으려고 교회에 옵니다.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자체는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라는 사실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기진맥진하여 있을 때 우리가 지쳐서 더 이상 달리지 못할 때,
실패와 좌절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 바로 그 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다 내게로 오라,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 이것이 복음이며 좋은 소식입니다.
◑배후에 있는 비교, 경쟁의식
▲그러면 왜 그렇게 바쁘고 피곤한가요? 원인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요. 사람이 살면서 무엇을 성취해야 하고,
목표를 달성해야 하고, 가족들 먹여 살리고 해야 하니까 부지런히 뛰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본적인 것 말고 사람을 쓸데없이 바쁘게 만드는 원인이 있습니다.
비교와 경쟁의식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런 비교와 경쟁의식이란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질문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거기에서 저 유명한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다시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사명을 맡기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주님에게 질문합니다.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21).’
▲베드로와 요한의 경쟁
베드로가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은 사람은 요한입니다.
요한의 별명이 ‘사랑하시는 그 제자, 즉 사랑 받는 제자’입니다.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20).’
베드로는 수제자이고, 요한은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란 별명이 붙은 제자이니,
경쟁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다른 관심이 없을 수 없었으리라 봅니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마지막 숨이 넘어가시면서
육신의 모친 마리아를 십자가 밑에 있던 특별히 요한에게 부탁합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당시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 사도와 요한 사도를 보며 비교를 했을 것 같습니다.
▲목회자가 비교와 경쟁의식에 빠지는 이유는
목회자 자신의 신앙이 부족하고 기도가 부족하고 영성이 부족해서도 그렇지만
사실은 성도들 때문에 그렇게 되기도 합니다.
성도들이 목회자의 설교, 목회자의 삶에 점수를 매기고
그래서 한국교회 성도들은, 설교가 더 좋은 교회,
좀 더 프로그램이 좋은 교회, 좀 더 시설이 좋은 교회들을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올 때 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22)’고 말씀하십니다.
이 얘기가 잘못 퍼져 나가
‘요한은 죽지 않는다’는 소문으로 번지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은 바로 이러했습니다.
‘내가 너에게 소명을 맡겼는데 너는 소명의 길을 가면 되고
네가 맡은 사명을 다하면 되지, 요한이나 다른 그 누구하고 비교할 필요가 없다,
너는 네 소명의 길을 가면 된다.’
베드로 사도는 AD64년에 순교 당했고,
요한 사도는 사도 중에 제일 오래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안 살아도 된다.
아브라함, 다윗, 요셉을 본 받아야 하지만, 꼭 아브라함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23).’
오늘 말씀에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 할 귀한 인생의 가르침,
삶의 가치와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은 어차피 비교와 경쟁이 있기에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많이 갖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각자가 맡은 고유한 소명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자기 사명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각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물으실까요?
‘얘야, 너는 왜 좀 더 아브라함처럼 되지 못했니?’라고 물으실까요?
하나님의 물으심은 ‘얘야, 너는 왜 좀 더 너 자신답지 못했니?’일 것입니다.
네 사명에 충실한 삶을 살지 못했느냐는 질문입니다.
▲개 교회도 각자에게 맡겨진 고유한 소명이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그 길을 걸어갈 때 서로 옆 사람(이웃 교회)과 동반자로 걸어가는 훈련을 하면서
세상에 삶의 향기를 더 널리 퍼뜨릴 때
세계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혁시킬 수 있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상극이 아니요 상생이고
갈등이 아니라 협력이며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윈윈 게임입니다.
[주제별 분류] 리더십, 목회자 http://blog.daum.net/bible3/13227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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