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지식으로 자란다. 베드로후서 3:18
◑ P씨의 유언 간증
제가 알고 있는 성도 가운데 아~영어로 표기하면 ‘P’로 시작되는 P씨,
P사장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잠시 동안 그분의 익명을 좀 사용하겠습니다.
그는 20대 초에 예수를 믿고 아주 큰 은혜를 체험 했습니다.
자기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실에 너무 감격했고,
아~, 그는 신앙생활을 기쁨으로 시작 했습니다.
기도 응답의 기적도 체험 했습니다.
아~ 이분은 수산업을 운영 했는데요,
사업이 어려울 때 마다 주 앞에 매달려 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그 특별한 간섭과 도우심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그를 가리켜 아주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라는
그런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요새말로 말하면 아주 잘 나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사업이 좀 어려워지고 흔들거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자기 사업을 구제하기 위해서
아~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사람을 만나서 타협을 시도 합니다.
아~그분과 만나서 여러 가지 대화를 하다가 문득 그분이
아~ 이 P사장에게, P씨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그래요.
‘자네 예수 믿나?’
순간적으로 이 사람의 머리 속에
‘아~저분은 아~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분이구나
내가 만약 예수 믿는다고 하면 혹시 이 결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는 순간적으로 마음이 흔들려 마음에 없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냥 교회 좀 나가본 일이 있지마는 지금은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얼떨결에 이런 대답을 해 버렸다고 그래요. 그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그래서 그는 집에 돌아와서 계속 그것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의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훗날 다시 회복하고 다시 이분은 쓰임을 받기도 했습니다마는,
그것이 늘 자기의 삶에 결정적인 오점으로, 아픔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세상을 아~떠나갈 무렵이 되었을 때,
그는 죽음을 예감하면서 친구들에게 편지 한 장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처럼 이런 신앙의 실족이 없도록,
또 자기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한 이유가 그의 삶 속에 훈련이 없었고,
일관성 있는 안정적인 신앙의 성숙을 못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습니다.
자기 신앙의 기초가 얼마나 취약했는가를 정직하게 고백하면서
자기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나처럼 신앙생활 해서는 안 된다는 편지 한 장을
쓰게 됩니다.
이 편지가 바로 본문입니다. 베드로후서 입니다.
그게 베드로후서, 사장 이름 P씨는 바로 ‘피터’ 씨, 베드로 씨 입니다.
하하~ 아~ 제가 수산업을 했다고 그랬는데 그분이 본래 어부가 아니었습니까!
하하~ 그 물위를 걸어갔으니까 기적을 일으킨 사람이죠.
녜, 자기의 삶이 흔들렸을 때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또 저주까지 했던 사람이죠.
이것이 자기마음속에 늘 평생에 후회로 남았든 것도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죽음을 예감한 베드로의 마지막 권면
▲자기 일생의 오점
자, 오늘 베드로 후서를 펼쳐놓으시고, 벧후1:10절에서 우리는
베드로가 이런 자기 일생의 어떤 오점에 관해서 잊을 수 없는,
마음속에 기억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여기서 우리가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10절을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베드로가 실족이라는 단어를 쓰죠? “실족”,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 견고한 신앙이 필요하다
그렇지 아니하면 실족할 수 있다.’ 라고 편지를 쓰면서
아마 뼈아픈 자기 자신의 실족의 경험을 반추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떠날 때가 가까웠다.
계속해서 벧후1:14절에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베드로가 지금 죽음을 예감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육체의 장막을 벗어날 때가 나에게 가까워 오고 있다.
그 다음절 15절에 보시면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내가 떠나간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
내가 이 편지를 쓴다...
그래서 베드로 후서는 베드로의 유언 같은 마지막 편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자라가라!
이 편지의 마지막에서, 마지막으로 베드로가 강조한 것이 뭔 줄 아세요?
그것이 본문인데요? 베드로후서 3장 마지막 절 18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시면,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어떻게 하라고
그랬습니까? “자라가라!”그랬어요. “자라가라” 벧후3:18
신앙의 성장이 자라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그는 여기서 부탁하고 있습니다.
일관성 있는 신앙의 성숙, 성장, 이것보다 우리의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베드로가 마지막 유언으로 이렇게 강조합니다.
▲신앙이 자라가는 데 필요한 두 가지 요소
자, 그런데 우리 신앙이 매우 일관성 있게 그리고 건강하게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우리가 잘 성장해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늘 사도 베드로는 자기 일생의 경험에 반추하여
신앙성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2가지의 요소를 강조합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벧후3:18
즉 ‘은혜와 지식’ 두개의 단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은혜에서 자라가라!
어떻게 우리의 신앙이 제대로 성장할 수가 있을까요?
첫째는 은혜, 즉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셔야 합니다.
기독교를 기독교 되게 하는 본질적 메시지가 바로 ‘은혜’라는 단어 안에
들어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독특성은 은혜
영국에서 한번 세계적인 종교학회가 열린 적이 있어요.
그래서 종교를 연구한 사람들이 모여서 여러 종교들을 서로 비교하고
포럼을 갖고 패널 토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기독교 차례가 왔을 때,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이 무엇이냐?’를 토의하게 되었습니다.
한 학자가 말하기를 아마도 그것은 ‘성육신’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이야 말로 기독교의 가장 독특성입니다.
누군가가 반론을 제시하기를
물론 성육신은 기독교 신앙의 독특한 요소들 중의 하나인 것은 사실이지만,
신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나타났다,
이런 얘기는 다른 종교의 경전에도 있다고..,
또 누군가 말하기를 아무래도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은 부활에 있지 않겠느냐?
부활신앙, 부활신앙도 기독교의 독특성이죠. 그러나 또 누군가가 말하기를,
그런데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얘기는 다른 종교의 경전에도 종종 있다고,
이때 옥스포드와 캠브리지의 신학자요 문학가였든 유명한 C. S. 루이스 교수가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그 대답은 의외로 쉽습니다.
“기독교의 독특성은 은혜입니다!”
▲구원 받는 은혜
‘은혜’ 이 말 앞에 모두가 다 동의했다는 거죠.
‘은혜’ 은혜가 뭡니까?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베풀어지는 사랑,
자격이 없는데,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데,
죄를 범한 인간,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받아 마땅한데
오히려 하나님이 그들을 받아주시고 용납하고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시면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 다음에는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자, 우리의 행동을 들고 창조주 앞에, 심판자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자기의 행위를 들고서 떳떳하게?
아무리 자기 최선의 행위도,
나의 몸부림치는 나의 의를 추구하는 행위도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고, 행위로 보면 주 앞에 설수도 없는 이 죄인들,
주님께서 받아주시고 용납하시고 용서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다.
이것이 놀라운 은혜라고 여러분 믿습니까?
은혜! 놀라우신 은혜, 어메이징 그레이스, 이것이 바로 은혜란 말이죠.
▲구원 받은 은혜 말고도, 다른 은혜가 또 필요
그런데요, 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구원 받은 것만이 은혜가 아니에요.
구원 받은 것만이 은혜가 아니고,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의 여정 속에서
지속적인 하나님의 은혜들을 우리는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 구원받을 때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만,
용서 받을 때만 이 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일생을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도 우리는 주의 은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판사 장로가 깨달은 은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국 교회에서 일어났든 일이라고 그러는데요
아~ 그 구라파 같은데 가면 여름철이 되면
그 동네에 있는 교회 중에 몇 교회가 문을 닫아요. 여름휴가 가요. 그래서
주일에 남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다같이 한 교회에 모여 예배드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제 이웃 사람들과 같이 모였는데 그날 예배는 마침 성찬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집례를 하고 어떤 목사님이, 또 성찬위원들이 있는데
성찬위원으로 그날 봉사하시는 장로님 한 분이 판사로 지내신 분입니다.
그가 성찬기를 들고 이렇게 돌다가 한 분 앞에 딱 가서 깜짝 놀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아주 유명한 그런 살인사건이 하나가 있었는데
그때 그 사건을 맡아서 이 판사였던 장로님이 처리를 하신 겁니다.
아, 그 사람이 와있네. 자기가 판결을 내렸고, 형을 살았고,
그리고 나오셨던 그분이 딱 서있으니까
아, 이분이 살인을 했던 그런 분인데,
아, 이 분이 예수 믿고 성찬식에 참여해서 성찬을 받는다,
그 얼마나 놀라운 일이에요? 그래 깜짝 놀란 거죠.
그 광경을 보고 집례 하던 목사님도 알아차렸어요. 워낙 유명했든 사건이었으니까,
그래서 예배가 끝나고 나서 목사님이 장로님 만나서
‘장로님, 참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지요?’
그랬더니 이 장로님이 의외의 얘기를 하시더래요.
그게 뭐냐 하면 ‘아, 목사님은 아마 그분이 저런 삶을 살던 분인데
이제 예수 믿고 나와서 성찬까지 참예한다 그래서 놀라셨겠죠?’
‘아, 물론이죠’
‘녜, 저도 놀랬어요. 저도 놀랐는데요,
제가 그분을 만나고 조금 있다가 성찬에 저도 참여하면서 저는 다른,
약간 다른 것을 생각했습니다.’
‘무얼 생각하셨습니까?’
‘제가 그 케이스를 잘 아는데, 사실은 그분의 입장에 제가 섰다면
저도 아마 살인을 했었을 거예요.
그런데 내가 살인자가 안 되고 이렇게 주님 섬기는 사람이 되었다
저는 생각해보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더라고요, 그것이 은혜더라고요’
이런 의외의 얘기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용서 받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만,
우리가 죄 짓지 않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축복된 삶을 날마다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 이것도 은혜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은혜
그래서 바울사도는 자기 인생이 끝나는 마지막 시점에서
그 동안 살아왔던 자기 인생을 쭉 돌이켜보면서
이런 유명한 고백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나에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전15:10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자란다.
여러분 신앙이 자란다는 것은 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아,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구나, 그 은혜를 깨달을 때,
그 은혜에 대한 감격이 없이는 신앙은 절대로 자라나지 않아요.
여러분 교회에 아무리 나와도, 교회 나오는 연수가 아무리 많아도,
여러분들이 50년을 교회 나와도 이 은혜에 대한 깨달음이 없으면,
은혜에 대한 감격이 없이는 신앙은 결코 자라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1장 6절에 보시면 바울사도가 이런 편지 기록을 남깁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네,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순간부터,
무슨 얘기에요?
‘아, 하나님 사랑이 놀랍구나, 나 같은 죄인을 받아주시고 용서해주시고
구원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다니, 참 놀랍구나!’
이 은혜를 깨달은 순간부터 열매를 맺고 내 믿음이 자라기 시작했다
이렇게 바울사도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은혜에 대한 깨달음,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
또 더욱 은혜를 사모합니다.
▲룻의 신앙비결 - 은혜간구
구약성경에 나타난 유명한 여자 룻을 생각해 보세요.
이 여인도 본래는 신앙인이 아니였는데 시집가서
아마 남편 또 시부모님을 통해서 신앙을 갖게 되었겠죠.
자, 남편은 불행히도 일찍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 따라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찾아오죠. 앞길이 막연했어요.
앞에 뭣이 기다리고 있는지 잘 몰라요.
녜, 이런 시점에서 구약성경에는 이런 참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는,
사람들을 회복시켜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런 불쌍한 친척들을 회생시켜 주는 사람을
‘기업 무를 자, 기업을 회복시켜줄 자’ 즉‘고엘’ 이라고 불렀는데요,
이것은 신약시대에 오실, 예수님에 대한, 구원자에 대한 그림자에요.
그런데 이런 앞길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 줄 모르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룻이
구속자의 역할을 할 보아스를 만나잖아요.
그때 룻이 보아스 앞에 엎드리면서, 자기 구원자 앞에 엎드리면서
이런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룻2:13
이 구원자 앞에 엎드리면서 고백하는 이 말,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이게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의 마음의 토양이라고 할 수가 있겠죠.
▲은혜를 사모하는 3요소
여러분 어떤 마음이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일까요?
한 설교가가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속에는 3가지가 있다고 그랬어요.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 이미 베풀어진 은혜에 대해서 아, 감사하구나 감사한 마음,
둘째는 의지하는 마음, 은혜를 주신 그분을 의뢰하는 마음,
셋째는 기대하는 마음, 그분을 통해서 더 큰 은혜를 받을 것을 기대하는 마음,
이것이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의 토양이다 그랬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좋아하는 한 찬송가의 가사는
이런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잘 아시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어메이징 그레이스’
이 찬송가에 보시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 고마워 놀라와,
이것은 과거에 베풀어 주신 그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껏 내가 산것도 주님의 은혜인데,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도 그분 때문임을 알고,
그분을 ‘의지’하는 마음이 나타나고 있지요?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이 찬송가에 보면 또 나를 장차 뭐에요?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녜, 내 앞길도 그분이 인도해 주실 것을 믿는다, ‘기대’가 잘 나타나요.
▲존 뉴턴이 깨달은 은혜
이 찬송가를 작사한 분이 ‘쟌 뉴턴’ 이라는 목사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분이 본래 목사님이 아니라 노예 상인 이였어요.
노예를 사고파는, 그런 노예 장사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 하다가 장사가 잘못되어서 자기가 노예가 되었습니다.
아주 기구한 운명이죠.
그래서 배에서 종노릇 하는 노예의 일을 얼마동안 했는데
그가 노예의 자리에 있었을 때,
어느 날 그 작은 신앙 책자 하나를 손에 쥐게 됩니다.
그 책자를 읽다가 큰 깨달음이 왔어요.
자기가 지금 노예 일을 하고 있지만 육체적인 노예보다 더 비참한 것은
자기가 죄악의 노예다. 죄에 얽매여 가지고 죄에 끌려 다니는 내 모습,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는 자기 자신의 죄의 사슬에 매여 있는,
자기 자신의 실존을, 자기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이 사람이 깨닫습니다.
그래 그 책을 읽다 말고 기도를 해요.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복음이 깨달아집니다.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내 결단으로 풀어버릴 수 없는 죄악의 사슬,
하나님이 그런데 예수님을 보내시고 내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시고 예수를 믿는 자 죄사함을 받는다!
이 복음이 깨달아지는 그 순간 자기 마음속엔 놀라운 자유가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그가 펜을 들어 쓴 것이 바로 이 찬송가에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든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다’
후에 그분은 전도자가 되고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잘 증거 하는 사람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은혜,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 이미 은혜를 깨달은 자,
내 인생의 앞길도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
저와 여러분이 주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지식에서 자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벧후3:18
▲잘 아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여러분? 우리가 부부 관계가 성숙한다 라고 말할 때,
부부관계가 성숙한다는 것이 무었을 뜻 할까요?
- 그것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에요.
남편이 아내를 알아가고, 아내가 남편을 깊이 알아갑니다.
알아 가면서 더 이해하게 되고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이해하고,
서로를 깊이 이해하면서 서로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저는 결혼하기 전에도 제 아내를 무척 잘 알았습니다.
언제부터 알았느냐 하면, 아내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알았습니다.
또 저와 같이 성경공부도 하고, 그러니까 제가 얼마나 잘 알았겠어요?
그래서 결혼할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뭐 우리는 이런 대로 사는 거다’
그런데 결혼 하고 신혼여행 갔다 와서 한 달 되기 전에
제가 제 아내보고 이런 얘기를 했어요. 무슨 얘기 했을 것 같아요?
제 아내를 쳐다보면서 그랬습니다. ‘당신은 알다가도 모를 여자다’ 하하~
아, 그냥 모르는 것들이 막 나타나더라고요.
제가 제 아내를 많이 몰랐더라고요. 그런데 알았다고 착각을 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너무 몰랐어요.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저는 아마도 베드로의 체험이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부르심을 받았잖아요. 수제자,
그러니까 다른 제자들 앞에서 아마 어깨에 힘을 주었을 거예요.
“야, 예수님? 내가 잘 알아 예수님은 내 말대로만 한다”
자기가 예수님을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제자들 가운데서 주님을 가장 격렬한 언어로 부인하고 저주했던 베드로
또 그가 이렇게 실족하고 타락 후에는 애써 예수님을 외면하고 피해서
도망 다녔잖아요. 예수님을 알았을까요?
베드로가 내 실수 내 상처 내 실족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든지 나를 용납해주신다. 이해하신다.
이런 예수님을 알았더라면 도망 다닐 필요가 없었는데
그걸 나중에 베드로가 나중에 깨닫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후서를 쓰면서 벧후1:2절에, 베드로의 마지막 편지 첫 부분에서
그가 어떤 단어를 애써 강조하는지를 주목해 보십시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자, 어떤 단어가 강조되지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뭐예요? 앎으로.
하나님을 알아야 돼요. 예수님 알아야 돼요.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알기에 게으르지 말아야
계속 읽어보시면 베드로후서 1:8절 또 읽어봅시다.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함이라.
나는 여러분들이 정말 열매 맺는 신앙이 되려면
예수님을 알기에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일에 게으르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부지런히 알아 가십시오.
베드로가 힘써 무슨 단어를 강조해요? 알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성경과 나의 거리는 나와 예수님 사이의 거리다.’
말씀으로, 말씀으로 예수님을 알 수가 있지요.
성경으로 예수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성경이 두껍지만 성경책 전체의 메시지의 초점이 바로 뭡니까?
요한복음 5장 39절에 보시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바로 (누구에 대하여?)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성경의 단일초점 성경의 유일한 주제 성경의 대주제 핵심 결국은 누구예요?
예수님이에요. 그러니까 성경을 알면 누구를 알아요? 예수님 알아요.
그러므로 성경이라는 것은 주님의 객관적 정보를 제시합니다.
예수님의 객관적 정보를 주어요.
그런 성경 안 읽고 어떻게 예수님을 알 수가 있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성경과 나의 거리는 나와 예수님 사이의 거리다.’
교회에 왔다 갔다 하시는 분은 예수님 몰라요. 성경공부 하셔야 되요.
이제부터 그리고 성경 읽으셔야 되요. 성경 알아야 되요.
그래야 초점이신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체험보다 더 확실한 성경
어떤 사람은 특별한 체험을 합니다. 체험으로 예수님을 알 수가 있어요.
그러나 체험이라는 것은 굉장히 주관성이 강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흔들릴 수가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체험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뭐냐? 말씀입니다.
기독교를 계시의 종교라 말합니다. 계시란 말은 이상한 계시란 말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 수가 있는 거예요.
베드로는 놀라운 체험들을 많이 했지만
체험했다고 해서 베드로가 신앙생활을 견고하게 했습니까? 아니에요.
그걸 나중에 베드로가 깨달은 거예요.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장 우리가 계속 다시 좀 읽어 보시면요,
베드로후서 1:16절부터 보시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다”
우리는 주님의 놀라운 위엄을 눈으로 목격하는 체험을 했다.
17절,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하늘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들었다.
18절,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친히 이 소리를 들었다”
여러분, 예수님의 놀라운 모습이 나타나고
그리고 예수님을 향한 하늘의 음성이 들려오는 체험.
베드로가 어디서 이런 체험을 했습니까? 변화산에서,
야고보 요한과 올라갔다가 예수님과 올라갔다가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나타나시고 변화되시고,
하늘에서 음성이 나와서 내사랑하는 아들이고 기뻐하는 자다.
얼마나 놀라운 체험했어요. 그러나 이 놀라운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절을 주목해보세요. 19절입니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 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벧후1:19
네, 내가 이런 놀라운 체험을 하고 놀라운 소리를 들었지만
19절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 이것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뭘 말해요? 성경을 얘기 합니다.
그 다음에 보시면 성경, 체험이 중요하지만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뭡니까?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흔들림 없는 말씀, 이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읽을 때
우리가 정말 주님을 알게 되는 거예요.
▲성경의 어려운 부분은 건너뛰라
그런데 우리 처음 신앙생활 하신 분들이 이 말씀이 어렵죠. 성경이 네, 어려워요.
사실 쉬운 게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
읽다가 어려운 게 나오면 그냥 지나가세요 .고민하지 말아요.
절대로 고민하지 말아요.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마세요.
이 베드로후서 전체가 뭐냐 하며는 성경 얘기를 계속하면서
베드로가 이제 1장 마지막에 성경 얘기를 하면서
성경 읽다가 해석할 때 억지로 하지 말아라, 이게 계속 강조하는 내용이에요.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3:16
여러분 어린아이들에게 딱딱한 음식 주면 소화합니까? 못해요. 그럼 어떻게 해요?
억지로 먹이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기다려요. 자라나면 딱딱한 음식도 먹게 되요.
음식을 먹다가 생선가시가 씹혀요. 어떻게 해요 그거 씹지 말아요. 그냥 뱉어요.
그냥 지나가시면 되요. 성장하면 나중에 다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너희가 이런 것들을 주의하면서,
그러나 성경에서 알 수 있는 것 이해할 수 있는 것, 그것에 은혜를 받아요.
그 말씀을 취해요. 그 말씀을 붙들어요.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사랑하시면 되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신앙이 자라갈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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