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본질’ 추구가 중요한 이유 왕상18:38~40
◑1. ‘진리, 본질’이 결국 승리하기 때문에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1대 450의 대결에서 승리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엘리야는 ‘진리’ 편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도우셔서, ‘비 진리’ 편에 서 있던
450명의 바알의 거짓 선지자들을 이기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의 ‘본질’, 성경의 ‘진리’를 추구해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에는 '진리'의 종교, '본질'적인 기독교가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결국에는 진리 편을 이기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지난 2천년 교회역사 입니다.
성경에 이런 예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도,
그가 진리의 편, 하나님의 편에 굳게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숫자가 많은 편에 섭니다.
숫자가 많은 편이, 진리요, 본질이라고 쉽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쪽이, 진리요, 본질에 가까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넓은 길’이라고 하면서,
좁고 찾는 이가 적은 ‘좁은 길’을 가라고 합니다.
12명의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그 중에 10명이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오늘날 투표로 치면, 압도적인 표차이 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대중들은, 숫자를 따라갔습니다.
그 결과 ‘40년 광야 방황’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엘리야가 450명과 대결한 것도,
숫자로 보면, 하나 마나한 싸움이었습니다.
진리와 본질은... 숫자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작은 것이 진리라는 뜻은 아님)
오늘날 대중매체는 그 속성상 ‘숫자’에 매우 민감합니다.
대중의 뜻을 대변하고, 또한 대중은 미디어가 말하는 것을 거의 다 믿습니다.
그런 매체들이 잘못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예민한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숫자에 현혹되어서, 넓은 길을 선택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 본질과 진리에는 불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본질 추구가 중요합니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왕상18:38~39
엘리야의 제단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응답했습니다.
하나님의 본질 중에 하나가 ‘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임하시는 곳에는 항상 ‘불’이 따라다닙니다.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계2:18
이스라엘의 빛이신 하나님은 불과 같으시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불꽃과 같으시다.
그런 하나님께서 하루 사이에 찔레와 가시와 같은 앗시리아 군인을 태워 없애실 것이다.
사10:17
모세가 광야에서 가시떨기의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때도, 불의 역사였습니다. 출3장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제할 때, 매번 불이 나타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매번 불의 역사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간헐적이라도 마음이 뜨거워지고, 모두의 심령이 감동되는
‘불의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불의 역사가 6개월에 한 번도 안 나타난다면,
심각하게 자기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엘리야의 제단 ‘반대편’에 서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울며, 심지어 자기 몸을 자해까지 했지만
‘불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비 진리, 비 본질’ 편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본질 편에 서 있으면,
제단에 불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불'이시므로,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곳에, '불의 역사'가 있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안 나타나도, 적어도 몇 달에 한두 번은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되면, 심각하게 자기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비 본질, 비 진리' 편에 서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귀중한 것일수록 가짜가 많습니다.
가치 있고 값나가는 것일수록 ‘위작’, ‘모조품’이 판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복음’입니다.
그래서 복음에도 ‘변질’, ‘가짜’, ‘물이 타서 흐려진 것’ 등이 많습니다.
여러분, 자동차 연료에 자꾸 물을 섞어 보십시오.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현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그만큼 복음이 가장 가치 있기 때문에, 모조품이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설교문의 설교자 미국 목사님은
‘예수 한 번 믿기만 하면 영원히 안전하다eternally secure’는 복음이야말로
가짜 복음이요, 모조품counterfeit이라고 언성을 높입니다.
(값싼 은혜, 지식적 동의의 폐해를 지적한 것, 이신칭의는 루터 이전부터 절대 진리임)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많은 미국인들이,
그런 (극단적, 잘못된, 한 면만 강조하는) 복음을 그대로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깨어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1대 450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고,
그래야 양떼들이 천국에 가기 때문이고,
그래야 제단에 불이 내리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미혹의 영으로서, 끊임없이 미혹하며, 끊임없이 거짓을 믿게 만듭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서려고’ 항상 시도합니다.
그래야 쉽게 대중을 미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정사들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보석감정사, 와인감정사가 하루아침에 쉽게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 분야에서 수 십 년 갈고 닦은 후에, 각고의 노력과 피나는 수련 후에,
비로소 전문 감정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감별해 내지 못하는 것도, 그들은 쉽게 감별해 냅니다.
오늘날 세상에 보석감정사, 와인감정사들은 많은데,
복음감정사도 많아져야 할 것입니다.
이 분야에 사명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기 사명의 ‘좁은 길’을 가야할 것입니다.
◑3. 비본질적인 것들은 다 타서 없어질 것이기에 (본질 추구가 중요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히12:29
▲불이 공력을 시험합니다.
성령의 불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닙니다.
쭉정이나 거짓 것들은, 다 태워버릴 수 있습니다.
최후에, 우리 모두는 불의 테스트를 받습니다. 고전3:13
그래서 ‘비 진리, 비 본질’적인 것들은, 모두 태워져 재로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수 년~수 십 년 사역했는데, 또는 신앙생활 했는데,
불의 심판을 지날 때, 다 타 버리고 허연 재만 남아서 바람에 흩어진다면,
그처럼 허망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라도 우리는 ‘본질, 진리’를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이 모두 절단 났듯이
‘비 본질, 비 진리’는 불이 임할 때,
그 불은 ‘심판의 불’이 되어, 모든 것을 불살라 태워서 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선교사들이 제일 허망한 일은,
5~10년 사역했으나, 자기가 떠나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일입니다.
양 떼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다시 옛날로 다 돌아가 버리는 일입니다.
돈으로 건물 짓고, 여러 이벤트로 사람들을 잠시 모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 진리’만 영원히 남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본질과 진리’를 분별하는 눈조차 가지지 못했다면... 낭패입니다.
<미국 인터넷 라디오 설교 요약 http://www.sermonaudio.com
이 설교를 오해해서 편 가르기, 남을 비방 쪽으로 가면 안 됩니다.
자기를 돌아보면서, 자기가 올바른 진리와 본질의 모델을 제시하면 되는 것입니다.
▲'등lamp'과 '기름'
마25장에 보면,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지혜있는 다섯 처녀는 등과 기름을 둘 다 함께 준비했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만 준비하고, 그 속에 기름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운명에 처했습니다.
'등'은 겉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기름은 안 보이지만)
등만 준비한 다섯 처녀는... 남들 눈에, 외적인 교회 생활은 괜찮았을런지 모릅니다.
교회에서 직분도 받을 수도 있고, 결혼식, 장례식도 교회에서 치렀을 것입니다.
계시록에 7 촛대는 7 교회라고 했습니다. 계1:20
촛대는 등lamp과 기능이 비슷합니다. 그래서 '등'은 교회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지만 '기름'은 등 속에 감춰진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본질'입니다.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입니다.
'기름'은 등불을 밝힙니다. 자기 신앙에 '불'(성령)이 있는 것입니다.
그는 성령에 의해 인도 받고, 점검 받고, 통제 받고, 살아갑니다.
등만 있고, 속에 기름이 없는 것은... 본질적인 기독교가 아닙니다.
본질적 기독교는, 등이 있지만, 그 속에 반드시 기름도 있습니다.
[주제별 분류] 제자 양육 http://blog.daum.net/bible3/13925087
'분류 없음 > 2008'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공 같은 실패 / 中文 (0) | 2008.02.01 |
---|---|
1097 사욕 없는 신앙이.. 사탄을 물리친다 (0) | 2008.02.01 |
1094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려면 (0) | 2008.01.30 |
1088 쉬면서 자기 성찰의 시간이 필요함 (0) | 2008.01.26 |
1087 내면으로부터 변화 Max Lucado (0) | 2008.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