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이 안고 있는 문제 눅15:31~32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눅15:31~32
교회에서도, 모범생 신자가 있다.
나 또한 언제나 모범생으로 살아왔기에
탕자 이야기는 나에게 별로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그런데 ‘교회 모범생’에게도 슬그머니 의심이 생길 때가 있는데...
나는 주님께서 부르실 때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하고 따랐고
성직자의 길, 수도자의 길을 따랐고
공부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나름대로 예수님의 제자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나보다 충실한 모범생이 아니라고 자타가 공인할 수 있는 사람이
나보다 더 큰 주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을 보게 되면
크게 기뻐해야 할 터인데
실제로는 기쁨보다는 허탈감이 더할 때도 있단 말이다.
가끔 교우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평생 열심히 주님을 섬겨왔는데
나에게는 왜 이리도 복이 없냐고...
하나님도 너무 하시는 게 아니냐고...
그렇게 열심히 주님을 섬기지 않은 듯이 보이는 사람들은
잘 먹고 잘사는 것 같고
자식들도 잘되는 것 같고
장수와 부를 누리는 듯이 보이는데,
나는 뭐하나 잘 되는 것이 없고,
남들로부터 인정과 칭찬도 못 받는 것 같고
자식들도 그렇고
부부사이도 그렇고
이제 몹쓸 병마저 들어서...
참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될 때도 많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섬기는 충실도에 따라
세상 복도 그렇게 공평하게 내려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바로 충실한 모범생들이 안고 있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사실 충실한 모범생들은
이미 하나님의 것이 유산으로 상속되어 있기에
그 누구보다도 큰 축복을 따 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눅15:31
그것보다는 자그만한 현실적 축복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불공평하시지 않다.
그분은 사실 더 큰 축복을 미리 약속해 두고 계시기에
현실적인 축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모범생 ‘큰 아들’처럼 불평불만을 하게 된다.
나는 이미 받을 복을 다 받았다.
그분께서는 나에게 최고의 유산을 남겨주셨다.
더 이상 욕심낼게 무엇 있으랴?
아직 그 놀라운 유산을 상속받지 못한 사람(불신자)이
현세의 작은 복을 누리는 것마저 시기 질투한다면
나는 너무도 욕심쟁이가 아닌가 말이다.
지금
나는 모범생인데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하리라.
현실화되지 않은
미래의 그 엄청난 축복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늘 현세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우리가 모범생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현세의 축복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단지 현세의 축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예배당에 나갈 필요도 이유도 없으며
세속적인 가치와 명예를 추구하는 데만 전념해야 할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은
현실을 살되
보장된 미래를 유산으로 갖고 살아간다.
바로 천상본향, 하나님 나라가 내 것이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눅15:31
더 이상 뭘 바라리... <신부님 글에서 발췌
*원래 탕자의 비유의 주제는 눅 15장의 서두에 잘 나와 있습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눅15:1~3
그러니까 세리와 창기 같은 사람(탕자)을 차별하지 말고 품으라는 주제입니다.
그렇지만 각론으로 위의 글처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주제와 각론을 눈여겨 보시라고...
▲천국 목적을 품어야 할 터인데...
언젠가 들었던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느 시골 교회에서, 평소에 사람들도 많이 모이지 않고,
주로 할머니들만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어느 날 대여섯 분의 할머니들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면서
목사님은 정성껏 준비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할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설교를 듣는 게 아니겠습니까.
목사님은 반갑고 놀라웠습니다.
‘이제야 신자들이 내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는구나’ 생각하고선 예배가 끝나자마자
내심으로 설교에 대한 칭찬을 듣고자 문밖에 서서 인사를 하는 척하며
그 할머니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그 할머니가 나와 목사님의 두 손을 붙잡고 말씀하길
“목사님, 오늘 설교하시는 목사님 턱 밑에 난 수염을 보고 있자니
엊그제 집 나간 우리 집 염소 생각이 나서 눈물이 다 나왔어요.
우리 염소가 얼른 돌아오도록 기도 좀 해주세요!” 하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내 걱정과 근심 때문에
꼭 들어야 할 말씀과 보아야 할 빛(신앙의 본질)을 외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07.02.13. 펀글
[주제별 분류] 물질과 성공 http://blog.daum.net/bible3/1410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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