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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8

1149 십자가는 감동해야 진다

LNCK 2008. 3. 4. 10:20
 

◈십자가는 감동해야 진다               눅14:26~27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14:26~27

 

십자가에는 두 국면이 있습니다.

 

1국면은 <주님이 지신 대속의 십자가>

2국면은 <신자가 져야할 사명의 십자가>입니다.

*관련 글 보기 → http://blog.daum.net/bible3/7970449


성경에도 안 나오는 ‘두 국면’이란 용어를 도입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1국면(예수님 십자가로 내가 구원 받아서 감사하다)만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정적인 표현을 빌려 설명한다면 ‘단물만 쏙 뽑아먹고 버리는’ 식입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고맙고 감사한데,

어떻게 내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이 글의 요지는, <1국면과 2국면의 연결고리>입니다.

어쩌면 이질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십자가의 1국면과 2국면을

어떻게 부드럽게 기어변속을 해 나갈 것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국면과 2국면의 연결고리 - 감동


말은 쉽지만, 누가 예수님처럼, 고난과 수치의 십자가를 지고 가려고 하겠습니까!

가급적 우리 기도는,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주소서!’입니다.


그러나 천국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가장 비천한 죄인으로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 깊이 감동받은 사람은

주저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누가 효도합니까?

부모의 희생적 사랑에 깊이 감명받은 자녀입니다.

그들은 부모의 노후에, 희생적으로 부모를 돌봅니다. 감동의 전이 입니다.



▲감동적인 전도

한 명 건너서 들은 이야기라서, 일시와 장소를 정확히 밝힐 수 없지만

약 2~30년 전 이야깁니다.


어떤 남자 집사님이 사업을 하면서, 만나는 거래처 사람들을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한 거래처의 남자는, 아무리 전도를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남자는, 집사님이 찾아와서 늘 자기에게 전도하는 것이 정말 귀찮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홧김에, 이 집사님의 전도를 관두게 할 비책이 떠올랐습니다.


그 남자는 감기로 인해 걸걸한 목의 가래 침을 앞에 있던 양동이에 홱 뱉었습니다.

“당신이 이 가래 침을 마실 수 있으면, 어디 한 번 내가 예수 믿어보지!”

그것은 내게 다시는 귀찮게 전도할 생각하지 말라는 엄포였습니다.

 

잠시 몇 초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성령의 은혜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전도하는 집사님께 흘렀습니다.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를 참으셨는데, 내가 못할 일이 뭐가 있으랴!'

집사님은 그 양동이에 떠 있는 가래침을 손으로 떠서 자기 입에 넣고 삼켰습니다.


‘내 영혼의 구원이 얼마나 중요하길래...’


그 다음부터 이 거래처 남자는, 그 집사님의 ‘일평생 제자’가 되었습니다.

가장 복음을 거부하던 남자가, 가장 복음 전파에 앞장서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이 간증은, 그렇게 예수 믿게 된 남자의 간증입니다.(집사님의 간증이 아닙니다.)

자기가 그렇게 예수를 믿게 되었노라고, 이 남자는 가는 곳마다 간증하며 다녔습니다.

핵심은 감동에 있다는 것입니다.  



▲감동은 오늘도 계속 된다

#1148, 감동을 주는 지도자 http://blog.daum.net/rfcdrfcd/14110813 에서

*가가와 도요히코에 감동을 준 나가노 목사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미국의 평신도 휴잇 선교사가 한국 대학생에게 준 감동을 소개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해외 오지에 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깊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서, 죄 없는 주님이 고초를 당하셨다는 감동 말입니다!

 

내가 어떻게 그 무겁고 어려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에서 대속의 단물을 빨아먹기는 달콤하지만, (1국면)

어떻게 내가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다는 것입니까?(2국면)


바로 감동에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깊이 감동받은 사람은

2단(2국면)으로 기어를 변속하는 것입니다. 부드럽고 자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누가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자원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릅니다.



▲십자가의 능력

오늘도 십자가를 지는 제자들이 있는 곳에... 거기에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 믿어 세상 복을 많이 받는 것은 좋지만... 거기엔 아무 능력과 감동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곳에...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눈물 후에 오는 기쁨입니다.

 

오늘도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크게 감동받아

묵묵히 자원해서 자기자리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면,

많은 세상 사람들이 그를 보고 감동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주님을 믿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대열에 자원해서 합류할 것입니다.


뒤집어 말한다면,

아직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아직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에 깊이 감동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저 그것을 지식적으로 알고 있을 뿐입니다. 아직 은혜는 못 받은 것입니다.

(이런 분은 더 겸손히, 꾸준히 신앙생활 하시면서, 그 은혜를 사모하며 기다립시다.)

 

오늘 내 삶과 우리 공동체가 사회에 감동을 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희생의 십자가'를 질 때 생깁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의 복음'에서 '십자가의 복음'으로 지금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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