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NE5nP3xm_8o
◈죄의 결과 민14:26~45 출처 A Word of Warning to the Saints
consequence of sin
론 솔로몬 Lon Solomon
민수기는 시내 산에서 출발해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의 약 39년간 기록입니다.
그 많고 많은 사건들 중에, 오직 13사건만 민수기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왜 13개만 특별히 골라내서 기록했을까요?
바울은 그 이유를 <우리의 교훈을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고전10:11
이 시간 민수기 14장에서 <우리를 위한 교훈>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여기서 그 교훈이란 <죄의 결과 consequence of sin>에 대한 경고입니다.
◑용서를 받아도, <죄의 결과>가 남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죄의 결과>에 대해 너무 느긋한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10정탐꾼들의 부정적 보고를 듣고 나서,
‘우리가 그 땅에 들어가지 아니하리라’고 버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매우 진노하셨습니다. 신1:34 참조
'이 백성이 언제까지 나를 경멸할 것이냐? 언제까지 나를 믿지 않을 것이냐?
내가 이들에게 끔찍한 병을 내려서 이들을 없애 버리겠다.
그러나 너를 통하여 이들보다 크고 센 나라를 이룰 것이다.' 민14:11f
그러자 모세는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뭐가 되겠습니까?’ 며 주님을 설득합니다.
늘 하듯이 '이 백성을 용서해 달라고' 탄원합니다.
▲용서를 해 주셨지만 <죄의 결과>가 여전히 남습니다.
모세에게 설득 당하신 하나님은, 10정탐꾼의 부정적 보고로 야기된
전체 백성들의 불신과 원망에 대한 진노를 누그러뜨리시고,
그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모세: ... "지금까지 용서해 주셨던 것처럼, 이제도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 "네가 간구한 대로 그들을 용서해 주겠다." 민14:19f
그러나 죄의 결과consequence of sin는 여전히 백성들이 지고 가야 했습니다.
-나를 노하게 한 사람은 그 누구도 그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다. 14:22f, 30
-인구조사 때 20살 이상인 사람은 광야에서 죽을 것이다. 14:29
-너희는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할 것이며, 너희 죄 때문에 40년간 고통을 당할 것이다. :33
▲용서를 해 주셨는데도 <죄의 결과>를 면제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백성들은, 하나님의 엄중하신 진노를 듣고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아침,
백성들은 자기들이 죄를 지은 것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14:40
'우리가 가나안에 올라갈게요!'
그리고 이렇게 뒷 북치며 산으로 올라갔는데,
그들은, 워낙 하나님이 자비하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신지라,
이번에도 회개하고 자세를 낮추면... 하나님이 다 면제해 주시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앞서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에도, 용서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돌이키셔서, 그들을 ‘죄의 결과’에서 면제시켜 주셨습니다. 출32:14
그래서 백성들은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시겠지!’를 기대하면서 나아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시겠지!’ 하며 쉽게 기대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러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의하면 그렇게 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은...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대적에게 패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기대와 다르게 반응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안 도와 줄 터이니, 아예 진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긍정적 기대’만으로 채워진 백성들은 끝까지 진행했습니다. 14:44
그러자 이방족속들이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가로막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그들을 막으시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못 올라가도록.
이 대목에서 그룹 천사와 화염검으로 에덴 동산을 지키셨던 장면이 연상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백성에게 올라가지 말고, 싸우지도 말라고 일러라.
나는 저들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저들의 원수가 저들을 싸워 이길 것이다. 민14:41f=신1:42
신1:44절에는, 산지에 사는 아모리 사람들이 벌 떼처럼 뒤쫓아 왔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벌 떼를 피하는 것처럼 저들 앞에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회색 구름 같이 따라오는 벌 떼에게 쫓기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나는 보았다. 벌떼에게 쫓기는 사람은 전력질주해서 달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혼비백산 도망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서 그들은 자기 죄를 뉘우쳤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비했습니다. 14:40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을 용서해 주셨지만, 민14:19f
그들을 <죄의 결과>까지도 면제해 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민14:33f
그 결과, 그들은 계속 행진했지만... 적에게 패해서 혼비백산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민14:45
▲패한 후에 돌이켜 회개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여러분은 (패한 후에) 돌아와서 여호와께 부르짖었소.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여러분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지 않으셨소.
여호와께서는 여러분의 말을 듣지 않으셨소.
그래서 여러분은 오랫동안 가데스에 머물렀소.' 신1:45f
◑<죄의 결과>가 없을 수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방송설교가들은 주로 <죄의 결과가 없다>고 설교하지만, 성경을 균형 있게 읽어야 합니다.
<죄의 결과>는 회개한다고 언제나 면제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 없을 수도 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민수기의 광야 백성들은... 있었습니다. <죄의 용서>는 받았지만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이 기록된 것은 종말을 사는 우리에게 경고를 주기 위함이요.' 고전10:11
여기서 바울이 말한 ‘경고warning’가 과연 뭘까요?
나 론 솔로몬은 <죄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고전10장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구름기둥 아래 있었고, 홍해를 건넜고,
영적인 음식 만나를 먹었고, 영적인 물을 마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조상들 대부분을 기뻐하지 않으셔서, 그들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고전10:1~5
그들 대부분이 누구인가, 갈렙, 여호수아, 20세 미만을 제외한
그러니까 2백만(추산) 인구 중에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죄의 결과>로 인해... 가나안에 못 들어가고, 광야에서 죽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바울의 말처럼,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우리가 회개를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지만
<죄의 결과>를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통은, 무한하신 자비로, 우리에게 <작은 결과>를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쓴맛을 본 이후로,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계속 반역하다가는...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큰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죄를 짓고, <죄의 결과>를 거의 면제받은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한 죄는... <죄의 결과>를 면제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 부인한 죄도... <죄의 결과>를 면제받았습니다.
그 죄로 인해, 이후로 크게 괴로움을 당한 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처음에 삼손이 몇 차례 연속적으로 범죄한 것은... 면제받았습니다.(마지막 빼고)
-다윗도 사울에게 쫓길 때, 몇 차례 잘못하고 실수한 것은... 면제받았습니다.(밧세바 빼고)
-가장 가까운 예로, 여러분과 내가,
얼마나 많이 죄를 짓고도, <죄의 결과>로부터 하나님이 우리를 면제해 주셨는가요!
만약 주님이 그것을 면제해 주시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벌써 절단 났을 것입니다.
나도 그런 경우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무한 자비로우십니다.
▲그러나 성경에, 하나님이 <죄의 결과>를 100% 면제해 주신다는 기록은 - 아무데도 없습니다.
성경은 ‘죄의 결과’를 가르치고 경고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고, 우리 죄를 회개하더라도
위에서 살펴본 민수기 14장의 백성들처럼
<죄의 결과>를 면제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처절하게 감당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여기서 혹자는 요일1:9, 만약 우리가 우리 죄를 자복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신다로 반박할 것입니다.
아멘, 맞습니다. 그것은 <죄>로 하나님과 나의 벌어진 관계에서 ‘용서’를 뜻합니다.
<죄의 결과>로부터 완전한 면제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베드로와 아브라함의 예처럼, 때로는 하나님이 <죄의 결과>까지도 면제해 주시지만,
민수기 14장의 백성들처럼, 때로는 하나님은 <죄의 결과>를 그들로 담당하게 하십니다.
-삼손이 들릴라와의 관계에서 지은 죄의 결과는... <면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삼손은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며 재주를 부려야 했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관계에서 지은 죄의 결과는... <면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사이에 생긴 아들이 죽었고, ‘그 집에서 칼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예언대로 자녀들은 서로 죽였으며, 압살롬은 반역하기까지 했습니다.
여러분, 다윗도 금식했고, 다윗도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그 <죄>의 용서는 받았지만, 삼하12:13
<죄의 결과>는 면제받지 못했습니다.
회개를 안 하면, 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망했고, 예레미야 선지자 때 바벨론에게 망했습니다.
그러나 회개를 하더라도, 죄는 용서 받지만,
죄의 결과는 자기가 짊어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죄의 결과>를 정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저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 부르짖지 말라! 네 기도를 듣지 않겠다. 렘7:16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서서 부탁한다 하더라도 나는 이 백성을 불쌍히 여기지 않겠다. 렘15:1
(그런데 또 이렇게 멸망이 작정되었다가도,
그래도 하나님이 다시 뜻을 돌이키실 때도 있습니다. 아합도 그랬고, 니느웨도 그랬습니다.
이렇게 심판이 작정되었다고, 그럼 “제가 다 받겠습니다!”고 버티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힘써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혹시 후에라도 뜻을 돌이키시도록...)
모세에게도, 그가 반석을 두 번 내리쳤을 때, 하나님은 단호하셨습니다.
‘너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자 모세는 기도하고, 울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로 더 이상 내게 말하지 말라!” (그 문제는 끝났다!) 신3:26
◑성경의 균형을 유지하라!
하나님은 우리 <죄>를, 어떠한 죄도 회개할 때는 다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죄의 결과>는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기 전에는, 항상 <죄의 결과>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그것은 보통의 경우,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는 더 크고 엄청난 결과입니다.
“론 목사, 당신 지금 이 설교로 우리를 겁주는 것이요?”
“예, 겁주는 것 맞습니다. 우리는 겁을 느껴야 합니다!
왜냐면 오늘날 신자들이, 죄를 짓는 것을, <죄의 결과>를 겁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 갖기
그래서 <죄의 결과>를 몇 번 맛본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를 갖게 됩니다.
나도 ‘까딱 잘못하면 하나님이 나를 죽이실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늘 갖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런 건강한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 두려운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물론 쓴 맛을 몇 번 안 보고도, 그 마음을 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인내심이 다 하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웬만큼 죄를 지어도,
하나님의 자비가 커서 그런지, 아니면 하나님이 버리셨는지,
당최 ‘큰 일’이 즉시로 일어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죄는 그 순간에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한 번 봇물처럼 터지면... 그 때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난 아무 일 없어!’ 하며 으스댈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불순종을 참고 참으시다가, 인내심이 한계점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40년을 정하시고, 회개해도 <죄의 결과>는 면제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때가 지나면, 회개해도 별로 소용없습니다. <죄의 결과>는 자기가 당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몰래 짓고 있는 죄가, 아직은 별 탈 없을 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쌓이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님의 인내심이 다하는 날>이 있습니다. 그 날이 되기 전에 돌이켜야 합니다.
회개하고 돌이켜도 <죄의 결과>는 남을 수도 있습니다. 안 남기를 바라지만..,
그러니까 죄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취팅, 비방, 성적인 죄, 인터넷 포르노, 분노심, 복수심... 그 무엇이든지
그것을 계속 쌓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오늘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그 진노가 폭발하는 날이 반드시 있습니다.
(아마 모든 사람에게 언젠가는 적어도 한 번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생에 있는 것이 다행이다. 없으면 확실히 지옥 간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로, 거기서 당장 빠져나오시기 바랍니다.
▲마치는 말
오늘 설교는 전하기도 어렵고, 듣기도 어렵지만
우리 영혼에는 양약이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만 강조하지 말고, 적절한 성경적 균형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죄의 결과>는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처음엔 다시 죄짓지 말라고, 경고용으로 <죄의 결과>를 주시기도 하지만, (대개)
나중에는 정말 자기 생애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죄의 결과>를 주시기도 하십니다.
이래저래 <죄의 결과>는 우리 삶에 종종 나타납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더라도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산타클로스 정도로
또는 동화책처럼, 흰 수염 기른 맘씨 좋은 할아버지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주의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의 사랑, 자비, 용서, 은혜, 인내는... 진실이지만..,
하나님의 의로우심, 거룩하심과... 균형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할진저! 히10:31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시103:10
<08.04.20. Lon Solomon 목사님 설교 대강
..................................................
▲1. 징계는 처벌(형벌)과 다릅니다 -이 단락 출처: 은혜의 균형
크리스천은 형벌은 면제받았습니다.
형벌은,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의 표현입니다. 다른 말로 처벌입니다. punishment
징계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표현입니다. 다른 말로 연단입니다. discipline
(연단, 잘못을 교정해서 새사람 되도록 갈고 단련시킨다는 뜻)
처벌은 잘못에 대한 앙갚음이지만, 징계는 잘못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처벌은 관계상 결과가 소외지만, 징계는 결과가 화해입니다.
처벌의 개인적 결과는 죄책이지만, 징계는 의로움의 회복입니다.
처벌의 대상은 비신자지만, 징계의 대상은 신자입니다.
크리스천에게는, 죄에 대한 처벌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면제받지만,
불순종에 대한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우리에게 계속 주어집니다.
우리는 이왕이면 징계 받지 않고, 사랑받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은혜를 회복하려면
▲죄의 심각성, 예방책, 처방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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