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자 예수 그리스도 여호수아12:1~24
여호수아서에 -여호수아를 통해- 예표되고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는
<정복자,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영적 전쟁의 백전백승
▲믿음으로 승리한 영웅들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모든 전쟁은
주께서 함께 하신 전쟁이며
주께서 앞서 나가서 싸우셨다.
그래서 가나안의 31 성읍을 모조리 정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다.
아이 성의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여호수아는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다.
(아이 성도 결국에는 승리했다.)
이는 여호수아가 ‘불패의 명장’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승리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은 주께 속해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흑암의 세력에 대한 정복자이며, 승리자이시다.
마귀의 세력에 결코 패배하지 않으신다.
다윗도 마찬가지였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삼상17:47
여호수아, 다윗 등
누구든지 이 사실을 굳게 믿은 자들은, (영적)전쟁터에 나가서 결코 패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정복자요, 승리자임을 믿는 성도들은
주님께서 이미 승리하셨고, 또한 최후에 승리하실 것임을 굳게 믿는 성도들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패배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핍박, 환란이 없는 것은 아님. 핍박, 환란을 당하지만 승리함)
▲주님 편에 설 때, 반드시 이긴다.
누구든지 여호수아, 다윗처럼
<주님이 이 영적 전쟁에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때에
불패의 장군이 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왕들 중에서도, 이 사실을 믿은 아사, 여호사밧, 히스기아 왕들은
그들의 전력이 약하든/ 강하든
강력한 무기가 있든/ 없든
적군의 수효나 군비가 많든/ 적든
그런 외적 환경에 상관치 않고, 언제나 전쟁에 승리자가 되었다.
▲여호사밧의 믿음의 기도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대적할 힘이 우리에게 없사오니 (냉정한 현실이다.)
우리가 어떻게 할 줄도 모르며, 우리 눈이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대하 20:12
그 때 주님께서 응답하셨다.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대하20:15
결국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전쟁에서 대승했다.
여러분, 스포츠 경기를 할 때도, 꼭 실력이 월등한 팀이 이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운이 따라야 한다, 운이 따랐다’고 말들을 한다.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시는 것을... 안 믿는 사람들은 ‘운이 따랐다’고 말한다.
◑오늘날 나의 승리
주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다 정복하게 하신 것처럼
주님은 오늘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계속 이루어가게 하신다.
▲모든 성도들은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한다.
자기가 의로운 길을 가고 있고, 주님의 사명의 길을 갈 때에
마귀가 나타나 방해하고, 겁주고, 훼방하지만,
우리 주님은 마귀와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시는 분이시라는 확신이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시24:8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편에 서기만 하면,
아무리 내 환경이 열악하고,
내가 처한 현실이, 억누르는 적군에 비해 미약하더라도
승리는 반드시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써서 초대교회 성도들을 격려하려고 했던 내용도
‘최후 승리가 반드시 있으니, 믿음을 지키며 인내하라’였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
주님이 세상을 이미 이겼으니까,
우리가 하는 일은... 남은 잔당들을 토벌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은... ‘전쟁’이 아니라 ‘토벌’이다.
너희가 잘 싸워서, 전쟁을 잘 해서 이겼다는 뜻이 아니다.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계신 이보다 더 크시기 때문에 이겼다는 뜻이다.
고전15:57, 고후2:14, 요일4:4절을 참조하시라.
그러므로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믿고 도전하는 것>이다.
▲승리를 줘도 못 가진 사람들 : 출애굽 1세대
정탐꾼이 보고하기를 ‘거인들이 너무 크더라’는 것이다.
‘여리고 성벽이 너무 높고 견고해서 힘들겠다’는 것이다.
그런 보고를 듣고, 백성들도 마음이 물처럼 녹아났다고 했다.
그러나 갈렙, 여호수아는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외쳤다.
전쟁은 이미 이기기로 예정되어 있으니까,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셨으니까,
그냥 밀고 나아가면 이기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의 차이>였다.
▲이 세상을 ‘밥’으로 보는 사람들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성도를 대적하는 이 세상과 마귀를... ‘밥’으로 본다.
이미 끝난 전쟁으로 보고, 남은 잔당들을 토벌하는 마음으로 싸운다.
(그래도 ‘우는 사자’들을 보고 겁을 내지 않는 담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요즘 전선戰線이 바뀌었다.
▲‘경제의 여리고 성’이 압박해 온다.
요즘 크리스천들은 죄, 마귀, 육신의 정욕 등과 더 이상 싸우지 않으려 한다.(잘못임)
대신에 불경기, 치솟는 물가, 불황 이런 것들과 싸운다.
그런 것들이, 죄, 마귀, 육신의 정욕들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진다.
정리해고, 줄어드는 수입... 이런 것들을 마귀보다 더 무섭게 인식한다.
어떤 지면에 실린 어느 미주 목사님의 기도가
“주여, 기름 값을 낮추어 주옵소서!”였다.
기름 값이 점점 올라가니, 멀리 사는 성도가 부담되어 교회에 못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경제적 불안에서 승리하는 길
주님께서 세상에서 승리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주님께서 또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분임을 믿고
‘말씀을 통해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자기 마음 판에 분명히 새기고
<세상이 어떻게 (더 험하게) 변한다 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이다.
어려워지면... 더 허리 띠 졸라매면 되고,
기름 값 올라가면... 자전거 탈 각오하면 되고,
<그 어떤 외적 환경이 나를 결코 주눅 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아래 관련글 '없는 은혜' 참조 요.)
물가가 올라가면, 좀 덜 입고, 좀 덜 먹으면 된다.
‘심플 라이프’가 경건에 좋다는데, 그대로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으로,
오히려 환경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면 된다. (물론 극복의 노력을 하면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핍박을 인내로 견디어 내었듯이
오늘날 성도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어 내면 된다.
인내로써 승리하면 된다.
▲불황에 결코 주눅 들지 않는다.
지금 유류비가 올라서, 운송업을 하시는 분들이 파업을 불사하고 있다.
다른 여러 직종들도, 유류비 인상으로 직/간접적으로 타격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말씀해 주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라고!
이것은 우리의 경제적 필요를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경제에 노예가 되어서 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참 자유와 참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경제의 풍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이다.
경제적 풍부는... 있으면 좋고, 좀 더 편리하겠지만,
그것이 사람을 결코 자유,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성도는 있으면 있는 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불경기에 없으면 없는 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래서 참 성도는, 기름값이 올라가든지/떨어지든지... 크게 개의치 않는다.
손님이 많아지든지/작아지든지... 남들은 죽을 맛이지만, 성도는 인상 펴며 산다.
왜냐하면, 성도는 세상에 대해 이미 승리했기 때문이다.
성도는, 세상 물질을 정복할 지언정, 물질에 정복당해서 주눅들고,
죽을 지경이라며 인상 쓰고 살지 않는다. 항상 자족하는 마음으로 산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딤전6:6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원제목 : '여호수아 서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중 부분 발췌,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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