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17:11~19 설교스크랩
▲본문 정황 간략 설명 ; 1명만 감사
본문에 예수님은 10명의 문둥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말했을 때, 이들은 아직 병이 낫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안수한 것도 아니고, 안찰한 것도 아니고,
아직 깨끗하게 바뀐 것도 아닙니다. 그저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말을 듣고 제사장에게 갑니다. 이것을 보면,
이들에게는 이 만큼의 믿음이 있었고, 그에 따른 순종이 있었습니다.
제사장에게 보이려고 가는 길에서 그들은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사마리아 사람 하나는 길을 돌려서,
예수님께로 와서 발 앞에 꿇어 엎드리고 사례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9명의 문등병자들은 각각 어디론가 가 버렸습니다.
◑그 아홉의 변명
예수님은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섭섭해 하셨다는 것입니다.
9명은 어디가고, 왜 1명만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드렸을까요?
『그 아홉의 변명』이라는 작자 미상의 글이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볼만합니다.
이들의 변명의 내용은 우리가 감사하지 않는 이유와 많이 흡사합니다.
①첫 번째 사람은 「의사와 제사장에게 가서 정밀 검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정밀 검사를 위해 서둘러 갔다는 것입니다..
'나은 것 같기는 한데 정말 나았는지..' 아주 「의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가서 정밀 검사를 해야지..' 그래서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②둘째는,「혹시 재발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며칠 두고 봐야겠다..」
고 생각해서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문둥병자는 「신중론자」입니다.
나았다고 하는데 꿈같은 얘기라서 정말 나았는지 좀 기다려 봐야겠다는 것입니다.
③셋째는「내 병은 본래 문둥병이 아닌, 좀 특이한 피부병 정도였을거야」
라고 생각하고는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문등병자는 「회의론자」입니다.
④넷째는「내 병은 나을 때가 돼서 나았을 거야..」 라서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자연 현상」으로 보려고 합니다.
가만히 보면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병에 걸렸다가 나았을 때, 어떻게 나았냐고 물으면,
"그저 뭐, 약도 좀 쓰고 병원에도 가긴 했지만, 나을 때가 되어서 나았어."
라고 대답합니다. 뒤에서 열심히 기도했던 사람들을 무안하게 만드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⑤다섯째는,「병 걸리기 전에 가졌던 밭과 재산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이게 궁금했습니다.. 이제는 「먹고 살아야」하니까..
그래서 그 상황을 빨리 알아보기 위해서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⑥여섯 번째 사람은, 병 걸리기 전에 같이 있었던 가정과 식구들,
특별히 「아내가 수절하고 있는지」 그게 궁금해서. 그래서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⑦일곱 번째 사람은, 「예수님께서 특별히 해 준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는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해준 것이 없잖은가?
예수님이 친히 상처 위에다 손을 얹고 안수를 해줬는가?
아니면 어루 만져주길 했는가? 그렇다고 안찰을 해 줬는가? 약을 준 것도 아니고,
단지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라는 한 말 밖에 한 것이 없잖은가?'
이 사람은 「예수님이 별로 해준것도 없는데」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⑧여덟 번째는, 「다른 유명한 랍비들도 이런 것은 아마 가능할는지 모른다」
라는 생각을 하고는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능력을 「상대화」 해버렸습니다.
⑨아홉 번째 사람은, 「이 모습으로 갈 수는 없잖아.
가서 목욕을 하고 새 옷을 입고 예물을 가지고 그리고 예수님께 가야지.」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자세
그러므로 위의 예를 통해서, 어떤 감사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1. 있는 모습 그대로..
아홉 사람이 모두 이렇게 감사하지 않고 있을 때,
문둥병자였다가 깨끗해진 사마리아 사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 사람은 「이 모습 이대로」주님께 나아왔습니다. 이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는 문둥병자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이 더러워진 옷, 이 붕대를 감고 있는 내 모습,
이 모습 이대로 난 먼저 그분께 감사를 드려야겠다. 내 모습이 더러우면 어떤가?
예수님은 벌써 우리를 환영해 주셨지 않았는가?
이미 사랑해 주셨는데 내 모습이 추한들 어떻단 말인가?」
이 사마리아 사람은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께 사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최우선적으로..
이 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우선 감사했습니다.」 「최우선적으로 감사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의무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의무적인 것은 감사가 아닙니다.
그는 은혜에 감사해서 「자발적으로 자원적으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그 추한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나와서
「감사의 사례」를 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3. 즉각적으로..
사람들이 왜 감사하지 못합니까? 어쩌면 사람들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왜 이렇게 감사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입니까?
은혜를 받은 즉시, 감사하지 않으면 감사할 수 없게 됩니다.
하루만 지나도, 몇 시간만 지나도 생각이 바뀝니다.
오늘 이 아홉 사람의 변명처럼 말입니다.
감사 못할 이야기들이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결국은 못하게 되어버리고 맙니다.
바로 이 시간 감사하지 않으면.. 영영 못합니다.
1980년 아웅산 묘역 폭탄테러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4. 언제나 감사
여러분은 「방귀」가 나온 것 때문에 감사해 본 적이 있습니까?
수술을 받아 본 사람은 잘 알 것입니다.
수술 받은 다음에 의사와 환자가 같이 기다리는 것이 있습니다.
가스가 나오는 겁니다. 이게 만일 안 나오면 재수술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서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가스가 나오면 아, 살았다고,
서로 고맙다고 전화를 겁니다. 가스가 뭡니까? 방귀입니다.
우리는 늘 방귀를 뀌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을 겁니다.
이 시간에는 이게 기쁜 소식입니다, 환난과 고통, 역경,
그것이 사람의 생각을 깊게 만들고 깨달음을 만듭니다.
우리는 언제나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가 있을 때, 행복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는「형통하고 평안할 때」에도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가장 절박한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에도
그동안 평안함으로 인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감사의 제목들을 찾아내서
더 깊이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잘되고 평안한데서 감사가 우러나오는 줄 알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어려운 형편에서 깊은 깨달음과 함께 감사하게 됩니다.
깨달음이 없이는 감사가 없습니다. 고통이 없이는 깨달음이 없습니다.
깨달음의 깊은 세계에서 감사하고, 감사할 때 그것이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삶의 동기로서 감사
감사는 어떤 사건의 결과가 아닙니다.
「감사는 삶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행복해서 감사하는 게 아닙니다.
감사함으로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감사가 없이는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감사가 먼저입니다.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오늘 본문 19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감사하는 그에게 구원의 축복을 더하셨습니다.
이 영적인 구원의 축복이 이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겨우 5병2어를 가지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먹고 남을 정도로 거두었습니다.
높은 수준의 '감사'는 어떤 결과를 보고 드리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08.07.06.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주제별 분류] 크리스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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