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간 서로 다른 성장문화 이해하기 치유집회 녹취 #2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엡5:33
신앙의 깊이와 크게 상관 없이, 서로 다른 성장(배경)문화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면
가정파탄과 이혼에 이를 수 있습니다...
물론 성장문화 차이에 관한 지식을 배운다고, 부부 갈등이 다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부부 갈등의 원인을 올바로 알면, 문제 해결이 절반은 된 것이며,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서로 이해하는 마음)를 얻게 됩니다...
◑개개인은 좋은 사람인데, 두 부부가 합쳐지지 않는 것은..
문화의 차이 때문일 수 있다.
▶남편 S는 오래 전 당시 서울의 변두리인 영등포에서 태어나 거기서 자라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머리가 좋아 고시공부를 해서, 합격하고 판사가 되었다.
판사가 되고나니 주가가 올라가서, 서울시내 양반집 부자들이 모여 산다는
청운동 어느 명문가 집안의 아내와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국 이혼했다.
문제는 서로 성장배경 문화가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S판사를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인간적으로 참 호인이다. 아주 검소한 사람이다.
또한 그의 아내를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너무 얌전한 사람이다.
그런데 두 사람을 같이 붙여놓으면, 도저히 궁합이 안 맞는다.
두 분이 저(정태기 박사)와 상담했는데도, 결국 이혼하게 되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아내의 가장 큰 불만은 <더러워서 못 살겠다>였다.
처가에서 평창동(서울의 큰 개인주택단지)에 꽤 큰 집을 사 주었다.
아내는 남편의 모든 것이 더러운데, 그 중에서 도저히 못 참는 것이 2~3가지 있었다.
S판사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삼각팬티만 입고 집안 구석구석에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어느 날에 보고 경악한 것은, 삼각팬티만 입고 대문 바깥에 쪼그리고 앉아서
남편이 거기서 화단을 가꾸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보다 더 못 참는 것은, 남편이 밥상을 앞에 두고 방귀를 붕붕 뀐다는 것이다.
그러면 부인은 도저히 밥맛이 떨어진다며 숟가락을 그냥 놔 버린다.
남편은 ‘그게 뭐가 더러운 거냐? 사람 사는 게지... 사실 참기도 어려운 게 아닌가?’
하면서, 방귀소리에 몸서리치는 아내가 도리어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S판사에게 “집에 돌아오면 제발 옷을 좀 입고 다니세요!”
그러면 S판사는 “집에 들어와서까지 옷 입으면, 나는 도저히 못 살아요!”
그가 집에서 옷을 못 입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기가 어릴 적부터 자란 ‘문화’가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영등포 저자거리에서 좌판을 펴고 장사를 했는데,
한국의 옛날 아낙들이 보통 그랬듯이,
길거리에서도 항상 가슴을 드러내고 애 젖먹이고 그랬다.
특히 자기 아버지가, 늦봄부터 삼각팬티만 입고,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그것만 걸치고 쌀 사러 다니고, 연탄 사러 다니고 그랬다.
S판사는, 어린 시절에 그런 모습을 매일 같이 보면서 자랐고,
자기도 아버지를 따라서, 결혼 전까지 영등포에서 그렇게 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것은 자기 습관이요, 문화요,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청운동 양반집에서 컸다.
어릴 적부터, 아내가 아침에 일어나 보면,
자기 어머니가 허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항상 일찍 일어나셔서 몸단장, 머리단장 하시고, 버선까지 다 신고 계셨다.
그러니까 그들 부부의 문제는,
S판사와 그의 아내가 자란 문화가... 서로 <너무 크게 달랐다>는 것이다.
같은 한국이지만, 서로 극과 극의 문화에서 성장한 두 사람이,
한 집에서 같이 살다 보니.. 부부관계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여러분, 문화는 가급적 서로 비슷한 게 좋다.
국제결혼, 타인종간 결혼이 어려운 이유가... 문화가 서로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서로 결별하고 말았다.
◑ <서로 비슷한 문화>끼리 결혼해서 잘 사는 사례
남편도 일류 교육을 마치고 나와서 서울의 큰 교회 부목사가 되었고,
아내도 이화여대를 졸업한 배운 사람인데,
두 사람이 결혼한 지 8년이 되도록 겸상을 못 했다.
식사시간이 되면, 남편은 상에서 먹고,
아내는 <상 밑에서> 반찬 몇 가지 놓고 따로 먹든지,
아니면 남편이 먼저 먹고 상을 물리면, 그 다음에 받아서 먹었다.
(아직도 농촌에 가 보면, 늙은 노인 부부 중에 이렇게 드시는 가정이 꽤 있다.
남편은 밥상에서 먹고, 아내는 과거에 부엌에서 먹다가, 요즘은 방바닥에서 먹는다.
좋은 반찬은 주로 남편이 먹고, 아내는 남편이 먹다 남은 부스러기 위주로 먹는다.
아니면 남편이 일부러 고기, 생선 같은 반찬을 다 먹지 않고, 조금 남겨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부부의 ‘따로 상’ 사연이 다른 부목사들 사이에 알려지게 되었다.
급기야 소문이 커지자 담임목사는, 그 부목사를 불러서,
그런 차별을 즉시 시정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 부목사 부부는, 그 날부터 외압에 굴복, 겸상을 시작했는데,
신기한 것은, 그들 부부로서는, ‘따로 상’을 받는 것이
그 때까지 서로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일류대학까지 나온 여자가, 결혼한 지 8년 동안,
남편과 그렇게 ‘밥 따로 먹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부부가 서로 문화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부부가 두 사람 다 보수적 문화인, 경북 칠곡군에서 성장했다.
그 부 목사도, 사모도,
자기들 어머니가 아버지랑 겸상하는 모습을, 일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어머니가 땅바닥에 밥공기 놓고 먹는 것을.. 두 사람이 보고 자랐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부부가 결혼해서도, 서로 아무 문제없이
결혼해서 8년째 아내가, 남편 밥 먹고 난 다음에, 남은 상에서 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른 부부들이 곁에서 보니까..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성차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부목사 부부의 문화가 서로 달랐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남편이 ‘따로 상’을 고집하고, 아내가 ‘겸상’을 고집한다면..
사실 어마어마한,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로까지 발전할 것이다.
그러므로 결혼할 때는 문화가 서로 비슷한 집안끼리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 정신분석이론 <우리 속담 < 잠언22:6
▶정신분석학, 심리학에서 이제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이
2~7세 연령의 아동에게,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은,
그의 성인의 정신/인격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사춘기 이후는 부모가 아이에게 큰 영향을 못 미친다.
그러나 사춘기 이전, 특히 2~7세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절대 영향을 받는다.
이 이론을 처음으로 주장한 심리학자들은 프로이드를 위시한 정신분석학파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에 한국인들은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깨달았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에 성경은
마땅히 행할 바를 어린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서도 결코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강조했다. 잠22:6
<2~7세 어린아이 때 형성된 습관/인격이.. 평생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7세 아들은, 아버지가 어머니께 대하는 모습을 그대로 판박이로 배운다.
나(정 박사)는 우리 아버지가 두 집 살림한 것이 미안해서 그러신지,
집에 들어오시면 늘 손수 밥을 지으셔서 애들을 거두어 먹이셨다.
어머니는 생계유지 때문에 그런지, 아침 일찍 밭에 일하러 나가버리셨다.
그래서 그런 아버지 모습을 보고 배운 저는, 요즘도 집에서 제가 밥하고 반찬 만든다.
아내를 사랑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내랑 말다툼 하고 나서도, 내가 밥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보고 배우며 2~7세 사이를 보냈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타하고 행패부린 것을 보고 자란 아들은,
나중에 커서, 교회 다니고, 사회적 체면 때문에 쉽게 안 그러겠지만,
언제든지 기회가 되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 아내를 구타할 잠재성을 띠고 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배우자를 고를 때, 결혼 상대자의 2~7세 때 상황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겠지만,
할 수 있으면 주변 사람들의 증언 등을 통해서
그의 어린시기 때, 그 가정 형편을 한 번 들어보는 것이... 안전하다.
반대로 2~7세 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것을 보고 자란 아들은
나중에 결혼해서도, 저절로 자기 아내를 너무너무 사랑해준다.
노력 안 해도,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된다.
▶2~7세 사이 여자아이들은, 이 시기에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아야 하는데,
만약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든지 해서, 집을 비우고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으면..,
신기하게 결혼한 이후에 그 상처가 나타난다.
어떤 남자라 해도, 남편을 잘 믿지 못한다.
남편에게 자기를 온전히 맡기지 못한다.
혹시 남편이 자기를 버릴지 모른다고 늘 노심초사한다.
그래서 성생활까지 원만치 못하게 된다.
▶또한 이런 경우도 있다.
2~7세 여자 아이들은, 그때 자기 아버지가 자기 어머니께 잘 대우한 것을
평생 자기 무의식 속에 입력하고 있다.
그래서 나중에 커서 자기가 결혼해서 남편을 만나면,
<자기 남편도, 자기 아버지가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기를 잘 대우해 줄 것을>
은연중에 기대수준으로 딱 정해 놓고 있다.
그런데 그 기대에 자기 남편이 맞춰주면 다행인데, 만약 맞춰주지 못하면
뚜렷한 이유도 모른 채, 남편이 짜증스럽고, 미워진다.
자기도 잘 모르는 무의식에, 자기 아버지에 의해 형성된 ‘남편상image’ 때문이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나중에 결혼한 이후에도
20년 전 자기가 아주 어린 시절에,
자기 가정에서 매일같이 자기 부모들의 등 뒤에서 보고 배운 대로
그렇게 영향을 받아서 살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어떤 자매는, 어릴 적에 자기 어머니가 남편에게
계속 신경질 내는 것을 보고 자랐다.
신기하게도,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결혼해서
자기가 남편에게,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계속 신경질을 내더라는 것이다.
◑내 개인적 부부갈등 간증
▶나(정태기 박사)는 어릴 적에, 남편을 정성스레 섬기는 어머니 모습을 보며 자랐다.
산에서 약초를 캐서, 마을에 똥개를 사서, 약초와 함께 고아서, 아버지께 드렸다.
한 겨울에 그렇게 개를 3마리씩이나 잡아서, 계속 남편께 약을 다려서 바쳤다.
그런 지극 정성으로 남편을 섬기는 아내(내 어머니)를 보고 자랐다.
그래서 결혼하면, 아내는 남편에게 다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제 아내는 좀 다른 ‘아버지, 어머니 상’을 보고 자랐다.
처갓집은, 남편이 아내를 위해, 부채질하며 약탕간에 약 다리는 집안이었다.
장모는 몸이 약해서 병치레가 잦았고, 장인은 평생 장모 보약 다려주며 살았다.
우리 장모는 평소에 말이 없었다. 모든 것을 ‘헛기침’으로 말했다.
헛기침을 크게 하면, 기분이 안 좋다는 뜻이고,
신기하게 헛기침의 강약장단에 따라, 장인이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었다.
기침소리 하나에, 장인은 신속하게 장모의 모든 지시를 그대로 다 이행했다.
그야말로 장인은 ‘장모를 위해서 태어난 남자’였다.
제가 그런 집안에서 보고배운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으니... 오죽했으랴!
▶게다가 우리 집안은 정반대로, 아내가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집안이었다.
부부간에 서로 문화가 너무 안 맞는 것이었다.
아내가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평소 개념은 ‘남편은 집에서 종노릇’하는 것이고,
남편인 내가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것은 ‘아내가 집에서 남편의 종노릇’하는 것이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아내가 제게 입이 닳도록 하는 얘기가 있다.
“당신은 꼭 얘기해야 알아듣소?”
장모가 늘 헛기침 한 방으로 모든 의사를 전달하던 집안에서 컸으니...
그러나 나는 그렇게 자라지 않은 것이 문제다.
“아니, 당신이 얘기도 안 했는데, 내가 어떻게 알겠소?”
그러나 아내는 ‘일일이 얘기 안 해도, 남편이 알아듣고 움직여야 한다’는 개념이
자기 머리 속에 콱 박혀있었다.
그래서 (장모처럼) 말은 안 하고, 기침을 크게 했다/작게 했다 했지만
나는 도저히 아내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파악하기 싫었을 수도 있다.
▶이런 것은 ‘예수 믿는 신앙’과 크게 관계없는 문제다.
서로 신앙이 깊어도, 이런 문화적 갈등으로 서로 골이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신앙’보다는, ‘교육/지식’이 일차적인 문제다.
우리는 서로가 (가정상담학) 지식이 부족해서,
이렇게 서로 말도 안 하고 신혼에 처음 5년 반을 잔뜩 긴장관계로 살았다.
너무 고민한 나는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그래서 홀홀단신으로 미국유학을 떠났는데, 어쩌면 아내를 회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는 아내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물론 미국에서 편지를 보내지도 않았다.
▶당시가 1970년대 초반이었다. 미국의 각 가정이 이혼이 적고, 아직 튼튼할 때였다.
학교의 미국 사람들은, 내가 유학온지 7년이나 가족과 헤어져 사는 것을..
불쌍하게 여겼다. 그들 미국인 교수와 학생들은
우리 가정이 어서 합쳐지기를 위해서 고맙게도 기도해 주었다.
(그들 기도의 응답이었을까?)
'우리 가정을 어서 합치라'는 말이 미국인들 사이에서 오고가던 어느 날,
나는 기숙사에 돌아와 누웠는데,
신기하게 천정에, 아내 얼굴이, 캄캄한 방에, 환~한 달처럼 나타났다.
그러더니 아내가 (그 환상 중에) 죽는 것이었다.
‘저 사람이 죽으면, 우리 딸 애들 둘은 어떻게 하지?’
그제야 비로소 나는, 지난 7년 동안 미국 와서 내가 없는 사이에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아내가 무척 힘들게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편지를 안 보냈지만,
아내는 내게 틈틈이 편지를 보내서 아이들 상황을 알려주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게지?’
‘아내가 진짜로 죽으면 어떻게 되지?’
그러면서 지난 7년간, 미국 와서 한 번도 아내가 그리워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지만,
그 날 처음, 아내가 그리워서 나는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나는 "OO씨, OO씨" 아내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며.. 기숙사에서 밤새 눈물을 흘렸다.
▶그 다음 날에도, 나는 아침에 학교 식당에 갔다가, 식판을 받아 놓고 또 울었다.
‘아내와 우리 자식들은 이런 음식을 한 번도 못 먹어 봤는데... 나만 질리도록 먹네!’
(그 때는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풍족히 못 먹고 살던 때였다)
하도 눈물이 계속 나와서, 학교 화장실에 가서 숨어서 또 울고 하니까,
신학교 학생 총5백 명 중 150명이 서명하고, 상원의원 편지도 첨부해서
한국에 있는 미대사관에, 정태기 가족에게 미국비자 줄 것을.. 학생들이 요청했다.
그러기를 두 달 만에, 7년 동안 못 보았던 아내와 두 딸이, 미국에 도착했다.
시카고 공항에서 상봉했는데, 2살짜리 딸은 9살이 되어있었고,
5살짜리 딸은 12살이 되어있었다.
우리는 시카고 공항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한참동안 서로를 붙잡고 울었다.
▶내가 미국에서 <가정상담학>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도
바로 내가 직접 체험한 부부사이의 이런 상처와 치유의 경험 때문이었다.
나는 과거에, 내 아내를 지긋지긋하게 생각했는데,
미국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원래는 천사 같은 여자라는 것을!
그런데 서로 자라온 환경과 문화가 달라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갈등이 생겼던 것이다... 다른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성장문화를 이해하고 나니,
좀 부대끼는 면이 있어도... 더 이상 밉지는 않았다.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부터 ‘가정상담학’ 공부를 함께 하고는,
우리가 겪은 쓸데없는 부부갈등을,
다른 사람들은 겪게 할 필요가 없게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자기 성격, 문화, 습관은 일평생 절대 변하지 않는다.
지금도 아내는 변함없이 ‘당신은 꼭 얘기해야 알겠는가?’ 라고 말한다.
헛기침만 해도 척 알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이제 우리가 <서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이 헛기침만 하면 못 알아 듣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남편인 나는 <아내가 헛기침만 할 수밖에 없는 성장배경을 이해>하니까
여전히 서로 불편함이 있지만, 그게 크게 싸울만한 꺼리는 못 된다.
우리가 살던 신학교 사택 앞에, 가을이면 낙엽이 무릎까지 쌓였다.
그러면 아내는, 남편이 바쁜 줄 아니까, 자기가 빗자루를 잡고 쓴다.
나는, 아내가 모든 집안 일은 장인이 도맡아서 해온 처갓집 문화를 아니까,
아무리 바빠도 마당에 쫓아가서, 아내가 잡은 빗자루를 빼앗아야 한다.
안 그러면, 아내는 자기가 자진해서 마당을 쓸면서도, 불만족이 쌓이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인격, 습관, 이런 것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부부가 그런 <문화 차이> 문제로 서로 다투지 않고,
다만 <서로를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그게 사랑이 깊어지는 것이다. <이해>가 핵심 포인트다. [주제별 분류] 내적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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