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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환경을 이기는 그리스도인 1706

LNCK 2009. 1. 22. 14:45

◈환경을 이기는 그리스도인          벧전1:1 ~ 7           설교 스크랩

 

 

◑초대교회가 로마제국을 이긴 방식

 

▲베드로전후서를 쓰게 된 배경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서 약 한 세대가 지나고 나서,

그 즈음부터 로마황제에 의해 대대적인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핍박을 피해, 카타콤이라는 지하 동굴 세계로 숨어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중의 하나가,

바로 베드로전후서와 같은 글을 주신 것입니다.

 

물론 이 글은 단순한 편지가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와 함께 이 글을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들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환경을 넉넉하게 싸워서 이겼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이상한 방식’의 싸움이, 로마를 이겼습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강한 나라가 로마제국 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서기 313년의 밀라노 칙령을 두고,

역사가들은 ‘기독교가 로마를 무너뜨렸다’라는 표현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이 씨름했던 이 싸움은

일반 세상 사람들이 싸우는 싸움과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것을 잘 몰랐습니다...

 

▲유대 독립전쟁은 기독교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유대 독립전쟁이 주후66~73년까지 6~7년의 세월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주후 66년에 전쟁이 발발해 70년에 로마군의 예루살렘 침공이 시작됩니다.

72년에 예루살렘이 함락 되고, 성전도 완전히 불타 무너져버립니다.

그리고 73년 전쟁이 끝날 때, 마사다 항전이 일어났습니다.

 

마사다는, 예루살렘 외곽에 망대같이 되어 있는 높은 곳이 있는데

그곳이 마사다 항전이 일어났던 곳입니다.

이스라엘이 모두 멸망하고 마지막 남은 용사들이 올라간 곳이 그곳입니다.

이들은 마지막까지 로마와 결사 항전을 했지만,

이제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항복하지 않으려고

남은 970여명이 모두 마사다에서 자결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자결할 때의 장면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몇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방식인데, 뽑힌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고,

또 뽑힌 사람이 또 몇 사람을 죽이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뽑힌 사람이 마지막 남은 몇 사람을 죽이고 자기도 자결했습니다.

 

이 방법이 어떻게 알려졌느냐 하면, 거기에는 죽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 두려워 숨어 있다가, 다른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는 이런 사실을 전했고,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마사다에서 마지막 죽었던 사람들을 생생하게 전한 기록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마사다에서 970명이 죽는 것으로 유대 독립전쟁이 끝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2천년 동안) 없어지는 것입니다.

 

▲당시 사도들의 전쟁관

(주후 70년이면, 사도들이 아직 살아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60대 후반의 나이로

해외선교/순교를 당하지 않으신 일부 사도들은, 예루살렘과 유대에 거주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들은 이 전쟁을 반대했습니다.

사도들이 자기 조국의 독립전쟁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전쟁을 해봐야 강한 로마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전쟁 하지 말아야 된다’가 아닙니다.

사도들은 그런 논리로 전쟁을 반대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싸움을 할 때도,

승리의 가능성이 없는데도 싸워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한 나라의 독립은 아주 중요 합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보다 더 큰 전투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와 싸워서 독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도들이 받은 부름은 그런 전쟁이 아니라,

로마까지도 하나님 앞에 바치는 전쟁이었습니다.

 

사도들은 로마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로마를 칼로 쳐서 무너뜨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로마가 나를 칼로 찌르면 내가 그 칼을 받으리라.

로마가 교회를 무너뜨리면 그냥 당하리라.’

 

사도들과 그의 가르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로마를 대항해서 싸운 것이 아니라,

로마를 향한 자기의 분노와 자기의 적개심과 싸우면서,

그 로마까지 사랑하고, 그 로마까지 하나님 앞에 복속시키는

놀라운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칼을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황제가 피를 토하고 죽는 꼴을 보고 싶었지만,

그들은 황제를 저주하고 싶은, 그 자기들의 분노와 싸웠던 것입니다.

그들은 로마를 위해서 기도하고, 로마를 사랑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참된 삶을 전했던 것입니다.

 

결국 로마가 손을 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을 더 이상 박해할 아무 이유가 없다고 하여,

새로 황제가 된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인정하는 칙령을 발표하게 된 것입니다.

 

 

◑탈레반을 이기고 극복하는 방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닥치는 극심한 환경을 이기도록 인도하시는 방식을

①위에서 초대교회의 방식을 설명했는데,

②우리 교회 팀이 탈레반에게 피랍된 가운데,

어떻게 그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한 번 되돌아보면서 교훈을 얻읍시다.

 

▲절체절명의 주일날 아침

2007년 7월 19일 목요일 오후에 23명이 피랍되었습니다.

그리고 42일간 억류되었다가 9월 2일에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전해 준 간증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피랍 사흘 후에, 7월 22일 주일날, 우리 교회는 금식을 선포하고

마지막 한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기도회를 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교회에서 매일 저녁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주일날 아침, (한국 시간으로는 주일 오후 1시쯤)

아프간 시간으로는 주일 아침 8시 반쯤,

탈레반은 사흘 동안 끌려 다니면서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밤새 걷기도 해서 피곤하기 이를 데 없는 23명을 모두 끌어내어

큰 구덩이 앞에 (일렬횡대로) 세워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구덩이 반대편에는 20여명의 탈레반들이 전부 복면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탄띠를 몸에 두르고, 박격포를 매고, 기관총을 들고 마주섰습니다.

(여차하면 모조리 쏘아서 죽이고, 구덩이에 던져버릴 상황이었습니다.)

 

23명 중 여성이 16명이었습니다.

초신자도 있었고, 거의 불신자에 가까운 초신자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제가 그 얘기를, (그들이 돌아와 입원한 병원에서) 처음 들었을 때

듣는 제가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얘기를 다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만 하자. 그만 하자.’

그러고는 그 얘기를 끊었습니다.

 

▲23명은 총부리 앞에서 너무도 당당하고 침착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얘기를 더 들어보니까,

그 날 23명 중에 단 한 사람도 울고 쓰러진 사람이 없었고, 흐느낀 사람도 없었으며,

23명 모두 그 총부리 앞에서 당당하게 조용히 서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우리가, 내가 여기에 선교사로 온 것은 아니고

단기팀으로 왔지만 이렇게 죽어도 하나님의 순교로 쳐주시는 거지요?’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 총알 여러 번 맞고 죽지 않고 첫 총알에 죽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여기서 총 맞고 안 죽어서 칼 가지고 나를 죽이는 일이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내가 배교할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빨리 죽게 해주십시오.’

 

그런 별별 기도를 하면서 23명이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한 사람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나중에 확인하고, 제가 너무 놀랬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가? 이 사람들이 무슨 특공대 출신도 아니고

그냥 지금 예배드리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갔다가 그런 일을 당한 것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가요? 무슨 비밀이 여기에 있는가요?’

(예, 거기에는 비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함께 하신 사도행전적 역사, 첫 번째 표적

(지난 해 2008년 고난주간 집회를 하면서 귀환자 21명 중 18명이 간증을 했습니다.)

주일 날 그 사건이 있기 전, 사흘 동안에(목~토)

하나님께서 참 신기한 능력으로 행하셨던 일을 다시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한 자매의 간증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목요일에 피랍되어 그 날 밤새 걷고 먹지도 못하고, 금요일 저녁 너무 두려운 상황에서

23명이 함께 피랍 둘째 밤을 보냈는데, 그 날 밤에 한 자매가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곤히 자고 있는데 밤중에 무언가 소리가 들려서 한 자매가 눈을 떠보니,

6~7명의 여성들이 눈만 내어놓는 차도르를 뒤집어쓰고, 기도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탈레반하고 계속 접촉을 하니까, 자매들이 방안에 있을 때도

아마 차도르를 쓰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자매가 리더였는데 ‘이 사람들이 기도를 하면 나도 좀 깨우지,

왜 자기들만 기도하고 있나’하면서

그룹에 끼어들어가서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으니까, 잡은 손을 빼더라는 겁니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가(손을 빼는가) 보다’라고 생각하고는,

탈레반이 근처에 있을 거니까 아주 조용히 같이 기도를 했다는 겁니다.

 

긴장 속에서 한참 기도를 하고 눈을 떴는데, 보니까 다 자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아니, 이 사람들이 자면 같이 좀 자자고 그러지, 자기들만 자고 나 혼자만 두었네.’

그러고는 자기도 다시 잤다는 겁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저녁에 밤중에 자다가 일어나서 기도한 사람 누구지?’

라고 물었더니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참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꿈을 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옆 사람과 손도 잡아보고,

옆 사람이 손을 빼니까, 얼마나 긴장했으면 손을 다 빼나 싶어서

옆 사람의 등을 토닥거리면서 기도회 그룹에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꿈이 아닌 방법으로,

그들 가운데 천사를 보내셨는지 누구를 보내셨는지 모르지만,

그 다음날 아침에 이 얘기를 듣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중보기도하고 계시는구나.

교회만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구나’

하는 마음의 준비를 시켰던 것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강한 성령의 역사로 신앙을 고백하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토요일 저녁에 하나님께서 또 한 가지 일을 행하셨습니다.

우리 배형규 목사님이 그 날 저녁에 23명과 함께 기도회를 인도하셨습니다.

그 기도회에 아주 강한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사람, 한사람이 돌아가면서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하루를 더 살건, 일 년을 더 살건.. 내 생명은 주님의 것입니다.’

라는 고백을 하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그날 밤에 모두 성령충만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두 번째 표적

그런데 그것으로도 부족했던지 그 다음 날 새벽에,

구덩이 앞으로 끌려 나가기 바로 전날 토요일 밤에,

천사들과 함께 기도했던 그 자매가 자고 있는데

누가 발을 툭툭 쳐서 눈을 떠보니 무장한 탈레반이 한 명 서 있더라는 것입니다.

 

너무 놀라서 일어났는데 글쎄 이 탈레반이 미소를 지으면서

아주 선한 얼굴로 쳐다보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마음속에

‘아, 이 사람이 우리 편이구나. 이 사람이 우리를 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 시간에 옆에서 다른 자매가 부스럭거리면서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그 자매가 놀랄까봐 ‘이 탈레반은 나쁜 사람이 아닌것 같애. 우리 편인 것 같애.’

그러자 이 자매는 ‘아니 아무 것도 없는데 무슨 소리야?’

그래서 다시 보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 리더 자매는 주일 아침에 일어나서 이 얘기를 모두와 나누었고,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신하고서,

자기를 죽이려는 총부리 앞에서도, 절규하지 않고 담담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23명이 삼삼오오 흩어지기 전에, 함께 있었던 기간 동안에

이런 준비를 통해서 23명을 축복하셨습니다.

 

▲탈레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한국에 있는 우리들도) 처음에는 그런 의문이 많았지요.

‘하나님이 왜 그러고만 계실까?

탈레반 싹 쓸어버리고 그냥 놀라운 방법으로 빼내 오면 되지.’

 

예, 저도 그런 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 방법으로라도 하나님 보내주십시오.’

 

그러나 베드로후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이 로마와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걸어갔던 그 길을

우리도 이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탈레반도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을 주시기 위해 그분의 능력을 쓰시는데,

때로는 육체적인 것을 위해서는 좀 인색해 보이는 그런 면을 우리가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행하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억류되어 있던 23명의 형제자매들을

그런 놀라운 방법으로 격려하시면서 그 상황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잘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이 능력을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알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기대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혈기로, 같이 싸우지 않습니다.

지금 베드로전후서의 편지를 받는 성도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은 그들 생애 가운데서 현실적인 공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수백 년이 지난 다음에야 그들이 신분이 복원되는 참 답답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고난이든지, 질병이든지,

신앙적인 갈등이든지, 깨진 관계든지, 자녀 양육의 문제이든지,

직장의 문제이든지, 사업의 문제이든지,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가 하나님을 좀 더 잘 알 때,

하나님이 주시는 지식을 좀 더 잘 붙들 때

우리가 그 모든 환경을 넉넉하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이런 믿음을 가지고 새해를 시작하면,

하나님이 계속 우리를 가르치실 것입니다.

이런 기대를 가지고 멀리 바라보면서 길을 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 헌신 찬송으로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을 주님 앞에 올려드립시다.

이 찬송은 우리 배형규 목사님 장례식 때 세 번을 불렀던 찬송입니다.

배 목사님이 평소에 좋아했던 찬송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내가 안고 있는, 또 우리교회 공동체가 안고 있는 환경이 어떠할지라도

보배로운 믿음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지식 가지고,

또 하나님이 앞으로 공급하시고 함께 하실 은혜 가지고

이 환경을 넉넉하게 극복하게 하소서. 이 환경을 이기는 자가 되게 하소서.

변화시키는 자가 되게 하소서.

 

다른 사람 탓하고, 환경을 탓하며 연약하고 유약하게 사는 자가 되지 않도록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09.01.04. 인터넷 설교 스크랩                        [주제별 분류] 핍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