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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 회복하기

LNCK 2009. 6. 3. 18:21

www.youtube.com/watch?v=ZjQVjam_944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 회복하기       말4:5~6            -09.05.10. 설교녹취, 출처보기- 

                                                                         *원제목 : 마지막 심판과 구원

 

 

◑성경이 강조하는 ‘아버지의 역할’

 

▲성경에서, 여자는 <아내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어머니로서의 역할 보다)

우리 전통 문화는 <어머니>로서의 여자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이렇게 어머니로서의 역할 강조는, 한국 여성의 ‘강한 모성애’라는 전통을 낳았다.)

그러나 성경에는 <아내>로서의 여자의 역할을 더 강조한다고 본다.

 

창3:15절에, 하나님이 뱀을 저주하실 때

‘너는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는데,  ... ‘남자의 원수’가 아니다.

 

이 말씀 역시, 여자는 가정의 기둥으로서

사탄을 대적하며 깨어있어야 하는... 어떤 숭고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한다.

여자는, 단순하게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역할..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성경에서 가르친다.

창세기, 벧전, 에베소서, 골로새서에서

주님은 가정에 대해 말씀하실 때, ‘아내들아’로 먼저 시작한다.

‘남편들아’는 순서상 그 뒤에 나온다.

 

성경이, 아내에 대한 권고를 먼저 시작하는 이유는, 여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아내가 ‘더 큰 영적 민감성’을 가지고, 깨어있어야 함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본다.

가정의 머리는 ‘남자’이지만

가정의 영적인 책임(리더라는 뜻은 아님)은, ‘여자’에게 부여해 주셨다는 것이다.

 

가정마다, 여자들이

어머니의 역할을 감당하기에 앞서

먼저 <아내로서 역할을, 영적인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남자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강조된다. (남편으로서의 역할 보다)

 

구약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말4:5~6

 

물론 이 말씀은 ‘초림하시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예언이지만,

넓게 보면 ‘재림하시는 예수님’도 가리킨다.

 

그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본문에서 그것은 <가정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즉, 아비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는 일이었다.

 

이것은 부부지간의 문제도 아니고, 엄마와 자녀간의 문제도 아니고,

일차적으로/문자적으로 아버지와 자녀들 간의 문제이다.

그것을 회복시키는 것이.. 주님의 초림/재림 전에 준비해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에 이것을 돌이키지 않으면

두렵건데 주님이 임하셔서, 저주로 그 땅을 치실 것이라고.. 무섭게 예언하셨다. 말4:6

 

▲저주로, 그 땅을 치신다고 하셨다.  말4:6

여러분, 아담이 범죄하고 하나님께 저주를 받을 때에도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리라는 저주를 들었다.

사람이 노력을 해도, 노력한 성과가 나오지 않고, 대신에 가시와 엉겅퀴가 나온다는 뜻이다.

남자가 범죄하면, 그 사람을 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땅(그의 환경)을 치신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남자들의 잘못은.. 땅에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에 대한 벌은 다르다.

 

여자에 대한 벌은.. 남자를 사모하는 것이 ‘벌’이었지만

 

남자에 대한 벌은.. 너희는 아내를 다스리게 되는 것이었다.

곧 ‘아내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벌’이다. 그래서 아내를 막 다스려야 하는 벌이다.

그 외에도 땅을 치셔서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벌’을 받았다. 창3:3

 

지금 본문의 말라기에서도.. <땅이 저주>를 받을 것을 예언하고 있다.

 

가정에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땅을 치시겠다는 것이다.

땅은 사람이 사는 환경, 사업 등을 뜻한다.

이것이 말라기 본문의 메시지이고, 오늘 설교의 주제이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화목해야.. '땅'이 잘 된다.

 

‘가화만사성’(가정이 화목해야 만사가 다 잘 된다)이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과 일맥상통한다. 가정/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땅’이 회복된다.

반대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땅’이 저주를 받는다.

 

 

▲한 부도난 회사가 있었는데, 직원들이 임금을 못 받아서, 회사에 진치고 농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 측은, 임금을 지불할 돈이 없었다.

그래서 사장은 고민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집중적으로 가졌다.

 

그 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신 것은.. 회사의 문제가 아니었다.

‘너는 집에서 얼음덩어리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고,

자기가 집에서 늘 차갑게 식구들/특히 자녀들을 대하는 것이.. ‘죄’임을 알게 하셨다.

 

사장은, 그런 문제가 자기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똑같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당장 임금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사원들을 살살 설득하면서

먼저 자기들의 가정이 온전하게 회복될 것을 강조했다.

그 가정들도, 월급을 못 받는 관계로 어렵던 처지였다.

 

그러면서 차츰 사원들의 가정들이 회복되어갔다.

그 때 주님께서 그 회사가 새롭게 일어날 수 있는 아이템을 계발하게 하셨고,

그 회사라는 ‘땅’이 회복되는 것을.. 제가 목격했다.

 

▲또 어떤 한국의 회사는, 미국 지사가 법적 문제로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다.

여건은 한국 회사가 당연히 불리한 미국이었다.

법정은 아무래도 자국인인 미국인에게 유리하게 판결내릴 것이고,

현지에서 변호사를 고용해 보았지만, 별 뾰족한 수는 없었다.

 

재판은 1~2년을 끌었고, 최종확정판결에서 만약 진다면,

회사는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에, 이 한국회사 사장의 가정적 문제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자녀와의 오랜 갈등이.. 서로 대화가 풀리면서 슬슬 녹아져 내렸다.

 

우연의 일치일까?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던 미국 지사의 법적 문제도,

비슷한 시기에, 정말 기가 막히게 기적적으로 슬슬 풀려 나갔다고 한다.

 

남자가 머리이기 때문에, 집에서 남자가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바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이 <땅을 치신다>는 것이다.

 

▲사울 왕의 실패는, 일면 이렇게도 볼 수 있다. 먼저 자기 아들과 관계에서 실패했다.

사울 왕은, 아들 요나단에게,

‘이 패역부도한 계집의 소생아!’ 라고 욕하고 저주했다.

 

사울 왕은, 왕으로서의 사명에 실패하기 전에

‘아버지로서 자녀와의 관계에서 먼저 실패했다’는 것이다.

가화만사성인데, 가정이 회복되지 못해서.. 사울의 ‘땅’(환경)이 저주를 받고 말았다.

 

여러분, 신문에도 보시라

여러 대기업이 있지만, 총수와 그 자녀와의 관계가 좋지 않는 기업은

얼마 못 가서 결국 조기 붕괴됨을 볼 수 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킬 때, 그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무지 노력했다.

측근들에게, 자기 아들을 선대하고, 죽이지 말 것을.. 부탁한다.

아들을 결코 저주하거나 욕하지 않은 아버지였다.

자기 목숨을 위태롭게 하고, 왕위를 찬탈한 정말 못된 아들인데도.. 그를 욕하지 않았다.

 

이렇게 다윗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린 왕이었다.

그래서 성경에 ‘다윗의 왕위는 영영할 것이다’ 라고 말씀한다.

 

아비의 마음이 자녀들에게로 돌이키고, 자녀들의 마음이 아비에게로 돌이켜졌을 때

주님은 그 땅을 회복시키시고, 그 땅을 축복하신다.

 

이런 사상은 창세기부터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구약 성경을 전반적으로 흐르는, 중요한 사상이다.

 

 

◑미국과 한국 영화를 통해 보는 아버지의 사랑

 

▲우리가 본받아야할, 미국의 영화에 나오는 <아버지의 사랑>

미국 영화가 아무리 타락해도, 그 바탕에는 <청교도 정신>이 깔려있다.

즉, 미국 영화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그 주제로 하는 영화들이 매우 많다.

 

<The day after tomorrow>란 영화에 보면,

기상이변으로 미국에 빙하기 재앙이 찾아온다.

뉴욕 맨허튼 도서관에 갇혀 있는 자기 아들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찾아가서 구해낸다는...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것도 백악관에 들어가는 것도 거절하고, 자기 아들을 구하러 사지로 목숨 걸고 떠난다...

 

영화 <트로이>에 보면,

전쟁에 져서, 왕의 아들이 결투에서 죽는다.

그러자 (트로이) 왕이, 자기 목숨을 걸고, 그것도 혼자서..

죽은 자기 아들 시신을 찾으러 적진으로 들어간다.

그 때 적장인 브레드 피트가 감동을 받고, 자기가 죽여서 끌고 왔던 시신을 내어준다.

‘아버지의 사랑’을 그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아닌...

 

영화 <보디가드>에는 케빈 코스트너와 그 아버지의 끈끈한 사랑의 관계,

영화 <앱슬루트 absolute 파워> 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기 딸을 사랑하는 그 관계를 잘 묘사하고 있다.

 

미국의 건전한 영화 중에 ‘아버지의 사랑’이 안 나오는 영화가 없을 정도이다.

저는 이것이 ‘미국의 힘’이요, '청교도 정신'이라고 본다.

 

▲그런데 한국 영화와 비교해서 죄송하지만

과거에 한국 영화를 보면,

아버지들은 주로 ‘술 먹고 집에 와서는 뻗어버리는’ 모습으로 종종 묘사된다.

그리고 직업도 없고, 빈둥거리는... 그런 부정적 이미지를 잘 그린다.

 

그리고 어머니는, 집안을 먹여 살리기 위해 행상이나 식당 일을 나가는데,

그것도 등에 꼭 막내를 들쳐 업고 나간다.

<모성애>를 강조하는 영화들이 주종을 이루었던 것이다.

 

남편은.. 집에 와서, 그렇게 엄마가 힘들게 벌은 돈을.. 뜯어가는 사람으로 나온다.

그래서 엄마는 울고..

그런 절박한 환경에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깡’을 갖고 자란다.

 

그래서 아이가 커서 나중에 ‘깡’으로 살다가, 잘못되어 경찰에 포위되었는데,

아이는 강도가 되어 누구를 인질로 잡고 ‘가까이 오지 마’라고 소리친다.

 

그 때 그 어느 누구도 가까이 가지 못하는데,

엄마가 나타난다. 엄마가 울면서 설득한다. (확성기로 ‘OO야, 에미다!’)

그러면 강도 아들은, 한결같이 무기를 버리고 순순히 투항한다.

 

이것이 한국인의 정서인데, ‘어머니의 사랑’을 잘 묘사하는 것은 좋지만,

‘아버지 역할’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것은.. 국민 정서상 안 좋았다고 본다.

 

▲신기하게도 언제부턴가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국 문화가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일본과 동남아는 물론이고, 중동으로, 미국으로

한국 영화와 드라마, 가요가 수출되고 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맞추어, 한국 영화의 주제가 바뀌고 있다.

모든 영화에 ‘아버지의 사랑’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시고기」라는 책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인지... 어쨌든 달라졌다.

 

TV연속극 <주몽>에 보면,

주인공이 죽은 아버지를 기억하면서, 왕위를 이어간다.

 

<에덴의 동쪽>에 보면,

탄광촌에서 죽은 아버지를 기억하면서, 딸이 삶을 살아가는 용기를 얻는다.

 

<가을동화>에도 봐도 마찬가지다.

놀랍게도 언제부턴가, 우리 드라마에, <아버지의 사랑>이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에 제 개인적 경험

제 아들이 고등학생인데, 사실 저는 바깥 일이 바빠서

아들이 어느 대학에 들어갈 마음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그러다가 최근에, 저도 마음을 바꾸어서

아들이 좋아하는 가요, 취미.. 이런 것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아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것이다. 아들과 말도 통하게 되었다.

 

여러분, 아버지의 관심과 취미는, 아들과 완전히 다르다.

그렇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아들이 좋아하는 것들, 관심 가지는 것들을

아버지도 관심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아들의 마음을 얻는다.

 

▲한국 교회에 여자가 많아지게 된 역사적 배경

조선시대 유교사회는 여자를 억압하는 문화였다.

조상에게 제사할 때도, 여자들은 제사 자리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부엌에 모여있었다.

 

유교적 영향으로, 남자들이 아내를 인정/존중하지 않으니

여자들은 자연히 자기 사랑을.. 남편보다 자녀에게 쏟아 부었다.

그래서 한국은 ‘모성애’가 강한 나라가 되었다.

 

이 시기에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보고는,

무시당하는 조선의 여자들을 긍휼히 여기게 된다.

여자들은 뭔가를 뒤집어쓰고 다녔다.., (그 속에 눈물이 숨어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초기부터 ‘여성 중심의 선교’에 중점을 두었다.

그때부터 한국교회는 ‘여성 중심의 교회’가 되었다고 본다.

 

지금 우리는, 교회에서도 ‘여성 중심’의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되찾아야한다는 것이다.

(후략)

 

▲마치는 말

성경에 보면, 이상하게도

여자들은 ‘어머니의 역할’에 대해서는 조금, 그러나 ‘아내의 역할’에 대해 많이 나오고,

남자들은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서는 많이, 그러나 ‘남편의 역할’에 대해 조금 나온다.

 

여자들에게는, ‘아내의 역할’이 보다 중요하고

남자들에게는, ‘아버지의 역할’이 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본문 말라기에는, 마지막 때에, 아비의 마음이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되어있고,

자녀의 마음이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예언되어있다. 그렇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 땅을 치신다고 했다. 말4:5~6

 

 

예언된 말씀이 여러분의 가정에 그대로 성취되어서

아버지의 역할을 잘 감당해서,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 ‘땅을 축복’하시는 역사가 있게 되시기를 축원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