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크리스천에게는 원수가 없다. 막5:17 09.05.28.설교일부녹취
▲서론
본문 <거라사의 광인, 막5:1~20> 단락은,
직전 단락인 <광풍을 잔잔케 하심, 막4:35~끝절>과 연관성을 가진다.
거라사의 광인이, 예수님이 자기를 고치러 오시는 것을 아시고,
갈릴리 바다에 광풍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 근거는,
1) 막4:36에 '(예수님을 태운 배와 함께)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라고 했다.
다른 배들도, 예수님과 함께 바다를 건너려 했던 것은.. 당시 바다가 아주 잔잔했다는 것을 뜻한다.
어부나 선주가, 대충 날씨를 보니까, 폭풍이나 광풍이 칠 염려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 갑자기 풍랑이 친 것은, 막5장의 군대귀신이, 예수님 일행의 오시는 것을, 막는 방해였다.
2) 막4:39절에, 예수님이 광풍을 꾸짖었더니, 잔잔해졌다.. 라고 했다.
여기서 '꾸짖다'는 어떤 인격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즉 예수님은 광풍의 배후에 있는 마귀를 꾸짖으신 것이다.
그 마귀가 '거라사의 광인 속이 있던, 군대귀신'이었다. 12영은, 6천x12=약 7만2천의 마귀떼를 뜻한다.
그러니 광풍을 일으키고도, 남았을 것이다.
3) 막4:39절에, 예수님이 광풍을 꾸짖었다고 할 때, 그 꾸짖다의 헬라어가 '에피티마오'인데,
컨코던스를 통해, 마가복음에 쓰인 5 용례를 찾아보면, 모두 마귀를 꾸짖을 때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막4:39절에서, 예수께서 광풍을 꾸짖으신 것은, 그 배후의 마귀를 꾸짖으신 것이다.
그 마귀란.. 이어지는 단락의 군대귀신이며,
군대귀신이, 예수님이 자기를 향하여 오시는 것을 간파하고, 훼방을 했던 것이다.
'에피티마오'가 쓰인 마가복음의 5용례는
막1:25, 귀신을 꾸짖음
막3:12, 귀신에게 '내가 누구인지 알리지 말라'고 경고
막4:39, 본문, 풍랑을 꾸짖음
막8:33, 베드로를 꾸짖음 (그 배후의 마귀)
막9:25, 더러운 귀신을 꾸짖음.. 등이다.
※물론 '에피티마오'는 귀신만 꾸짖을 때 쓰는 말은 아니고, 일반적으로 '꾸짖다'는 말인데,
사람을 꾸짖을 때도 쓰였지만,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주로 귀신을 꾸짖으셨으므로,
귀신을 꾸짖을 때, 이 말을 쓴다.
본문 막4:39절도, 광풍을 꾸짖으신 것은, 결국 귀신을 꾸짖으신 것이라는 뜻. (이 단락, 펀 글)
.......................
▲정상적인 크리스천은.. 원수가 없다.
정상적인 크리스천에게는.. 원수가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명령대로,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명령대로
다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지만,
설령 자기 믿음이 부족해서 그 원수를 사랑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미워하지는 않는다. 미워할 수도 없다.
가령 예를 들어, 나를 굉장히 괴롭히는 원수가 있다고 치자.
정말 숨어서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나를 음해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를 원수로 여길 수 없는 것은, 그래서 그와 맞서 싸울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에, 또는 나를 위해서) 필요하니까, 저 원수를 들어 쓰시는데,
내가 어떻게 저 원수를 미워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요셉도 그러했다. 하나님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형들을 사용하셔서 자기를 팔게 했는데... 형들을 원수로 여길 수 없었다.
그래서 도리어 형들을 위로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45:5
머리카락 하나도 다 세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저 원수가 요즈음 나를 괴롭히는 것이,
정말 내게 아무 도움이 안 되고, 내게 전적으로 손해만 되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그 원수를 빨리 데려가시든지/ 어쨌든 사라지게 만드실 것이다.
마귀도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신 후에, 얼마 동안 물러갔으며
마귀가 욥을 시험한 후에도, 도저히 이기지 못하고 물러갔다.
여러분, 당신이 오늘 시험을 당할 때에는
천국에서 하나님과 마귀가 지금 내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시라.
욥은 그랬다. 욥2:3~5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 밖에 허락하지 않으시고’
마귀는 ‘당신이 분명히 하나님을 배반할 것이라고’ 큰소리 치고 있다.
우리가 그 시험을 넉넉히 이긴 후에, 하나님은 그 마귀를 물러가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을 다 이루기 전에는.. 원수가 안 물러간다.
그런데 내가 원수를 미워만 하고 있으면.. 평생 미워만 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계속 시험에 낙방하니까, 합격할 때까지 그 시험은 계속 되는 것이다.
▲영적인 뒤집기 기술
씨름 같은 운동경기에 보면, ‘뒤집기’인지..
상대방이 밀고 들어올 때, 그 힘을 도리어 역이용해서 이기는 기술이 있다.
자기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밀고 들어오는 힘을, 살짝 방향만 바꿔 틀어서 이기는 기술이다.
'십자가'가 바로 그런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빌라도와 백성의 관원들이 자기들의 힘으로 밀고 들어왔다.
예수님은 그냥 계속 밀리셨다. 대항해서 물리적으로 충돌하지 않으셨다.
하늘의 12군단도 더 되는 엄청난 천사를 동원하실 수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마12:53
빌라도와 대제사장이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을 때도.. 그냥 무기력하게 죽으셨다.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뒤집기’였다.
마귀가 십자가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한 것은, 의로운 자를 못 박아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속수무책으로 밀려서 죽은 사건이,
도리어 만민을 구원하는 놀라운 승리가 되었다. '상대의 힘으로 이긴' 사건이다.
지나간 일이지만, 노대통령의 국회 탄핵안 가결이 그러했다.
힘없이 탄핵을 받았는데, 다음 국회의원 선거 때, 노대통령 측이 압승을 거둔 것과 같다...
상대의 힘으로 이긴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되지만)
‘빌라도와 대제사장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도와주었다’고 사람들이 멋모르고 말하는 이유도,
그렇게 무작정 밀고 들어온 것이.. 정말 ‘뒤집기’가 벌어진 것이다.
이 설교문의 주제로 다시 돌아가면,
<정상적인 크리스천에게는 절대 원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원수가 나를 향해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것도 .. 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요,
내가 힘없이 밀리는 것 같지만, 그것도 십자가처럼 ‘영적인 뒤집기’가 일어날 것이므로
지금 나를 공격하는 자들을.. 절대로 원수로 여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자기가 크리스천이라 말하면서도,
자꾸 ‘저 죽일 원수!’ 하며 이를 가는 것은
그 원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실상은 자기가 ‘비정상적 크리스천’이라는 것이다. ※관련글 :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상대하라 -클릭-
▲저도 사역을 하면서 비난을 많이 받고 있다.
아마 제가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만큼, 심한 비난을 받는다.
제가 총회장 출마하려는 것도 아닌데도... 그래서 참 억울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저를 격려해주시는 분도 계시는데,
하루는 어느 목사님이 제게 이렇게 격려해 주셨다.
‘태 목사님, 원래 막대기를 들고 과일을 딸 때는
열매가 많이 열린 나무에, 막대기를 많이 치게 되지,
열매가 열리지도 않는 나무에는, 막대기로 치는 법이 없어요!’
그 분의 격려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더 맞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막5:17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 건너편 거라사 지방에 가셔서
‘군대귀신’들린 광인을 고쳐주셨다.
그는 옷을 다 벗어 던지고, 자기를 결박한 사슬도 끊어버리는,
귀신이 얼마나 세게 들렸든지.. 돼지 2천 마리를 몰고 가는 엄청난 귀신이 들렸었다.
(‘군대’region는, 로마군 단위로 약6천명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귀신이 6천 마리나 들어갔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런 엄청난 귀신을 내쫓아 주셨으면
그 동네 사람들이 다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야 정상 아닌가?
그런데 그곳 사람들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막5:17
‘좀 더 머물러 주십시오.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병자를 더 고쳐주소서’ 해야 정상인데,
‘빨리 떠나 주세요!’ 라고 한 것은.. 거라사 지방 사람들 역시
그 광인 못지않게.. 영적으로 심하게 비정상적이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크리스천들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한 지역교회가 그 도시에서 사회봉사를 많이 하면
일부 사람들은 교회를 존경하겠지만,
다수 사람들은 도리어 ‘그만두세요, 떠나주세요!’ 라고 반응할 것이다. 그게 지난 교회의 역사였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절대로 맞대응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크리스천에게는 원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지역사회 봉사를 계속하든지,
아니면 진짜 그 도시를 떠나준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그래서 사도바울의 사역도, 계속 옮겨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욱 사역의 지평이 넓어졌다.
거라사 지방 사람들이 예수님께 말했던 것처럼,
사도바울이 가는 곳마다, 그 지역 사람들은 ‘떠나주세요!’를 외쳤던 것이다...
그렇게 '떠나주세요!' (꺼져버려!) 라는 말을 내가 들어도
정상적인 크리스천의 반응은 '당신을 사랑합니다!'이다. ▣ 영적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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