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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수한그릇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족 때문 1982

LNCK 2009. 7. 13. 14:25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족 때문           요16:8    -인터넷 설교 스크랩, 정리, 축약, 동영상 보기- 

                                                                        -폴 와셔, <현대교회를 향한 10가지 기소장> 중 1/4-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16:8



나(폴 와셔 목사님)는 마르틴 루터가 아닙니다.

이것은 비텐부르그의 문에 못 박힌 95개조의 선언문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 마음에 지워진 부담이며, 나는 이것을 반드시 여러분과 나누어야 합니다.

     (듣기도 싫고, 전달하기도 싫은 내용의 복음이지만, 쓴 약이 몸에 좋다고 생각하고 들어봅시다. 편집자)



◑1. 첫 번째 고발 :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불신


한국적 상황과 별로 관련 없으므로, 이 부분은 생략합니다.



◑2. 두 번째 고발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


▲하나님의 공의/ 진노/ 영광에 대해..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배우려 하지도 않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이 이렇게 요청합니다.

“폴 형제님, 와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일주일간 시리즈 설교를 해 주십시오.”


그러면 종종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글쎄요.. 그건 상당히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젠데요.

제가 만약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당신의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할 때

당신의 가장 훌륭하고 오래된 교인들 중 일부가 일어나서 이런 말을 할 텐데요...


‘그건 내가 믿는 하나님과 다릅니다. 나는 그런 하나님은 결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마음에 스스로 만든 하나님이 있고

그들은, 자신이 만든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가 이같이 말하노니 현명한 자는 자기 지혜를 자랑하지 말며

용사는 자기 힘을 자랑하지 말고, 부자는 자기의 부를 자랑하지 말라.


그러나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그가 깨달아 나를 알아서

내가 이 땅에서 자애와 공의와 의를 행사하는 주임을 아는 것이라.

이는 내가 이 일들을 기뻐함이라. 주가 말하노라.   렘9:23~24


네가 이런 일들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전적으로 너와 같은 자인 줄로 생각(오해)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겠고 그것들을 네 눈앞에 정연하게 두리라.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것을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잘게 찢으리니 아무도 구해낼 자가 없으리라. 시50 :21~22


▲하나님을 모르는 채, 인간을 아는 (자기계발)  책들만 범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왜 모든 기독서점들이

-자기 도움에 관한 책들과

-‘그것을 하는 5가지 방법’과

-‘독실해지는 6가지 방법’과

-‘넘어지지 않는 10가지’에 대한 책들로 가득한지 아십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의에 대하여 깨어 있고 죄를 짓지 말라.

어떤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지식이 없기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말을 하노라. 고전15;34


▲오늘날 유행은, ‘하나님(거룩/공의/심판)을 아는 지식’을 제외시키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조차 죄악이 만연합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해서입니다.


이제 여러분께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집회에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것이 언제입니까?

-목사로서 일 년 내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마지막으로 가르쳤던 것이 언제입니까?

-미국에서 일주일 내내 행해지고 있는 가르침 중

‘하나님이 누구신지’와 관계된 것이 얼마나 됩니까?


모두가 그냥 흐름에 따라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는 그 길을, 모두가 그냥 따라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영생도 관심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그것이 모든 것입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그리고 영생은, 여러분이 죽어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영생은 변화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살아서부터 영생을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


지금부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하십시오.

이런 한 사람이 나오면, 그는 나라와 민족을 살릴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 책들을 살피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 분의 공의/영광/심판/거룩/두려움 들을 차츰차츰 자기 삶으로 알아 가십시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책/성경을 꺼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이 책을 공부하십시오.


일요일 아침, 이런 모든 것들 때문에

차라리 일요일 아침이 없는 것이 더 낫겠다고.. 저는 여러분께 말하고 싶습니다.

일요일 아침은, 일주일 전체 가운데 우상숭배가 가장 심하게 행해지는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대다수의 군중들은, 그들 자신의 육신에 의해

-자기 마음대로 만든 하나님과

-사탄적 장치들(다국적 경제체제?)과

-세상적 지성을 숭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똑같은 신을 만들었고

그 신은 ‘여호와’보다는 ‘산타클로스’를 더 닮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주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없습니다.



◑3. 세 번 째 고발입니다: 인간의 고질적인 병폐를 언급하지 못하는 것.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정죄를 받아야 합니다.

로마서를 볼 때

바울이 그 책의 처음 3장을, 오직 한가지만을 말하려고 썼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 모든 사람들을 정죄아래 데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정죄가 바울의 가장 위대한 신학적 업적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의 결말도 아니고, 최종 목적도 아닙니다.

그것은 독자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기 전에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람은 아주 타락한 존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데려가려면

그들로부터 절대적으로 모든 육신의 소망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과거의 전도방식

나는 기억합니다. 그것은.. 내가 21살 때 설교하도록 막 부르심을 받았을 때였는데

나는 성직자들에게 반값으로 양복을 파는 어느 오래된 가게에 갔습니다.

그들은 50~60년을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그가 걸어 들어와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습니다.

“젊은이, 주의 종의 길을 가도록 부르심을 받았구만, 그렇지?”

나는 말했습니다. “네, 선생님.”


그는 아주 늙은 전도자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이 건물 바로 바깥에 있는 저 건물이 보이나?

거기서 내가 설교했었지. 하나님의 영이 내려와서 영혼들이 구원받곤 했지.”


나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때는 <요즘의 전도>와 같은 게 없었어.

우리는 2~3주 동안 설교를 하고서, 죄인들에게 영접하도록 초대하지도 않았지.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영이 일하시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깨뜨리실 때까지

그들의 마음을 쟁기질하고, 쟁기질하고, 또 쟁기질하기만 했지.”


내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의 마음을 깨뜨리러 오셨을 때를, 어떻게 아셨나요?”


“글쎄, 그냥 예를 하나 들어주지.

그 당시에 하루는 내가 이 가게에 양복을 사러 왔었다네.

내가 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한 젊은 점원이 돌아서서 나를 보았고

나를 봤을 때 그는 바닥에 엎드려서 소리쳤다네, 

‘누가 나 같이 악한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나는 하나님의 영이 그곳에 임했다는 것을 알았지.”


▲(진정한 정죄/회개 없이) 복음을 너무 쉽게 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는 그냥 사람들에게 가서 얘기하고, 3가지의 입문적인 질문을 하고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들어오시도록 요청하는 영접기도를 따라할 것인지

그들에게 물어봅니다.


그런 방식도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은,

어쩌면 그들이 두 번 다시는 복음에 마음을 열지 않을 (이미 예수를 영접했으니까)

두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의 사역은, 죄/의/심판을 강하게 전파/책망합니다.

레오나르드 레이븐힐이 즐겨하던 말을 하겠습니다.

“이제 당신은 내가 왜 많은 장소에서 오직 한번만 설교하는지 이해할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입니다.

(죄를 강력하게 지적하므로, 두 번 초청하는 사람들이 없다?)


우리가 죄를 피상적으로 다룰 때,

무엇보다도 우리는 성령과 대항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분(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16:8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듣기에 좋은 말을 <복음>으로 알고,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에게, 영원보다는 지금 가장 좋은 삶을 주는데

더 신경 쓰는 아주 유명한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사역이 아닙니다.


왜냐고요?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은, 죄의 세상을 책망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16:8


그러므로 이것을 아십시오.

여러분이 특정하게, 열정적으로, 사랑으로

사람들의 타락한 상태를 다루지 않는다면

성령은 여러분 주변에 절대 거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예레미야 시대의 목자들처럼

우리가 인간의 고질적 병폐를 가볍게 다룬다면, 우리는 속이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내 백성의 딸의 상처를 조금 고쳐주고 말하기를

"화평이라, 화평이라."하나 거기에는 화평이 없도다.  렘6:14


누군가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기 싫어서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거나/ 나에게 화를 낼까봐/ 그 사람이 슬퍼질까 봐

그가 질병에 걸린 사실을 숨기는 의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부인하는 의사입니다.


그런 의사는 속이는 자일뿐 아니라, 부도덕한 자들입니다.

영적인 의사(설교자)도 마찬가지 입니다.


▲설교자들이여, 복음을 복음대로 전하십시오. 핍박을 두려워 마십시오!

요즘 설교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폴 형제, 당신은 이해를 못하는군요.

우리는 요한 웨슬리 시대의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휫필드나 에드워즈가 설교했던 문화와도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존감도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의지도 약합니다.

우리는 그런 설교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내 말을 들으십시오. 그 사람들의 삶을 연구해 본적 있으십니까?

그들이 설교했던 것들은, 그들의 문화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복음의 설교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복음적 설교가 올바로 선포되어지는 곳에는

청중들은 그것을 짐승의 사나움을 가지고 대적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개심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 의지가 박약하고 자존감이 없다는 부분에 대해서,

그래서 복음을 복음대로 전하지 못하겠다는 분들에 대해, 한마디 하겠습니다.

그런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더욱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죄의 실상이 드러나는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아침이나 오후.., 밝은 대낮에는 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우주 거인이 바구니를 타고 와서 별들을 다 따서 담아가지고

다른 곳으로 가져갔나요? 물론 아닙니다. 밝으니까 안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이 점점 어두워져서 밤이 칠흑같이 캄캄하게 되면

별들이 그 영광의 풍성함 가운데 드러나게 보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인간의 급진적 타락성에 대해 가르치기를 거부할 때

여러분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십자가에 영광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영광은

우리의 타락성의 바탕위에 놓여졌을 때... 가장 광대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악한지 말하기를 두려워할 때

그로 인해 그들은, 결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참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죽은 사람은, 어떤 무거운 짐을 그 몸 위에 지워도, 그 무게감을 못 느낍니다. 그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영혼이 죽은 사람은.. 아무리 자기 죄의 무게가 무거워도,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영혼이 죽었다는 증거입니다. 

     문제는, 교회를 10년 이상 다니고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4. 네 번째 고발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무지


오늘 나는 여러분께, 우리 나라 미국이, 복음 위에 굳게 서 있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나라는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그렇기 때문에 복음에 대해 무지합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나라의 병폐는 자유주의적 정치인들도, 사회주의의 근본도,

할리우드나 다른 어떤 것도 아닙니다.


이 시대의 병폐는.. 우리 시대의 소위 복음주의 목사와/

우리 시대의 설교자와/ 우리 시대의 전도자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아도 부분적으로 압니다.


우리는 복음을 간단한 전도지 한 장으로 다 전달하려고 합니다.

복음을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기 원하시는 4가지, 5가지'로 축소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가 우리가 인도하는 영접기도를 진지하게 따라하면

그들이 거듭났다고 선언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중생’을 ‘결심주의’(지식적 동의)와 맞바꾸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본성>으로 시작해서.. <사람의 본성과 그로 인한 타락>에 이릅니다.

이 두 기둥들은

모든 사람들을 위대한 딜레마(진퇴양난)에 이르게 합니다.


그 딜레마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용서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이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면서, 동시에 악한 사람들을 정당화 할 수 있습니까?


성경 말씀 특별히 잠언의 한 구절을 인용하자면

악인을 정당화시키는 자와/ 의인을 저주하는 자들은.. 둘 다 주께 가증하니라.  잠17:15


그런데도 우리 모든 기독교 노래들은

얼마나 하나님이 악한 자를 정당화(죄인을 무조건 사랑)하시는지를 자랑합니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공의> 위에 세워진 <사랑>입니다.  <공의>를 빼 놓으면, 복음이 아닙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와 찰스 스펄전과 로마서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이라면

아래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공의로우시며

-모든 사람들은 진실로 악한데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려면 악한 자를 정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사랑하신 위대하신 사랑을 주셨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사셨던 자신의 아들을 보내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었던 그 계획대로, 그는 그 나무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 위에서 그는 우리의 죄를 지고

그의 백성들의 법정에 서서 우리의 죄악을 지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들에 따라 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 저주를 받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저주에서 속량하시고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라고 외쳤을 때

그 잔은, 로마의 십자가/ 채찍질/ 못 박힘 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 잔은 그 아들에게 부어져야 했던 아버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었습니다.


누군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지고

하나님의 공의 때문에 버려지고 하나님의 진노에 짓밟혀 죽어야 했습니다...


▲마치는 말

위에서 말씀드린 모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왜 능력이 없는지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복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전하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으로 돌아가십시오. 평생 동안 무릎 꿇고 기도하십시오.

그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따라가지 마시고, 대신에 십자가를 공부하십시오.

그런 한 사람이 공동체 전체를 살릴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 관   련   글 >...................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 하나님을 안다                                                 설교 녹취


우리가 어떤 학문, 기술, 지식을 습득하고 배울 때.. 믿음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명석한 두뇌로 아는 것이 아니다.

거기엔 믿음이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하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영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없다.

또한 사랑이 없어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는 절대로 없다.

이것은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믿음으로 순종하고, 사랑으로 행할 때, 비로소 이 지식이 습득된다.

 

 

▲1. 주님을 사랑해야.. 주님을 알게 된다.


성경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증거 한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니라. 요일4:8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딤후3:7

그들의 학습시간, 지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들 안에, 먼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신앙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주님을 사랑해야,

주님을 알고, 주님에 대해 배울 수 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함’이.. 하나님을 아는 최상의 도구라는 뜻이다. 

신학적/철학적 지식만으로.. 절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하나님에 관해 knowing about God 아는 것’은.. 학문과 공부로 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것 knowing God'은.. 믿음과 사랑으로만 가능하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된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을 지킬 수가 없다.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요14:24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7:17


위 말씀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바,

우리가 하나님의 뜻/말씀에 순종하려 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된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고전16:14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마라나타)     고전16:22


                                                                                                                                                     ▣ 복음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