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자전거, 자동차, 비행기 시131:1~3 09.09.28.설교스크랩/편집
▲운동량이 적을수록 이동거리가 많아진다.
운동화 신고 .. 내가 숲 속을 거닐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합니다.
자전거 타고 ,, 신선한 바람을 쐬기도 합니다.
자동차 .. 좀 갇혀있지요.
비행기 .. 아주 많이 갇혀있게 됩니다.
자, 이동하는 거리와 운동량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운동화, 운동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많이 움직여요.
그러나 자전거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멀리 못 갑니다.
자전거, 운동량은 운동화 신고 움직이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적습니다.
그러나 같은 운동량으로.. 운동화보다는 훨씬 더 멀리 갑니다.
자동차, 어떻습니까?
자전거에 비해서 엄청나게 이동거리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탔을 때보다 훨씬 더 운동량이 적습니다.
비행기, 그야말로 비행기에 올라타면
실제로 내가,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운동량이 거의 제로가 됩니다.
그런데 이동거리는 어마어마하게 커지게 됩니다.
이 관계를 잘 한번 보세요, 여러분.
나 자신의 운동량이 많을수록.. 이동거리가 적어집니다.
나 자신의 운동량이 적어질수록.. 이동거리가 많아집니다.
이게 바로 신앙의 원리에요.
나 자신의 운동량이 많을수록 이동거리는 적다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의 노래, 시131편이 이것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이 시편은 성전에 올라가며 부르는 순례자들의 노래입니다.
다윗이 지은 이 노래를.. 왜 순례자들의 입에 넣어줬을까요?
왜 그랬을까요, 여러분?
성전에 올라가서 번제를 통하여, 내 죄를 사함 받고, 나 대신에 양이 죽습니다.
양에게 안수함으로 내 죄가 다 이전되지 않습니까.
그 양이 번제단위에 올라서 각이 떠지고 살이 불에 붙어 재가 되는 동안에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내가 사함을 받는 것이.. 번제제사의 원리입니다.
그렇게 죄가 사함을 받음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그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 사람들의 마음, 그 마음가짐, 태도,
바로 그걸 노래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성전에 올라가면서, 이 시편의 노래를 부르면서/외면서.. 묵상합니다.
‘내가 이제 성전에 올라갈 것이다. 내가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 영혼이, 마치 젖 뗀 아기가 어머니 품속에서 편히 쉬듯
그렇게 평안함과 쉼을 누릴 것이다.’ 이렇게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일예배 드릴 때, 이런 기대가 있습니까?)
▲1절b,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이 말씀과 요즘 이 세상, 또한 요즘 교회 안에서 들려지는 말과 한번 비교해 보세요.
‘꿈을 크게 가져라. 비전을 크게 가져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좋게 말하면, 이렇게 꿈과 희망을 심어줍니다.
어쨌든 큰 일을 계획하라는 겁니다.
‘은행의 대출을 받아서라도 큰 예배당을 짓고
구름 떼처럼 몰려오는 교인들을 꿈꾸며
그리고 사업이 금년 말에는 두 세 배로 커질 것을 연초에 하나님께 서약하고
그러기만 하면 내가 십일조뿐만 아니라, 십의 이조까지도 드리겠습니다...’
하면서 큰일을 꿈꿉니다. 그 큰 일을 꿈꾸라고 부채질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인생의 큰 꿈을 갖고 큰 비전을 가지라고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다윗은 그런 ‘큰 일’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다윗이 무슨 큰 꿈을 꾸었다.. 큰 비전을 가졌다고 나와 있지 않습니다.
(요셉도 총리가 되는 것이 자기 비전이 아니었습니다. 얼떨결에 된 것이지..
자기가 총리를 목표로 그가 일생을 살아간 것이 아닙니다. -자세히 보시려면 클릭-)
반면에 다윗이 뭘 원했는지.. 한 번 볼까요? 2절에 나옵니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131:2
앞에 1절과 연관시켜 생각하면 어떤 뜻입니까?
‘내 마음아, 찍소리 하지 말고 하나님 품에서 젖 뗀 아기처럼 안겨있으라’는 얘기에요.
젖 뗀 아기가 뭡니까?
젖 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자기 생애에 대해서, 자기 삶에 대해서
지금 주어진 현실적인 환경에 대해서
젖 먹는 아기가 보채듯이 보채는 것조차..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 영혼을 고요하고 평온하게 만드는 겁니다.
▲다윗은, 왜 이렇게 자기 영혼을, 고요하고 조용하게 달래야 했을까요?
(다윗의 영혼의 혼잣말, 자기와의 대화를 상상해서 적어봅니다.)
‘내 영혼아, 가만있어. 가만히 있어.’
‘아냐, 나는 뭐 이루고 싶은게 많은데.. 옆의 아무개를 봐, 나도 할 수 있거든!’
‘아니, 아니 가만있어. 이루긴 뭘 이뤄? 너는 젖 뗀 아기야.
젖을 달라고 보채는 것조차 하지 말아라.’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보다,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게 얼마나 힘든지.. 너는 아니?’
그럼 다윗은, 지금 왜 하나님 품속에 가만히 있으려 하는가요?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입니다.
어머니 품에 안겨있는 아기처럼
그것이 내 이상이고, 목표고, 비전이라는 겁니다.
3절/마지막 절에, 오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의 소망을 여호와께 두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다윗 자신이 소망을 여호와께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망을 주께 두고, 주님의 인정 받는 것에 만족하는 다윗은,
어머니 품속에 자는 아이처럼.. 평안하고 조용하게 지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이런 일을 이루어야지, 저런 일을 이루어야지’ 하면서 늘 분주합니다.
솔직하게 뒤집어서 그 이면을 보자고요.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입니다. 사실은 그래서 분주한 것입니다.
여호와께 소망을 둔 사람은.. 그냥 조용하게 지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1년 365일.. 쉬지 않고 뛰어다닐까요?
(아마 이게 맞는 말일 것입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뛰어다닌다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만약 그게 사람들에게 전혀 인정받지 못할 일이라면..
글쎄요, 그 활동범위가 확 줄어들 걸요?
우리가 과거에,
해외 선교, 중국 선교, 외부 강의 ... 부지런히 다녔습니다.
(물론 사도바울처럼 주님의 부르심으로, 순교자의 각오로 다니는 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자기 교회 교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힘들게 뛰어다녔던 것입니다.
어린 아이 중에 ‘과잉행동장애’ - 이런 질병을 앓고 있는 애가 있습니다.
늘 주위가 산만하고, 늘 뭔가 행동을 해야지..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가 멀면 멀수록.. 오히려 과잉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하나님과 관계가 가까울수록.. 과잉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뭘 이루어서/성취해서/업적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겠다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함께 가만히 동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우니까요.
(요즘은 이런 바람을 일으켜도 잘 안 되지만)
과거에 교회가 한 때 ‘과잉 행동’ 바람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엄마들이, 가정 다 팽개쳐놓고, 교회에서 살다시피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게 진정한 신앙심에서 나온 헌신일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엔 소수이고)
주님과 관계가 가깝지 못하니까.. 거기서 나타난 ‘이상/과잉 행동’이었던 것이지요.(다수)
그렇게 과잉행동을 해서라도, 주님께 인정도 받고, 복도 받겠다는 심리였습니다.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눈이 높지 않다는 겁니다. :1a
이 말씀도, 우리가 자주 듣던 말과 반대군요.
‘소년이여 비전을 가져라, 원대한 꿈과 이상을 품어라’ .. 이런 말과 반대입니다.
그럼 다윗은 무슨 ‘축소지향형 인간’입니까?
물론 아니지요.
주님의 품에 안겨서, 갓난아기처럼 평안하게 쉬니까..
높은 이상, 큰 꿈 .. 이런 게 탐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교만할 필요도 없고, 눈이 높을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 품 안에서, 진정한 안식과 참 만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분변을 잘 해야 되는데..
‘여러분, 내가 더 올라가고 싶습니다.
내가 더 벌고 싶습니다.
내가 더 경력을 쌓고 싶습니다...’
이게 주님 품안에서 안식하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다윗처럼, 왕도 될 수 있고, 다른 나라를 정복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지위와 지금 연봉에 무조건 만족하고 안주해서 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헛된 욕망’을 품어서도 안 됩니다.
자기의 끊임없는 탐욕을.. ‘비전’이란 이름으로 포장해서도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안> 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1절b,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늘 발전도 없이, 자기 밥그릇에 만족하고만 살겠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안>입니다.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쓸 때는 힘쓰더라도
주님의 품 안에서 젖뗀 아이처럼,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면서.. 힘을 써야지요.
그렇지 못하고, 안달복달하며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힘쓰는 것은
탐욕이고, 비전을 빙자한 자기 욕심입니다.
▲맨 날 보면 교회에서 <온 세계를 품고> 뭐 이런 말들 해요.
맞습니다. 예수님도 4복음서의 맨 끝에는, 그리고 행1:8절에
땅 끝까지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 털어서 종합해서 보면,
그렇게 성령 받고 확장해서 나아가는 것과 똑같이 중요한 것은
오늘 시편 131편처럼, ‘주님 품 안에서 가만히 안식하라’는 것입니다.
‘주님 품 안에서 가만히 안식할 줄 아는 사람’이
결국에 성령충만 해서 땅 끝까지 나아갈 지상명령을 완수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주님 품안에서 가만히 안식할 줄 모르는 사람’이
땅 끝까지 나아갔다가는.. 다시 곧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관계가 친밀하지 못한 가운데서.. 땅 끝까지 갔다가.. 고생만 죽도록 합니다.
▲이게 다윗의 역설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역사에, 다윗 왕만큼, 영토를 많이 확장한 왕은 없습니다.
다윗 왕만큼 군사적으로 강력했던 왕은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땅 끝까지 나아가자.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자’
이렇게 진취적으로 바람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역설적입니다. 시131편에 보니까, 주님 품에서 새근새근 자고 싶다고 합니다.
다윗은 무슨 원대한 꿈과 비전을 품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 실상이 어떻습니까?
다윗은 그저 하나님 품에 안겨서 어린아이처럼 있기를 원했어요. 그것을 소원한 거예요.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집니다. 가장 일을 많이 한, 가장 영토를 많이 확장한 왕이 됩니다.
그래서 제가 서두에
운동화, 자전거, 자동차, 비행기 예를 들었습니다.
다윗은 비행기 안에서 자다시피 했는데,
하나님은, 다윗을 통하여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눈이 높지 않다고 했고, :1a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하는데 :1b
실제로는 가장 큰 일, 가장 감당치 못할 일을 해내고 말았습니다.
‘비행기를 안에서 잠자고 간 것’이지요.
▲평생 뛰어도 제자리걸음.. 이런 인생이 많습니다.
평생 40년간 직장생활 했는데..
결국 자기식구 먹고 산 것 밖에 없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열심히 뛰었지만, 어떻게 보면) 제자리걸음 한 것입니다.
‘운동화’ 또는 ‘자전거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퇴직금, 부모 유산 이런 것을 밑천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가
까먹는 사람도 많습니다. 제자리걸음도 보통 실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업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사업에 힌트를 드릴 자격도 없고,
지금 신앙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데요,
조지 뮬러 예를 들어봅시다. 그가 유명한 말을 했는데요..
‘4시간 일하고, 1시간 기도한 것이
5시간 일한 것보다 더 낫다’는.. 경험에서 나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조지 뮬러는
아침에 1시간 기도하고, 4시간 일하고,
점심 때 또 1시간 기도하고, 또 4시간 일했다는 것입니다.
일만 죽어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잘 실천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일 5시간 하는 것이 훨씬 더 쉽기 때문입니다.
기도 한 시간 하는 것은.. 고수가 아니면 .. 어렵습니다.
그런데 조지 뮬러는..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다윗도 .. 그렇게 주님의 품에 안겨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쉬지도 못하고 ‘운동화신고, 자전거타고 달릴 때’
조지 뮬러와 다윗은 ‘비행기 타고 갔다’는 것입니다.
사업도 마찬가지고, 사역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운동화신고, 자전거타고 .. 쉬지도 못하고 힘들게 달려가지만,
지나고 보면 ‘제자리걸음’ 일 때가 정말 많습니다.
사람은 그런 본능이 있다고 하잖아요?
사막 같은데서 길을 잃으면, 자기는 똑바로 걸어간 것 같은데,
사실은 제자리에서 계속 빙빙 돈다고요.
그래서 우리가 시131편의 다윗처럼,
주님의 품 안에서, 편히 안겨 있어야/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제자리걸음을 하지 않고, 비행기 타고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하나님 품에 안겨서 운동량을 줄이세요.
내 영혼아 고요해라. 내 영혼아 잠잠해라. 잠잠해라. 131:2
이 ‘잠잠하라’는 말이 성경에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너희는 잠잠하여 여호와의 하나님 되심을 알라.
너희는 잠잠하여 오늘날 애굽으로부터 너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
잠잠하여 보라. 잠잠하여 이루라. 잠잠하여 감사하라.
우리의 운동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동거리는
정말 개미가 움직이는 것 같을 거예요. 얼마 안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버둥대고 싶어 하는 내 생각과, 내 계획과, 내 판단에 따른 내 기준을.. 다 죽이세요.
죽은 것으로 인정하세요.
그리고 오늘 아침 기도를 통해 온전히 하나님 품에 안겨
오늘 하루는.. 하나님께서 이동하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아버지!
운동화 신고 뛰었습니다. 온 전신에 땀이 나도록 움직였습니다.
돌아보면 맨 날 그 자리였습니다.
뭐가 달라진 게 없습니다. 그저 늙어갈 뿐이고
어린 자식은 성인으로 성장할 뿐이지요. 우리 삶에 달라진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 이제 비행기 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아버지 품에 편안히 안길 수 있는 사람.. 되게 해주시옵소서.
아기가 되겠다는 다윗의 이상과 꿈이, 내 꿈이 되게 해주셔서
하나님의 품만이 나의 비전이 되게 해주시고
그러기 위해 오늘도 세상을 향해 운동화 신고 뛰어나가려는 내 영혼의 버둥댐을
십자가위에 못 박고,
주님 품 안에서, 기도하면서, 주님이 이끌어 가시는 프로젝트/구원 경륜에
제가 도구로 쓰임 받게 해 주시옵소서. ... 아멘
................................ 더 읽으실 분 ...............................................................
중국에서 섬기는 어떤 한인 선교사가 있는데,
한 번은 그의 친구가 10년만에 중국에 방문해서, 그의 사역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그 선교사는 중국어만 열심히 배우고 있고,
중국 현지인 교회나 현지인 신학교와 유대관계만 가지고 있고.. 여기까지는 좋으나
그런데 자기(가 세운) 교회도 없고, 자기(가 운영하는) 신학교도 없고..
그래서 마치 중국에서 장기간 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실력이라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10년 이상 지냈지만, 자기 신학교가 없고, 자기 교회가 없는 것이.. 실력이라니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것'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있습니다.
자기 신학교, 자기 교회를 갖고 싶어 합니다. 거기에 드는 자원은 아무리 쏟아부어도 아깝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도록, 자기 것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대단한 강심장이요, '실력'입니다.
남들이 얼마나 눈총을 주었을까요? 아무 것도 안 하고 논다고...
자기 신학교, 자기 교회도 상황에 따라서는 필요하겠지만, (하는 게 쉽고, 안 하는게 더 어렵습니다)
그 보다 더 먼저하고, 더 중요한 것은.. 시편131편처럼.. 주님 품안에서 지내는 것입니다.
나중에 열매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무조건 선교지에 가자마자 신학교/교회부터 세우고..
그게 꼭 (잘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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