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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는 공동체적 2162

LNCK 2009. 11. 2. 22:28

◈하나님 나라는 공동체적이다.                     계1:6                       인터넷설교 녹취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계1:6                              (서두가 혹시 지루해도 끝까지 읽어보세요)



▲사도 요한은 성도의 정체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주님이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베드로 사도도 이렇게 말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벧전2:9

주님은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부르셨다.


그런데 오늘날 사탄이 없애버리려는 개념이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다.


이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개인의 생활과 거의 관계가 없어 보일지 모르나,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관심이 거의 없으나.. 그렇지 않다.

정말 우리 삶에 절실히 필요한 것인데...


▲1. 구약의 하나님 나라

애굽에서 벽돌을 구울 때, 히브리 백성들이 노예로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히브리 백성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의 나라 애굽에서는, 그들의 신분이 ‘노예’였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모세와 함께 홍해를 건너서 광야에 나왔을 때

광야에서부터 그들은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 국가가 되었고

거기서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되어갔다.


그들은 애굽에서도 히브리 백성이었고, 광야에서도 똑같은 히브리 백성이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애굽에 있을 때에는 바로 왕 아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이제 더 이상 애굽 왕을 따르지 않는다.


결국 히브리 백성이, 출애굽을 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어느 한 시점부터 그들은, 애굽 왕(神이었다)을 따를 것인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것인지.. 그 태도를 분명히 했다.


결국 히브리 백성에게 ‘제사’라는 개념은 ‘나라’라는 개념과 붙어 있었다.

그래서 홍해를 건너서 예배드리러 광야로 나왔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 나라’가 된 것이다.


나오자마자 그들은 각 지파대로 계수된다.

그리고 제일 먼저 제사를 드리기 시작한다.

제사와 나라.. 이것이 광야에서 시작된다.

그 때부터 히브리 백성이 .. 하나님 나라와 제사장 국가가 된다.


사도 베드로, 사도 요한이

‘나라’와 ‘제사장’의 개념을 연결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계1:6, 벧전2:9

이것은 출애굽의 역사 때부터 거슬러 내려온 개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은,

세상 나라(애굽)와 구별되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분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인 것이다.


그런데 출애굽한 히브리 백성은, 사사시대와 이스라엘 국가를 거치면서

점점 더 완전한 하나님 나라로 다듬어져 가고, 완성되어져 가야 했었다.

그런데 up and down을 계속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신약시대에 그리스도가 오심을 통해서,

보다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되는데...


▲2. 신약의 하나님 나라

신약의 성도들도, 처음에는, 세상 속에 있었다.

마치 히브리 백성들이 바로왕 아래 있었던 것과 같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의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구약의 하나님 나라는 ‘민족 공동체’였다.

그런데 신약의 하나님 나라는 ‘교회 공동체’였다.


신약시대에 주님은, 민족에 관계없이, 자기 백성들을 ‘교회’로 부르시고,

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시기 원하신다.


이것이 구약과 신약의 차이다.

 

 

▲3.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적이라는 말은, 다시 말해서 공동체적이다. 개인적이 아니다.


눅17:2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너희 안에’란 말은.. among you(2인칭복수 휘몬)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공동체적으로 임하신다는 뜻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의 나라/통치가 임할 수 있지만,

위 구절 눅17:20절이 가리키는 바는.. 공동체적으로 임한다는 것이다.)


눅22: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이 말씀도..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공동체적(너희에게/휘민)으로 맡기신다는 뜻이다.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 구절에, ‘하나님 나라’라는 말은 없지만,

역시 <하나님 나라가 공동체적으로 임한다>는 뜻을 암시하는 구절이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만나서, 하나 되어 예배드릴 때

하나님의 나라(통치/다스림)가 강력하게 임한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3:16

이 말씀도, ‘교회(성전)의 공동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말씀도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연관된 말씀이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통해서/공동체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적용1. 오늘날 <개인주의 시대>에, 우리 신앙마저도 <개인주의 신앙>으로 흐르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볼 수 없다.


(이 단락 펀 글) 요즘 들어 예수님께서 제게 깨우쳐 주시는 것이 있다.

‘너는 언제까지 네 자신의 문제에만 매여 있을 것이냐?’


그렇다. 나는 끊임없이 ‘나! 나!’로 일관한다.

그런데도 문제는 ‘나 하나도 바로 못 서서 어려운데...’ 하는 것이다.

이것이 마귀의 전략에 속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셨다.

‘나, 나’ 하면서 평생 자신의 문제에만 묶여서 사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는 길은.. ‘나, 나’ 하며 염려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오히려 사명(그의 나라)을 위하여 사는 것이다.


마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나, 나 하지 말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께서는..

‘내 문제부터 해결하고..’ 라며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람이.. 잘하는 것이 아니라 것이다.

그것(내 문제)은 정말 주님께 맡기라는 것이다.


이제 예수를 믿었고 십자가 복음을 알았다면

이제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내 문제에 급급해서 사는 삶 대신에)

그리고 내 문제는.. 하나님께 다 맡기고 산다는 것이다.

마귀의 전략은 - 성도를 평생 ‘자기 문제’에 꽁꽁 묶어두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평생 그렇게 하며 산다.

마귀가.. 우리를 주의 일 못하도록 묶어두는 것이

끊임없이 우리 자신의 문제에 매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내 문제는, 평생 해결이 안 되니.. 그렇게 평생 ‘나, 나’ 하며 사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너무나 놀라운 복음은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에 붙잡혀 살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라는 것이다.


 

▲적용2. ‘나라’는 공동체적인데.. 이것은 ‘삶을 나누는 소그룹’이다. 거기에 ‘나라’가 임한다.

나라kingdom는 혼자로는 안 된다.

두 세 사람이라도 모여서, 서로 함께 삶을 나눌 때, 비로소 ‘나라’가 된다.


여러분, 제(설교자)가 개인적인 체험을 나누어서 굉장히 조심스럽지만,

양해하시고 들어주시기 바란다.


한 번은 제가 서울의 큰 교회에 설교하러 갔는데,

예배 시간에 갑자기 환상이 보이는데,

‘큰 덤프트럭이 와서 벽돌을 와르르 쏟아내는’ 것이었다.

환상 중에 ‘먼지가 너풀거리는’ 것이 보였다.


저는 그 환상이 무슨 뜻인지 ..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환상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해하게 되었는데...


한 번은 제가 강원도의 (예수원 근처) 어느 탄광마을 교회에 가서 수요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광부들이 시커멓게 된 옷을 입고, 예배당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수요일 저녁예배시간에, 갑자기 제게 환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벽돌들이 따다닥 서로 들어맞아 가는 것’이었다.


저는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오래 전에 본 환상과 겹쳐서,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먼저 교회는.. 수많은 벽돌들이 있었지만, 서로 들어맞아서 건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개인적으로 떨어져 있었다. (서로 공동체로 삶을 나누지 않고, 하나님 나라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주일에 아무리 많은 숫자가 모여도.. 건물(교회/나라)을 이루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탄광촌 교회는.. 비록 크지는 않았지만,

그 ‘벽돌’들이 서로 따다닥 들어맞아서, 건물을 이루어가는 것은

(그들이 서로 모여서 삶을 나누면서) 비로소 교회/나라를 이루어간다는 것이다.


한 교회는, 많은 ‘벽돌들’이 모여 있었지만, ‘나라’가 되지 못하고 있었고,

한 교회는, 작은 수의 ‘벽돌들’이 모여 있었지만, ‘나라’가 이루어져 있었다.


(※주. 그러면 에스겔의 환상, 뼈들이 서로 들어맞아서 여호와의 군대를 이루는 환상도

이런 측면으로 해석을 접근할 수 있겠습니다.)


 

▲4. 하나님 나라는 <적은 무리> 중심으로 퍼져 나간다.

예수께서 한 번은 가르치실 때, 무리가 수 만 명이나 모였다. ↙


그 동안에 무리 수 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 눅12:1


그런데 신기한 것은, 예수께서 그 수 만 명을 상대로 가르치지 않으시고,

수만 명을 제쳐놓고,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신다. 눅12:1

적은 무리(12:32)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말씀을 가르치셨다.


눅12:32, 적은 무리 little flock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그래서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설명하실 때,

‘겨자씨’ ‘누룩’같은 예를 즐겨 드셨다.

그것은 매우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여러분, 이것은 사실 보통 문제가 아니다.

어떤 목회자가, ‘수 만 명의 청중(무리)’과 ‘작은 무리’를 놓고,

어느 쪽을 택해서 중점적으로 사역해 나갈 것 같은가?


그런데 예수님은, 수 만 명을 제쳐 놓고,

‘적은 무리’들 중심으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셨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여러 원리 중 하나이다.


그래서 수 만 명을 제쳐놓고,

한웅큼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말씀을 가르치셨는데, (눅12:1~)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그 나라를 구하라’는 것이다.


눅12: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먹고 사는 문제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31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먹고 사는 문제보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라고 하신다.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5. 구약 이스라엘 나라는, 열방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기 이스라엘 민족 안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실패하고 말았다.


여러분, 나라는 끊임없이 이질적인 어떤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고,

그 세상을 흡수해서, 하나님의 나라로 변모시켜야 한다.

그런 유기적인 역동성이 없이는, 그 나라는 실패하고 만다.


우리 주변에서 보듯이,

전통 교회가 잘 안 되고, 신흥 교회가 잘 되는 이유가.. 이런 점에 있다.

호주의 힐송 교회 등 새로운 교회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의 본래 속성이

마치 가루 서 말 속의 누룩과 같이, 새로운 사람/음악/문화를 흡수하여

진짜 새 시대의 새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새 가죽부대가 되는데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유대 민족 공동체 속에 갇혀 있던 구약의 ‘하나님 나라’는,

결국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마저 죽이고 말았다. 자기 신앙전통을 파괴한다고...                하나님의 나라     

(그래서 구약적 하나님 나라는 실패했고) 예수님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다.          *분류기호:7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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