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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묻은 채색 옷 2183

LNCK 2009. 11. 14. 18:20

◈피 묻은 채색 옷                               창37:1~36                      07.02.14. 인터넷설교스크랩


 

▲요셉의 이야기가 아니라, 야곱에 관한 이야기

창세기 37장부터, 드디어 그 유명한 요셉이 전면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37:2절에 보면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라고 쓰여 있지 않습니까?

예전에 읽던 개역성경에는 ‘야곱의 약전略傳이 이러하니라’ 했습니다.

그것을 ‘야곱의 이야기 또 야곱의 역사가 이렇다’고 하는 말입니다.

 

NIV성경에는 account of Jacob ‘야곱에 대한 설명’이라고 나옵니다.

KJV성경에는 generation of Jacob ‘야곱의 세계라’ 이런 뜻입니다.

어쨌거나 요셉의 이야기가 아니라, 야곱의 이야기란 뜻입니다.

 

창36장까지 야곱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성경이 다시금

‘이것은 야곱의 이야기다. 야곱의 이야기가 이러하다’ 이렇게 표기를 했을까요?


창37장부터 요셉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지만

이 요셉이 형들에 의해서 팔려가게 되는 이 이야기전체에 숨겨져 있는 의도,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통해 쓰인) 이 이야기의 내용은 무엇이냐?

요셉의 이야기가 아니라, 야곱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창37장 요셉의 본문을 볼 때는,

요셉에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아직은 야곱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보는 것이

성경의 의도와 부합하다고 하겠습니다.



◑창37장이 ‘야곱에 관한 이야기’ 라는데, 그 내용이 과연 무엇입니까?

 

▲자기 감정에 충실한 야곱

자, 야곱이 아들 열둘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옆에 사람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열한 아들이 있는데, 요셉을 노년에 얻었으므로, 특별히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요셉을 극진하게 사랑해서 막내와 10명의 형들을 다 제쳐놓고

요셉에게만 채색 옷을 입혔다고 해요.

그래서 형들이 아버지의 편애에 대해서 불평을 하고 있는데도

자기의 사랑을 그냥 밀고나갑니다.


하여간 이런걸 보면, 야곱의 성격이 보입니다.

남 눈치 안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시원하게 밀고 나가버립니다.

똑같은 자식들인데, 다른 자식들의 마음이 어떻겠는가는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하여간 야곱은 그런 사람이에요.

어떻게 보면 분명하고 쌈박한 맛이 있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너무 자기에게 충실한거에요. 자기의 감정과 욕망에 너무 충실해요.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히다.

이제 노년에 이르러 얻은 아들,

야곱이 이제 인생을 살만큼 살아갑니다.


(요셉이 30세에 총리가 되었고, 거기서 7년 풍년이 있은 후, 흉년이 있어서 몇 해(3년 가정) 버티다가

야곱이 130세에 애굽에 내려가서 바로 왕을 축복했으니까, 그 때 요셉이 40세 가량이었고,

역으로 계산하면, 야곱이 90세 가량에 요셉을 얻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면 요셉에게 채색옷을 지어 입힌 것은, 야곱이 백 세가 지나서였습니다.)


야곱은 130세에 바로 앞에서 고백하기를

‘자기가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자기 욕망을 쫓아 살아왔던 모든 삶의 과정이

절대로 순탄치 않았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보십시오. 백 세나 지난 어른이, 아직 철이 덜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편애해서, 채색 옷을 지어 입힌 것입니다.


이 채색 옷은.. 요셉을 사랑하는 야곱의 마음의 표현이에요.

라헬을 애타게 사랑하다가, 라헬이 죽은 후로, 아마 요셉으로 대상을 옮깁니다.

오늘날에도 이렇게

‘누군가 자기 주변 사람을 편애함을 통해서 안정감을 얻으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그것도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사람’을 통해서 행복을 얻으려고 합니다.

백 세가 지나서, 야곱이, 여전히 그런 것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이제 형들의 시기를 받아서 팔려갑니다.

미디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려가 버립니다.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가고 없어져버리고 맙니다.


형제들이 꾀를 모아서, 요셉의 그 채색 옷을 벗겨서 다 찢어버리고

숫염소를 잡아가지고 피를 옷에다 묻혀버립니다.


그리고 그 피 묻은 채색 옷을 야곱에게 갖다 줄 때, 야곱이 뭐라고 얘기합니까?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분명히 죽었도다.’ 완전히 믿어버립니다. 37:33


※형제들 간의 불화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져 갑니다.

자, 선택받은 백성인 야곱의 삶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제 형제들 간의 불화를 역이용하시면서 이루어져나갑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꾸시고

역이용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데요...


이제 대구원의 역사를 진행시켜나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일까요?


▲요셉이 아니라, 야곱을 주인공으로 해서, 창37장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37장 성경의 스포트라이트는, (어쩌면 요셉이 팔린 것 보다)

아버지 야곱의 마음에서 요셉이 떨어져 나간 것을... 비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아직도 야곱입니다. 창37:2

야곱에게서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떼어내는데


야곱이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요셉을 사랑했느냐 하면

요셉이 죽었을 때, 야곱이 들어가 길게 애통했다고 해요.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37:34~35


열 아들이 아버지를 위로합니다.

그 위로를 자기가 받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내가 그 아들을 따라 음부로 내려가리라.”

다시 말해서, 저세상으로 따라가서 아들이 있는 그 곳에 함께 있기를 소원하게 됩니다.


그토록 요셉을 우상처럼 사랑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상은 또 반드시 데려가시잖아요?

 

▲드디어 자기 마음의 우상을 모두 버린 야곱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으로만 해도

정말로 장자 권으로부터 시작해서 이 세상에서의 복을 향하여 쫒아가고, 또 쫒아가고,


자기 마음에 얻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그것을 쟁취하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고 살았던 야곱이

드디어 저세상으로 갈 것을.. 자기 입에서 고백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대한 꿈과, 이 세상에 대한 바람과

이 세상을 향해 나타나는 모든 욕망이 다 죽어버린 야곱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너무 늦었지요. 야곱이 백세가 넘은 시점입니다. 아마 107세 경입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화에 이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일평생 ‘집착’으로 살았습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는 줄 (잘못) 알았습니다.

왜? 요셉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야곱에 초점을 맞추고 계시는

이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겨냥하는 목표가 무엇이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늘그막에 이제 인생을 사는데 험악한 인생이 반복됩니다. 괴롭습니다. 힘듭니다.

생각대로 얻어지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114년 긴긴 세월동안 정말로 애쓰며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장자권에 집착하다가,

삼촌라반의 집으로 떠난 후부터 라헬에게 집착하고,

물질 모으는데 집착하다가,

라헬이 죽은 후에는 이제 자식 요셉에게 집착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한 분만으로 만족할 생각은 안하고

요셉 사랑에 완전히 빠져버리는데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그 요셉을 완전히 야곱의 마음에서 떼어내십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살아야 될 이유도 없고,

살고 싶은 마음도, 바라는 것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되어버리고

입에서 ‘내가 이 세상을 떠나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이 세상에 대한 사랑에 완전히 제로無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일석이조의 구원역사歷史

그리고 이제 이 상태에서 제로를 만드시고 마지막 37:36절에 보면

‘미디안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서 팔았다.’

여러분, 어떤 느낌이 듭니까?


야곱에게서 요셉을 완전히 떼어내시고

이 세상에 대해 더 이상 마음을 붙일 곳이 없게 만드시고

세상을 떠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을 허전하게(깨끗하게) 만드신 뒤에


요셉은 요셉대로.. 하나님께서 팔을 걷어붙이시고

구원의 역사를 진행시키기 위하여 요셉에게 본격적으로 개입해 들어가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시작하시는데...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제 앞으로 계속해서 요셉은 하늘의 소리만 들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소리도, 형제들의 소리도 안 들리고

하늘의 소리만 들어가면서 노예생활로 시작하는 요셉이

총리대신이 되기까지 13년이 걸립니다.


그 동안 야곱은 완전히 요셉이 죽은 줄 알고 있었고

‘이 생이 도대체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 세상에서 갖고 싶은 것을 갖는다는 것,

이 세상에서 욕망이 되어지는 것들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

이 세상 것들을 쥔다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달으면서

하나님께로 가게 됩니다.


일석이조의 구원사史를 하나님께서 수행하시는 것입니다.

그토록 복중腹中에서부터 사랑하시려고 했던 야곱을

그 동안 이 세상에 빼앗겼던 야곱의 마음, 세상으로 보냈던 야곱의 마음을

이제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쥐시고, 요셉을 그 마음에서 떼 내시고...


요셉은 요셉대로 강력하게 하나님의 손으로 쥐시고 이끌어 가시는

일석이조의 사건을 여기서 성취해가십니다.


▲피 묻은 채색옷

채색 옷이 뭡니까?

야곱이 갖고 있던 이 세상 것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마음을 붙이고 있었던 대상이 요셉이고,

그 요셉에 대한 마음의 사랑의 표현이 채색 옷입니다.


그러므로 ‘채색 옷에 숫염소 피가 묻혀졌다’는 것은

야곱의 마음에, 요셉의 피가 묻은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요셉의 피가 묻으면서... 완전히 죽은 줄 압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인 것이에요.

가룟 유다의 배반을 구원사의 도구로 쓰시는 것처럼

사악한 형제들과의 불화를 하나님이 역으로 쓰셔서

야곱으로 하여금 완전히 세상에 대해 제로無로 만드십니다.


그 과정에서, 야곱의 마음에 우상의 상징이었던 채색 옷에 피를 묻힙니다.

이게 바로 복음인데요... ↓

 

▲채색옷(내 사랑하는 것)에 피를 묻히세요.

우리 마음에도 사랑하는 어떤 것이 있지요?

그 사랑하는 것들을 어떻게 내 마음에서 떼어내고,

세상에 대해 제로가 될까요?


내 마음이, 이 세상 것들-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으로.. 어떻게 준비될 수 있을까요?


채색옷에 피를 발라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하는 대상들이 있지요?

거기에 십자가 보혈을 발라야 됩니다.

그것들이 죽은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안 그러면, 야곱처럼, 강제로 빼앗깁니다. 강제로 피가 묻혀집니다.


      ▲적용

자, 사랑하는 내 아들과 딸이 있어요. 마음이 자꾸 빼앗겨요.

그래서 내 마음에 하나님으로 가득 채울 수가 없어요.


이때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일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을 위한 죽음이요, 딸을 위한 죽음으로 믿는 거예요.

내가 사랑하는 대상들을 향해서.. 예수님의 피를 발라버리는 겁니다.


피를 바른다는 게 뭡니까?

말썽부리는 아들, 공부 못하는 딸,

말썽피우는 남편, 마음에 안 드는 아내를.. 보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를 위해서 주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사실은 지금 마음에 안 들고 있는 그 사람이.. 죽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그것으로 인해 마음아파하거나, 그것으로 인해 괴로워하지 말고

마음에서 떼어내는 겁니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분명히 죽었도다.’

초월해 버립니다.

(내가 스스로 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취해집니다.

하나님이 떼어 놓으시면, 그 때는 정말 괴롭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그분의 살이 찢기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창에 찔리고 가시면류관을 쓰신 것을 보면서

‘내가 사랑하는 대상들이 분명히 죽었도다.’ 이렇게 고백하세요.


분명히 찢겼도다. 지금 하나님을 완전히 사랑하지 않고 있는 저 모습,

저 죄인 된 모습으로서의 딸, 아들, 죄인 된 모습으로서의 아내와 남편,

다 십자가에서 그들을 위하여 주님이 죽었다,


저들은 죽은 것이라고 보고

그들의 죄인 됨에서 나오는 행동과, 말과, 삶의 모습에

내가 절대 현혹되지 않고 있을 때


내 마음도 하나님으로 온전히 충만해지고

결국 저들도 다 잘 되어집니다.


▲야곱은 강제 집행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 묻은 채색 옷’을 통해서

오늘도 십자가 사역을 이루어가십니다.

채색 옷.., 내가 사랑하는 마음이 표현되어진 것 아닙니까?

그 사랑하는 마음에다가 주님의 피를 바르시면서

모든 우상의 대상들을 다 마음에서 떼어내면

하나님 한 분 만으로 충만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내게 임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내가 죽은 아들을 따라 저승으로 가고 싶다.’라고 말한 것처럼 37:35

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상태가 될 때

하나님은 내 마음에 들어오시고

이 세상에서의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이 나를 통해.. 수행해 가시게 될 것입니다.



.............................................. 더 읽으실 분 ..............................................


▲대를 이은 장자권 다툼?

결국 요셉이 꿈을 꿨다는 게, 요셉은  장자권의 꿈이라고 생각했을 거에요(총리가 아니라).

형들의 열한 곡식 단이 나를 위해 절을 하고 해와 달과 열 한 별들,

아버지, 엄마와 형제들이 다 자기에게 절한다. 이게 장자 권 아닙니까?

형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또한 ‘채색 옷’이란 것은

원어적으로 그 당시에 왕이나 족장의 후계자가 입었던 특별한 옷입니다.

그러니까 ‘장자권’을 의미하는 옷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형들이 눈에 불을 켜고 요셉을 미워한 것입니다.

그저 옷을 비싼 것 입었다고.. 죽이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겠습니까?


장자 권에 관한 이야기로 불화가 생기면서

요셉을 팔아버리고, 숫염소의 피로 채색 옷에 묻혀서 아버지를 속입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형제와 불화했던 것과 똑같은 현상이

집안에 그대로 대물림해서 일어나면서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그랬던 것처럼, 그대로 속아 버립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섭리하셔서, 야곱이 그 죄값을 치르게 하셨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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