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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관련글 모음 2259

LNCK 2010. 1. 12. 18:00

◈청교도 관련글 모음                               스크랩 글 편집 


 

이 블로그에 게시된 글 중에서 '청교도'라는 단어로 검색한 결과를.. 한 자리에 모아 보았습니다.

 

 

◑청교도적 신앙의 '청빈한 예수상' image 

 

한국 교회는 지금까지 다양한 모습의 예수 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북 피난민들을 위로하는 위로자 예수의 모습,


-전후 사회가 가난했던 시절에는 청계천에서 가난한 자의 친구 예수,


-최근 산업화로 소외 계층이 생기면서 그들에게 밥 퍼주는 예수,


-민족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통일을 위해 애쓰는 예수,


-병을 고치고 가난을 쫓아내는 축복의 예수,


-깨끗하고 의롭게 사는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예수,


-신실한 제자들을 양육해서 파송하는 예수


이런 여러 모습의 예수의 이미지들 중에서,

그래도 가장 전통적이고 가장 보편적으로 서구와 한국에 영향을 미쳤던 예수 상은

-중세 ‘성 프랜시스의 형상’이며,

-청교도적 신앙의 유산으로서 ‘청빈한 예수의 형상’이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그런데 최근에 나타난 색다른 예수상

이른바 CEO(최고경영자) 예수 상입니다.  

모든 일에 유능하고, 탁월한 경영 능력이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지도하는 ‘리더쉽 예수’입니다.


이런 탁월한 경영자적 방식이, 좋다/나쁘다를 일단 떠나서


오늘 내 신앙이, 알게/모르게 그런 예수 상에 크게 영향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자세히 보실 분은 오른쪽을 보세요!  1574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성경은 경건 서적과 함께 읽어야 ....


▶청교도의 신앙 부흥은 앞서 저술된 경건서적 덕분이었다.

성경은 좋은 신앙 서적과 함께 읽을 때 우리의 영적 생활에 풍부한 자원이 된다.

청교도 시대에 ‘이 세상의 성자들’이라고 불리는 걸출한 목회자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16세기 중엽~17세기 중반 사이에 1백여 명의 성학(聖學, the divines - 목회와

신학을 겸한 영적 감화력을 가진 목회자들)들이 저술한 주옥같은 경건서적 때문이었다.


치열한 학문을 통해 연마된 지성과,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성경이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라는 확신,

그리고 거룩한 삶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추구 등으로 특징지어진 청교도 시대의 개화는

그 시대에 부어주신 성령님의 역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거룩한 저술들의 영향을 제외하고는 말할 수는 없다.


▶청교도시대 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청교도들 뿐 아니라, 어느 시대든지 많은 영적인 거장들의 생애적인 회심이나

영적 변화가 독서의 경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면 18세기 전설적인 설교자 조지 휫필드(G. Whitefield)는

청교도 헨리 스쿠갈이 쓴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읽고 회심했으며,


17세기 대중적 청교도 설교자였던 존 번연은 

마르틴 루터의 『갈라디아서 주석』을 통해 회심하였고,


19세기 설교자 새무엘 채드윅

윌리엄 어더의 『불의 혀』를 읽고, 생애적인 성령 충만을 경험하게 되었다.


존 웨슬리

마르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으며(들으며) 회심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며,


17세기 청교도의 황태자로 일컬어지는 존 오웬은.

헨리 스커더(Henry Scudder)의 거룩한 견고함과 평화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자의 삶』

(The Christian's Daily Walk, in Holy Security and Peace)이라는 책을 읽고

거룩한 삶을 위한 생애적인 도전을 경험한 것도 그러한 예다.

 

오웬은 이 책을 읽은 후

30년이 지나도록, 이 책에서 받은 감동을 잊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역사의 교훈

역사적으로 이단에 속한 교회일수록 성경이외에 아무 것도 읽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성경이 풍부하게 의미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 한 사람들이다.


청교도들은 주일을, 하나님께 예배하고 이웃에 선행을 베풀고 신앙서적을 읽으며 지냈다.

이것은 경건한 책들이 주는 영혼의 유익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교회의 역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며 사랑할수록,

신앙서적을 읽는 일에 열심을 내었던 사실을 보여준다.                     < 장경철/ 좋은 책과의 만남

 


 

◑찰스 스펄전이 '설교의 황태자'가 된 것은, 청교도 서적 탐독 때문  

 

Charles Haddon Spurgeon, 1834-1892


신학을 하지 않은 사람.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

163센티미터도 안되는 작은 키.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은 적이 없는 사람.

수천 명의 환자를 치유하면서도 자기 병은 치유하지 못해

늘 고통 가운데 신음하다 병으로 죽은 사람. 이것이 찰스 스펄전의 이력서다.


그러나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자,

세기적인 복음주의 설교가,

전 유럽을 영적 각성으로 몰아넣은 부흥사,

22세의 어린 나이에 매주 1만 명 이상의 군중에게 설교하던 설교의 황태자.

6천여 좌석이 마련된 메트로폴리탄 교회가 그를 위해 세워졌고,

런던의 수정궁에서 설교했을 때는 2만3천 명이라는 기록적인 인파가 운집했는데...


인간이 지닌 한계, 환경이 주는 무력감, 사회의 온갖 비리와 악조건.

이러한 것을 그가 극복해낸 비결은 무엇일까?


▲스펄전의 신학적 뿌리는 청교도 사상

19세기 영국에는 기라성 같은 설교자들이 배출되었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캐리, 구세군의 설립자 윌리엄 부스도 이 시대 인물이다.

그 중에서도 19세기 영국의 설교계를 이끌었던 쌍두마차가 있다.

비국교도 계열의 찰스 스펄전과 국교도 계열의 존 라일.


스펄전은 2천 년 교회사에서 가장 탁월한 설교자로서 '설교의 prince'이라 불리운다.

그런데 스펄전의 모든 설교의 뿌리는 청교도 정신이었다.


스펄전의 약 2만여 장서 중, 6천 권이 바로 청교도 저서였다.

오른 손에는 성경책, 왼손에는 청교도의 경건 서적들을 들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상고하고 깊이 묵상하는 시간들이.. 그를 그 되게 했다.


▲어거스틴→루터/칼빈→청교도→스펄전

썩고 병든 중세교회를 씻어낸 루터의 업적

성경과 더불어 어거스틴의 저서들을 3년 동안이나 불철주야 깊이 상고함으로써

이뤄낸 쾌거다.


그것은 곧 칼빈에게서 조직화되고 체계화되어 칼비니즘이라 불린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철저한 성경 중심, 오직 믿음, 인간의 전적 타락 등

칼빈의 신학의 기반은 어거스틴의 사상이었다.

칼빈은 자기의 신학적 풍요를 어거스틴에게서 채굴하였던 것이다.


청교도들은 이와 똑같은 근원인 성경과 칼빈으로부터 채굴한 신학을

자기들의 삶에 체현시켰다.


스펄전의 말이다. "내가 전파하는 교리는 바로 청교도들의 교리입니다.

즉 그것은 칼빈의 교리요, 어거스틴의 교리요, 바울의 교리요,

성령님의 교리인 것입니다."


▲청교도 가족의 뿌리에서 태어난 스펄전

청교도 스펄전 가문은 1568년 그들이 정착해 온 때로부터 1834년에 이르기까지

12대에 걸쳐서 많은 목사를 배출했다.

엄숙한 청교도적 신앙으로 자녀들을 배양시킨 경건한 칼빈주의 가정이었던 것이다.


찰스 스펄전은 이런 혈통을 지닌 목사 아버지와

역시 철저한 청교도 목사였던 할아버지의 삶을 보고 자라났다.

이런 삶의 터전에서 자연히 청교도 신앙은 그의 신학사상의 틀이요 기초요 목표였다. <챨스 스펄전


 

◑스펄전 → J. I. 패커로 이어지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J. I. 패커(James Innell Packer, 1927~)는

1944년 옥스퍼드 대학시절 회심 후

존 오웬, 리처드 백스터 등 청교도 신학자들의 도서들을 집중 탐독했습니다.

 

그들의 저서들이, 기독학생회 모임 때 온 많은 강사들보다,

<크리스천 삶에 관한 지침에 있어서 더 현실적이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의 유명한 저서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 Knowing God」입니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앨리스터 맥그래스에 의하면)

<하나님에 관해 이것, 저것을 아는 것보다, 하나님 자신을 깊이 알아야 한다>이며,


패커는 <하나님을 알아 갈 때, 지적, 의지적으로 아는 것과 더불어,

정서적으로 깊이 알아야 한다>며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강조했습니다.

쉽게 말해, 교제를 통해 주님의 임재로 들어가라, 그래서 주님을 알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패커를 통해

영국에서 발생한 고귀한 청교도 신앙이 → 스펄전 → 패커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맥그래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에드워즈 → 워필드 → 로이드 존스로 이어지다 

 

*로이드 존스는 한 분야의 책들을 깊이 집중적으로 읽었다.

로이드 존스는 특히 청교도 저서를 폭넓게 읽었다.

성경 다음으로 로이드 존스의 설교에 영향을 미친 책은

일반적으로 청교도라고 알려진 사람들의 저서였다.


청교도에 대한 독서는 그에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친구들이 보내온 결혼 축하 선물 중에는

청교도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신학자요 목회자인 존 오웬 전집 헌책과

리처드 백스터의 전집 헌 책이 포함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청교도 독서는 그 넓이와 깊이를 더해갔다.


사람들은 로이드 존스가 청교도 저서들을 대단히 열심히 탐독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청교도 설교를 도용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청교도에 대한 그의 진정한 관심은 1925년 우연히

리처드 백스터의 최신판 전기를 읽은 데서 비롯되었다.

그때부터 청교도와 그들의 저작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생생한 호기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의 사역 전체가

청교도 독서에 의해서 좌우되어 왔다고 그는 솔직히 고백하였다.


*로이드 존스는 한 사람의 영적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의 전집을 독파했다.

로이드 존스는 29살에 2권으로 된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을 발견한 이후

이를 문자 그대로 탐독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18세기 미국 최고의 신학자이자 설교자였다.

로이드 존스에게 에드워즈의 전집을 독파하는 것은

그의 초기 목회에서 성경 읽는 일 다음으로 가장 큰 자극이 되었다.


로이드 존스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내 경험상으로 볼 때. 내 목회 초년기에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를 통해

얻었던 도움이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간단하게 입증할 수 있다.

물론 에드워즈의 설교뿐 아니라 18세기에 미국에서 일어난 대 부흥을 일으킨

그의 행적도 마찬 가지였다.

 

그리고 에드워즈의 위대한 저서 <종교적 감정론>도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이 모든 것이 가치가 있었던 것은

에드워즈가 영혼의 상태와 조건을 해결하는 데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로이드 존스의 초기 목회시절 그의 영적 성숙과 설교에 진보를 이루게 된

또 한 번의 결정적인 계기는 워필드(1851-1921)의 전집을 읽은 것이었다.

워필드는 헤르만 바빙크, 아브라함 카이퍼와 더불어 3대 칼빈주의자로 불린다.


워필드 사후 뉴욕 옥스퍼드대학 출판부는 1927년과 1931년 사이에

10권으로 된 워필드 전집을 출판했다.

이러한 워필드 전집을 로이드 존스가 만난 것은 워필드 사후 11년이 지난 1932년.

로이드 존스의 나이 32살 때였다.


로이드 존스가 워필드를 읽기 전에는 아무도 그를 신학자나 ·교사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는 워필드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학에서 교리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워필드 전집을 읽은 이후 로이드 존스의 바울서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되었다.


1950년대에 20세기 설교의 고전에 해당되는 로이드 존스의 유명한

‘로마서강해설교’와 ‘에베소서 강해’ 설교의 기초공사가

30대 초반 워필드를 통해서 이루어졌던 셈이다.    <백금산 독서법 / 로이드 존스

 

 

그런데 실제로 위의 (번역)서적들을 읽어보면, 좌절감을 경험할 때가 정말 많습니다.

지루하기도 하고,

무슨 뜻인지 금방 catch가 안 될 때가 있고,

제가 책을 너무 빨리 건성으로 읽으니까 그런 모양입니다.

 

또한 제가, 로이드 존스의 영성 수준에 비슷하게라도 올라가지 못하니까,

그 책이 제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대적 상황, 문화적 상황도 그 때와 지금이 많이 다르니까.. 그런 문화적 차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인데,

위의 거장의 책들을 문자적으로 충실하게 번역하기 보다는,

그 내용을 완전히 자기가 씹어서, 소화해서,

책의 알맹이는 그대로 전달하지만,

그 설명에 있어서, 오늘날 21세기 현대적 용어와, 현대적 사례로 바꾸어

설명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안 그러면 지루하기 쉽습니다.)

 

결국 '21세기의  신학자/사상가'가 필요하다는 말이군요.

 

 

 

◑그 외 단편글  

 

▲교회사에 존재했던 참된 교회들은 환난과 순교를 그들의 표지로 지녔습니다.


교회사가들은 이 세상에 존재했던 <가장 이상적인 교회>는

처음 300여 년 동안 로마 제국 안에 존재했던 초대교회

16~17세기 영국과 미국에 존재했던 청교도들의 교회라고 말하는데,


초대교회와 청교도들의 교회의 특징은

환난과 순교를 저들의 표지로 지니고 있었던 점이었습니다. <김명혁 환난과 순교를 표지로 지닌 신앙공동체

  


▲죄로부터 도망치는 죄인

청교도 시대가 남긴 에피소드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당시 새로 입교한 자매가 나이 든 장로님으로부터 세례문답을 하던 중이었다.

“자매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자신이 죄인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예!”

 

“그러면 지금 예수를 믿은 후에는 자신을 어떻게 느끼십니까?”

“지금은 이전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일면 정답이다.

 

“그러면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은 후에 달라진 것이 무엇입니까?”

“전에는 제가 죄를 향해 달려가는 죄인이었지만    a sinner running after sin

지금은 죄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죄인  a sinner running from sin 입니다!”

 

이 대답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아주 유명한 말이 되었다.          <202 여호와 카데쉬

 

 

리처드 백스터의 독학 Richard Baxter

당시 청교도 지도자 대부분이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서 공부한 석학들이었지만

그는 독학을 했다.

그는 독서를 통해 교부신학, 중세신학, 종교개혁 신학 등을 다양하게 공부했다.

그의 경건과 학식은 당대의 다른 어떤 청교도 목사들보다 뒤지지 않았다.


그가 남긴 3,500페이지 이상의 170여권의 저서 속에 담긴 주제는

거의 모든 조직신학 분야와 실제 성도들의 삶의 전 영역을 다루고 있다.

 

청교도 설교가인 리차드 백스터 목사님은, [참 목자상]이라는 책에서 아주 유명한 말을 했다.


“목사가 목회 잘하는 길은.. 목사 자신이 예수님 잘 믿는 것이다.”



▲토마스 왓슨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고자 할 때


가장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본문의 말씀을 주해하던 청교도 설교가 였던 토마스 왓슨


매우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인도하실 때, 하나님이 우릴 첫 번째로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게로 인도하신다.”




그러니까 사업에 대한 인도를 구하면.., ‘하나님 자신에게로 먼저 인도하시고’


결혼에 대한 인도를 구해도... ‘하나님 자신에게로 먼저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인도에는 반드시 보너스가 따르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의 인도함을 통해서 받게 될 축복(보너스)보다도


먼저 우선적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친밀하심, 깊은 교제의 신비, 주님의 임재가 주는 평안과 확신’등 입니다.



 

 

◈청교도의 <극단적 회심>에 대한 조정  

 

16C 루터, 칼빈의 종교개혁

17C 청교도

18C 에드워즈 / 휫필드 / 웨슬리 

19C 스펄전 / J. C. 라일 Ryle (1816~1900)

20C 패커 / 로이드 존스

이런 계보를 위에서 살펴 보았습니다.

 

그런데 청교도의 <극단적 회심론>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점에서 보완되고, 조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조심스레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의 고난

 

762 눈물의 경고 를 클릭해서 보십시오.

 

 

 

◑‘거듭남’과 ‘제2의 중생체험’


▲청교도 신학에 있어서, ‘거듭남’에 대한 개념정리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오늘날의 거듭남 이해가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넘어서서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 너무 강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거듭남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출발, 영적인 갓난아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넘어서


너무 강화시켜놓았습니다.



그 결과, 거듭남을... ‘성숙한/장성한 믿음의 사람’으로 이해하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특히 거듭남에 대한 청교도들의 글들이 그렇습니다.


거듭나면 신앙의 여러 아름다운 열매가 당연히 맺혀지는 것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성숙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듭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거듭났으면 그렇게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청교도의 후예들입니다. 청교도의 전통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그 신앙의 내용을 그대로 가지되,


오해와 헷갈림의 소지가 있는 ‘거듭남’에 대해.. 용어와 개념을 정리하자는 것입니다.




17~18세기 청교도들이 말한 ‘거듭남’


그리고 그 전통을 이어받은 미국교회가 말한 ‘거듭남’은


사실은 ‘제2의 중생체험’으로 (아니면 다른 용어로) 구분해서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신앙의 성숙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제대로 생활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대해 '거듭나지 못하였다'고 말하는 것은


성령님께서 그에게 행하신 일을, 자신의 생각을 앞세워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은혜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그럼 대충 신앙생활해도 괜찮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제대로 생활하지 못하는 이들이.. 모두 거듭나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충성된 사람으로 장성한 사람으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습니다.


단 ‘제2의 중생체험’을 반드시 거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지 휫필드, 에드워즈 목사님 같은 분들이 설교할 때마다


‘거듭났느냐/ 중생했느냐?’를 무척 강조했습니다.



그 전통이 아직까지 살아있어서 1970~80년대에


미국에서 오신 선교사들은


‘Are you a born again Christian? / 당신은 거듭난 신자입니까?’ 라고 물었는데,



사실 그 의미는


‘당신은 제2의 중생체험을 했습니까?’ ... 이런 뜻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개념 및 용어를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내가 거듭났는가/아닌가?’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 ‘거듭남’ 과 ‘제2의 중생체험’ 

 

 

 

 

▲관련글 : 찰스 콜슨  억측                                                                                                                ▣ 기독교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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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칼빈/ 왕따가 된 예레미야 

 

 

◑청교도 저술가 들의 글 모음

 

죄 죽이기 / 존 오웬  (밑줄 위에 클릭)

[스크랩] 목사의 의무/ 존 오웬

 

유사 그리스도인/ 매튜 미드

 

 

천로역정 (요약집) / 존 번연

근심하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치료/ 존 번연

고난 과 말씀 / 존 번연, 루터

「상한 심령으로 서라」/ 존 번연

경건한 두려움 (경외심)/존 번연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회자의 회개 (17C)

 

 

※참고로, 아래는 설교가들의 대표적 설교가 아니라, 그냥 우연히 randomly 산발적으로 수집한 설교들임

 

에드워즈   참된 부흥 분별 법

에드워즈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


 

휫필드  모든 사람들이 가는 곳 / 조지 휫필드

휫필드 [스크랩] 죠지 휫필드와 찰스피니의 설교분석


 

 

스펄전   악인의 부활

스펄전   포도나무의 나은 점은... 별로 없다

스펄전   열심 

스펄전   지금까지 도우셨으니.../ Spurgeon

스펄전   오라! / Spurgeon

스펄전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 스펄전

스펄전   ‘기록된 말씀’이 ‘직접 음성’보다 더 확실 /...

스펄전  내가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을 들으리니...

            스펄전의 설교가 위대했던 이유


 

J.C. 라일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 J. C. 라일

J.C. 라일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 J. C. 라일

J.C. 라일  휫필드와 웨슬리

 

 

로이드존스 권위, 영광 / 로이드 존스, 유진 피터슨

로이드존스  마틴 로이드 존스,「부흥」 1673

로이드존스 부흥이 오는 방식 (2) 

로이드존스 부흥이 오는 방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