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고난 속에 숨겨진 부활의 생명 고후4:7~15 10.03.28.설교스크랩/정리
◑질그릇이 깨어져서, 예수의 능력이 나타난 예
▲이중표 목사님이 <별세 신앙>을 강조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
목사님이 개척할 때, 열심히 돕던 장로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 장로님은 헌신적으로 봉사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자기주장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하고자 하는 것을 사사건건 반대하였습니다.
목사님은 목회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 문제를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하기로 작정하고
기도원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님, 그 장로님을 변화시켜주시든지, 아니면 다른 교회에라도 보내주십시오.”
이 목사님은 생사를 걸고 몸부림치면서 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네가 죽어라!”
목사님은 혼자서 몸부림치며 기도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으로부터 다른 음성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도원에서 모종의 결심을 하고 내려왔습니다.
이제는 장로님의 반대나, 다른 의견이나, 무엇을 말하든지
그 장로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받았습니다.
자기가 완전히 죽은 것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든지 실패하든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겨났습니다. 목사님이 죽으니까 장로님이 달라졌습니다.
교회도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목사님은 그때 깊이 깨달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죽어야 산다. 이 질그릇이 깨어져야 보배의 능력이 나타난다.
별세목회, 죽음의 목회만이 한국교회의 살길이다!’
▲연탄을 도둑맞은 여집사님 이야기
한 여 집사님이 추운 겨울날 저녁에, 연탄을 잘 피워 놓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밤중에 너무 추워 나가보니, 아궁이에 연탄이 없어진 것입니다.
다음 날 저녁에도 연탄이 잘 피는 것을 보고 잠이 들었는데
밤에 견딜 수 없이 추워서 나가 보니, 또 연탄이 없어진 것입니다.
아궁이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옆방 사람의 소행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지만
교회집사인 자기가 대놓고 싸울 수도 없고 해서
참고는 다음 날 저녁은 자는 척하고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밤이 깊어지자.. 옆방 아주머니가 살그머니 나오더니
자기 아궁이에서 잘 타는 연탄을 빼가는 것이었습니다.
뛰어 나가서 현장에서 잡을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면 큰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아 참았습니다.
이런 일이 무려 두 주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옆 아주머니가 찾아와서 “제가 연탄을 가져간 줄 알고 계셨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실은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서 어려웠는데 점쟁이를 찾아가 물었더니
누구와 실컷 싸우면 남편의 액운이 물러가고 행운이 온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와 대판 싸움을 하려고, 옆집 연탄을 가져갔는데도
도저히 싸움이 되지 않았다고 실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그런 일을 계기로.. 점쟁이의 잘못됨을 깨우쳐 주고 전도하여
그 가정이 모두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집사님은 얼마든지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연탄불을 가져가는 여자와 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틀림없이 그 집사님의 편에 서 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은 모든 사람이 자기편이 되어주어도
예수님 한 분이 자기편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참아주고 견디어주고 용서하여 준 것과 같이
자기도 예수님처럼 복음(용서)의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생명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전도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내 자아가 깨어짐을 통해서
예수의 능력으로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도 깨어지셨습니다.
만약 십자가에서 깨어지지 않으셨다면,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찬송하지 않을 것이고, 부활주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깨어짐을 향하여.. 당당하게 나아가셨습니다.
▲종려주일의 의미 - 십자가를 환호하는 것
종려주일은 예수님의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고난과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죽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람들은, 종려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를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것을 찬양했습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은.. 죽음을 향해서..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종려주일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부활의 기적, 생명의 승리를 위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길, 죽음의 길, 십자가의 길을
호산나 찬양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종려주일입니다.
▲부활의 영광을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기적, 생명의 기적을 보이시기 전에
먼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당했습니다.
죽음과 부활은 함께 오는 것입니다. 고난과 축복은 하나의 양면입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손바닥은 축복이고, 손등은 고난입니다.
손바닥과 손등은 언제나 함께 있는 것처럼, 축복과 고난은 함께 다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난의 길을 걸으면
반드시 축복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수고와 고난을 통해서 축복의 문을 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질그릇에 담긴 보배
그냥 아래 말씀을 그대로 외우면서,
묵상하고, 기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고후4:7~9절까지를 천천히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①이제 여러분들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것들이 아무리 많이 둘러싸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 안에 오신 예수님,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을 싸이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심히 큰 하나님의 능력, 예수님이 계십니다.
②여러분, 지금 답답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불안한 일이 떠나지 않지요?
여러분을 두렵게 하는 것들이 있지요? 그 때문에 답답하지요?
그러나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여러분 안에 이 보배가 있습니다.
심히 큰 능력이신 예수님께서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낙심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③여러분,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있지요. 무시를 당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심히 큰 능력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을 버린바 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거꾸러뜨림을 당하는 사람들은 없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 안에 계신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망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겉모습만 보면 깨어지기 쉽고 연약한 질그릇에 불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안에는 이 보배가 있습니다. 심히 큰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 보배를 가졌습니다.” “이 보배의 능력으로 살지어다.”
이런 십자가의 고통을 당할 때.. 오늘 우리는 <현재적 부활>을 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싸이지 아니하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버린바 되지 아니하고, 망하지 않고,
십자가의 사망이 내 속에서 역사할 때, 부활의 생명이 타인에게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고후4:10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내 질그릇을 깨뜨리십니다.
여러분 보배가 질그릇 속에만 있으면 질그릇 능력밖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옥합에 들어있는 향수는 향내를 발하지 않습니다.
옥합이 깨뜨려져야 그 향기가 진동합니다.
보배가 깨어질 때에만, 진정한 보배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도바울을 예수님처럼 깨뜨리셨고,
오늘날 우리 각자를 깨뜨려 가십니다.
내 속에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고후4:10~12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외우십시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이것이 성경을 관통하는 믿음생활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요12:24~26).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살기 위하여 애쓰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사람들을 위하여
죽기 위하여 애를 쓰는 자들입니다.
질그릇이 깨어져야 질그릇 속에 있는 보배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심히 큰 이 능력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할 때에 나타납니다.
이 보배의 능력은 답답한 일을 당할 때에 나타납니다.
심히 큰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박해를 받을 때에,
그리고 거꾸러뜨림을 당할 때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당하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고후4: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죽음의 고난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역사한다.
여러분, 쿼바디스 도미네라는 말을 알지요?
네로 황제 시대에 로마에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심한 박해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잡혀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네로는 그리스도인들의 우두머리 베드로가 로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베드로를 잡아 죽이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을 박멸하는 지름길임을 알고
베드로를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을 안 로마의 성도들은 ‘자기들은 죽어도 좋지만
지도자 베드로가 죽으면 기독교는 위험해 질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서 베드로를 로마에서 탈출시키려 했습니다.
베드로도 그 생각에 동의하고 로마탈출을 시도했습니다.
드디어 베드로가 성문을 나가는데
예수님께서 로마 성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하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쳐다보면서 “네가 로마에서 죽기를 싫어하니
내가 다시 로마에 들어가서 죽고자 하노라.”하고 말씀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생명의 길이 어디 있는지를 드디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들어와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여러분 그 뜻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하는 베드로가 죽으면
기독교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교인들이 지혜를 모아 베드로를 탈출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길은 달랐습니다. 죽어야 산다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질그릇이 깨어지기 전에는 질그릇 속에 있는 보배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죽음의 고난 속에서 보배의 능력이 역사합니다.
여러분, 죽음의 고난 속에서 생명이 역사합니다.
수고와 고난을 감사하고 기뻐하여야 합니다.
질그릇이 깨어지는 아픔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힘드십니까? 수고하십니까? 땀 흘리는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이제 생명의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생명의 기적을 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더 읽으실 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 주는 예화
여러분, 가난하게 살던 텍사스의 농부 이야기를 아시지요?
그는 텍사스에 엄청나게 큰 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밭에는 농사가 잘 되지 않아요.
애쓰게 농사를 지어도 가을에 거둘 것이 별로 없어요.
밭이 곡식이 자라는 데에 별로 좋지 않아요.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와서 그 밭을 조사했는데
그 밭에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후에 그 농부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는 처음부터 부자였습니다.
나중에 그의 밭에 석유가 매장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밭에는 석유가 매장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석유 밭에 곡식을 심었으니.. 농사가 잘 될 리 있나요?
그는 몰랐기 때문에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가난하게 산 것이 아닙니다.
본래 그는 엄청난 매장량을 가진 유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비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의 보배, 하나님의 능력이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안에 엄청난 하늘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질그릇의 능력으로 사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된 와나메이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기적은 고난, 수고, 희생, 죽음과 함께 오는 것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이며 장관까지 지낸 와나메이커는
가난한 노동자의 가정에 태어나 초등학교도 못나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3세부터 벽돌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갈 때마다 비 오는 날이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교회로 가는 길이 비포장 진창길이어서
비가 조금만 내리면, 사람들의 신과 치마에 진흙이 묻어, 다 더러워졌습니다.
13세의 와나메이커는 자기의 일당으로 받는 7센트로
벽돌을 한 개씩 사서, 교회 앞길을 깔아 나갔습니다.
계산을 해 보니, 자기 1일 임금 7센트로 그 길을 다 깔려면, 2년은 꼬박 걸립니다.
그 동안 와나메이커는 무일푼으로 살아야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꾸준히 그 일을 했습니다. 1개월이 못 되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소년이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전 교우가 감동을 받아,
길 뿐 아니라 낡은 교회당도 새로 짓기로 결의한 것입니다.
진흙탕 길은 13세 소년의 꿈대로 잘 포장되었고,
교회까지 아름답게 신축된 새 건물로 들어섰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에게 생명의 기적을 주실 것입니다.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얻게 하실 것입니다. ▣ 부활, 추수, 성탄, 성찬,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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