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에 관하여 행17:22 -스크랩, 출처보기-
아래 글은, 미신이란,
-비과학적인 어떤 미혹된 신앙이라기보다는,
-성경에 반대되는 모든 신념이나 종교를 ‘미신’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니까,
누구나 미신적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성도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세례 받고 교회 다니지만
미신적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특별히 강단 메시지가 약화되면.. 정통 기독교라도 미신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서론, 미신적이었던 아테네 사람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ye are too superstitious" 행17:22
사도 바울은 온갖 우상들로 가득한 아테네의 상황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행17:16) 아테네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아테네 사람들은 수많은 신들에게 제단을 쌓고 경배를 했는데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행17:23) 에게 세워진 제단도 있었습니다.
독실한 이교도였던 이들 아테네 사람들은
혹시라도 자기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경배를 받지 못하는 신이 있을까 하여
그 신들에게도 경배를 드리기 위해 이런 이름을 세긴 제단을 세워 경배했던 것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이들에게 '종교성이 많다'
혹은 '지나치게 미신적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종교성이 많다'는 말은.. '지나치게 미신적이라'라는 뜻입니다. 주1) 을 참조하세요.
▲1. 미신은.. 참되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족 때문입니다.
이러한 '미신superstition' 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의 부족입니다.
참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분께서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우리가 그분께 나아갈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분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며 무슨 뜻과 계획을 갖고 계신지에 무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지와 두려움 가운데, 온갖 신들을 만들어 그들에게 경배했던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고, 불행을 막으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혹시라도 신들이 자기들에게 벌을 내릴까봐 신들을 달래고
그들에게 제물을 바침으로 자기들의 행복과 번영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의나 거룩함이나 정결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자기들의 죄와 우상 숭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신적' 인 것입니다.
만약 아테네 시민들이,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을 갖고 있었다면,
무조건 제사만을 드리는 대신에
하나님을 믿고, 그분이 원하시는 의, 거룩함, 정결함을 추구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신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지만,
그 신앙이 오직 '문제 해결, 복 받기 위한 수단' 등의 샤머니즘 적이면서
주님과 교제, 주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신부된 성도의 정결함, 성령충만, 개인적 친밀함)
들을 무시하고 있다면... 그것은 미신적 신앙입니다.
▲2. 미신이 심각한 이유는.. 영혼의 멸망 때문입니다.
이러한 '미신' 은 단지 어리석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리석음에 대해 안쓰러운 웃음을 보내며
'저 사람들은 정말 미신적이군! 정말 안됐어.' 하고 말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참된 하나님께 대한 무지는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이며
영혼의 멸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시며 처음과 나중이신 영광의 왕께서 영원토록 통치하십니다!
그런데 '미신적인' 사람들은 이 영광의 왕을 알지 못하며
그분께 영광과 감사와 찬송을 드리지도 못합니다.
자신들의 현 상태도 알지 못하고
자기들에게 닥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과 지옥의 위험도 알지 못하며
그저 모든 거짓과 허상 속에 거하며
자신들의 안위와 즐거움과 자아실현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세적이지요)
이것은 '미신'의 큰 비극이며 슬픔인 것입니다!
▲3. 미신의 판단기준은.. 과학이 아니라, 성경입니다.
유의해야 하는 점은 '미신적' 이라는 것이
단지 과학적이지 못하고 교육받지 못한 상태에서 범하는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것에 대한 어리석은 두려움이나
이단 사상에 대한 맹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과학이 지배하는 이 현대 문명에서는
과학적이지 못한 것을 '미신적'이라고 종종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기준은 과학이 아니라,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과학도 종종 '미신적'인 범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다면 무엇이든지 그것은 모두 '미신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면
반드시 진리이신 참된 하나님께 대한 무지(미신)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기독교적이고 성경적인 것을 조금 포함하고 있다 하더라도
참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게 되면 반드시 '미신적'으로 떠밀려 가게 됩니다.
비록 '성경적인' 것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지나치게 현세지향적이며, 성공주의, 자기계발을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그것은 성상숭배에 못 지 않은 우상숭배이며,
미신적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남미의 기독교가, 미신적으로 빠지고 있다고들 합니다만...)
▲4.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나도 미신적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경각심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가 심지어 매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늘 성경을 읽으며
풍성한 섬김을 가진 독실한 '기독교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유일하고 참되신 영광의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이러한 종교적인 '미신'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과 게으름!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 대한 무지와 무관심과 게으름!
우리가 하나님과 말씀을 향한 두려움과 진지함을 상실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올바로 모르고 있다는 증거이므로)
분명하게 그것은 나에게 치명적인 '미신'을 허용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두려움과 진지함으로' 주의 말씀을 깊이 상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알아야.. 미신적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참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기록된 말씀과
그 말씀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만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5. 설교가 약화되고, 다른 도구(음악, 영상, 행사)들이 너무 개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현대의 복음주의 내에서 혼란스러운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세대의 복음주의는, 점점 더 하나님의 말씀 선포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방식을 통해서도 진리가 전달되고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전제 위에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교회에 처음 나온 '구도자'들이 따분해하는 *구도자 : seeker, 기독교를 알아보려는 사람
강단의 말씀 선포의 변형 및 축소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모든 종류의 문화 사역과 미디어 영상물 등이, (시소처럼) 반대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다루는 '주제'에 있어서도
우리는 점점 더 성경의 명확한 교리와 분명한 가르침에 대한 관심(복음)보다는
보다 더 '전인류적' 이고 '가치중립적' 인 '공공의 선'에 대한 관심,
그리고 '이 시대의 맞는 방식'의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세상의 문학이나 예술을 통해서도 성경적인 것들,
혹은 최소한 인류에게 긍정적인 그와 유사한 가르침들을 찾을 수 있으니
꼭 명시적인 성경 말씀 선포를 통하지 않더라도
특별히 성경 말씀이 익숙하지 않은 '구도자'들의 경우는
이런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 수 있기에
이런 것들을 복음 전도 도구로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한 번 쯤은 그럴 수 있겠지만, 이게 주류가 되면 안 되죠)
또한 이 시대의 모든 효과적인 미디어나 다른 수단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설교는 점점 더 약화되고 있습니다.
저는 비록 도구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많은 도구를 동원하는 중에, 설교를 약화시키는 것은
이 시대에서 이것이 참된 복음에 대한 매우 심각한 왜곡이며,
의도적이든/ 부지불식간에든
'미신'을 조장하는 아주 위험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6. 말씀선포를 대체할 다른 수단은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이 길 외에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성령님께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
곧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는" 히4:12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를 대체할 다른 방법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탁월한 성경 지식이나, 신비한 체험이나,
잘 짜여진 프로그램이나, 화려한 예배나,
캠페인이나, 기독교적 정신의 실천이나,
첨단 멀티미디어 장비들도...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마치는 말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희미해져 갈 때
언제나 유일하신 참된 하나님께 대한 참된 지식도 함께 쇠퇴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점점 더 '미신적'이 되어버립니다.
구원의 영광은 희미해졌고, 거듭남과 중생은 점차 뜸해졌으며,
신학은 제 위치를 떠나 떠돌고,
모든 기독교적인 화려한 종교 행사와 사역들은 참된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으며,
기독교 조직들은 딱딱한 화석처럼 굳어져 갔습니다.
심지어는 세례와 주의 만찬마저도 혈과 육에 속한 어리석음에 따라
'미신적'으로 왜곡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 가운데에는 비참한 영적인 암흑기가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지나간 역사 속에 이미 수많은 실례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미신'과 관련된 주제를 통해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말씀의 약화가, '미신'을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초자연적인 역사하심으로 그분을 아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저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것이나, 가벼운 이 시대의 신앙서적에서 읽은 것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모습의 하나님(미신적 신앙)을 상상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다 연약합니다. 누구든지 잘못에 빠질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여 잘 깨닫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지속적인 무관심과 게으름을.. 계속 용납하지는 맙시다.
참된 하나님께 대한 무지 가운데 '미신'을 허용하지 않도록 합시다.
이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부지런히 자신을 점검합시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도록 힘씁시다.
경박한 세상의 즐거움이나 농담 따먹기로 시간을 낭비하지 맙시다.
그러기에는 이 문제가 너무나도,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오! 은혜로우신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지혜를 허락하시사
우리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
그분을 향한 영광과 찬송이 더욱 넘쳐나게 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1:17~19
.................................
주1)
여기서 "종교성이 많도다too superstitious" 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δεισιδαιμονεστερους(deisidaimonesteros) 인데
이는 그리스어로 '두려워하는fearful' 의 의미를 가진 δειλός(deilos) 와
'악한 영evil spirit' 혹은 (그리스 이교도 문학에서) '하급 영적 존재demon'를
나타내는 단어인 δαίμων(daimon) 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좋은 의미로 사용되었을 때에는
좀 더 독실하고 종교적이며 신을 공경하는 것을 나타내고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을 때에는 지나치게 미신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어로 ‘미신’이란 말에 대해, 사회적으로 2가지 개념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①superstition (미신) - 종교적인 미신을 말합니다. 샤머니즘, 점치는 것 등이 미신입니다.
말 그대로 미혹된 신앙입니다.
②myth (미신) - 생각의 잘못된 관행이나 마음의 고정관념을 뜻합니다. ‘네 잎 클로버를 보면 행운이 온다’
‘암탉이 울면 집안 망한다’ 이건 신앙이 아니라, 그냥 잘못된 사회적 통념, 잘못된 생각의 관행입니다.
이 설교문에서 말하는 미신은 ①번 superstition을 뜻합니다. ▣ 기독교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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