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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 묵상 두 편 (1) 2478

LNCK 2010. 6. 1. 21:33

◈큐티 묵상 두 편 (1)

  


◑1. 영원한 나의 꼬리표              왕상16장                  -출처보기-


열왕기상16장을 묵상하는 가운데 발견한 것 중 하나가,

이스라엘 왕들에 대한 기록이 너무 간단하다는 것이다.

분명 왕들이 이루어놓은 업적들이 꽤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은 다 생략하고,

다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만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서 깨달을 것이 하나 있다.

우리 각자가 결국에는 다 주님 앞에 설 텐데,

그 앞에는 우리의 삶을 기록해 놓은 책이 분명 있다.

그 책에 ‘나에 대해 뭐라고 기록해 놓았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무슨 업적을 이루었는지,

이런 것들에게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하나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신 것에 대한 기록을 보아도,

주님이 세상에서 하신 세상적인 일들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 거의 없다.

분명 30년 동안 열심히 세상 일을 하며 사셨을 텐데, 별 기록이 없다.


반면에 공생애 3년 동안 주님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에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고 살았는지,

어떤 세상적 업적을 이루었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관심이 없으시고,


다만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하였는지에 대한 기록만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충 살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닫자는 것이다.


우리의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성취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

그것에 대한 기록은 영원히 나의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이 세상에서 산 나의 흔적은 나의 죽음과 함께 무덤에 묻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 흔적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이것을 기억하시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하든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이다.

원한 명’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이다.


▶북 이스라엘 왕들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이런 영원한 꼬리표가 붙어 다니지 않아야 할 것이다.


참 감사한 것은, 우리의 흔적을 영원히 지워버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 앞에 나아와서 중심으로 자신의 지은 죄를 자백하고

중심으로 회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흘리신 보혈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지워버리시고 영원히 기억하지 않으신다.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10:17)


그리고 또 감사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수고한 것은,

우리가 어린 아이에게 물 한 잔 대접한 것도 잊지 않으시고 다 기록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상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2. 르호보암의 실패                        왕상12장                    -출처보기-


르호보암 왕 때에 이스라엘이 두 조각났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그는 실패한 왕이다.

그럼 그는 왜 이런 실패를 초래하게 되었는가?

오늘 본문을 깊이 묵상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교훈이 된다.

 

먼저 표면적으로 보면 그는 원로들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동료들의 말을 들은 것이 실패의 원인이다.


그러나 우리는 르호보암이 왜 원로들의 말을 듣지 않았는지

좀 더 깊이 그 이면적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르호보암이 항상 원로들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가 원로들의 말을 아예 무시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애당초 원로들에게 묻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조언을 구했다.)


문제는, 르호보암이 원로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그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면 도대체 원로들이 무슨 말을 했기에, 르호보암이 그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참고로, 르호보암은 41세에 왕이 되어, 17년간 유다를 다스렸다. 왕상14:21)

 

"왕이 만일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왕상12:7


르호보암은, 백성들을 섬기라는 말이 가시처럼 목에 걸렸던 것이다.

로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의 권세와 부귀와 영화를 보고 자란 사람이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그 마음에 어떤 마음을 키웠겠는가?


'나도 나중에 왕이 되면 아버지의 영화보다 더 큰 영화를 누려야겠다!'

아마 이런 야망을 키웠을 것이다.


그런 그가 원로들의 말을 들었을 때에, 어떤 생각을 했겠는가?

사람의 심리를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어른들이 내가 어리다고(41세 가량), 왕인 나를 무시하네. 백성들을 섬기라고? 어디 두고 보자.'


자기와 함께 자라난 젊은 동료들이 한 말에, 르호보암이 쉽게 넘어간 것을 보면

이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뭐라고 르호보암 왕을 부추겼나?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10절)

(나는 아버지에 비해 결코 못한 왕이 아니요, 아니 더 힘 있는 왕이요.. 라는 뜻인듯)

 

르호보암은 이미 그 마음에

아버지 솔로몬보다 더 높아지려는 욕망과 허영심과 교만으로 가득하였기 때문에,

원로들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그러한 마음을 부추기는 동료들의 말은 진리처럼 들린 것이다.

교만과 허영심은 패망의 지름길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하자.


   지도자의 자리는,

   사랑과 덕으로 섬기는 자의 자리이다.

  

   지도자는 사랑공평으로 존경받지 못하면.. 그 자리가 유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으로 군림하려고 했던 르호보암은.. 결국 왕국의 분열을 가져오고 말았다.

 

   한 때 미국의 부시 정부는, 힘과 군사력으로

   아프간과 이라크를 다스리려 했으나, 처음부터 점점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갔고,

   아직도 완전히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으로는 절대 못 다스린다.  

   사랑과 덕과 공평이 없으면(윗 글에서는 섬김).. 지도자의 자리는 실패하고 만다. 

 

   나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공동체에서.. 과연 어떤 수단으로 지도력을 발휘하려고 하는가? 

   권력의 힘, 돈의 힘, 물리적인 힘, 연대와 당짓기와 숫자의 힘..

   이런 힘으로 유지하려는 지도력은 절대로 존경을 못 받는다... 분열만 부추긴다.

 

   지도자가 아니면 막살아도 괜찮다.

   그러나 지도자라면.. 사랑, 덕, 공평으로.. 반드시 존경받는 길을 택해야 한다.              ▣ 크리스천 리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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