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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때 2568

LNCK 2010. 7. 26. 20:47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때           삼상3:1~11              10.06.27.설교녹취/정리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때'를 살고 있다.

그래서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갈 길을 제시해 주는 사람을 기다리게 된다.

 


◑나의 개인적 고민 한 가지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영화 <늑대와 춤을>에 보면, 주인공 던바 중위(케빈 코스트너 분)가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 미국 서부 개척지에 부임하기를 자원한다.

당시 미국의 영토는 아직 애리조나까지였고, 그 변방을 프런티어(전방)라고 불렀다.

이제 주인공이 마차에 보급품을 가득 싣고, 며칠이 걸려서 프런티어에 도착한다.


그는 미국 육군 장교의 자격으로, 거기에 부임한 것이지만,

오직 자기 한 사람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one man post

그곳에서는 타지에서 들어오는 소식을 접하기도 어렵고,

상부의 지시를 받기도 어려웠다.


만일 누가 소식을 전해 주려면, 며칠 동안 말을 타고 와서 전해주어야 하니까,

그런 막막한 외딴 평원에 초소를 만들고, 홀로 근무를 하면서 줄거리가 전개된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영화의 ‘던바 중위’와 같은 심정을 느낄 때가 가끔 있다.

(내가 그처럼 잘 생겼다는 말은 물론 아니고) 그처럼 먼 변방에 초소를 만들고,

혼자서 보초를 서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는 말이다.


본부로부터 멀리 떠나 와 있고, 상부에서 연락이 오지 않는다.

세상 다른 곳에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쟁을 지금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

그리고 제가 근무하는 초소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내게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없다.


목회 전선에서 목회하는 목회자로서, 그렇게 느낄 때가 있다.

물론 세상의 소식은 듣지만,

또한 제가 소속된 노회와 총회도 있고,

주변에 교류하는 목회자들도 있고, 또 한국교회 돌아가는 소식을 접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뉴스이고,

상부heaven에서 영적인 지시가 내려오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누가 상부에서 ‘우리는 지금 이런 일을 해야 되니까, 너는 이렇게 하거라’

라고 말을 해 준다거나

‘우리는 이 방향으로 나아가야 된다’ 라는 방향설정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제가 듣는 메시지는, ‘그런 것은 네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 상부(상회) 기관이 있지만, 

또 한국교회에 어른 역할을 자처하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이런 저런 행사와 세미나도 많이 열리지만,


그러나 그 중에서 정말 방향을 제시해 주는 어른을 찾기가 어렵고,

참 성경적 비전을 제시해 주는 리더를 찾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내가 고대하는 미래 한국교회 지도자상


제가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은,

쉽게 말씀을 꺼내기가 어려운 얘기고, 그러나 필요한 얘기이고,

언젠가/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말이다.

이른 바 ‘한국교회 형편’에 관한 말씀인데...

앞으로 이런 지도자가 꼭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1. 늘 남을 가르치지만, 또한 스스로 열심히 배우는 지도자


한국교회는 큰 교회들이 많고, 많은 목사님들이 목회를 크게 일구는데 성공했다.

그들의 이름은 브랜드 네임brand name이 된 분도 있다.

그렇게 교회를 일굴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분들에게 능력이 있고,

들을만한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영향력이 힘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빛을 잃을 수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몇 가지 살펴보면,

늘 남들에게는 말을 하는데, 본인들은 남의 말을 듣지 않을 경우.. 그렇게 될 것이다.


누가 감히 그런 위치에 있는 분들에게 바른 소리를 할 수 있고,

또 어떤 지도자가, 그런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겠는가?


내가 기다리는 장래 한국교회 지도자상은,

늘 남을 가르치지만, 또한 스스로 열심히 배우는 지도자이다.

세상은 지식/정보화 사회로 변화하면서,

기독교 지도자 역시, 배우지 않으면,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지도자가 끊임없이 배우지 않으면, 주변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면,

자기 메시지에 담긴 왜곡현상이 점점 심화되어도,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교회가 숫자적으로는 성장하더라도,

그것은 왜곡된 신학과 신앙에 근거한 성장이 될 것이다.


교회가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장 기초인,

신학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한국의 대중화된 기독교 브랜드는

그 신학이 (한 편으로 볼 때) 상당히 왜곡되어있다.


그 위에 개신교회를 세워왔기 때문에

이제 그것을 돌이키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2. 올바른 성경적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지도자 (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 지도자는 ‘교회성장 모델의 지도자’였다.

‘교회가 이만큼 성장한 것을 보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방식을 기뻐하시는 모양이다.

하나님이 우리를/그들을 기뻐하시는 모양이다.’ 라고 우리 모두가 생각해 왔다.


처음에는 그랬을지라도, 계속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면,

그 영화의 내용이 반드시 옳고 바르다는 증거는 아니다. (물론 옳고 바를 수도 있지만)

그냥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뿐이지..


어떤 음반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면,

그 내용이 반드시 건전한 가치관과 일치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뿐이다.

인터넷에 접속 숫자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그 내용이 옳은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5병2어로 군중을 먹이실 때, 남자만 5천명이 먹었지만,

‘생명의 떡, 십자가’ 말씀을 가르치시자,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떠나가 버렸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었다고,

‘생명의 떡, 십자가 메시지’가 하나님의 진리가 아니란 말인가? 물론 아니다.

오히려 대중은 하나님의 뜻에 가까워질수록 불편해 하고, 꺼리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 지도자들은, 기독교 신앙의 대중화에는 성공했다.

그런 업적을 높이 평가하더라도,

그러나 그것은 대중화에 성공한 것뿐이다.

‘예수님의 정신’을 가르치는 데 성공한 것은.. 약하다고 본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


앞으로 등장할 지도자 어른은,

후배들, 제자들에게 해줄 말이 있게 되기 바란다.

(후배들을 영화의 ‘던바 중위’로 만들지 마시기 바란다.)


들려줄 말이, ‘여러분도 열심히 목회해서, 교회를 크게 성장시키라

목회 성공은 숫자에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을 많이 모아라’

이런 말도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참된 예수님의 가르침을

당신의 몸으로 직접 살아내시고,

그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나누어주시는.. 그런 지도자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여러분, 예수님이 당신의 종들에게 하실 말씀이

‘그저 목회 열심히 해서 교회를 성장시켜라’ 이것뿐이겠는가?

예수님이 하고 싶은 말씀이 그것뿐이겠는가?

'상부'heaven에서 오는 지시사항이 그것뿐이겠는가?            *상부: 영화에서 던바 중위의 상관에 빗대어


앞으로 등장할 한국교회 지도자는,

상부에서 오는 지시사항을 곧이 듣고,

우리 후배 목회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해 줄 수 있는

그런 지도자가 나오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3. 만약 그렇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그야말로 우왕좌왕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보다는,

목회자 개인의 개성에 따라서 움직이는 교회가 될 것이다.


목회자가 이런 스타일이면.. 이런 쪽으로 가고

저런 스타일이면.. 저런 쪽으로 갈 것이다.

방향을 제시해 주는 리더십이 없으니까,

저마다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목회자가 자기 마음대로 하게 될 것이다.

이 때 교인들만 불쌍하게 된다.


가톨릭교회의 한 가지 배울 점은 성당과 성당간의 차이가 없다.

이 성당에 가도, 저 성당에 가도, 비슷한 신앙칼라와 비슷한 메시지다.

지도자에 의해 같은 방향에 따라서 움직인다. 일관된 방향성이 있어서 좋다.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


▲4. 참고로, 성도의 수준도 상향 조정되어야 한다.


여러분 제가 목회자에 대해 말씀드렸지만, 일반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교회의 수준이 목회자의 수준에 좌우되지만,

성도들이 거기에 장단을 맞춰 주었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중세교회가 면죄부를 판 것에 대해서 교회 지도부를 비판하지만,

그러나 사준 사람들(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팔 수 있었다.

교인들이 면죄부를 사면 천당 보내준다니까, 우르르 몰려들어서 산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교회에 문제가 생기고, 목회자들이 실수하는 것이 있다면,

교인들이 그것을 허용했기 때문이고, 거기에 장단을 맞춰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의 수준은, 성도들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들의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5. 성령의 인도함을 제시해 주는 지도자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세상에 더 이상 계시지 않았지만,

제자들을 홀로 방치하지는 않으셨다.


‘내가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고 보혜사를 보내리라’고 말씀하셨다.

교회에 보혜사 성령께서 함께하신다. 아주 중요한 사실이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상부의 지시’를 따라가는 것은,

결국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길이다.


성령의 인도 하에 감독도 있고, 교단도 있고, 리더십도 존재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교회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은,

교회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교회요,

예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오늘도 세우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잘못하고, 아무리 실수해도,

결국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오,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교회를 세워나가고 계신다.

그래서 결국은 교회가 승리할 것을 우리가 믿는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지도자 상은,

성령님이 교회를 인도하고 계시니까,

그 성령님의 인도를 잘 캐치해서,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리더십이다.


그런데 이런 리더십은 꼭 ‘제도권적 권위’ 일수도 있고, ‘비제도권’일수도 있다.

둘 다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성경을 보나, 교회 역사를 보나.. 그 권위를 둘 다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본문 설명


본문에 보면,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들으니까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을 불러서 당신의 음성을 듣게 하신다.

엘리는 어른이고 지도자이다. 제사장이다.

반대로 사무엘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음성을 들으려면, 엘리 제사장이 들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는 못 듣는다.

인간의 신앙적인 직분과 지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본문에, ‘그 당시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였다’ 라고 하였다. 삼상3:1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사정과도 같다.

바다에 물이 많지만,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이 시대에 말이 많지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은, 희귀한 것이다.


정보의 홍수시대를 이루지만, 거기에 참된 생명의 말씀은 드물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행과 트랜드(trend 동향, 추세)에 따라서

성경적 판단력을 잃고, 이리저리 우루루 몰려다니고 있다.


어느 누구도 ‘이제 그만!’ 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

어느 누구도 ‘이제 우리가 정신을 차립시다.’ 라든가

‘이제 우리가 우리 본연의 성경적 가치로 돌아갑시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욕심을 믿음과 혼동한다.

그래서 욕심을 따라 구하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소원이 강하면, 하나님도 들어주실 줄로 생각하고,

하나님께 무조건 떼를 쓰면 다 통할 줄로 생각하는 풍토가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느 누구도 ‘이제 그만 스톱 stop’ 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드물다.


이 어린 사무엘이 세상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보니까,

하나님은 사무엘 개인의 신상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


삼상1:1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여러분,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문제에 연련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자기 문제가 있겠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사람은, 나라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고,

세상이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또 교회가 지금 어떤 형편에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것에 무관심한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것이다.

자기 일에만 연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신학자 칼바르트는

‘크리스천은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한 손에는 신문을 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세상에 돌아가고 있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세상에 복음 전파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갖고서, 골방에서 대화하며 기도해야 한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회복해야 한다.

경건을 회복해야 한다.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에 우리가 만족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 모두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이 되어서,

세계와 나라와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무엘’들이 되자.


앞으로 ‘사무엘 같이 하나님 음성을 듣고 전하는 지도자’가 나오기를..

나는 기도하며 기대해 본다.                                                                                               ▣ 선지자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