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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자의 권위의 세 받침

LNCK 2010. 7. 28. 15:24

https://www.youtube.com/watch?v=YBaK71DbkGE 

◈사역자의 권위의 세 받침                     엡4:11~12                 10.06.01.설교스크랩, 정리

                                                                          <오중사역, 오중직임>

 

목회자, 사역자의 권위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요?

그것은 부르심, 은사, 사랑의 인격에 있습니다.

이것이 사역자의 권위를 떠받치는 3개의 기둥입니다.

 

이것을 엡4장에 나오는 5직임(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자, 목사, 교사)과 연결해서 살펴봅니다.

참고로 여기 나오는 5직임은, 사역자의 은사와 관련된 구분입니다.

교회 제도에서 인정하는 '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자..'

가 아닙니다.

 

 

▶1. 부르심

 

사역자의 권위는 먼저는 부르심에서 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없으면, 사역자에게 권위가 없어요.

하나님이 그를 ‘사도’로 부르셔야, 사도적인 권위가 오는 것이고,

그리고 ‘선지자’로 부르셔야 되는 것이지..

외적 권위가 사람을 높이는 게 아닙니다.

 

진정한 권위라는 것은.. 사역을 위한 것입니다.

진정한 권위는 사역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사역을 위해서 그 사람을 부르지 않는데 왜 권위가 필요해요?

그냥 겸손으로 옷 입고, 사랑하고, 충성하고.. 그러면 되는 거지

왜 무슨 권위가 필요해요?

 

그러니까 권위는 제일 먼저는 부르심에서 오는 것입니다. 부르심.

그가 하나님이 목회자로 불렀느냐. 목회자로 불렀다면 무엇으로 불렀느냐.

목사로 불렀는가, 선지자로 불렀는가, 사도로 불렀는가?

 

선지자면 어떤 선지자로 불렀는가?

그 교회의 선지자로 불렀는가, 도시의 선지자로 불렀는가, 나라의 선지자로 불렀느냐?

교회 선지자가 도시에 대해서 권위를 가지려면 안 돼요. 

아니면 정말 열방의 선지자로 불렀느냐?

 

사도들도 자기 지경이 있잖아요.

그 교회의 사도로 불렀느냐. 어느 단체의 사도로 불렀느냐.

아니면 그 나라의 사도로 불렀느냐. 아니면 아시아의 사도로 불렀느냐.

아니면 열방을 위한 사도로 불렀느냐.

그거에 따라서 영역이 다 틀려지는 것입니다.

 

그가 권위를 가질수록 영역이 틀려진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권위라는 것은.. 제일 먼저로 주님의 부르심에서 옵니다.

 

 

▶2. 은사

 

그다음에 부르심하고 불가분의 관계의 것이 은사에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는 말씀처럼  롬11:29

부르심하고 은사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저 분이 ‘사도’라는데, 정말 사도인지 어떻게 아느냐?

사도의 은사가 있어야 되요.

 

사도의 은사 - 사도들은 여러 교회를 세우고, 여러 목회자들을 지도하고

여러 교회들을 지도하는 리더십의 은사입니다.

베드로 사도, 요한 사도, 바울 사도가 그런 일들을 했지요.

 

사도는, 어떤 특별한 시대적인 목표가 있으면

그 목적에 부합되는 계획을 세우고, 이루어나가고, 성취시켜나가고 합니다.

그런 게 있어야 되요. 그런 게 나타나야 되요.

그래야 사도의 권위가 생기는 거죠. 사람들이 그를 사도로 인정하는 겁니다.

 

‘선지자’면.. 지식의 말씀이라든지 예언이라든지, 영분별이라든지

이런 걸 통해서 그게 나타나야 되요.

 

‘복음전하는 자’는.. 표적과 기사와 이적을 통해서 그게 나타나야 되요.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막 주께로 돌아와야 해요.

 

‘목사’는.. 양들을 사랑하고, 심방도 잘하고, 이런 게 나타나야 되요.

 

‘교사’라 그러면.. 말씀을 정말 잘 해석해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잘 가르치고.. 이런 은사가 나타나야 되요.

 

엡4:11절에 사역자의 5가지 직임(5가지 다른 사역적 은사)이 나오는데,

그가 사도든지, 선지자든지, 복음전하는자든지, 목사든지, 교사든지

무슨 임명장 받아서 되는 것도 아니요, 자기 명함 파서 다닌다고 되지도 않고,

은사가 자기 권위를 받쳐주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은사가 충만해가지고 아주 잘 가르치는 사람은

당연히 ‘교사’의 권위가 세워지죠.

 

공동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문제의 원인과 나아갈 방향을 갈피를 못 잡고 전부가 헤맬 때,

‘선지자’는 박차고 일어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의 갈 길이다!’라고 외칩니다.

사람들이 가만히 들어보니 맞거든요.

그러면 그를 ‘선지자’의 권위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은사가 뒷받침해 주니까요.

 

‘목사’인데 어떤 사람이 권위가 세워지겠어요?

사랑으로 성도들을 잘 돌보고, 참고, 인내하고, 용납하는 사람들이

‘목사의 은사로’ 존경 받고, 권위가 높아지는 겁니다.

 

‘복음 전도자’인데,

복음 전하고 치유기도 다 했는데 간증하라니까 한 사람도 손 안 들고..

그러면 그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뭐 자기가 자기를 선전하고 다닌다고.. 그 권위가 인정받게 되는 게 아니죠.

 

‘사도’도 마찬가지죠.

무슨 일을 하자 그러는데.. 사람들이 공감도 안 일어나고

‘저거 왜 하나, 저거 하지 말아야 되는데. 저렇게 판단력이 없나?’ 이러면..

사도의 권위가 세워지지 않는 것이죠.

사도는 리더십, 조직력, 행정력이 있습니다.

 

교회들을 세우고, 목회자들이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지교회 목회자들이 스스로 사도에게 지도 받기를 원하고

목회자들에게 정말 적절하게 지적할 것은 지적하고, 칭찬할 것은 칭찬하고,

이게 제대로 세워지고 그래야 그 분이 사도지..

자기가 사도라고 빡빡 우긴다고 그게 ‘사도’로 존경 받겠습니까?

 

(※여기서 ‘사도, 선지자’는, 은사적 측면에서 ‘사도, 선지자’를 말하는 것이지

교회 직제상, ‘사도’를 논하는 것은 아님.

엡4:11절의 신약성경에도 ‘사도, 선지자’를 논하고 있으므로,

지금과 같은 신약시대에도 은사로서의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자, 목사, 교사’는 존재한다고 봄)

 

‘목사’는 성도들이 따라야 목사고..

그러니까 목사들 중에서도 목사(은사가) 아닌 사람이 많아요.

교회에 영 사람들이 안 모인다. 그러면 목사(은사가) 아니에요.

성도들이 안 따르고, 양이 안 따르는데, 무슨 목자/목사입니까?

(이 글은 교단법에 의한 목사 제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는 목사들이 따라야 사도에요. 목사들이 안 따르면, ‘사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권위는 부르심에서 오는 것이고요. 그 다음에 권위는 은사에서 옵니다.

   은사.. 이것은 사역을 위한 것입니다.

   자기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역을 위해서!

 

그래서 부르심이 분명하고 은사가 활성화되면 활성화될수록

사역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사역자의 권위가 분명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물론 이 5가지 은사/직임office은, 5은사가 상호보완적으로 협력해서 서로 도와야 합니다.

   한 사람이 5개은사를 다 가질 수 없습니다. 2개 정도는 가질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전파자요, 사도로 세움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딤전2:7

    또한 자신을 전파자, 사도, 교사로 세움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딤후1:11)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엡4:12

   '내가 뭐니뭐니 해도 최고지!' .. 하면서 독단적으로 나가다가는 마귀가 승리합니다.

   특히 '사도'의 은사/직임을 받은 사람이 .. '내가 최고지!' 하기 쉽습니다.

 

 

▶3. 세 번째로 사역자의 권위는 사랑의 인격에서 옵니다.

 

사랑, 인격, 희생 그런데서 옵니다. 통칭해서 ‘사랑의 인격’이라 부르기로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희생)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의 주가 되셨잖아요. 그 주Lord의 권위가 그저 생긴 게 아닙니다.

 

그래서 ‘권위’라고 하는 것은 인격, 사랑, 희생..

이것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사역자가 지도자로서 권위를 얻기 원한다면.. ‘사랑과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쉽게 예를 들어, 부모의 권위가 어디서 나옵니까?

자녀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모로 존경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모들이 자기들을 위해서 ‘사랑, 희생, 오래 참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혹 보면,

낳아놓고 가정을 팽개친 아버지/엄마를 부모로 인정하지 않는 자녀도 있잖아요.

‘사랑, 희생, 인격’이 없는 사람은, 친부모라도, 그 권위를 인정하기 싫다는 겁니다. 

(물론 이게 꼭 올바르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역자의 권위는, 사역을 위한 것입니다.

권위는 사람을 높이기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기를 높이는데 관심이 없었어요. 바울은 겸손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는 사도권에 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주장을 했어요.

사도권에 대해서 강력하게 주장을 했는데 왜 그래요? 그래야 사역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자기를 일컬어)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표적기사능력을 행한 것이라  고후12:12

  

자기가 사도로 인정을 받아야, 사도로서 인정을 받아야

사도 사역이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야 사도로서 메시지를 전하고 교회의 방향을 끌어나갈 수 있고

사도로서 목회자들을 지도하고 교회들을 지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그걸 보고 우상화다 자길 높인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이에요. 권위는 자기를 높인다고 생기는 게 아닙니다.

그건 잘 못된 사람들 얘기지. 권위는 사역을 위한 것입니다.

 

▶권위의 세 기둥/ 반복 설명 

그래서 권위의 삼발이(세 기둥)가 있는데 하나는 부르심입니다.

아니 부르심을 안 받았는데 왜 권위를 가지려고 그래요?

모든 일이 권위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봉사하는데 왜 권위가 필요해요? 친절하고 겸손하면 되지요.

찬양 인도하는데 무슨 권위가 필요해요. 기뻐 찬양하면 되지요.

예언 사역하는데 무슨 권위가 필요해요?

예언 받은 대로 전하면서 겸손하게 섬기고 나눠주면 되지.

그러니까 여러분 권위라 그러는 것은 ‘부르심’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권위는 은사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다음 세 번째로, 권위는 인격, 사랑, 섬김, 희생에서 오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권위는..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뤄가지고 권위라는 게 형성이 되는 거고

이 세 가지를 통해서 권위가 점점점 더 자라나는 것입니다.

 

▶사역자가 처음에는 권위보다, 겸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이 여러분들 다 목회자 되실 분들이니까 좀 말씀을 드리면

목회자들이 자꾸 착각하는 게 있어요.

신학교 다니고 그러면 전도사다 그러고.. 목에 힘주려 하는데,

뭐 전도사다 그래가지고 권위를 내세우려하는데.. 어리석은 겁니다.

 

권위는 그렇게 오는 게 아닙니다. 권위는 그냥 직분이 갖다 주는 게 아닙니다.

권위는 이 세 가지를 통해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많은 권위가 필요가 없어요. 전도사한테 무슨 권위가 필요해요?

전도사는요 섬기는 단계인 것입니다.

담임목사를 섬기고 성도를.. 그런데 전도사한테 무슨 권위가 필요해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권위는 사역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사한테는 권위가 아니라, 겸손이 필요합니다.

권위는 사역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 사역의 범위 안에서만 권위를 행사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권위도 위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영적인 권위자’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위에서 길게 설명했습니다.

 

▶권위는 자라나는 것입니다. 스스로 키워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전도사가 됐다고, 목사가 됐다고, 권위를 주장하는 게 아니고

권위는 자라나는 것입니다.

 

권위는 움켜쥐려 그러면 안 되고.. 자라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영적인 권위자’로 존경 안 해주면,

먼저 자기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를 돌아보는 것이 현명합니다.

‘괜히 사람들이 질서를 모른다’며 씩씩거리면.. 더욱 존경 못 받습니다.

 

자기 부르심이 드러나게 되고,

자기 은사가 나타나게 되고,

자기가 사랑의 인격을 올바르게 나타낼 때..

거기서 영적인 권위가 생기는 것이지..

 

그게 안 되니까, 사람들이 자기를 영적 지도자/사역자로 인정하지 않는데,

자기가 성도들만 타박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현실적으로 요즘, 누가 ‘전도사’라고 알아줘요 요새?

   안 알아줘요. 무시 안 하면 다행입니다.

   그러면 세상 말세라고 욕할 겁니까? 아닙니다.

 

   자기 은사가 자꾸 확증이 돼서 드러나고 그러면서

   저 사람이 겸손하고 성숙하고 인격이 훌륭하고 그러면서

   참 충성되게 일하고 사람들을 섬기고 희생하고 이러면서

   자기 권위가 점점 자라나는 거죠. 그게 되어야 영적 권위가 생기는 거죠.

 

   자기 스스로 말합니다. ‘내가 전도사니까 전도사한테 순종해라.’

   그러면 다들 속으로 ‘웃기고 있네’ 그럽니다.

 

지금 자기가 크게 존경을 못 받고, 자기 귄위가 크게 인정을 못 받고 있어도,

점점 부르심 안에서 자기 소명이 뚜렷해지고,

자기 사역의 은사가 점점 커가고,

연단을 받으면서 자기 인격이 점점 성숙해가고, 희생하고, 헌신해가면서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점점점 권위가 커지고

그러면서 점점점 영향력이 커지고.. 점점점 자기 권위가 비례적으로 커지고,

그러면서 자기 사역이 점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목사님들이 이걸 모르기 쉬워요.

   그래서 부목사님들이 갑자기 막 자기 권위를 내세우고 그러면.. 뭘 착각하는 겁니다.

 

영적인 권위는,

부르심과, 은사와, 사랑과 희생을 통해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오늘, 사람들이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고 속으로 화내지 마시고,

내 권위를 내 스스로 점점 더 키워나가야 하겠습니다.                                                        ▣ 리더쉽, 목회자 

그러면 어느 날, 사람들이, 내 권위를 인정하고, 영적 지도자로 존경해 주는 날이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