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러브콜 호1:1~5 -설교스크랩, 출처-
호세아서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그 끈끈한 사랑을 저와 여러분들이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사랑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테레사 여사는 '진정한 사랑에는 고통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로 가게 한 것은 로마 군인의 위협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호세아서가 보여주는
호세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감내하시면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메시지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으려면, 해산의 고통을 해야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아내가 해산을 할 때 남편이 옆에서 지켜봅니다.
과거에 우리 남편들은
아내가 해산할 조짐이 보이면 친정어머니에게 다 맡기고
자기는 직장으로 출근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내가 해산하려고 하면, 남편도 함께 산부인과로 출근을 하지요.
그리고 옆에서 지켜 해산의 고통을 같이 나눕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어요.
해산의 고통을 같이 느끼고 목격한 부부일수록 가정에 대한 애착이 크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한 생명을 얻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소중한 일인지를 실감하는 것이지요.
사랑 중에서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감당해야 할 사랑의 대명사로
해산의 수고를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도 지난 20년 동안 해산의 수고(사랑의 고통)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과거의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자면, 눈물 없이는 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해산의 수고들이 추억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있게 하는 교회의 원동력이 된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내일을 힘 있고 도전적이며
때로는 모험적인 일을 감당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적용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고통을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예수님도 나를 사랑하시므로, 십자가를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오늘 나에게 어떤 '사랑의 고통'이 있습니까?
나는 그것이 고통스럽다고, 피해가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 눈물을 흘린 사람만이, 내일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시126:5
오늘 나에게, 만약에 뚜렷한 인생의 결실이 없다는 것은
지난 10년 동안 내가 고통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살았다는 결과입니다.
앞으로 10년 후에, 내가 후회하지 않으려면, 10년 후에 내가 뿌듯하려면,
오늘도 열심히 '사랑의 고통, 눈물의 씨앗'을 심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는 말씀입니다.
◑2. 하나님의 침묵
이 '침묵'은 방관인가요? 관심인가요?
아마 둘 다 될 것입니다.
▶북왕국이 가장 강성할 때,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사랑하셨습니다.
남유다에 웃시야, 요담,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왕으로 이어 내려올 즈음에,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왕이 된 때였습니다. 호1:1
이때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주신 말씀이, 호세아서의 시대적 배경입니다.
여로보암 2세는 북왕국 초대 왕 여로보암(1세)과 구별하기 위해
'여로보암 2세'라고 말하는데, 당시는 북왕국 역사상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부분에서 가장 강력하고 풍성한 시기였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여로보암 2세는 통치를 잘한 성공한 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를 시켜 말씀하시니라"라는
충격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그 말은 '그 전에는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여로보암 2세가 왕으로서 모든 면에서 잘되고 있다는 바로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았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영적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비로소 호세아가 예언의 말씀을 받기 시작한 것이.. 호세아서입니다. 1:2
▶아브라함이 불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했을 때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나이가 많아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가정에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들은 꿈에 부풀었고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생기지 않았고 고민하던 그들은,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우리가 너무나 바보스럽게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렸나보다.
우리 집에 젊은 여종 하갈이 있는데 왜 그걸 생각을 못했을까?' 하면서
아브라함은 하갈을 통해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이 13세가 될 때까지
아무리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아도, 번제를 드려도..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침묵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부부가 싸우고 치고 받는 것이 차라리 낫지요.
말 안하기로 작정을 하면 그건 지옥입니다.
친구끼리 서로 치고 받는 것이 차라리 낫지요.
“난 지금부터 쟤하고 말하지 않겠어"하고 침묵한다면 참 고통스럽습니다.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무언의 메시지
하지만 '침묵'은, 다른 면에서 보면, 상대방에 대해서 무관심이 아니라,
가장 예민하게 관심을 지금 가지고 있는 상황이지요.
'침묵'은.. 아직 그를 지켜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행위에 대해서 너무나도 분노하시면서
13년 동안 아브라함의 제단의 제사를 침묵으로 일관하셨어요.
그 말은 지금 가장 아브라함의 가까이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보시면서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지금 제 정신이냐?" 그 말이지요.
13년 만에 응답하시면서 주님의 첫 마디는 놀라운 것입니다.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창17:1
"너는 앞으로 다시는 경거망동하지 마라!" (이번은 봐 준다) 그 얘기입니다.
그가 99세 때, 하나님은 13년의 침묵을 깨시고, 아브라함과 다시 교제하십니다.
이렇게 13년 만에 침묵을 깨시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침묵하시던 하나님이 비로소 호세아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1:2
▶적용
①만사가 태평하고 잘 될 때에라도.. 하나님이 침묵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나는 만사가 무난하게 잘 된다고.. 하나님의 침묵에 혹시 무관심하지 않습니까?
②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나도 덩달아 침묵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내적 감동)하시도록.. 내가 계속 하나님께 '부벼야' 합니다.
◑3. 하나님은 결코 쉽게 버리지 않으십니다.
음란한 고멜은, 영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1:2
라는 말씀은, 고멜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은 이스라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호세아가 하나님을 상징하고,
고멜은 행음한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행음한) 이스라엘을 여전히 연애하십니다.
호세아서를 읽다 보면 제일 마음에 부담이 되고 걸리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얻어서,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는 부분입니다. 1: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은혜가 큰데
사실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저도 학생 시절에 이 본문을 보면서
'참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을 하신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에게 말씀합니다.
“이 사랑하는 남편, 오직 평생 바라보아야 할 그 남편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향해서 행음하고 있는 저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
그 백성을 아내 삼아서 아들을 낳으라."는 것이지요.
지금 주님은 고멜같은 이스라엘에게 사랑의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하니 아내로 내가 맞기를 원하니
나의 품으로 돌아오라"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인 줄 믿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이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사랑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도 커요.
▶저/설교자도, 지금까지 몇 번이나 죽을 뻔 했는데, 주님이 살려주셨습니다.
비록 고멜처럼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하나님이 기회를 재차 주신 것입니다.
①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모님들은 다 논에 일하러 나가시고,
저 혼자 뽕나무에 올라가서 뽕나무의 뽕을 따려고 했습니다.
제가 뽕나무에 올라간 기억은 있는데,
눈을 떠보니까 집이예요. 그래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거기서 떨어져서 기절해서 하루 종일 땅바닥에 누워 있다가
밭의 일 끝나고 들어오시던 동네 분들에 의해서 발견이 되어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는 그런 말씀을 들었어요.
아마 그때도 뇌진탕으로 죽을 뻔 했겠지요.
②중학교 2학년 때는 제가 사경회에 참석했다가
성도들이 민박으로 먼 곳에서 온 성도들을 다 보살폈는데
새 손님 왔다고, 새 집에 연탄불을 때지 않던 방에, 처음으로 연탄을 넣었는데
저를 포함해서 장로님 아들과 권사님 아들 몇 명이 함께 자다가
다음날 새벽에 4명이나 죽었어요. 그날 사경회가 아수라장이 되었어요.
겨우 살아났지만 다음날 우리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또 사경회에 참석했어요.
③제가 군에 있을 때는, 청평 59후송병원 앞길 언덕길에서
비오는 날 트럭 위에서 잔뜩 시멘트를 싣고
그 위에 우리 군인들이 올라앉아서 작업을 하러 가던 중에
차가 건물을 들이받았고,
그 건물 미장원에 주인 어머니와 딸 두 사람이 즉사했습니다.
트럭 위에 탔던 우리 군인들도, 공중에 붕 떠올랐다가 떨어졌는데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다 물이 나오는 거예요.
저만 어깨로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서 한 일주일 입원해 있다가 나왔고,
다른 분들은 다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공중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시간이 1-2초도 안 될 터인데
그때 제 생각에 “아, 이제는 죽는구나." 그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그 짧은 시간에... 그리고 짧은 시간에 뭔가를 마무리를 해야 할 텐데
무얼 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굉장히 아쉽지요.
“하나님 앞에 꿈도 많고 할 일도 많은데 이제 죽는구나"
그 1-2초 동안에 엄청난 생각들이 지나갔어요. (보통 파노라마가 지나간다고들 합니다.)
결국 방법이 없잖아요. “주님께 맡깁니다!" 하고 떨어졌는데,
그리고 저도 기절했는데 59후송병원에서 저는 일주일만에 퇴원했어요.
죽음의 문턱은 저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많이 경험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또 경험할 지도 몰라요.
여러분에게 지난 한 해 동안의 위기는 언제였습니까?
아니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위기와 곤경은 언제였습니까?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을 뻔 할 때였습니까?
사업이 망해서 부도가 나서 도망쳐야 할 그러한 상황이었을 때입니까?
아니면 부부관계가 심각해서 이혼 직전까지 간 그때였습니까?
아니면 사랑하는 자녀나 배우자가 죽어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으로 몸부림칠 때였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집나간 고멜을 부르시듯
불순종하고 방종하던 우리들을.. 몇 번이고 재차 기회를 주셨습니다.
먼저 이런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추억하며, 감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인생을 살면 살수록, 우리는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구나."
그때부터 우리는 겸손해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버릴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행음하고 우상의 길로 가서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그래서 첫 번째 아들을 낳았더니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해라" 1:4
그 말은 “내가 포기했다. 버리겠다" 그 말입니다.
이 땅의 자손들은 내가 포기할 수밖에 없을 만큼,
'사랑을 받을 수 없을 만한 그런 존재'라고 하는 것을 이름으로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정말 확신하고 있습니까?
▶적용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신다면,
오늘 나는 내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내가 그런 사랑의 용납을 받았다면, 나도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고 용납합니까?
........................................
▶1:1절이 담고 있는 속뜻 (성경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의미심장한 내용임)
바울이 전한 복음을 유대인이 거부하자, '내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고 했는데,
마찬가지로, 호세아도, 북왕국에 예언을 선포했으나,
결국 예언을 받은 사람들은, 엉뚱하게도 남왕국이었다.
이것이 호1:1절이 담고 있는 속뜻인데...
"남왕국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호1:1
호세아가 북왕국에서 예언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왕국 왕인 웃시야(783-742)가 먼저 나오는 것은 흥미롭다.
(북왕국 예언자 아모스 역시 남유다 왕 웃시야를 먼저 언급한다.)
여로보암 2세는 예후 왕가에 속한 왕들(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2세, 스가랴)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왕이다.
앗시리아가 내부 문제에 붙들려 있는 동안, 여로보암 2세는 영토를 최대한 넓힐 수 있었다.
요단강 너머로 영토를 확장했고, 심지어는 아람의 다메섹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암 6: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대는 ‘영적으로’ 문제투성이의 시대였다.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는, 이 시대를 악의 시대로 규정한다.
정치 경제 종교 사회 사법 어느 하나 온전한 곳이 없었다.
(소선지서는 대부분 이 '여로보암2세 통치시대'를 겨냥해서 예언하고 있다.)
여로보암2세가 속한 예후 왕가 사람들은 얼마 가지 않아 문을 닫고 만다.
한마디로 말하면, 북왕국은 여로보암 2세때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다가
그 이후로 급전직하로 추락한다. 자세히 설명하면,
내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여로보암 2세의 아들 스가랴(746-745)가 살해되고
그를 살해한 살룸은 1달만에 므나헴에게 죽임을 당한다.
친앗시리아 꼭두각시 정권인 므나헴 정권은
그의 아들 브가야 때에 군벌 베가에게 살해당한다.
베가는 다시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이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과 호세아라는 군인에게 살해당한다. (쿠데타에 쿠데타가 거듭 일어날만큼 어수선했다.)
그러나 호세아서 1:1절은
남왕국 왕들의 이름은 4명을 모두 열거하면서도
동시대인 북왕국 왕들이 통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에 언급한 북왕국 왕들의 이름을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여로보암2세만 언급한다.
즉 남왕국의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를 언급했으면
동시대인 북왕국의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야, 베가 등을 똑같이 언급해야 되는데,
여로보암2세만 언급하고 끝내버린다.
이것은,
호세아서는 북왕국이 멸망한 후 유다의 관점에서 최종 편집된 것을 알 수 있다.
실로 호세아서는 북왕국에 대한 심판선고/회개촉구와 유다에 대한 선포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1:7; 1:11; 3:5; 4:15; 5:5, 10, 12, 13, 14, 6:4, 11; 8:14; 10:11; 11:12; 12:2).
이는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의 책 모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호세아의 예언은,
결국에는 북왕국(여로보암2세) 보다는
남왕국(웃시아,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때 주로 효력을 발휘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이 호1:1절이 담고 있는 속뜻이다.
북왕국을 향하여 여로보암 2세 때 선포된 예언을
오히려 남왕국에서 웃시아,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귀담아 들었다는 뜻이라고 본다.
왜 호세아의 선포는.. 선포된 이스라엘서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유다에게만 교훈이 되어야하는가?
호세아서를 읽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리의 말씀으로 읽어 회개의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펀 글 정리) ▣ 사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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