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욕은 낡은 옷처럼 벗어버려야 삼하 11:1~5 이기남 목사 06.04.23. *원제목 : 정욕
◑1. 탐식과 정욕
정욕의 죄는 탐식의 죄와 아주 닮았다.
어떤 사람은 한평생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고 탐식의 감옥에서 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한평생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정욕의 감옥에서 살다가 간다.
탐식이 절제되지 못한 식욕이라면, 정욕은 절제되지 못한 성욕이다.
식욕이란 것은 필요하다. 식욕이 없으면 큰일 난다.
그러나 절제되지 못한 식욕은... 탐식이고, 그것은 죄다.
마찬가지로 성욕도 없으면 안 된다.
우리 부모의 성욕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절제되지 못한 성욕은... 정욕이라는 죄가 된다.
잘못된 식습관과 식욕관리가 축척되어 습관으로 나타나는 죄악이 탐식이라면
정욕도 마찬가지로 성적욕구를 절제하지 못하는 습관의 누적으로 오는 결과다.
어느 날 갑자기 정욕의 죄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습관이 어느 날 결정적인 범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함께 생각할 다윗의 경우다.
밧세바와 더불어 간음의 죄를 저지른 다윗 왕은
어느 날 갑자기 이 죄 속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본다.
◑2. 정욕의 특징
본문 말씀에 앞서, 사무엘하 5장 1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취하였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
다윗은 모든 지파의 왕이 되었다. 아주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다윗 왕은 예루살렘에 올라온 후, 후궁들을 많이 거느리기 시작했다.
그 당시 문화적으로 왕이 후궁들을 소유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다윗이 정욕을 절제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웃 나라들과의 동맹관계를 고려하더라도, 절제 못한 면은 사실이었다.)
다윗은 이미 여자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었다. 정욕의 살을 찌워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많은 여자들로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은 아이러니하다.
다윗은 어느 날 그 당시의 법으로도 허용되지 않는
결정적인 범죄 속에 떨어지게 된다...
▲1. 정욕은「현실도피」의 죄악이다. (삼하 15:1)
정욕이라는 범죄가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스트레스, 현실의 긴장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어 하는
현실 도피의 심리이다.
사람들은 삶의 무료함을 깨트려보기 위해,
혹은 삶의 활력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그럴듯한 명분을 가지고
성적 모험에 나선다. 그리고 마침내 정욕이라는 죄 속에 들어간다.
그러나 밑바탕에 숨어 있는 가장 큰 동기는 현실도피다.
다윗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 신복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저희가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으니라.' 삼하 15:1
전쟁이 일어나서 다윗이 부하와 병사들을 다 전선에 내보냈다.
그러나 다윗은 아직도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다. 다윗답지 않은 일이었다.
이전에 다윗은 전쟁이 일어나면 항상 앞장을 섰다.
전선에서 함께 밤을 지내며 병사들과 함께 싸우던 다윗이
이번에는 부하들을 다 전선에 내보내놓고 혼자 예루살렘에 남은 것이다.
▲환상 속으로 도피하는 심리 (15:2)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와 보이는지라.' 삼하15:2
저녁때에 침상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윗은 하루 종일 잔 것이다.
하루 종일 자다가 일어나서 지붕을 거닐다보니 무엇이 보였는가?
목욕하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다윗은 부하들을 다 전선에 보내고
혼자 예루살렘에 남은 것이 미안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죄책감 때문에 다 잊어버리려고 하루 종일 잤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때 목욕을 하는 한 여자가 눈에 띄자 그는 갑자기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현실도피의 심리다.
심리학자들의 진단에 따르면, 이른바 정욕, 간음과 같은 죄에
떨어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공통된 심리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환상 을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환상 속으로 도피한다.
▲포르노 중독은 환상을 좇는 현실도피
사람이 성장 과장에서 어떤 성적인 호기심에 이끌려 포르노 같은 것을 잠시
접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포르노에 중독 되어 빠져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환상 속에서 사람을 찾고, 그 환상 속에 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현실 적응력이 떨어진다.
공상에서 공상으로 계속 도피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무기력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의 건강함이 파괴되어 간다. 이것이 현실 도피의 심리다.
▲기독교는 현실주의
그러나 기독교는 어떤 종교인가?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는
"기독교에 어떤 주의가 있다면 그것은 현실주의다." 라고 지적했다.
기독교는 현실을 도피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과 대결하라고 말한다.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하라고 말한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고 한다. 수1:9
그러나 사탄은 어떻게 하는가? 자꾸 환상을 보여준다.
사실이 아닌 환상, 그것은 공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아 그 환상 속으로 도피한다.
그래서 점점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환자, 건강함을 상실한
환자처럼 돌변해간다. 여기에 정욕이라는 이름의 무서운 죄악이 있다.
그것은 우리를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하는 죄악이다.
▲2. 정욕은「인간을 도구화, 소유화」하는 죄악이다. (15:3)
정욕에 빠진 사람에게 보이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상대방의 인격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의 성욕을 충족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 생각이 없다.
매춘의 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 매춘 행위의 본질이 무엇인가?
인격이 없고 돈으로 성을 사고 파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다르다. 사랑은 인격이 있다.
거기에는 인격적인 교감이 있다.
상대방에 대한 호의가 있고 배려가 있고 교제가 있다.
이 따뜻함 속에서 인격은 자라고 열매 맺는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주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정욕은 철저하게 빼앗는 것이다.
힘으로, 또는 돈으로 빼앗는다. 그것이 정욕의 본질이다.
인간이 정욕에 빠지면 인격을 떠난 성교행위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된다.
이런 남자를 보고 여자들이 '짐승 같다'고 하지 않는가?
인격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런 사람은 성교행위에만 몰두하기 때문에
그 욕구가 점점 더 강렬해진다. 점점 더 큰 자극을 찾아 떠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빠지게 되는 마지막 종착역이「변태 성욕」입니다.
사디즘(sadism), 매저키즘(masochism), 동성연애, 심지어 짐승과의 수간 등..
이런 것들은 정욕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불행한 것은 현대의 개방된 성문화가 이런 변태 성향을 부채질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여기에 속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로맨스라고 착각하고 삶의 모험이라고 착각한다.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마귀는 우리가 사람들에게 인격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우리로 하여금 인격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욕구의 노예가 되도록 만든다.
상대방의 인격에 대한 관심은 갖지 않고
다만 그 사람을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 보고, 소유하도록 만든다.
▲밧세바를 소유화 하다.
목욕하는 여자를 본 다윗은 어떻게 하는가?
'다윗이 보내어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고하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삼하 15:3
다윗이 여인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성욕과 정욕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성적 욕구는 건강한 사람의 증거지만 그것이 잘못된 계획 아래
구체적으로 발전될 때 정욕의 영토 안으로 들어간다.
그 여인은 우리아의 아내였다. 그런데도 다윗은 사자를 보내어
자신이 가진 힘과 돈으로 상대방을 소유하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을 도구화, 소유화하는 범죄다.
▲이러한 범죄의 일차적인 책임은 남자들에게 있다.
그러나 여자에게도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는 그리스도인 여성들이 아름다워질 특권이 있고
또 아름다워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노력과 남을 유혹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다른 사람을 유혹하는 여성이 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3. 정욕은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죄악이다.
정욕이 죄인 줄 알면서 왜 사람들이 이 죄에 빠질까?
히브리서 11장 24-2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 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
여기에서 '죄악의 낙'이라는 표현을 보시라. <죄에는 쾌락이 있다>
사람들은 순간적인 죄의 쾌락 때문에 거기에 빠진다.
사탄은 우리에게 쾌락을 보여주지만 쾌락 저 건너편에 있는,
우리가 지불해야 할 값비싼 대가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사탄은 술의 쾌락을 보여주지만
술이 깬 후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보여주지 않는다.
사탄은 마약의 쾌락과 흥분을 보여주지만
그 후 그 사람의 무너지는 인생은 보여주지 않는다.
사탄은 정욕을 로맨틱하게 보여주지만
그 정욕의 죄가 가져올 가정 파괴, 인격 파괴,
또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그 값비싼 대가는 결코 보여주지 않는다.
▲다윗이 치른 대가
만약 다윗이 그 결과를 알고, 또 보았더라면 범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윗은 어떤 대가를 지불했는가?
자신의 간음죄를 덮기 위해서 여인의 남편인 우리아를 죽인다.
전쟁터의 가장 위험한 곳으로 보내서 죽게 한다. 살인죄를 범한 것이다.
또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서 계속 거짓말을 한다.
그들 사이에 아기가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징계로 7일 만에 죽고 말았다.
다윗의 죄의 대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윗이 아들 암논이 이복누이였던 다말과 간음하는 등..
자식들이 아버지의 행태를 그대로 물려받는다.
다윗은 신하들로부터도 더 이상 존경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압살롬으로 인해 다윗의 왕국은 휘청거린다.
이것이 다윗이 한순간에 범한 정욕이라는 죄의 대가이다.
그런데 지금도 이러한 똑같은 죄를 저지르면서
모험 속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저는 간음이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죄는 비록 용서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거기에 따르는 대가가 너무 큰 죄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반드시 죄는 삯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값을 받아낸다.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이것은 육체적 사망뿐만 아니라
인격의 사망이고, 가정의 사망이고, 가치의 사망이다.
정욕은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죄악이다.
◑3. 정욕에서 벗어나는 길
▲1. 회개하는 것이다.
다윗은 회개했다. 시편 51편에 보면 다윗의 참회의 시편이 나온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다윗이 너무 늦게 회개했다는 것이다.
조금 더 일찍 회개했더라면 상처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그를 책망하시자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던 다윗은 비로소 참회의 기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어거스틴의『참회록』에 보면 어거스틴이 마니교 라는 이단에
빠져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기도하기를
“하나님, 저를 이 정욕에서 건져주십시오!” 하고 회개를 했다.
그런데 그 기도를 하면서 동시에 자기 마음속에서
또 다른 자신이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은 건져주지 마소서!” 하는 모습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는지 모른다. 회개는 지금 당장 해야 한다.
지금 이 죄 속에 빠져 있는 분이 있다면 당장 회개하시라.
유혹을 느낄 때 요셉처럼 당장 그 곳에서 뛰쳐나와야 한다.
당장 끊어야 한다. 단칼에 끊어야 한다. 상황이 너무 곤란하다고 생각되면
유혹을 느낄 수 있는 상황과 장소를 거절하고 차라리 멀리 떠나시라.
▲2. 사랑하는 것이다.
회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마땅히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사랑하시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남편과 아내를 사랑하시라.
남편과 아내 속에 주님이 주신 인격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시라.
그리고 주님이 주신 그를 사랑하시라.
그러면 거기서 넉넉한 인격적인 사랑, 진정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
최근에 읽은 '리 스트로벨'의 책『하나님의 파격적인 주장』에 보면,
과학자들의 데이터 분석 결과를 제시하면서,
미국의 여러 집단들 중에 성적 만족도가 제일 높은 집단은
복음주의적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이고,
지속적으로 관계에 만족하는 여자들은 보수적인 개신교도들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것은 복음을 깨닫고 또 주님 안에서 함께 사랑하는 부부들이
인간적인 사랑에서도 훨씬 더 풍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성경이 제시하는 '결혼, 성관계, 이혼' 등에 관한 원리들이
변함없이 가장 정확한 것임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 사랑을 회복하시라.
다시 내 아내, 내 남편 앞에 새로운 사랑의 시선으로 서시라.
참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란다.
정욕은 금욕이 아니라 사랑으로 물리쳐진다. 정욕은 유사, 사이비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 사랑해야 할 대상을 바르게 사랑하는 것만이 정욕을 물리친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누구를 사랑하고 계시는가?
▲3. 거룩한 일에 바빠지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제부터는 거룩한 일에 바빠지시라.
마귀에게 틈을 주면 안 된다. 사탄에게 틈을 주지 마시라.
다윗은 기회를 주고 있었다.
다윗이 그 때 전쟁에 나서서 자기가 해야 할 의무를 다 하고 있었다면
이러한 죄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거룩한 일에 바빠지시라!
기독교 철학자 중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매춘의 유혹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무척 괴로워했다.
"하나님, 저를 거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데 그것이 쉽게 되지 않았다.
그러나 드디어 그가 대답을 발견했고,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한다.
마음의 깨끗함, 진정한 마음의 깨끗함은
오직 한 가지 목적에 몰두하는 데 있다.
신적인 목적, 하나님의 목적 앞에 몰두할 때
나는 내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을 느낀다.
부부가 함께 주님 앞에 서 보시라. 부부가 함께 하나님 앞에 헌신해 보시라.
함께 큐티 나누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양하고
함께 몸된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사탄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때
가정이 회복될 것입니다. 참사랑이 회복될 것이다.
십자가 아래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순수한 사랑이 우리의 가정에 넘치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정욕은 한가로울 때 틈타는 죄악이다.
할 일이 없고 배가 부를 때 찾아오는 유혹이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무슨 일에 바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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