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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자신감만 있으면 누구든 망할 수 있다 2615

LNCK 2010. 8. 25. 01:10

◈자신감만 있다면 누구든지 망할 수 있다           시85:1-13             09.06.25.설교스크랩

 

 

*관련글 :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  

 

 

▲요즘처럼 자신감/ 자기신뢰/ 또한 자기사랑이 강조되고 있는 세상은 없다고 봅니다.

자기개발서의 거의 모든 핵심내용이 자기긍정, 자기신뢰, 자기사랑,

이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기독교서적으로서 얼마 전에 베스트셀러였던「긍정의 힘」도

결국은 내용이 자신감과 자기긍정... 아니겠습니까?

 

①미국의 심리학자 웨인 다이어가 쓴「행복한 이기주의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모토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축약할 수 있습니다.

 

나는 소중하다. 내가 그렇게 믿으니까.

그리고 그 책의 1장의 제목이 ‘내 인생은 내가 지휘한다’ 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자기사랑, 그러니까 자기신뢰에 근거된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한

십계명을 얘기해요.

 

그중에 몇 개를 소개하면 이런 거지요.

-남보다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라.

-자신에게 붙어있는 꼬리표를 떼라. 자책과 걱정을 버려라.

이런 것들이 10가지가 있어요.

 

②자기신뢰와 자신감에 대해.. 헤밍웨이가 또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모든 인간의 실패와 불행의 원인이 자기불신에 있다고 보고

그는 이렇게 얘기하라 그랬대요.

‘내가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내가 좀 더 참을 수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내가 뭐 좀 더 뭐뭐 할 수 있었고, 내가 좀 더 뭐뭐 할 수 있었고...

 

③그리고 인생의 실패자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첫 번째 특징이

바로 자기불신과 열등감,

반면에 자기성공을 꾀할 수 있기 위한 키워드가 실마리가

바로 또 자신감, 자기신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감과 자기신뢰는.. 성공하는 인생의 출발점이 되고,

반대로 열등감과 자기불신은.. 실패하는 인생의 출발점이 된다는 논리입니다.

 

 

(영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성적으로 일리는 있습니다만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이성은 상식은 될 수 있지만, 진리가 아닙니다.

성경적 진리는, 이성적 차원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자신감으로 - 도리어 망합니다.

①자신감만 가지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게 있어요. 자신감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자신감으로 설치다가는 - 다 망할 수 있어요.

모든 인생의 멸망의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자신감이에요. 자신감.

 

②열등감은 자신감의 이면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열등감과 자신감 같이 가는 거예요.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 자신감을 과도하게 찾게 되는 이치입니다.

반대로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자신감에 과도하게 매달리지 않습니다.

 

자기신뢰와 자기불신은 동전의 앞뒷면입니다.

그건 같이 붙어가는 것입니다.

 

③자기를 신뢰하지 말라는 성경말씀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시85:8

 

여기서 ‘어리석다’ 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케쓸라 입니다.

이 케쓸라 라는 단어의 원뜻이 바로 ‘자기신뢰’입니다.

그들은 다시 자기신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이 뜻이에요.

 

▲시85편의 배경 -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주전 586년에 유다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갑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망한 뒤에

이제 하나님의 선민이 가나안복지, 팔레스틴 땅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립니다.

 

물론 남아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마는,

국가형태로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아요.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은혜로, 70년 후에, 제1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바로 1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지는 그 사건배경으로.. 이 시를 쓴 것이에요.

 

그러니까 완전히 망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회복되는 기미를 보면서

포로상태에서 돌아오는 1차 포로귀환을 경험하면서 쓴 시인데

그 과거에 대한 반성이 어떻게 나오느냐 하면.

그들은 다시 자기신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여기서 ‘그들’이 누구에요?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이에요.

하나님의 선민은 절대로 자기신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왜요? 자기신뢰로 돌아가면 그것이 어리석음이요,

그것이 바로 나라를 하나님께서 수백 년 동안 약속해주셨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허락하셨던 복지, 행복한 삶의 땅, 그 땅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멸망의 길로 치닫기 때문에.. 자기신뢰로 돌아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감이라는 말은.. 기독교인의 입에서 함부로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에요.

기독교 신앙은 근본적으로 ‘자기 부정’이지, ‘자신감/자기 긍정’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사람은, 자신감자기긍정을 가지겠지만

그것은 반드시 십자가의 자기죽음자기부정을 통과한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지,

그런 것 일절 없이

그저 자기 마음의 결심이나/ 심리적 자기 암시로.. 자신감과 자기긍정은.. 아닌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남을 사랑한다...는 논리에 대해서

심리학에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가 남을 사랑할 수 있다고 봅니다.

모든 자기개발서가 하는 얘기도 바로 이거에요.

 

그래서 ‘남보다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

자신을 사랑하는 자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이런 논리는 상식적이며, 일반은총적 영역의 삶의 지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성경의 진리는, 그런 상식을 훌쩍 뛰어넘고, 초월하는 것 이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이웃을 사랑할 수 있지

어떻게 자기를 사랑하는 자가 이웃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까?

 

 

▲10절에, 인애진리가 같이 만나고, 화평이 서로 입 맞추었으며

이게 무슨 뜻인가요?

 

‘인애’(헤세드)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진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맞서는 인간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바로 ‘진리’에요.

즉, ‘진정한 태도’를 말합니다.

그래서 NIV는 faithfulness라고 번역했어요. (KJV는 truth로 번역했음)

 

이 둘이 ‘같이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인애’를 주시면

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 즉 ‘진리’(진정한 마음)가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의와 화평이 입 맞추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의’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걸 말합니다.

‘화평 peace’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에 대해서 동의하는 상태가 바로 화평입니다.

 

하나님의 의견, 하나님의 관점이 ‘의’라면

그 하나님의 의견과 하나님의 관점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고 하나님이 이루시기를 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바로 ‘화평’이라는 것이에요.

 

내 인생을 내가 지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애’의 하나님께 내가 ‘진실한 태도’로 반응하며

‘의’의 하나님께 내가 ‘화평’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과장님이 나를 나쁘게 보면,

그래서 나쁘게 보는 그 관점에 매이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에 매달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보가 아니시고 하나님이 어리석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나에 대한 사랑을 중단하지 않으시니까

지금 주어져있는 상황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 수 없고,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 아닐 수 없고

하나님께서 나를 평강으로 이끄시기 위한 길이라면

지금 주어진 현실과 화친하세요. 화평하세요.  (후략)

 

 

하나님아버지!

우리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꼬리표 존재의 뿌리까지 썩어있는 죄인 됨과

그리고 나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은 자라는 사실

이 세상에 대해 온전히 죽은 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 주옵시고

사소한 일에서 큰일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으로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느낌과 하나님의 의견을 묻고만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