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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나아가는 행복 2674

LNCK 2010. 10. 4. 02:55

◈주님께 나아가는 행복               시65:1~4                     -출처보기-



◑가치를 알고 모르는 차이


▶가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아프리카에는 다이아몬드가 많이 납니다.

그러나 서양문화가 들어가기 전까지,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빤짝거리는 돌멩이 정도로 생각했고, 아이들이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들어가서는 이것을 보았습니다.

아이들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초콜릿 하나씩 주고는 바꾸었습니다.

장난감 하나에 다이아몬드 원석 하나라면 기가 막힌 이야기지만

가진 바 가치를 모를 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음악회를 생각해보십시다.

세계적인 음악가나, 세계적인 교향악단이 우리나라에 와서 연주회를 가질 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생애에 다시없는 감격의 시간이 됩니다.


제가 부산에 있을 때 보니, 마니아들은 비행기를 타고 서울까지 가서, 음악회에 참석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음악회가 있어도, 음악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시간은 지루하고, 잠 오는 시간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 시간의 가치와 행복은

다이아몬드나 음악회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축복과 행복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주일마다 교회에 나오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다 놓쳐버리고, 기쁨도 감격도, 아무런 행복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행복의 절정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 행복을 맛보지 못하고 있느니

대단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무엇을 보려고 교회에 나오십니까?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한 번은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똑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십시다.

"무엇을 보러 교회에 나오셨습니까?"

여러분 정말 심각하게 자신에게 한 번 물어보십시오.

무엇을 보러, 오늘도 교회에 나오셨습니까.


그런데 교회 와서 하나님은 보지 않고, 엉뚱한 것만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흔히 어떤 분들에게서, 교회에 나와서 실망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무엇을 바랐는데, 무엇을 실망했다는 것입니까?


원래 바램과 실망은 일직선상에 있습니다. 바램에 따라 실망이 오는 것입니다.

바램이 바르지 않았다면, 결국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을 바랬고, 무엇에 실망했습니까?


▶예수님께 나아오는 가치를 알았던 여인

마15장에 보면, 예수님을 만나러 온 한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와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 외에,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가나안 여자라고, 이방여자하고는 상관치 않겠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낙심되는 이야기입니까? 그런데도 여자는 계속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런 모욕이 어디 있습니까? 완전히 개 취급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여자가 말합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좋습니다.

저는 개와 같습니다.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저에게 좀 주십시오.

예수님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이 여인이야말로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던 사람입니다.

거기 무슨 은혜가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그것을 바로 알았기에 어떤 취급을 받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주께로 향했고, 결국은 가장 큰 은혜를 누립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주님께 나아오는 사람이 받는 5가지 은혜를 (아래에서) 살펴볼 것입니다.


▶주님께 나아오는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쉽게 시험듭니다.

오늘날 교인들을 보면 교회에 나와 별의 별 일로 실망합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왔다가, 울어서 좀 데리고 나가라고 하면

그게 섭섭해서 그 뒤론 아예 안 나와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를 좀 안 알아준다고, 안 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랑이 없다고 발걸음을 돌리기도 합니다. 다 좋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분명히 하십니다.

왜 교회에 나오셨습니까, 왜 주님 앞에 나오셨습니까?

무슨 목적으로 나왔기에 그렇게 시시한 일에 넘어지느냐 말입니다.


만약에 주님 여러분을 향해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다"

라고 하셨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했겠습니까?

주님 앞에 나오는 이유를 바로 해야 합니다.

그 이유를 분명히 알 때, 사소한 일로 인해 실족하지 않습니다.



◑주께 나아오는 행복과 가치를 아십니까?


오늘 본문은 성전의 아름다움, 다시 말해 구약의 성도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누리는 기쁨을 노래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오늘 우리가 주님께 나올 때 누리는 은혜와 행복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1. 예배의 은혜와 가치를 올바로 아십니까?   시65;1

우리가 주께 나오는 것은 첫째,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여기에 주님께 나오는 가장 큰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65;1

무슨 뜻입니까?

성전에서 하나님께 찬송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뜻입니다.

(찬송을 빨리, 더 많이 부르고 싶어서, 안달하며 기다리는 뜻인듯 합니다.)


사랑하는 젊은 남녀가 있습니다. 서로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렇다면 무슨 말을 가장하고 싶겠습니까?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바로 그 한 마디입니다.

이 말을 하기 위해 가슴을 졸이며 때를 기다리며 분위기를 찾습니다.


가슴이 설레고, 떨리는 마음이 거기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고백을 하게 되는 바로 그 시간에 행복의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의 고백입니다.

그가 나의 사랑하는 주인 됨을, 몸과 마음과 입술로 함께 고백하는 예식이 예배입니다.


온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랑을 고백하며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 복되고 즐거운 시간이 달리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시84편에 보면, "주의 궁전에서 하루가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낫고

의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그 기쁨이, 세상의 천 날보다 더 좋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시달리다가

주일날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이 한 시간이 흐뭇하고 기쁩니까? 행복합니까?

예배하는 한 시간이 세상에서 엿새를 보내는 것보다 더 좋다는 마음 있습니까?

예수 잘 믿는 것을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교회에 잘 나오고 예배의 기쁨을 알면, 그것이 바로 예수 잘 믿는 것입니다.


제가 부산에 있을 때 보면, 남편이 선원인 아내들은 모처럼 남편이 귀항하게 되면

벌써 몇 주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준비합니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남편을 맞이하러 나갑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라면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설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토요일부터 교회에 나오기 위해 옷을 준비하고,

일요일 아침에 일찍 서둘러 나오는 것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거기에 얼마나 큰 즐거움이 있습니까?


그런데 교회에 나가자니 그렇고 안 나가자니 그렇고, 그래서 주저주저하다가 지각합니다.

가만히 보면 늦는 사람이 꼭 늦고, 시간도 매 번 그 시간만큼 지각을 합니다.

여러 말 변명합니다만 한 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침부터 벌써 온 마음이 교회에 가 있으면서 준비하면, 늦을 리가 없습니다.


시편 100편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95편 말씀도 들어보십시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96편입니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 지어다."


103편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성축할지어다."


예배는 성도가 땅에서 누리는 가장 큰 은혜요, 축복입니다.

감히 거룩하고 영화로우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경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이를 기뻐하십니다. 그 앞에 우리의 사랑을 고백합니다. 엄청난 시간입니다.

이 놀라운 감격과 기쁨, 벅찬 행복을 누리는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말씀을 받는 기쁨과 가치를 올바로 아십니까?

우리는 또한 말씀을 받기 위해 교회에 나옵니다.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음식을 골고루 잘 먹어야, 몸이 건강하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영혼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이 건강하고, 영혼이 원기 왕성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양식을 잘 공급받아야 합니다.


영혼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영혼에 필요한 모든 영양소가 골고루 다 포함되어 있는 종합식품입니다.

이 말씀을 받지 않고는 그 누구도 제대로 신앙생활 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말씀의 센터요, 말씀을 공급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교회에 나옵니다.

오늘 본문(시65:1~4)에 이 진리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너무도 자명한 진리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자세입니다.

행10장에, 로마의 군인 고넬료가, 천사의 지시를 받고

베드로를 집으로 청하여 복음을 듣는 기사가 있습니다.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놓고 베드로를 모셔서 말씀을 들을 때,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녀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행10:33


그렇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교회로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을 때

교회에 나아온 참된 의미를 찾게 됩니다.


특별히 설교는 오늘 내 모든 현실에서 하나님 내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는 내 모든 기도의 응답입니다.

내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아뢰었던 문제에 대해,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대답을 듣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따로 있는 것 아닙니다. 말씀 속에서 기도의 응답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기도와 말씀과 생활은 항상 일직선상에 있어야합니다.

기도 따로, 말씀 따로, 생활 따로가 아닙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기도의 응답을 받고, 이제 응답 받은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의 근본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나, 십자가 안에서 구속받은 나,

그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구원하신 나로서, 나의 참된 가치를 재발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확인합니다.


세상에 살면서 이런 저런 일들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희미해집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주님 앞에 나아와 말씀을 들으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재확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교를 들을 때마다 항상

"너를 사랑한다" 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설교를 들을 때마다 이 한 마디는 꼭 들어야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들는 것,

이것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예배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합니다.

이제 말씀을 통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참으로 행복의 절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실로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 가운데서

너를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여러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기도의 기쁨과 가치를 올바로 아십니까?  시65:2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기도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하나님과 만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나올 때마다 우리의 영혼이 깊은 곳에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본문에 시편 성도도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 오리이다" 시65:2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께 나아간다고 고백합니다.


구약성경 보면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의 전쟁의 도전을 받았을 때,

그 선전포고의 편지를 하나님의 전에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 편지를 펼쳐놓고, "하나님 이런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이렇게 모독합니다" 라고 하면서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 하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나올 때 우리에게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현실에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그대로 펼쳐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이 보다 더 큰복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이사야56:7절에 하나님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곳이요 기도하기 위해 나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예배 시간에 좀 더 일찌 나오셔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만나는 깊고 진지한 기도가 있어야합니다.


예배 시간 중의 대표기도에도 아멘 하시면서 진실하게 참여하십시오.

기도의 간구마다 아멘 할 때 그 간구가 나의 간구가 됩니다.

주께 나올 때마다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는 우리 모두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죄사함을 받는 기쁨과 가치를 올바로 아십니까?  시65:3

나아가 우리는 교회에 나와 죄 사함 받는 축복을 받습니다.

본문이 말합니다. "죄악이 나를 이기었사오니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시65:3


죄악이 나를 이겼지만 주님 앞에 나오면 주님이 내죄를 사해주신다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와 죄 사함 받습니다. 205장 찬송도 있습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에 편히 쉬겠네"


날마다 범죄 하는 우리들이지만 교회에 나와 진실하게 참회의 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다시 한 번 의롭다함 받았음을 확인합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세상에서 죄책보다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죄에 대한 가책은 우리의 심령을 병들게 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죽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네 죄 사함을 받았으니 안심하고 가라"

는 주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은총을 확인합니다.


의롭다함을 받고 교회 문을 나서는 것 이것이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오는 목적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떤 고생을 치러도 죄인의 고난이 아니요, 의인의 고난임을 압니다.


두려움도 슬픔도 없습니다. 죄 사함 받고 나니 모든 고난은

아버지의 사랑의 손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 고난의 의미를 알게 되고 뜻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아버지의 손길을 알고 살아가게 됩니다.

여기 참된 평안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교회에 나와 늘 좁니다. 교회만 나오면 졸고 잡니다.

목사님께서 답답해서 물었습니다. "교회에 와서 왜 그렇게 졸기만 하십니까?"

이 분이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주님 앞에 나오니 마음이 너무 평안해서 자꾸 잠이 옵니다.

주님 앞에 나아와 마음이 평안해서 오는 잠이라면 그것도 좋은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올 때 참된 평안과 만족, 그리고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백성 된 은혜와 가치를 올바로 아십니까?  시65:4

우리는 이렇게 은혜를 받아 세상을 향해 흩어집니다.

그리고는 세상 살다가 은혜가 떨어지면 다시 주님 앞에 나아옵니다.

자동차가 아무리 기름을 많이 넣어도, 한 번 넣은 것 가지고 언제까지 달릴 수는 없습니다.

기름이 떨어지면 또 기름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번 은혜 받은 것으로 언제까지 살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은혜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적인 이 은총을 누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내 영혼이 살고, 내 생활이 윤택해지고,

문제가 해결되고, 내가 능력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흩어졌다가 모이고, 흩어졌다가 다시 모입니다.

광야 같은 세상이지만 우리에게 계속적인 고달픔이나 괴로움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이기는 주의 은혜가 주님 앞에 나올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성도는 이렇게 간증합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신 주의 뜰에 거하게 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 것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시65:4


그렇습니다. 참된 만족이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더할 수 없는 기쁨과, 모든 어려움을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이 모든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렇게 은혜가 풍성한 주님 앞으로 저희들을 불러주신 것 감사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저희들을 특별히 불러주셨건만

저희들은 그 은혜를 모르고 때로는 실망하고 돌아갈 때 많았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이 모든 은총을 남길 없이 누릴 수 있게 하시고

이 은혜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은총 내려 주시옵소서.                                      ▣ 예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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