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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수칙, 신앙수칙 2852

LNCK 2011. 1. 29. 14:59

◈산행수칙, 신앙수칙           창35:10~13        스크랩 출처, 편집



◑산행수칙


▶산에서 길을 잃으면, 마지막 본 '리본' 위치로 되돌아가야

산에 가면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형형색색의 리본들을 본다.

리본마다 각종 산악회 이름들을 적거나, 아름다운 인사말을 적어놓은 경우들도 있다.

산길을 안내해 주는 표지기다.


하지만 전혀 길을 잃을 수 없는 곳들에도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리본들을 보면 때론.. 짜증이 나기도 한다.

 

반면에 깊은 산속에서 내가 길을 잃었을 때는,

비록 세월의 비바람과 눈바람을 맞으며, 빛이 바랜 낡은 리본일지라도.. 반갑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제대로 가고 있다'는 표식이다.


경우에 따라서 이 리본은, 단순한 길 안내자의 역할만이 아니라

생명을 구해주는 매우 소중한 구원자가 되기도 한다.


깊은 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순간 저 편에서 손짓하는 색 바랜 리본을 발견했을 때의 그 반가움과 고마움이란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기쁨이고, 소리치는 환희의 아우성이다.

그럴 때 그 리본은 진정 생명의 표지기가 된다.


산행 시에 지켜야 하는 많은 산행수칙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낯선 산길을 리본에 의지하며 가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발길을 인도해 왔던 리본을 잃고 길도 끊어졌을 때..

대처해야 하는 것은, 마지막 보았던 리본의 위치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힘든 산행으로 지쳐있는 몸으로 힘들게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랜 산행의 경험자들이 지적하는 매우 중요한 산행수칙 중 하나이다.


내가 잘못 왔던 길은.. 지우면서 되돌아가시라

산행의 묘미 중 하나가 겨울산행이다.

'상고대'와, 눈꽃이 활짝 핀 겨울 산의 능선 길,    *상고대 : 겨울철 날씨가 맑은 밤에

                      영하 일 때 대기 중 수증기가 얼어서 차가워진 물체에 붙는 것, 나무서리.


얼어붙은 계곡의 숨죽인 물소리를 들으며,

사방이 온통 흰 눈 천지를 걷는, 계곡산행의 묘미는 정말 일생의 추억거리다.


혹자는 겨울산행의 묘미는 무엇보다도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러셀산행'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눈이 쌓인 겨울산행에서의 위험은 길이 눈으로 덮여 길을 찾기가 쉽지 않고,

전에 와 보았던 길이 아주 낯선 길이 되기도 한다.


이때 산길을 안내해주는 리본 역시, 눈에 파묻혀 보이지 않을 때들이 많다.

이럴 때 눈 위에 찍힌 선등자(선행자)의 발자국은

겨울 러셀산행에서의 중요한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선등자의 유무가 겨울산행의 가부를 결정짓는 때가 많다.


다른 계절에 산행을 하다 길을 잃었을 때의 산행수칙은

마지막 리본을 보았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면,


겨울산행의 수칙 역시 길을 잃었을 때는

마지막 러셀(선행자의 발자국)의 위치로

때론 마지막 리본의 위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다른 계절 때와는 달리, 겨울 산행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 있다.

선등자의 러셀(발자국)이 없는 길을 개척해 가며 갔다가

길을 잃고 다시 마지막 위치로 되돌아 갈 때,

자신이 남긴 러셀의 흔적을 지우며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친 몸으로 원위치로 되돌아간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자신의 흔적까지 지우며 되돌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하여야 한다.


내가 잘못 들어선 길을,

내 뒤에 오는 이가 착각하고 오르거나 내려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들다고, 남이 보지 않는다고 나의 잘못을 지우지 않게 되면,

이로 인해 다른 이가 생명을 잃을 수 도 있다는 것을

겨울산행에서는 명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산행 시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흰 눈길을 처음으로 밟는 기쁨에 취하기보다는

나의 발자국이 다음 사람의 생명을 인도해 주는 발걸음임을 깨닫고

신중히 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산행에서만의 일이겠는가?

민족의 분단을 막고 동족의 참담한 비극을 방지해 보고자

모든 방해와 어려움을 무릅쓰고 백범 김구 선생이 38선을 넘은 것은, 1948년 4월의 일이었다.

 

백범은 당시 서울을 떠나 평양으로 향하며 다음과 같은 시 한 구절을 남겼다.


“내가 밟고 가는 눈 덮인 들판 길

조심하여 헛 밟지 말지어다.

오늘 걷는 나의 발자취가

뒤에 오는 이의 표식이 될 것임에..”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지 않은가!

예수는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했다.

마치 깊은 산중에서 길 안내를 맡았던, 아니 생명의 구원자였던 생명의 표지기처럼

그렇게 예수는 우리를 인도해 주는 생명의 표지기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예수의 표지기를 보지 않고

자신의 판단으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오지는 않았던가?

그리고 때론 길을 잃고 헤매던 때는 없었는가?

헤매면서도 자신의 판단과 힘으로 몰아붙이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산행수칙이 있듯이, 신앙에도 수칙이 있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

주님과 함께 걷다 그 길에서 벗어났던 마지막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또한 자신의 잘못을 지우며 돌아가야 한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 뒤에 오는 이들을 위해서도 말이다.



◑신앙수칙 : 잘못된 길을 돌이켜, 다시 원점을 찾아갔던 야곱


야곱이 브니엘에서 에서와 화해한 후,

에서가 야곱을 위하여 길 안내를 자청하고 나서지만, 야곱은 이를 거절하고,

가나안 땅 세겜으로 향하고 그 곳에 정착해 살기로 작정한다.

야곱이..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러 성 앞에 그 장막을 치고.. 33:18


야곱은 세겜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엘엘로헤이스라엘)을 부르고 단을 쌓기까지 한다. 33:20

     이것은 야곱 가문이, 세겜에 정착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야곱의 세겜 정착이 뭐가 잘못되었을까?

①세겜에서 안 좋은 일, 불상사가 일어났기 때문에?


세겜에서 딸 디나의 사건, 이를 복수하려는

끔찍한 살육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불상사가 일어난 결과를 보고서,

'야곱의 세겜 정착이 잘못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끼워 맞추기식 해석이다.


②혹자는, 하나님이 밧단 아람에서

아예 벧엘로 가라고 했는데,

야곱이 그 명령을 어기고, 세겜으로(삼천포로) 빠졌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해석도, 신뢰도가 낮은 해석이다.


밧단 아람에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명하신 것은 아래 두 대목인데,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창31:3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고향)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창31:13


이 구절은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세겜'에는 가지 말고, '벧엘'로만 가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세겜도, 벧엘도 똑같은 가나안 땅이며, 두 지역은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도 아니다.


▶야곱의 세겜 정착이 잘못된 이유를.. 유추하면.. 다음과 같다.

쉽게 말하면,

세겜은.. 부유하고 상업이 발달한 도회지이며,

벧엘은.. 아직도 척박한 광야와 같은 곳이었다. (라고 추측한다.)


야곱은 그 땅에서 정착하며, 그 땅의 사람들과 어울려 살려고 했으나..

상황과 결과는.. 기대와는 정반대로 벌어지고 말았다.


자식들의 이러한 끔찍한 일로 말미암아 그 땅의 사람들뿐 아니라

주변 민족들과의 평화는 깨지고, 전쟁이 곧 일어나게 될 것임을 알고 두려워한다. 34:30


자신의 부를 의지하며 자리를 잡는 자본의 땅이 아니라, (세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메마른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잤던 그 곳,(벧엘)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곳으로의 돌아감이다.


꼭 도시는 나쁘고, 광야는 좋다.. 그런 뜻이 아니다.

적어도 하란 땅에서 돌아와서, 가나안에서 새출발을 시작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메마른 광야(벧엘)를 요구하셨다는 것이다.


사람, 경제, 문화.., 이런 것들과는 좀 동떨어진,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만나고, 교제할 수 있는 곳을.. 하나님은 원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야곱의 세겜 정착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셨다.

그리고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직접 명하셨다. 


이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말씀이 곧 창35:1절 말씀이다.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이다.


네가 돌베개로 단을 쌓고,

내게 온전히 헌신했던 그 곳에서

그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것이다.

 

이에 야곱은 다시 벧엘로 올라가고,

그곳의 이름을 다시 ‘엘벧엘’(벧엘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35:7


그곳에서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했던 약속을 다시 야곱에게 확신시킨다.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35:10~12 


그곳에서 야곱은 (다시) 이스라엘이 되고,

그 장소를 (다시) ‘벧엘’이라고 이름 짓는다. 언약(약속)의 재확인이다. 33:15


①야곱은 혹시 '벧엘의 약속'을 잊어버렸을런지도 모르겠다. 창28:13~15

그럴 수도 있다. 너무 비현실적인 약속이었으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약속을 분명히 기억하고 계셨고, 재확인시켜 주셨다.


②야곱은 '조상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야곱의 약속은, 앞서 아브라함과 이삭이 받은 것과 같은 약속이었다.


야곱은, 자기 조상들이 옛적에 받은 약속들을 기억 못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을 기억하고 계셨다.

그래서 동일한 장소 벧엘에서, 20년 전 그 약속을, 다시 상기시켜 주셨다.


③20년간의 밧닷 아람 이민 생활을 정리하고,

가나안에 다시 돌아온 야곱은,   

문명도시 세겜 근처에 정착하면서,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계획으로, 자기 가문을 세울 궁리를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네 궁리, 네 생각, 네 계획'이 아니라,

조상 적부터 내려오던 언약에 충실한 삶을.. 야곱이 살기 원하셨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날 나에게 벧엘로 올라간다는 뜻은..

①잘못 들어선 길을 버리고,

다시 첫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이지만,


②더 자세히 보면,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셨던 약속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셨던 약속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야곱의 자기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야곱은 원래 벧엘에서 맺었던 언약을  창28장

약 2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재확인, 재갱신했던 것이다. 창35장. 


③꼭 복잡한 문명사회는 별로이고,

좀 한적한 시골이 좋다는 뜻은 아니지만,


사람은 언제나 문명을 원하고, 번영과 상업과 도시의 복잡함을 원하지만,

(그게 비록 일정기간이라 하더라도.. 야곱이 남은 여생을 평생 벧엘에서 산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좀 한적하고, 조용한 곳으로 가라는 것이다.

더욱이 20여년 만에 가나안에 돌아온 야곱은, 그런 시간이 더욱 필요했으리라..


그 한적한 곳에서 비로소, 하나님은 야곱에게 '언약을 재확인'해 주셨다.

이제 야곱은 자기 삶의 이유, 목적, 비전이 분명해진 것이다.

이제 야곱은 더 이상 자기 목적, 자기 계획, 자기 비전으로 살지 않았을 것이다...


▶적용 / 오늘날 내게 '벧엘로 올라가는 것'이란?

①잘못 들어선 길을 버리고, 원래 길을 찾아간다는 뜻인데,


②하나님이 내게 주신 약속, 언약, 사명, 소명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③내 계획, 내 비전이 아니라, 그것을 폐기해서 버리고,

하나님의 노예로서, 주님의 계획, 주님의 비전을 되찾는 것이다.


④그러기 위해선, 복잡한 환경을 떠나서.. 좀 한적한 시간과 장소가 필요할 것이다. ▣ 삶의 통찰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