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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항상 기뻐해야 하는 이유 P1 / 김성수

LNCK 2011. 2. 1. 21:18

◈성도가 항상 기뻐해야 하는 이유 P1           사43:7           10.12.31.설교녹취




◑연말 각종 시상식 유감


연말이 되면, 연예대상 같은 무슨 시상식이 여러 곳에서 열리는데,

거기서 심심치 않게 들리는 수상 소감이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는 말이다.


그만큼 기독교인의 저변이 확대되었다는 증거라서 기분이 좋게 들리기도 하지만,

과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저는 그런 유명인사들이 '하나님의 영광' 하는 소감을 들을 때,

물론 훌륭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정말 저 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제대로 알고 저 말을 하는 것일까?’

하는 우려의 마음이 들 때가 가끔 있다.


저들의 그런 수상소감 속에는,

자신의 그런 영광스런 자리에서 상을 받는 자리에 서기까지

도와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과 아울러,


자기가 예수를 믿는 신자로서 그런 큰 상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 것이라는 대견스런 자화자찬의 마음이

동시에 들어있을 것이다.


정말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삶에 개입하셔서

그들이 원하는 영광스런 자리 입성을 도우시고,

그들의 그 성공한 모습을 보시면서,

그들의 신분상승의 업적을 흡족해 하시면서, 거기에서만 영광을 받으시는 분일까?


그렇다면 금년 한 해 동안.. 사업도 잘 안 되고,  

하는 일에 실패를 보았으며,

직장에서 해고되는가 하면,

가정에 불화가 있었고,

자식이 속을 썩이기도 했고,

몸에 병을 얻기도 한 그런 종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은커녕, 누(번뇌)가 되는 삶을 산 것인가?

예수 믿는 자로서, 하나님 얼굴과 이름에 먹칠 한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분명 그 시상대 아래에는,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앉아있을 터인데,

그들은 전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루저(패배자)들인가?

그 위에 올라간 사람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거라면,

그 아래 앉아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다 루저들인가? 


‘하나님의 나라’도 꼭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만 높이 평가하는..

그런 치열한 경쟁사회인가?

 

그게 바로 힘의 원리로 움직이는 인본주의, 세속주의가

자기 마음대로 상정해 놓은 거짓 영광이다.

(물론 수상자의 소감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고, 우리가 이해를 폭넓게 잘 해야 한다.)


겉이 화려해지고, 소유가 늘어나고, 명예가 올라가면..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 반대의 자리로 떨어진 사람은, 루저요, 실패자로 낙인찍어버리는 것은,

세상 가치관에서 따지는 영광이지.. 성경적 영광은 그런 것이 아니다.


또한 문제는,

이 세상에서 그러한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도 치열한 몇 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서, 돌리는 것인가?


그리고 그런 자리에 선다 하더라도 인간은 영원히 만족을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수상소감을 말하더라도, 그 다음 날이 되면 곧 기쁨을 잃고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꼭 세상에서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재고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성도의 태생적 영광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영광은,

①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상태를 가리킨다.

그게 영광(헬, 독사)의 의미이다.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상태를 독사(영광)이라고 한다.


쉬운 말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올바로 성취되고,

그분의 통치가 그 분의 능력 안에서 올바로 시행될 때,

그 자체를 영광(독사)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②또한 하나님의 영광스런 통치 아래서,

그 통치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그 삶을, 영광스러운 삶이라고 이야기 한다.

(전자가 하나님 편에서 영광이라면, 후자는 인간 편에서 영광이다.)


절대로 세상 힘을 쌓아서, 신분상승의 성공을 한 사람들만,

영광이라는 말을 쓸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쉬지 않고 자동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이 영광이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모든 일이 영광이요,

우리가 그분의 나라(다스림)에 참여하는 모든 일이.. ‘영광’인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매순간 챙겨 가신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과 통치에 순종하여

오늘을, 매일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

모든 피조물은,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게 되어있다.

그래서 해, 달, 별, 자연, 동식물은.. 오늘도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며 존재하고 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무슨 업적을 세우기 이전에,

우리 존재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물론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 그렇지 아니한 불순종하는 자..

이렇게 나누어지기도 하지만,

그렇더라도 사실은 두 부류 전부가 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


이것을 하나님의 ‘작정decree’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작정에서 벗어나서 우발적으로 태어난 존재도 없고,

우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건도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움직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우주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들의 삶은,

그 모양이 어떠하든 간에, 그걸 영광스러운 삶이라고 말한다. ②↑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이렇게 부르신다.


사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가 된 자들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가 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성공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창조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여 살도록

그 분의 뜻대로 살도록 지어진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게 피조물의 삶에 하나님의 통치가 시행되는 그 상태를 영광이라고 말한다.②↑

그렇다면 이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은

전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 창조한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니까..


더 확대해서 보면, 사찰의 승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한 사람인 것이고..

(모든 인간이 원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으로 창조되었다는 뜻, 사43:7)

교도소의 수많은 수인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한 사람들이며,

교회 안에 성도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누가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느냐 하는 것은.. 차후의 문제이고,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요 수단일 뿐이다.

원래 죽은 흙이었던 존재들이..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영(혼)적인 존재로 하나님에 의해 쓰여진다는 자체가 영광이니까 그렇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통하여 이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하나님은 지금 교훈하고, 가르치고 계신다.

이게 영광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영광을 절대로 국어사전적 개념으로 이해하시면 안 된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이, 이 세상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통해서 보았을 때,

성공한 듯이 보이거나/ 실패한 듯 보이거나,

화려한 듯이 보이거나/ 초라한 듯 보이거나 할 것 없이

모든 성도의 삶은 전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태생적 영광이다.)


살아서 숨을 쉬는 그 자체가 영광이며 기쁨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은 원래 죽은 흙, 먼지였으니까.

그것을 아는 이들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당연히 기뻐해야 한다.



◑성도의 후천적 영광


-성도가 성숙해가면 갈수록, 점점 하나님 영광을 추구하며 사는 인생이 된다는 뜻


자기의 처음 자리가 어딘지 아는 이들이 바로 성도인데.. (처음 자리는 흙이었다.)

성도는 바로 이 땅에서 자기의 처음 자리가 어디인지 철저히 깨닫고,

그 사실을, 인생과 역사를 통해 점점 더 확실히 배워간다.


그래서 그것을 알면 알수록

‘아 나는 죄인중의 괴수구나, 내가 예수를 못 박은 자구나’

이것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영광을 올려드리는 자가 된다.


그렇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역사 속에 투입시키셔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드러내시는 도구로 쓰시는 것이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그 과정에 도구로 쓰이는 사람을

영광스러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지,

그들의 행위와 업적을 보시면서 영광을 받으시기도 하시고,

실망하시기도 하시는... 하나님은 그런 유약한 노인네 같은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에 따라서 기뻐하시고 실망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그러므로 이 역사와 인생은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그분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며,

그분의 능력은 얼마나 엄청난 것이며,


그분이 홀로 이루신 하나님 나라는 과연 어떠한 곳이며,

그 나라를 완성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어떠한 일을 하셨는지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이 역사와 인생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수상소감자의 예를 들어 말하면,

그가 상을 탄 그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

평소 자기 직업과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시며,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며.., 그것을 드러내는 삶이

진짜 하나님께 영광인 것이다. 


이것은 꼭 수상자만 영광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계층의 사람이, 다 자기 분야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신의 배역에 충실하게 살면서

하나님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다.


그리고 그 자체가 기뻐야 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통치하고 계시고, 나를 사용하고 계시니까!


그런데 그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니까,

‘그 하나님이 나를 쓰는 게 왜 그게 영광스러운 거냐..?’ 이런 소리들을 한다.


하나님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고, 내가 누구인지 자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선악과 따 먹고 하나님처럼 된 내가 진짜 내 모습인지 착각한다.


그러한 마귀의 통치를 받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요, 기쁨이라는 것을

아는 자리로 옮겨지는 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진정한 영광의 자리로 오늘도 열심히 끌려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뻐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빌4:4

비록 세상에서 버젓하게 성공을 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으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 나라의 풍요를 설명하시기 위해서

어떤 이에게 부를 허락하기도 하시고,

 

하나님을 떠나 피조물의 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가난과 질병과 전쟁 등을 허락하시기도 하신다. 이게 다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 삶은, 하나님의 작정이 나타남에 따라,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알게 하시기 위해서

아름다운 음악과 미술 등의 예술을 허락하시기도 하고,

죄인들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서 때로는 추한 범죄를 허락하시기도 하신다.

(인간의 자유의지적 측면도 일면 작용하지만, 하나님의 작정decree적 측면이 큰 그림으로 작용한다.)


*관련글 : 체스의 고수이신 하나님


성도는 그런 모든 일상과 사건과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 인간과 죄 등을 체감하며 배우게 된다.

그 모든 과정이 지향하는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이다.


엄밀히 말하면,

원래 완료되어 있는 자기 모습(영화로운 성도)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

자기 옛 모습을 점점 벗어가는 것이다.

 

그 전체가 바로 하나님의 통치이며.. 그게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의 통치다.

그 하나님의 통치가 내 삶에 온전히 나타나는 현장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도들을 영화롭게 된 자로 표현한다. 롬8장

영화롭게 되었다는 뜻은

멋진 하얀 옷을 입고 얼굴이 금처럼 빛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아래 완전히 순종하는 자가 되었다.. 이것이 영화롭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발산적 영광이 하나님으로부터 비춰지면,

성도는 그 안에 그 영광을 받아서 반사적 영광으로 흘려내는 것이다.

그게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그게 영화롭게 되었다는 말의 진의이다.



◑심지어는 실패도..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는 길의 여정 속에 있다.


따라서 여러분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부자 되든, 가난하게 되든,

큰 명예를 얻든, 불명예를 얻든,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을 지금 살고 있는 것이다. 


‘아~ 지난 한 해 나는 너무 엉터리로 살았는데..’

예, 그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자들은 이렇게 힘들게 산단다.. 를 보여주신다.

일종의 반면교사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도 합력시켜서 선으로 끌고 가신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결코 루저가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영광스러운 존재들이다.

그리고 영화로운 존재로.. 점점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해야할 자유의지적, 인간의 책임이 있겠지만, 그것은 작은 그림이고,

큰 그림은.. 하나님은 그런 방향과 목적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고 계신다.

그 속에 승리도 있고, 실패도 있고..,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영화요, 하나님의 영광이요,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하나님의 작정을 이루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우리 목적지(하나님의 영광, 온전한 통치)가 말씀 안에서 그렇게 확인 될 때,

우리는 실패나 성공의 그 어떤 현실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는 것이다.


상 받은 사람만 기뻐하는 게 아니라,

그 시상대 밑에 앉아서 상 받은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기뻐할 수 있다.

왜? 나도 지금 영광스런 삶을 살고 있는 거니까..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이 시점이 되면.. (2010.12.31.일자 설교)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자신을 시상식장에 데려다 앉힌다.


그리고 스스로 매긴 점수와 세상이 자신의 일년에 대해 매겨준 점수를 종합해서,

자신을 시상대 위로 올리기도 하고, 시상대 아래 쳐 박아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삶과 업적에 대해 치하를 하기도 하고,

한없는 자괴감에 스스로 체벌을 가하기도 한다.

물론 거기에 상벌은 세상의 가치에 따른 가시적 업적이다.


세상이 가치라고 여기는 것을 많이 얻어내면

자기 스스로 자기에게 칭찬을 해 준다. 상을 준다.

못 얻어냈으면 막 스스로 야단을 쳐서 우울증과 부끄러움에 빠져서 꽁꽁 숨는다.

자기 스스로에게 벌을 준다. 성도의 세계관, 가치관은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예를 들면, 권투 시합에서 3라운드, 5라운드는 패할 수도 있지만

12라운드 끝에는 승리인 것이다. 그게 하나님의 작정이요,

하나님의 영광의 길로 우리를, 하나님이 주도하셔서 인도하신다.

그러니까 중간에 잠시 잠시 패하는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마시고, 큰 그림을 보자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 복음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