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하나님 편에 선 예레미야 렘40:1~16 10.12.09.설교녹취, 편집
*원제목 : 정몽주, 황희, 예레미야정몽주 황희 예레미야 세 사람 모두 격동의 세월을 겪은 분들입니다.
나라와 민족과 자기가 속한 왕조가 망하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이 격변기에 이들의 행동을 비교함을 통해서
도대체 참 신앙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 측면이 있는 것인지..
우리가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정몽주, 황희, 예레미야
▶정몽주와 황희. 두 사람 모두 고려의 신하였습니다.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죽은 것이 56세니까
황희 정승은 그보다 훨씬 젊었을 때에, 고려 말 신하였습니다.
정몽주는 고려말기에 고려조의 부패함과 나라의 국운이 다해감을 깨달으면서
이성계가 정도전 등과 힘을 규합해서 나라를 전복하려는 의도가 표면으로 점점 드러날 때
정몽주가 낌새를 차리고 눌러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이성계가 다쳐 누워 있게 되었는데
문병을 핑계로 정세를 살피려고 갔을 때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하여가'를 부르면서 정몽주의 마음을 떠봅니다.
"이런들 엇더며 져런들 엇더료
만수산(萬壽山) 드렁츩이 얼거진들 엇더리
우리도 이치 얼거져 백년(百年)지 누리이라."
이 하여가를 부르면서 정몽주의 마음을 떠보고
새로운 어떤 쿠데타에 동참하라고 암시했지만
정몽주가 단심가(丹心歌)를 통해 거절합니다.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이 단심가를 부르면서 자기의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합니다.
더 이상 이방원이 설득할 틈새를 주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는데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자객을 보내서 정몽주를 죽입니다.
이렇게 고려왕조에 대해서 분명하게 한 마음으로 충절을 지켰던 정몽주가 살해당합니다.
▶반면에 황희는 이성계의 쿠데타를 보고 초야에 묻혀 삽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새로 생긴 왕조인 조선이 황희를 부릅니다.
결국 태종 때에 신하로 부름을 받고 세종때까지 두 왕을 섬기면서
24년 동안이나 재상을 지내면서
대한민국 한반도 역사 중에 가장 태평성대를 누렸던 세종 때..
자기 힘을 합쳐 도운 사람이 바로 황희정승입니다.
황희정승의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여자 종 월례가 정승 황희를 찾아왔습니다.
“나으리, 글쎄 칠복이 놈이 소녀를... 흑흑흑...”
그러자 황희가 대답했습니다.
“어허, 그런 못된 놈이... 내 그 놈을 가만 두지 않으마. 돌아가 기다리거라.”
그런데 이번에는 칠복이가 황희를 찾아왔습니다.
“월례 그것이 제 발로 내 방까지 찾아와 놓고는 제가 겁탈했다며 떠들고 다닙니다.
낯을 들고 다닐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도 황희는 대답했습니다.
“저런 고얀 것이 있나! 내 따끔하게 혼을 내주리라!”
보고 있던 황희의 부인이 참견했습니다.
“아니 월례는 겁탈당했다고 하고, 칠복이는 월례가 먼저 유혹했다고 하는데
잘잘못을 가려 혼을 내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황희는 부인에게도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이런 이런...듣고 보니 그것도 옳소. 내 반성하도록 하리다.”
또 하나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태종 때 남원으로 유배를 갑니다.
유배를 가는 이유가, 태종이 세자인 양평대군을 폐위시키고
충녕대군으로 세자 책봉을 바꾸려고 합니다.
결국은 세종이 왕이 됩니다마는.. 그 양평대군 폐위시키는 것에 반대해서
남원으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그런데 세종(충녕대군)이 왕이 됐을 때,
황희는 또 정사에 부름을 받고, 또 재상노릇을 합니다.
황희가 이런 점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회색분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작용해서, 관용의 정신을 가지고 청백리로도 유명합니다.
그리고 신조와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관용을 베풀면서
조선조의 최고의 태평성대를 세종을 도와 이루어냅니다.
▶정몽주는 흑백이 분명한 흑백논리자라면,
황희정승은 긍정적인 면에서 회색분자입니다.
이런 회색분자, 요즘으로 말하면
영국의 사회학자인 앤소니 기든스가 쓴 <제3의 길>, 좌파도 우파도 아닌 중도좌파,
영국의 수상이었던 토니 블레어나, 독일의 슈뢰더 총리 같은 정치가들의
정치 이론의 배경이 되고 있는 책입니다. 이 회색분자가 꼭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러면 예레미야는 어디에 속합니까?
- 흑백논리도 아니요, 회색분자도 아니요, 그는 하나님 편에 속했습니다.
◑문문 설명
▶본문 렘40장은.. 예루살렘이 함락한 이후 상황입니다.
가난한 하층의 남은 유다백성들은, 포도원을 물려받고 농사를 짓고 살게 됩니다.
그들을 관장하기 위해서, 바벨론은 유다인 귀족 중에서 그다랴를 총독으로 세웁니다.
이 사람의 입장은 절대적으로 친바벨론 파입니다.
그런데 어용총독 그다랴의 통치를 뒤엎으려고 하는 반바벨론 세력이 등장을 합니다.
다윗 혈통(왕족)에 속했던 이스마엘이 등장하고
렘41장에서는 결국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죽입니다.
반바벨론 세력이, 친바벨론 세력을 공격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나옵니다.
친바벨론, 반바벨론에 이어서, 예레미야까지.. 모두 3파전이 되었습니다.
(진짜 그런 파벌이 있었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이해를 돕기 위한 예입니다.)
예레미야는 본문 렘40장 앞부분에서 말하고 있듯이
지금 바벨론으로 남유다 포로들이 잡혀가고 있는데
포로들을 우송하는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가 같이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특별히 풀어줍니다.
분명히 앞부분에서 보면 느부갓네살 명령으로
시위대 뜰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가 놓임을 받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로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또 다시 포로롤 잡혀가는데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의 쇠사슬을 풀어주고 자유를 주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 바벨론으로 가고 싶으면 바벨론으로 가자.
내가 널 잘 대우해주겠다. 바벨론으로 가고 싶지 않으면, 너는 이 땅에 남아 있고
우리의 왕 느부갓네살이 잔류민들을 다스리도록 그다랴를 세웠는데
거기에 속해 살든지..
그것도 싫으면 이 유다 땅 안에서 네가 원하는 곳에 가서 마음대로 살아라.”
지금 예레미야가, 전쟁포로가 아닌 자유인으로 바벨론으로 가서 살거나,
예루살렘에 남아서, 유다 총독 그다랴를 지지한다면,
- 그는 친바벨론파가 됩니다.
그렇지 않고, 다윗 왕족 출신 이스마엘을 따른다면..
- 그는 반바벨론파가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예레미야는 언제나 하나님 편이었습니다.
당시의 시류에 따라, 또는 어떤 힘의 실세 편에 붙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 편에 붙었습니다.
나중에 그가 요하난과 남은 유대인 무리를 따라, 이집트로 내려가는데,
그것은 반바벨론파 편에 섰다는 것이 아니요,
끝까지 자기 예언자적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남은 유다 백성들이 있는 곳으로.. 그는 따라가서.. 거기서 또 예언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진보니, 보수니..
주류니, 비주류니..
또는 자기 교단에 충성하는 교단파니, 초교파니..
정답은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예레미야를 비판적 시각으로 보면,
이거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반대파가 보면, 그는 친바벨론 파처럼 보여질 수 있고
또 그쪽에서 보면, 예레미야는 반바벨론 파처럼 보여질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에게 항복하라고 했지만.. 그건 예레미야의 입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는
그런 언사는 친바벨론이요, 반민족주의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친바벨론 파도 아니요, 반바벨론 파도 아닙니다. 친여호와 파입니다.
친여호와 파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입장 표명이.. 흑색도 백색도 회색도 아닙니다.
이게 바로 신앙인이 이 땅을 살아갈 때에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가져야 될 마음가짐입니다.
◑적용
▶예수님도 로마 식민지하에 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취하신 태도가 친로마 파입니까? 아닙니다.
반로마 파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친천국 파였습니다. 친하나님나라 파였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식민지 아래 있던 상황에서
유대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애국애족의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 입장에서만 말씀하셨고, 사역을 하셨습니다.
친로마파도 반로마파도 아니고,
친민족주의도 반민족주의도 아니었습니다.
우파도 좌파도 회색분자도 아니십니다.
오직 하나님 파였습니다.
'내가 너희에 대해 할 말이 많으나 내가 말하지 않는다.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들이 입에 한번이라도 반로마 혁명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까?
오순절 이후 오직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느 한 쪽 입장에 서는 것을,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 이데올로기나, 자기 성향에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편에 서서, 항상 하나님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친서민 반재벌,
친대형교회 반대형교회 등
내 입장에서의 이런 친(親) 반(反)의 영역이 사라져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입장만이 드러나도록 사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 가정에 적용해 봅니다.
내 아들을 봅니다. 내 딸을 봅니다.
친딸, 반딸(부모들은 100% 친딸, 친아들 편에 섭니다. 반딸, 반아들 편은 없습니다.)
어쨌든 친딸이나 친아들 아니라, 친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딸과 아들 문제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친자식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자식에 대해 갖고 있는 하나님의 입장이 나타나도록
자식 앞에서도 내가 무조건 자식 편을 드는 것은.., 의롭지 못합니다.
아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가 먼저가 아닙니다.
이미 친자식 파가 되어있고, 이미 친아내 파가 되어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친여호와 편의 특징은 내 입장이 없는 것입니다.
내 성향이 없습니다.
또 내 입장도, 하나님의 뜻과 상황에 따라, 뒤바뀔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친지도자 파와, 반지도자 파로 나눠질 수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 교회가, 수면 아래로, 그렇게 나눠져 있을 것입니다.
친지도자 파가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그 지도자에게 어떤 부덕한 사실이 드러날 때,
평소에 친지도자 파들은,
왜 가까이서 그를 지켜주지 못했었나요? 왜 불이익을 각오하고 직언을 못했었나요?
친하나님 편이 아니라, 친사람(지도자)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외국 형편은 잘 모르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패거리 문화', '줄서기 문화' 이런 것이 아주 발달해 있습니다.
학문을 연마하는 신학생들도
벌써 어느 교수 밑에 줄을 서야 하는지.. 눈치 빠르게 두리번거립니다.
이런 분들은, 모두 미래의 지도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미래의 지도자는.. 예레미야처럼..
자기에게 이익이든지/손해든지 따지지 않고,
하나님 편에만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도자들 중에서도
고의적으로 자기 부대, 자기 편을 키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편에 상관없이, 자기 편을 드는 사람을 우대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지도자를 들어서 쓰신 예는..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런 지도자가 망한 예는.. 성경에 수두룩합니다. 대표적으로 사울 왕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는 그들은, 때때로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쪽에서 보면 흑색 같고, 저쪽에서 보면 백색 같을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이 표명될 때 회색 같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이 자기 마음에 분명히 심어지면.. 죽어도 그대로 가는 거지요.
거기에 오히려 신앙인의 자유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가 발전이 없는 것은,
친지도자 파만 득세하고, 반지도자 파는 씨가 말라버릴 때입니다.
이미 수면 아래로 잠재적인 파멸의 길을 한 걸음씩 밟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실제로는 한 10년 후에나, 그 결과가 수면 위로 나타나겠죠.
어떤 학자(윌리엄 보세이)의 연구에 의하면,
아무리 완벽하게 잘해도 25%의 골수반대파가 있게 마련이고, 묻지마 반대파
아무리 깡그리 잘못해도 25%의 골수찬성파가 있다고 합니다. 묻지마 지지파
중간에 50%는 부동층인 것이죠. 여론에 따라 이쪽 저쪽으로 쏠리는 층입니다.
그런데 만약 반대파가 25%도 안 되는 공동체가 만약 있다면
그런 공동체는 절대로 미래에 발전이 없을 것입니다.
아니 지금 부패가 물밑에서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는 한 10년 후에나 표면 위로 떠오르겠죠.. *관련글 / 소신과 인기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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