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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항상 기뻐해야 하는 이유

LNCK 2011. 2. 2. 18:14

www.youtube.com/watch?v=3AXZ6B5-ok4&feature=youtu.be

◈성도가 항상 기뻐해야 하는 이유     빌4:4      2010.12.31. 김성수 목사 설교녹취

 

 

구원 받은 성도는 이미 영원히 성공한 사람이다... 그래서 성도는 항상 기뻐해야 한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4:4

 

하나님이 택하여 자녀 삼으시고, 구원하신 자들은,

이 세상에서 성화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고,

천국까지 데려가시고, 영화롭게 하실 것을 이미 작정해 놓으셨다.

 

그 과정에서 성도 각 개인의 인생에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는 것이다.

주님은, 성도를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목적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다.

성도를 성화, 영화롭게 하는 목적으로 부르셨는데.. 거기에 필요하면 성공과 실패를 골고루 주신다.

 

성도에게는 최후 승리가 이미 작정되어 있다.

그 일을 위해서, 예수님이 그 승리를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다만 우리가, 영원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는

이 세상에서 마귀와, 죄와, 육신과 엎치락뒤치락 싸움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그 가운데서 신앙적으로 승리하기도 하고, 때로는 패배하기도 한다.

 

요지는, 이 세상에서 승리하고, 패배하는 일에 일희일비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 세상에서 성공하거나, 성공 못 하는 일에.. 일희일비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WBC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팀이 우승한 경기를,

우리가 실시간이 아니라, 녹화중계로 보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3회말, 5회말, 8회 말에 한국 팀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그리고 4회초, 6회초에는 한국팀이 점수를 얻었다.

 

상황이 어떻든지.. 우리는 느긋하게 TV를 본다. 매회마다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

초조할 게 전혀 없다.

왜냐하면 이겼다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으니까..

 

※최후승리가 작정됨, 완료된 구원.. 이것이 90% 맞지만,

반면에 '구원 받은 자도 타락할 수 있다'는 것도 성경의 엄연한 가르침입니다. 10%

그러나 오늘날의 '지적동의'를 통해 자기 스스로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면, 10%가 아니라, 타락의 가능성은 30%+로 높다고 하겠습니다./편           *관련글 : 유다서 설교 -클릭-

 

여러분, 성도들은 세상에서 결코 실패할 수가 없다. 자기가 신앙의 길에서 뛰쳐나가지 않는 이상..

하나님은 여러분께 최후승리를 이미 약속해 주셨다. 십자가에서!

 

그러므로 오늘 2010년 마지막 날에, (송구영신예배 설교임)

세상적 가치관에 따라, 나의 세상적 업적과 성과물을 놓고,

그 높낮이에 따라, 크게 웃을 필요도 없고, 크게 슬퍼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작정에 따라,

여러분을 이 땅에서 성화의 과정을 거쳐,

천국에서 영화롭게 되는 커리큐럼과 섭리과정으로.. 오늘도 세밀하게 인도하고 계신다.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그 세밀함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금년에도 그랬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꼭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다.

여러분이 성화를 거쳐 영화에 이르도록..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성공을 주실 것이요, 또 필요하시면 실패도 허락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나의 성공과 실패를 보면서.. 자랑할 것도 없고, 탄식할 필요도 없다.

그냥 주님이 이루신 9회말 승리를 바라보면서, 내가 항상 기뻐하면 된다.

 

▲그래서 바울은 서신서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한 것이다,  빌4:4, 살전5:16등

너희가 예수 믿어 세상에서 성공하는 대박 인생이 될 것이니까..

항상 기뻐하라 한 것이 아니고,

 

너희가 인생 고통의 바다에서 긍정적 사고(기쁨)를 가지는 게 좋으니까..

항상 기뻐하라 한 것도 아니다.

 

항상 기뻐하기만 하면, 여러분의 사업이 술술 풀리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라고 한 것도 아니다.

 

사도바울이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명한 것은,

9회 말을 바라본 것이다. 최후승리를 바라본 것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성화의 삶을 살다가,

결국 영원히 영화롭게 되는 모습을 바라볼 때, (9회말 승리를 바라볼 때)

그런 큰 물결과 흐름으로, 오늘도 하나님이 성도 각자를 매일 인도해 가고 계심을 볼 때,

이 세상에서 일희일비할 필요 없이.. 모든 일에 항상 기뻐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다.

 

아버지의 소원하신 목적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다.

내가 소원하는 목적인 성공을 이루는 것이.. 영광 아니다.

 

▲요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기도하셨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소서’

이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도록 인도해 달라는 뜻인데,

그 하나님이 작정하신 길로 가는 것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길이었다.’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영화롭게 한다’는 ‘영광 돌린다’는 뜻이다.         *헬. 독사조

우리는 꼭 세상에서 성공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줄로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자기가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라고 하셨다.↑

 

꼭 세상에서 고생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뜻은 아니고,

(성공이든, 실패든) 하나님이 작정하신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영광 돌리는 사람이다. 

 

▲요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일이란.. 예수님이 명백히 말씀하셨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드리는 일이다. ↖

 

이런 예를 한 번 들어보자.

‘하나님, 어찌하여 제가 이런 큰 중병에 걸렸습니까?

제가 해야 할 일도 많고, 또 아이들도 키워야 하는데요..’

 

‘아들아.. 내가 목적이 좀 있단다. 내가 너를 위해 해야 될 일이 있단다.

그런데 그것은 네가 중병에 걸리는 일이니.. 좀 참고 견디어 다오.’

 

실제로 많은 성숙한 성도들의 고백은,

‘자기가 중병에 걸리고 나서, 하나님이 병을 주신 뜻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병을 주신 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하나님, 우째 이런 일이.. 우리 사업이 금년에 다 망해갑니다.

제가 교회봉사도 열심히 하고, 헌금생활도 하는데.. 우째 이런 일이..?’

 

‘딸아.. 내가 하려는 일이 좀 있단다. 네 영혼을 수술하려고 한단다.

사업이 안 되어서, 조금 힘들겠지만, 참아다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란..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시는 상황을 고스란히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가 고스란히 안 받아들일 수도 없다.

어쨌든 뛰쳐나가지 않고,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의 고백을 다시 들어 보시라. 

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그러므로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절대로 ‘나는 실패했다’는 판정을 내리지 마시라.

당신이 진정 구원받은 성도라면!

그런 세상적 가치 기준, 세상적 결과물에.. 내 믿음과 신앙이 속으면 안 된다.

 

몸이 건강하여 오래오래 사는 것을 보고도.. 속으시면 안 된다.

예수님은 ‘온 몸이 건강해서 지옥 가는 것보다, 불구로 천국 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셨다.

물론 예수 믿고 몸도 건강한 것이 좋지만,

예수 믿고 몸이 아프더라도.. 그게 슬퍼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건강해서 나를 위해 즐겁게 살다가.. 천국영생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었는데,

주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사, 이렇게 병원신세를 지게 하셔서,

내가 더 기도하고, 더 성결하게 되어, 천국을 사모하는 성도가 되었으니..

이것이 어찌 마냥 슬퍼할 일이겠는가? 오히려 기뻐할 일인 것이다.

 

하나님이 내가 원치 않는 고달픈 길로 작정하실 수도 있다.

 

고전4:9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아니,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그렇게 수없이 이야기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성도가 살아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기는 그렇게 살았다고 주장을 한 사람인데..,

 

바울은 고백하기를,

‘하나님이 마치 자기를 죽이려 하시는 것처럼, 자기 인생이 괴로웠다’고 한다.

 

아니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하나님이 칼을 들고, 바울을 뒤쫓아 다니시는 것이다.

 

그래서 40에 하나 감한 매를 몇 번이나 맞는데.. 바울을 안 말려주시고,

배가 여러 번 난파를 당해도, 날씨를 바꾸어 주시지 않으셨다.

바울은 부서진 배의 나무조각 붙잡고 헤엄을 치면서 뭐라고 기도했을까?

 

심지어는 돌에 맞아서 죽는데도.. 하나님은 상황을 그냥 버려두셨다.

(이런 상황을 미리 말려주신 때도 있었겠지만, 성경에 기록은 안 나온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 이유는, 이런 위태한 일들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기 때문이었다.

 

고전4:11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1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이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

그렇다. 이것이 바로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작정과 통치 아래서,

하나님이 바울에게 ‘너는 그렇게 살아! 그런 고난을 당해!’ 그러시면,

바울은 ‘Yes, Sir’ 하고 잠자코 당했던 것이다.

(위에서 예수님도 ‘Yes, Sir’ 하신 것을 살펴보았다. 요17:1, 4절)

 

말씀의 요지는,

꼭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1등 되는 것만 하나님께 영광 되는 것은 아니고,

(물론 그런 것도 포함하겠지만)

 

그게 뭐든지.., 하나님이 당하라 그러시고,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작정하신 그 일을, 그 상황을,

내가 묵묵히 걸어가고, 내가 인내하며 참고 견디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때 자부심을 가지시고, 자랑하실 것이다. (욥의 경우도 그랬다.)

‘봐라, 내 백성은, 저런 상황에서도

내가 그렇게 살라고 그러니까, 묵묵하게 살잖아.’ 

 

그 상황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자..

그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이다.

 

‘강청기도라도 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 상황을 벗어나자!’

이게 아니라, 오히려 그냥,

‘하나님이 이렇게 살라면, 제가 살겠습니다.

또 배가 난파를 당하네요. 예, 헤엄치면 되죠 뭐’ 이렇게 하며 나가는 것이다.

 

 

◑성도는 결코 실패할 수 없다.

 

세상적 가치관으로, 사람의 업적, 성과의 가시적 결과를 볼 때는,

성공과 실패의 두 결과로 나뉘어 나타나겠지만,

 

이미 십자가로 완료된 성도의 작정, 결과, 미래를 바라보면,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이, 우리를 성화의 길로 인도하시고, 또한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따라서 여러분은, 금년 한 해 결산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다 할지라도,

다 성공하신 분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를 이기시고, 우리에게 완전한 승리를 허락해 주셨다.

승리는 이미 완료되었다.

다만 우리는 예수님을 진실로 믿어야 하고, 그 분께 꼭 붙어있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 말은, 우리의 일상적인 일.. 즉 먹는 것, 마시는 것까지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도록 창조되었다는 뜻이다. 사43:7

 

그런데 왜 특별한 것(시상식 1등, 세상적 성공)만 갖고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하시는가? (세상적 가치관 때문이다.)

 

오늘 우리 일상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통치가 오늘 내가 하는 일에 임하여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는 먹는 것, 마시는 것까지도.. 고전10:31

 

물론 우리가 부부싸움을 하고, 또한 육신이 연약해서 범죄할 때도 있다.

그러면 그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인가?

 

만약 그 부부싸움을 통해서, 또한 그 범죄함을 통해서,

죄의 권능과 위력을 깨닫게 되고,

‘다시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절실히 배웠다면,

실족을 했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실족’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일부러 그렇게 해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이 가끔 그런 실족을 허락하기도 하신다.

그것이 최후승리로 가는 길에, 필요하다면...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결코 (최후)실패가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이 이미 최후승리를 완료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뻐하며 살게 된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게 된다.

 

지금이 송구영신예배 시간인데, 보통 이 시간이면, 성도들이

한 해의 자기 소원을 종이에 적어서 하나님께 기도하느라 바쁘게 보낸다.

그건 참된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자기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통치에 내가 복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시는 목적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운행하고 다스려나가시는데,

그게 뭐든지 내게 잘 되고/못 되고.. 평안하고/난파를 당하고.. 건강하고/병들고..

여러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참된 신앙은, 거기에 내가 복종하는 것이다.

내 소원을 하나님께 들어달라고 강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이.. 그게 뭐든지.. 내 삶에 이루어지도록.. 가만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성공과 실패에.. 너무 큰 관심을 두지 마시라.

흙에 불과한 존재를, 그 흙에서 끄집어내서 하늘로 끌어올리시는 것이 구원인데,

성공이든, 실패이든.. 결국은 다 흙에 속한 것들이다. '썩어질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런 말을 할 때는,

‘주 안에서’ 라는 말을 붙인다.

‘주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면.. 모든 게 감사가 아닌 것이 없다.

 

혹시 여러분이 죄를 지어, 여러분 안에 악마성, 죄성이 드러나게 되더라도

그 일로 인하여 감사하시면 된다. 나의 숨겨진 진면목을 보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예수의 십자가 없으면 영벌 받을 존재임을 자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도 복이 된다.

 

 

..................................  더 읽으실 분 ............................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을 때.. 진정 행복하게 된다.

그게 진짜 자유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서,

내 욕망을 채우는 것을 ‘성공’이라고 착각한다... 아니다!

 

물고기가 물에서만 사는 것을 한탄할 수 있다.

야, 저기 넓은 대지가 있는데, 왜 나는 항상 물속에만 갇혀있지?

그래서 그 물속을 벗어나 대지로 나간다면.. 그것은 죽음이다.

 

하나님이 살라고 하신, 그 하나님의 통치 아래.. 내가 순복하여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성도의 참 행복이다.

가난하든지/부유하든지..

크게 성공하든지/그렇지 못하든지..

건강하든지/병들든지..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부르셨나?

하나님이 부르신 그 자리에 가서 딱 자리를 잡는 그것이.. 성도의 참 행복이지,

그게 참 자유이고, 그게 나의 참 성공인 것이지..

어디 가서 상 받고, 유명인사 되는 것이.. 참 행복이 아니란 말이다.

 

자기가 아무리 ‘하나님이 정하신 자기 사명지’를 떠나서

다른 데 나가서, 다른 일로 두각을 나타내 보려고 하지만,

그것은 물에서 떠난 물고기 신세만 된다. 곧 말라버린다...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세상적인 판단, 가치기준에 요동치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삶을 잘 살고 계시는 것이다. (심하게 몸부림만 치지 않으신다면)

 

그 하나님의 영광, 영화로운 성도로 향해가는 ‘과정’에서

간혹 넘어질 때도 있고, 자빠질 때도 있다.

그때, 망했다고 주눅 들지 마시고, 부자 되었다고 교만하지도 마시고,

그런 일상속에서 나를 통치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시면서,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며 살아가시면 된다.

 

그러면 이 세상속에서 나의 위치, 업적, 소유에 관계없이

그 하늘의 절대 기쁨을 누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살고 계신 분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새해에는 우리모두가, 이런 하나님의 기쁨으로 충만한 한 해가 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