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째 인 계6:12~17 인터넷설교스크랩, 녹취
◑서론 / 일곱 인은, 성도를 새 사람으로 만드시는 과정이다.
▲지난 시간 복습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인’들인데,
‘증인’이란.. 예수를 삶으로 나타내는 사람들이다. ‘말’로써가 아니라..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우리의 삶에 자연히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마치 ‘죽임을 당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계6:9
그러나 그 ‘죽음의 고난’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 속에 고난이다.
우리가 지금 ‘7 인의 재앙’을 어떤 관점으로 풀어 가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첫 창조의 더러운 것들을 소멸시키시고, 새창조 새피조물, 새하늘과새땅 를 완성하시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환란과 궁핍의 재앙들을 사용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1~7째인 들이다.
그 1~7째 인들이 지금 우리들의 삶속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관점에서,
이 7인의 재앙을 풀어가고 있다.
엡4:22절 말씀처럼, 우리가 구원을 받고도, 아직 우리 안에 공존하는 옛사람,
즉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기 위해서’
우리를 환란, 궁핍, 핍박에 그대로 노출시키신다.
그것이 바로 ‘7인印의 재앙’의 목적인 것이다.
▲환처를 긁어내야 새 살이 돋는다.
큰 화상을 입게 되면, 의사가 그 화상 입은 타버린 환부를 다 긁어낸다.
환자는 미칠 것 같이 아프다고 한다.
그런데 타버린 살을 다 긁어내서, 피가 나와야.. 새 살이 돋아 올라온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쭈글쭈글한 피부를 가질 수밖에 없다.
아니면 그 살이 썩어서 죽을 수도 있단다.
그래서 반드시, 화상 입은 피부는, 다 긁어내어야 한다.
우리도 신앙생활 하면서, 그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 다 타버리고, 썩어버린 환부를 긁어내고,
새 살이 돋은 새 사람으로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렇게 아픈 것이다. 이렇게 힘든 것이다.
우리의 삶에 그런 메스(수술용 칼, 1~7째 인의 재앙)가 들어올 때,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재앙으로, 또 심판으로 오지만,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새 살을 드러나게 하는 복된 시간/사건들이 된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 ‘7인 재앙’을 살펴보고 있다.
◑2중 예언
요엘서, 스가랴서 등 구약성경에 나타난 예언을 이해하기 위해서,
또한 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중예언’에 대해 알아야 한다.
성경의 예를 들어보면,
①사13:10,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 (계시록 본문과 비슷하다.)
이사야서의 위 구절은 하나님께서 바벨론 나라를 심판하시겠다는 예언이다.
아울러 이 예언은 종말에 관한 예언이다. 종말에 천지격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구절을 신학자들은 ‘이중 예언’이란 말을 만들어서 설명한다.
이사야 당시에는 ‘바벨론 멸망’을 예언한 것이지만,
동시에 종말에 천지격변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둘 다 봐야 한다는 것이다.
②사34:3~4
그 살륙 당한 자는 내어던진바 되며, 그 사체의 악취가 솟아오르고,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이 대목도, 죄악에 물들어 있는 열국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시는 내용이다.
이사야 당시에는 ‘열국에 대한 심판’이면서도,
‘미래 종말에 되어질 천지격변’ 사건을 이중적으로 예언하고 있다.
③욜2: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 요엘서 말씀 역시, 당시 하나님을 거역하는 열방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다.
그러나 아울러, 종말에 일어날 천지격변의 사건을 동시에 담고 있는 2중 예언이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그 요엘의 예언이 지금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행2: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이 예언은 미래 종말에도 이루어질 것이, 본문 계6:12절에 예언되어 있다.
6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
④겔32:7~8,
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어 별을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며 달이 빛을 내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둠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이 부분은 애굽에 대한 심판의 선포이다.
역시 ‘해와 달과 별이 어두워진다’는 표현을 쓴다.
애굽의 심판과 최후 종말의 이중적 예언이다. 주1)
⑤마24:29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이 장면은, 일차적으로 주후70년에 있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최후의 종말’을 예언하신 것이다. 이중예언으로 본다.
예수님도 ‘이중예언’을 사용하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중예언’은 올바른 신학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중예언’을 인정하지 않으면,
과거주의자들은.. 모든 계시록을 A.D.70년에 일어난 예루살렘의 멸망의 예언으로 보며,
미래주의자들은.. 모든 계시록의 예언을 세상 종말에 일어날 미래의 예언으로 본다.
그런데 ‘이중예언’의 관점에서 보면, 둘 다 인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도, 미래 최후의 사건과,
현재 A.D.70년 일어날 사건을.. 한 사건처럼 설명하신 것이라고 본다.
성경의 모든 구조들은
역사 속에서
현재 일어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미래 종말의 궁극적 심판을
동시에 한 사건인 것처럼 경고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지금 ‘이중예언’을 설명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계시록을 읽을 때, 오늘 본문 ‘6번째 인’에 대한 말씀을 읽을 때,
‘아, 그건 먼 미래에, 지구 종말에 관한 말씀이야, 지금 나하고는 무관해!’
이러시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미래에, 지구 종말에 일어날 사건이지만,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그랬어야 하고)
지금 우리시대에도, 동시에 적용되는 말씀으로 읽어야 한다.
‘이중예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6째 인이 우리 삶에도 일어난다는 것은, (1~7째 인이 모두 마찬가지지만)
‘내가 완전히 망하게 되는 날도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천지격변이 내 삶에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계시록의 6째 인을..
현재 내 삶/내 공동체에 일어날 사건과,
미래 종말에 일어날 사건으로.. 이중예언으로 해석해야 한다.. 고 본다. 주2)
◑6째 인
▲‘이중예언’의 관점을 갖고서, 이제 본문을 읽어보자. ↙
계6;12절,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 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말털로 두껍게 짠 담요, 검은 색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우매
우리가 본문을 읽을 때,
단순히 언젠가 세상 마지막 날이 되면,
해가 검어지고, 달이 피같이 되고,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지진이 일어날 것이고..
이런 미래주의적 해석에만 그치시면 안 된다.
분명 이 사건들은, 미래의 어느 날 인간들에게 닥칠 종말의 사건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마시고,
성경은 항상 그 말씀을 접하는 현재 교회(성도/나)와 관계가 있게 되어 있다.
▲우주의 파괴만 봐 서는 안 된다.
보시다시피 지금 이 ‘6째 인’의 환상에서
우주의 질서의 파괴가 등장하는데,
나중에 계21장에 보면,
이 우주와 역사라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삶과 동일한 모습으로 전개되어 가고 있다.
성경 계21장 은, 우주의 파괴와 새창조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성도들의 변화와 새창조를 겹쳐서 보여주고 있다.
계시록도 우주의 새창조와 성도의 새창조를 2중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단순히 우주의 종말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종말과 새 창조에.. 어쩌면 더 깊은 관심을 나타내 보인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6째 인의 본문을 읽을 때,
우주/세상의 종말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중예언’적 관점에서, 성도의 종말도 같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창조를 위해서, 우주도 점점 파괴되어 간다.
잘 생각해 보시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놓은 인간이,
타락하고 부패해서, 더럽고 추악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서 그 더러운 것들을 제하여 버리시고,
새롭게 회복시키시고, 재창조해 내시는 것을.. 우리가 ‘구원’이라 그러는데..
이 우주도 역시 그러한 경로를 통해서 회복되어져 간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우리 안에 있는 첫 창조의 더러운 부산물들이 씻겨 나가는 것처럼,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함께 저주를 받아서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게 된 이 우주도
지금 점점 그 질서가 파괴되어져 가는 것이다.
우주도 타락에서 → 새로운 회복을 하기 위해서.. 점점 파괴되어져 가는 것이다.
그래서 롬8장에서, 이 우주가 자연이 모든 피조물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기다린다고 했다. 롬8:21~23
그래서 우리는, 왜 우리가 진짜 천국을 기다리고, 소망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이 세상과 우주는.. 영원하지 않다. expired date가 있는 것이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자연재해가 빈번해 지고 있는데,
최근 태풍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했고,
파키스탄에는 지진이 일어나서 3만 명이 사망했다. *2005년 시점 설교임.
이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는 우리에게, 그런 재앙들을 보면서,
계시록의 예언들이 다 지금 우리 역사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여러분, 우리는 그런 재앙들을 대할 때,
새창조를 향한 역창조(창조를 위한 파괴)의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 자기 백성들에게 열심히 (경고의) 나팔을 불고 계신다.
그런 재앙들을 보면서, 성도인 우리들은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정말 없구나. 우리가 소망해야 할 것은 천국이구나.’
이걸 깨닫는 것이다.
TV에서 보니, 지진을 만난 파키스탄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자기는 평생에 이런 지진이 있을 것이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한다.
저 고백은 사실이다.
우리 인생에도 그런 지진이 없으라는 법이 있는가?
계시록은 계속해서 우리 인생과 역사에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계시록의 경고를 받지 않으면,
우리도 나중에, 그 파키스탄 인과 똑같이 고백할 것이다.
‘나는 평생에 이런 재앙이 있을 것이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하나님의 백성과 우주는,
그렇게 첫 창조의 더러운 부분들을 없애 버리고, 놓아버리고 있다.
우주의 질서가 점점 파괴되어져 가고 있다.
그렇게 다 놓아버리게 될 때.. 새로운 완성 새하늘과 새땅 이 있게 된다.
(그런 관점으로 본문 6번째 인을 읽어 보자. 1~7번째 인도 다 마찬가지다.)
▲6째 인의 격변이.. 성도에게 희망인 이유
그렇게 옛 우주도 죽고, 구습을 쫓는 내 옛사람도 죽는다.
미래 우주와 현재의 나에게 동시에 변화/격변이 일어난다.
이것이 최후의 심판이다.
그런데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어내야 할,
불타 버려야 할 그 영원한 지옥의 사건들을
누군가가 다 짊어지고 혼자 타 버리셨다. 예수님이시다.
영원한 그 지옥의 사망, 그 영원한 불타버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품에 안고,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서
본인이 다 감수해 내셨다.
우리 옛사람은 그 때 이미 지옥에서 예수님과 함께 다 타 버렸다.
그래서 옛것을 다 태워버린, 새 피조물들이 되었다.
여러분은 이미 새것이다.
그러나 아직 옛 사람, 옛 경향, 죄, 상처 들이 이미 변화되었지만 아직 조금 남아있다.
*already not yet
그래서 큰 ‘격변’은.. 주님이 대신 다 치르셨지만,
작은 ‘격변’은.. 아직 우리 삶에 남아 있다.
우리 옛 습성들을 태워가는 과정이다. 주3)
◑적용
▲1. 6째인의 <격변>이 내 삶에도 나타난다.
이렇게 우리 크리스천 각자도
세상과 똑같이 미래 종말의 천지 격변 사건들을
현재의 자기 인생에서 비슷하게 맛보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나’=‘우주’인 것이다.
그렇게 작은 종말들을 우리가 겪으면서
우리는 우리 옛것들을 태워버린다.
우리가 붙들고 있는 그 첫창조의 부산물들을 다 태워버린다. 하나씩 놔 버린다.
그러니까 6째 인은, 1~5째인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유익이고, 복이다.
여러분 사업하시다가 망하셨는가?
중병에 걸리셨는가?
영적으로 보면, 그게 6째 인이요, 큰 복이다.
언제까지나 자기는 안 아플 것 같고, 자기는 영영 안 죽을 것 같지만,
질병에 걸리고 나서, ‘나도 종말에 이를 수 있다. 그러니 똑바로 믿어야 하겠다.’
질병에 걸려서, 이 사실을 남들보다 빨리 깨닫게 되면.. 그게 복이다.
궁극적으로 종말에 일어날 일들,
악이 완전히 소멸되고 타락으로 말미암은 첫창조의 부산물들이 소멸되고,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게 되는 마지막 종말의 사건들이,
내 인생 속에서, 현재, 미리, 몇 차례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우리 삶의 모든 환란, 고난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해가 검어지고, 달이 핏빛이 되고,
하늘이 말려 올라가는 것 같이’ 힘들게 보이지만,
그 모든 일들을 모두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우리 삶에 일어나는 축복의 사건들이다.
그래서 그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영적으로 완성된 것이 십자가이다.
그 십자가가 딱 섰을 때, 해가 검어지고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계시록과 똑같이!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의 죄를 짊어지신 은혜와 감사의 사건이다.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의 무시무시함과 엄중함을 보여주신다.
‘너희들은 저렇게 죽을 거야.’
그 십자가가 요한계시록에 부연설명 되고 있다.
‘해가 총담처럼 검어지고, 천지에 격변이 일어나는 것이다.’
6째인, 6째나팔, 6째대접이 마찬가지다.
‘아 십자가가 그거 구나.’
재앙이 내리는데, 우리에게는 복인데,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게 진짜 심판이구나!
(요한계시록뿐만 아니라 창세기부터 전부
그 십자가를 부연설명 해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그걸 깨달아야 한다.)
참 신자인 여러분의 삶속에, 이 요한계시록이 실제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신앙생활 속에서
‘해와 달과 별과 땅과 바다와 섬들’,
즉 우리 삶속에서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첫 창조의 것들이
자꾸 소멸되고 떨어져 나가는 것들을 경험하시게 될 것이다.
▲2. 환란은 잠시 받고, 가벼운 것
여러분, 우리는 착각하고 있다.
‘땅은 다 사라져도 저 해, 달, 바다, 섬은 절대 불변할 것이다..’ 라고 착각한다.
수많은 사건/사고/죽음들을 접하면서도
‘나는 안 죽을 것이다’ 라고 은연중에 다 생각한다.
자기 죽음을 다 막연하게만 생각하지, 그 죽음이 자기에게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는 언제까지 이렇게 편안하고 부유하게 살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젠가 그것들을 흔들어 놓으신다.
‘그거 아니야, 그것들은 다 타버릴 거야.
해도 탈 것이야, 달도 타서 변하고, 하늘도 말려 올라가 버릴거야.
산과 섬이 옮겨지거나 없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데 너는 변하지 않는다고? 격변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그것(천지격변)을 우리 인생에 있다고 정직하게 보여주는 것이.. 기독교요, 계시록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며, 또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이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고난이,
요한계시록의 재앙이 여러분의 삶 앞에 딱 나타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시겠는가?
사도바울의 반응은 이랬다.
고후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1~7째인)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천국)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는 도구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인생을 통해 겪는 고난들이, 진짜 경(가벼운)한 것들인가?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그 인생의 무게, 삶의 무게, 환란, 고난이 진짜 가벼우신가?
아니다. 매우 무겁다.
저는 이렇게 무거운지 몰랐다. 미치도록 무겁다.
인생은 무겁고 힘들다.
간혹 일부 집사님들 보면, 정말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만 주신다는 데,
어떻게 이 지경까지 만드실까, 어떻게 당장 먹을 게 하나 없을 때까지 끌어내리실까?
그들이 얼마나 하루에 몇 번씩 자살하고 싶을까?
바라보니 참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그런 비단 그분들만의 어려움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동일하게 겪는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그런데 그게 복이란 말이다.
그 무거운 것이 어떻게 가벼워지는가?
왜 사도바울은 ‘잠시 받는 가벼운 환란’이라고 말했나?
그는 삼층천에 올라가서 천국을 보았다. 그랬더니,
우리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 백 배 더 환란의 삶을 살았던 사도바울은,
그 고난의 삶을 ‘잠시 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오히려 그 환란(1~7째인)이
나에게 크고 영광의 중한 것을 만들어내는 도구다.. 라는 것을, 그는 확실히 알았다.
우리는 사도바울의 고백을 동일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진짜 믿음이다.
▲3. 하나님의 진노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살아남을 자는 하나도 없다.
본문을 보면,
계6: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누가 능히 서리요?’ 아무도 못 선다는 뜻이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자유인)
요한은 ‘7’이라는 완전수로 전 인류를 말하고 있다.
다 한사람도 빠짐없이, 산과 바위틈에 숨어서 벌벌 떨 것이다.
‘차라리 산아 내 위에 쏟아져서 나를 가리워다오.’
그 어린양의 진노가 너무 무서워서, 산과 바위 뒤에 숨는다는 것이다.
(에스라9:15, 나훔1:5, 말3:5 참조)
이렇게 여호와의 진노 앞에, 설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면서 계7장에 보면,
아무도 못 서는데, 교회가 거기에 선다. 14만 4천에 대해 설명한다.
(이 부분은 다음 시간에..)
그 무시무시한 진노 앞에 아무도 설 자가 없으나
유일하게 하나님의 택하신 자만이 그 진노에서 살아남아서
하나님의 영광스런 보좌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이 지키시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똑같이 천지격변의 ‘6째 인, 작은 종말’들을 겪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꽉 잡아 주신다.
계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
세상은 미치도록 고통스럽게 환란 속에 던져지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끝까지 그 영광스런 자리로 끌고 가신다.
그걸 아는 자들만, 이 험한 세상 속에서 참 기쁨과 평안을 누린다.
▲4. 1~7째 인의 환란 가운데서 우리가 스스로 챙길 것은 - 성결
여러분은, 혹시 다 불타버릴 첫 창조의 것들(오복)로,
오늘의 기쁨과 평안을 삼고 계시진 않는가?
‘나 기도 응답 받았어요.’
‘어떻게요?’
‘지난 주에 감사헌금 했더니, 2배로 돌려주셨어!’
그런 기쁨은 불타버릴 첫 창조의 기쁨이다.
(그렇게 자기 기대대로, 2배가 안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루하루 ‘자기 성결’을 챙기지 않고,
무슨 비전을 받고, 무슨 꿈을 갖고, 세계를 복음화 시키겠다고 나대는가?
이런 흥분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하며, 엉뚱하며, 우스꽝스러운가?
여러분, 그것을 하기 전에, 먼저 확인할 게 있다.
대회로 모여서 ‘세계를 내 품에 주소서!’ 부르짖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오늘 하루를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성결하게 사는 것이다.
환란과 고난을 통해서 내 첫창조의 부산물(옛 사람, 죄의 성향)들을 부셔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오늘’ 하루하루를 챙기는 그 삶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 세계선교를 이루어 가실 것이다.
그런 과정 없이
무조건 비전을 부르짖고, 강대상 위에 기도제목들 적어 내고..
비전이란 것은, 좀 극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제 생각에는, 오늘에서 도망하고 회피하는 자들이,
내 놓는 핑계거리가 비전인 것 같다.
오늘을 살 자신이 없으니까, 먼 미래에 어떤 것을 하겠다는 것이다.
미래로 도망가는 도피일 뿐이다.
오늘 자기의 삶 하나(성결)도 책임 못 지는 사람이,
미래에 비전은.. 무슨 비전인가?
▲5. 덩치가 실력보다 앞서면 재앙이 된다.
1912년에 대서양에서 침몰한 타이타닉 호는
그 별명이 ‘침몰하지 않는 배’였다.
그런데 첫 출항에서 침몰하고 말았다.
타이타닉 호는 배 밑바닥이 2중으로 되어 있었다.
혹 배가 좌초되어 물이 들어오면, 선실 하나를 딱 막아버리면,
물이 더 이상 못 들어오게 설계되었던.. 아주 튼튼한 배였다.
최악의 상황이 되어서 배가 가라앉더라도, 12시간 이상 천천히 가라앉도록,
그래서 승객들이 충분히 대비하도록, 그렇게 안전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배가 2시간 40분 만에 완전히 침몰하고 말았다.
왜 그런지 아시는가?
20세기 후반에야 그 이유를 밝혀냈다.
이유인즉, 당시 합금술보다 조선술이 너무 발달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타이타닉호가 가라앉았을 때, 해수 온도가 섭씨 영하1도였다.
(그래서 타이타닉 영화에 보면, 물에 빠진 사람들에게서 입김이 나왔다.)
실제로 구명보트에 타지 못하고, 물에 빠진 사람들은, 10분 만에 다 얼어 죽었다.
당시의 합금술로는, 그 영하1도에서 견딜 수 있는 철을 만들 수 없었다.
그런 영하의 저온에서는, 철들이 비스켓처럼 쉽게 부서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술은 발달해서 6만 톤이 넘는, 큰 배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이 배가 출항해서 가다가, 작은 빙산에 탁 부딪혔는데,
배의 철판이 비스켓처럼 부서져 나간 것이다.
여러분, 어쩌면 오늘날의 교회도 이럴 수 있다.
실력이 없이 덩치만 커지고,
실력(1~7째 인을 통한 성결)이 없이 무슨 운동만 많이 하고 있다.
그러다가 작은 충격에도 비스켓처럼 부서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도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은데, 부피가 커졌다.
기쁘신가?
그런데 아직 우리 실력이 성장하지 않는 가운데서
사람들만 점점 더 늘어난다는 것은.. 축복 아니다. 경계해야 할 시기이다.
우리 실력을 다시 한 번 점검할 시기이다.
이렇게 가다가 한 번의 충격에 침몰해 버릴 수도 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실력자가 되기 전까지 더 이상 커지지 않게 해 주세요.’
‘오늘’을 살아내는 실력자들이 늘어나는 것, 그것을 부흥이라 그런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에서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하시기 전에
먼저 여러분의 실력을(성결을) 먼저 챙기시라.
그리고 1~7째 인을 통해, 그 성결을 완성해 가는 길에서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작은 종말(환란)들을, 여러분의 삶속에 허락하실 때,
그 작은 종말들을 통해서,
구원의 완성, 새 나라와 새 땅(우주와 내가 동시에 일어난다)을
이루어가는 복된 계기로 삼으시기 바란다.
................................
주1)
※그래서 위의 성경 구절들에 의해
‘해와 달과 별이 어두워지는 것은’
바벨론, 애굽, 열국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본문 계시록의 ‘해와 달과 별이 어두워진다’는 말씀도,
상징적으로 ‘말세에 나라들이 망하는 것이지..’
진짜 천지격변과 일월성신의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주2)
우리가 이런 구조들을 통해 읽어내어야 할 것은,
언젠가 이 우주는 최후 종말을 맞이할 것인데,
지금 우리 역사와 인생 속에서도 그 최후의 종말로 향하는
작은 종말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읽어내셔야 한다.
세상은 그 작은 종말들을 겪으면서
결국 궁극적인 그 궁극의 종말로 가속적으로 치닫게 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알아듣고 돌이켜서 구원을 얻으며,
이미 구원 얻은 자들은, 더욱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거룩으로 돌이키게 된다.
성경은 이것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
최후의 종말을, 최후의 종말 사건으로만 가르치지 않고,
내 삶의 현재에 일어날 일들, 현재 내 역사와 인생 속에서 겪고 있는 사건들을
동시에, 같은 종말 사건으로 표현해 놓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종말을 겪고 계시는 것이다. 6째인이 여러분 삶에도 나타날 수 있다.
주3)
그런데 기독교 신앙에 어찌 만사형통만 있겠는가?
우리는 내 인생을 통해서, 신앙생활을 통해서
우리가 새사람이 되기 전에 옛사람,
그 옛사람이 왜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야만 했으며,
그리고 그 십자가는 얼마나 힘든 것인지에 대한 구속의 내용을
우리가 우리 삶속에서 살아내는 것이다.
그게 진짜 크리스천이다.
크리스천의 삶에는 그 구속의 내용이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고난, 환란, 십자가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점점 깨달아가면서
‘하나님, 저는 하나님만 따라서 살겠습니다.
제 지혜대로 했더니 정말 마음 편한 날이 하루도 없군요.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은 뭐든지 다 옳습니다.
제가 하나님 시키시는 일은 전부 순종하겠습니다.’
그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여러분의 인생의 하루 하루의 내용이다. ▣ 계시록
'분류 없음 > 2004~2005'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39강 1~4째 나팔 (0) | 2011.03.29 |
---|---|
계36강 14만4천 2933 (0) | 2011.03.28 |
계3강 반드시 속히 될 일 2915 (0) | 2011.03.15 |
계1강 요한계시록 서론 (0) | 2011.03.14 |
내가 붙드는 종, 나의 택한 사람 (0) | 2011.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