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속히 될 일 계1:1~3 인터넷설교스크랩, 녹취
◑1절, 반드시 속히 될 일 계1:1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1.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은,
미래에 관한 어떤 비밀 코드가 적혀있어서 그것을 푸는 책이 아니라,
모든 66권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구원사역에 관한 설명인 것처럼
요한계시록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분을 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에, 앞으로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예언되어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사역에 관한 것이다.
그 사실을 계1:1절 서두(보통 전체주제를 함축하는 부분)에서 이렇게 밝혀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다’ .. 라는 뜻이다.
여기서 ‘계시’라는 말도, 미래에 일어날 엉뚱한 수수께끼 퍼즐이 아니라,
예수에 대해서, 또한 그 분의 사역에 대해서만 기록해 놓고 있는 책이니까,
딴 생각 하지 마시라! .. 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볼 때, 다른 성경과 다르게 보는가?
언뜻 보면 다르게 보인다.
구약을 비롯한 다른 책들이
하늘의 것들을 원형으로 해서, 이 땅의 것들을 모형과 그림자로 설명한 것이라면,
계시록은 진짜 하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걸 보여줌으로써..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어떤 일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은 ‘땅에서 되어지는 구원사역’을 설명한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서 어떻게 그 나라를 완성해 가고 계신지를
지상에서 사도의 삶과 그들의 사역을 통해서 설명해 놓은 것이.. 사도행전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직접 기록해서,
같은 사건(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관점을 다르게 설명해 주는 것뿐이다.
그래서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나팔을 분다.
이 땅에서는 사도들이 외친다.(나팔을 분다)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라고!
그러므로 계시록은 뭔가 수수께끼가 아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복음이다.
▲2. 반드시 속히 될 일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1:1
여기서 ‘반드시 속히 될 일’이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악한 세력이 망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그 일이다.
말세에 세상 사람들이, 노아 때처럼
‘언제 비가 오냐? 반드시 속히 된다며? 언제?’ 그렇게 재림을 비아냥거린다.
세상 사람들은 조롱하지만,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서 소망을 가져야 한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이니까.
톰 소여가 허클베리 핀(고아)을 부러워하는데,
보니까 허클베리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고 깨우는 사람도 없고,
세수 하라고 채근하는 사람도 없고,
학교 가라고 닦달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톰 소여는 허클베리의 그게 부러워 보였다.
반면에 언제 허클베리 핀도 톰 소여를 부러워하는데,
둘이 같이 놀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 쉴 때이다.
톰 소여는 집에 돌아가면, 엄마가 밥 주시고, 씻겨주시고,
잠옷 입혀 따듯한 침대에서 재워주시는데,
허클베리 자기는, 더러운 옷을 입은 그대로, 움막 같은데 들어가 자야 하는 것이었다.
저와 여러분이 영원한 부모가 있는 톰 소여들이다.
그런 우리가 왜 허클베리 핀의 삶을 부러워하겠는가?
여러분의 삶이 지금 조금 고난, 환란이 있고,
예수 믿으면서 하고 싶은 것 못한다는 그런 불편함이 조금 있지만..
허클베리 핀의 삶을 부러워하시겠는가?
부모도 없고, 학교도 안 다니는 아이를 부러워하겠는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이 같이 뛰어 놀다가도,
날이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반드시 온다.
참 자녀는,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의 '자유'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2절,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
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 하였느니라.
▲사도 요한이 ‘본 것’을 다 증거했다고 했는데,
뭘 보았는가?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요한이 본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본 것’을 유추해서 설명하면.. 이런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이다.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 하였느니라.
‘증거’ martyreo 라는 말은,
‘말로 설명하다’는 뜻이지만,
단순한 설명이나 강론이 아니라,
‘확증하다. 자기가 말한 것을 증명해 보이다’ 라는 뜻이다.
사도요한은, 자기가 본 것, 즉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를
말로 설명하거나, 글로 기록한 것을 넘어서,
자기 증거를.. 자기 삶으로 확증 했다는 뜻이다.
자기가 살아내었다.. 라는 뜻이 된다.
같은 단어 (마르투레오) 가 쓰인 곳을 찾아보면,
요1: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빛에 대해 증언하신 것은, 단순한 말로 설명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도록.. 빛을 몸과 삶으로 살아내신 것이다.
▲다윗의 시편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가 이렇게 나온다.
다윗은, 증거/증인의 삶을 어떻게 살아내었는가?
시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이것은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하시며 ..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이것은 다윗의 삶이었다.
(우리 성도들이, 다윗처럼, 예수님처럼, 이런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시22: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예수님의 눈을 가리우고, 따귀를 때리고, 누가 널 쳤는지 알아봐라 하며
로마 병정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멸시했다.
사도요한이 '본 것을 다 증거하며' 복음의 삶을 살았듯이,
오늘 우리가 복음의 삶을 산다는 것은, 예수님 처럼 산다는 것이다.
즉 ‘복음=예수님의 삶’이다.
그 예수님의 삶을
우리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이 있는데, 바로 다윗이다.
다윗은 자기 삶을 이렇게 계속 설명하고 있다.
시22:7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예수님의 이야기다.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
이렇게 다윗의 이야기가, 예수님의 삶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분명 이 시편은 다윗의 이야기다.
그런데 누구의 삶과 똑같은가? 예수님의 삶과 똑같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삶, 그 삶을 통해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시22: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
즉,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
31 와서 그 공의를 장차 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이를 행하셨다’는 말은.. '다 이루었다'는 말이다.
시22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에 하신 그 말로 끝내고 있다.
‘다 이루었다’ (테텔레스타이)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이렇게 예수님의 삶은,
광야에서 교회의 삶을 살다 가셨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삶을 어떻게 살다 가셨는가?
축복 받고, 복 받고, 만사형통하는 삶을 살다 가셨는가? (아니다.)
고난을 통해, 복음전파의 일을 다 이루시고 가셨다.
다윗의 삶도, 자기 시대에, 그랬다는 것이고,
우리 성도의 삶도, 자기 시대에, 고난이 있지만,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헌신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증거'가 아니라, 무슨 설교를 하든지
‘축복’을 주제로 하는 것은.. 참기독교가 아니다.)
▲정리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는, 단순한 말의 설명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예수의 삶이 나와야 한다.
다윗도 보니까, 그 증인/증거의 삶을 충실히 살았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우리 삶에 그 예수의 증거의 삶이 재현되고 있는가,
그 복음의 내용이 우리 삶에 살아내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당시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자신을 신으로 추앙한 도미티안 황제 치하에서, 큰 핍박을 당하고 있었다.
그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었고,
사도 요한 자신도, 그 증거의 삶을 살았고,
‘너희도 나처럼, 예수의 증인/증거자의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 거야!’
라고 사도요한은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3절, 예언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 1:3
▲요한계시록은 우리를 위협하고,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기뻐해야할 책이다.
3절에, 우리에게 복 주시기 위해서, 이 계시를 주셨다고 했다. ↙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주1)
계시록을 보면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우리가 갈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가 받을 기업이 이런 것이구나..’
하면서 기뻐해야 한다.
그런데 왜 계시록을 보시면서 무섭다고 그러시는가? .. 무지해서 그렇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확실히 모시지 못한 사람은,
또한 그 분께 매일 순종하고, 동행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계시록에 기록된 심판이 자신에게 미칠까봐 두려우실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의 본질은,
성도의 영광스런 승리를 그 주제로 하고 있으므로,
무서워할 책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책인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심판 받을 것이지만, 너희는 안전하게 끝까지 데려가겠다는 것이 계시록이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필요 없다. 우리에게 복(구원, 승리) 주시기 위한 책이다.
이렇게 계시록은 오직 복음만이 적혀 있는 책이다.
아무리 많이 들어도 소용없다.
아무리 많이 알아도 소용없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우리 교회에서 성경지식을 많이 알았다 하더라도
그 삶에서 예수의 삶이 안 나오면 꽝이다. 지켜야 복이 있다고 했다.
‘나는 성경 이만큼 알아, 이만큼 배웠어..’ 이것 갖고 자랑하지 마시라.
이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된 자들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요구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
이 책임과 의무는, 제가 여러분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택한 단어이지,
책임과 의무는 당연히 우리 삶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일 여러분들이 배신당하고 핍박 받고 환란, 사기 당하면,
하나님을 원망할게 아니라,
‘와 신기하게 정말 예수님의 삶이 어떻게 내 삶에 나타나고 있구나’
이렇게 기뻐하시라는 것이다. *관련글: 고통에 익숙한 사람
어떻게 예수님의 삶이 내 삶에 나타나고 있냐?
여러분보고 돈 많이 벌지 말고, 가난하게 고통 속에서 사시라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시라. 열심히 공부하시라.
이왕이면 일등하시고, 돈도 많이 버시라. 이것은 일반은총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그렇게 된다는 공식으로 기독교를 설명하려 하면 안 된다.
그런 기독교는 없다.
▲제가 최근에 크리소스톰이 쓴 <로마서 강해>를 읽었다. 1천6백 년 전 교부이다.
그가 로마서 강해를 하셨는데, 그 책에,
'예수 믿으면 병 낫고 복 받고 축복받고 만사형통' 이란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었다.
대신에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는 영생이 중요한 것이다.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네 몸을 죽여! 그 천박한 황금의 옷은 좀 벗어버려라,
그리고 영의 옷을 입어라.’ 그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어거스틴, 마르틴 루터, 존 칼빈, 조지 휫필드, 마틴 로이드 존스,
이런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의 책을 한 번씩만 읽어보시라.
그 분들이 한 설교를 들어보시라.
그 중에 ‘예수 믿으면 복 받고, 병 낫고, 잘 먹고 잘 살게 된다...’
이렇게 설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분들이 가신 길은 까마득하게 모르고,
도무지 무슨 책을 읽었는지.. 역사적 기독교를, 그들은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여러분, 나의 영원한 생명이 달린 이야기다.
자기 영원한 생명을 걸고 신앙생활 하시는 분이, 어떻게 이렇게 기복주의로 신앙생활 하시는가?
평생 예수 믿고도 지옥갈 수 있다. 정신 차리셔야 한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 그리스도의 수난이 나타나고 계신다면.. 잘 가고 계시는 것이다.
증거의 삶을 계속 사시기 바란다.
▲정리하면
1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구절을 통해서
계시록이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복음이 적혀 있는 책임을 알았다.
(무슨 비밀코드가 아니라.. 묵시적 요소가 있더라도, 계시록의 목적은 복음이다.)
그 예수님의 삶과 사역이 바로 복음이며,
사도 요한이 그 삶을 먼저 살아내었으며,
우리에게도 그 예수님의 삶이 증거로(증인의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공부했다.
그 삶이 때로는 견디기 힘들고, 눈물이 날 때,
조금 힘드셔도, 반드시 힘내시고, 이겨내셔야 한다.
그날이 반드시 속히 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계1:1~3절의 본문 내용이었다.
.............................
주1)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읽는 자’는 단수이고
‘듣는 자들’, ‘지키는 자들’은 복수다.
그 당시는 성경이 없어서 회당에 성경을 놓고,
한 사람이 읽어주면, 다른 나머지는 그것을 들었다.
그래서 읽는 사람은, 단수고, 듣는 자들과 행하는 자들은 복수이다. 김성수목사님계시록3강 ▣ 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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