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탄식 소리가 들리는가? 사1:2~4 출처보기
▲도입 일화
나는 김모 권사님을 늘 잊을 수가 없습니다.
금호동 산비탈 골짜기에 사시면서도, 늘 충성스럽게 헌신하고 수고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막내 딸 집에 가시면 될 텐데, 교회와 목사님을 잊지 못하여,
연탄가스 냄새나는 그 골방에서 혼자 사시는 모습이 고맙기도 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운명하시면 장례를 부탁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켜드리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왔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일은, 권사님은 아들이 있는데,
아들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를 저으며, 생각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아들 때문에 엄청난 상처와 가슴앓이를 한 것 같습니다.
권사님은 아들을 잘 키워 성공하기를 기도해왔습니다.
그리고 성공을 위하여 힘들여 미국까지 보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연애에 빠져 허송세월했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만난 후부터 거칠어지고, 반항하고,
함부로 말하고 성질을 내면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에는 부모를 저버리고, 연락을 끊고, 남보다 더 무정하고 몰인정하게 행동했습니다.
기대하다가 지친 권사님은 결국 그에게 걸었던 기대를 전부 접어버리고
자식 하나 없는 셈 치고, 단념하고 인연을 끊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어미로서 그 마음이 어떠했겠으며,
그 가슴에 든 피멍은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깊은 상처가 되었고,
자식을 생각지 않으려는 괴로움은,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아픔이었던 것입니다.
정성 들여 키운 자식에게 이런 배신을 당하고 버림을 받은 부모의 가슴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억울하고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말은 못하지만 자식들 때문에
이 보다 더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배신당한 부모의 심정이신 하나님
오늘 본문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자녀를 정성들여 키운 아비로,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의 자녀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호세아서 1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아들로 여기고
사랑하여 어렸을 때에 애굽에서 불러내어 걸음을 가르치고,
팔로 안아주고, 삶이 아플 때에 고쳐주고,
사랑의 줄로 이끌어 주었다고 했습니다(호11:1~4).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초창기 때부터 건강한 국가로 성장하기까지
하나님께서 정성을 쏟아 부어 도와주고, 싸워주고, 길러주고,
가르쳐 주었던 은총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자기 부모이신 하나님을 배반하는 불효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불효자식 때문에 가슴 아파하다가
하소연하며 탄식을 발하신 것입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1:2
아비는 자식의 허물을 덮어주고 숨겨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과 땅, 모두 나와서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2
아비의 찢어지는 아픔, 피멍이 든 마음의 상처,
자식들에게 당한 배신감, 끓어오르는 분노의 감정을 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하소연이요, 신세타령을 늘어놓으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효자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탄식할 정도로 만들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탄식하며 하소연 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자식을 정성들여 양육했는데..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사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양육’이란 단어 속에는 성장하도록 양육해 주었고(먹여 주었고),
특별한 명예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존귀한 상태에 이르도록
가르치고 훈련시켜주었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녀를 이 정도로 성장시켜주고 성공할 수 있게 된 것은, 부모의 은공이 큰 것입니다.
자식을 위하여 쏟은 정성과 수고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김연아 선수를 보십시오. 그녀가 세계적인 피겨 스타가 되기까지
그녀의 엄마가 쏟은 정성, 수고, 눈물, 뒷바라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민족을 성장시키기까지
엄청난 수고와 정성을 쏟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거역하다’(pesha)라는 단어는 자신들의 유익을 위하여 주었던
율법과 언약까지 저버리고 자신들의 욕망대로 행동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길러주시고 가르쳐주어서 그 만큼 성장시켜주고 성공하게 만들어 주었는데
그 은혜를 배반하고 자신이 잘나서 성공한 줄 알고,
자기들이 똑똑해서 강성해진 줄 착각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렘2:6~8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지금까지 쏟아부어주셨던 은혜를 망각하고
거역하는 자세와 행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2. 자식이 자기 아비를 모르는 무식함 때문입니다.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1.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기 소와 나귀를 비유로 들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어리석음과 배은망덕이 어느 정도로 못되어먹었고
한심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어리석고 미련함의 상징인 미물(微物)의 나귀 같은 동물들도
자기를 돌보아주는 주인의 은공을 알고 충성하고 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자신을 돌보아준 주님의 은혜를 모르고 있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여 복창 터지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한다면
얼마나 한심하겠습니까?
우리는 내가 섬기고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과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출6:7)는 말씀이 수없이 나옵니다.
▶2.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대와 뜻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기대와 뜻을, 알지 못했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주에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우주의 법칙이 있고,
그리고 역사 속에는 하나님이 성취하기를 원하시는 계획과 목적이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창조주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대로,
또한 그가 원하시는 뜻을 따라 순종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므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렘8:7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하셨다 하라”
짐승들도 자신이 찾아와야 할 시기를 정확하게 알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것을 모릅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이 정하신 우주의 법칙대로 움직이는데,
인간들은 자기 마음대로 움직입니다.
나를 향하신 계획과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3. ‘알지 못했다’는 것은 :3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규칙과 삶의 자세를 견지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이지
그 규칙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율법과 규례들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규칙대로 살아서
세상을 거룩하게 만들고 변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며 살아갑니다.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치(理致)를 깨닫고 이해하는 것이, 또한 그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짐승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것도 갖추지 못한 인간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짐승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을 그대로 따르거든요.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모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계속해서 곁길로 가고 거역의 행동을 한다는 것은
정말 한심하기도 하고, 탄식할 노릇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힘써 여호와를 알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이 무엇이지, 그가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곁길로 가지 말고, 자기 고집대로 살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창이 터지게 만들고,
속이 뒤집어지게 만들어 놓아서는 안 됩니다.
◑3. 자식이 아비를 만홀히 여기고 물러갔기 때문입니다.
1:4절,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4절에 와서 하나님의 감정이 복받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슬프다!!”
이것은 단순한 외침이 아닙니다. 깊은 탄식이며 슬픔의 외침인 것입니다.
그들의 악하고 부패한 본질을 깨닫고 부르짖는 장탄(長歎)의 외침인 것입니다.
▶1. 그들은 여호와를 저버렸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버릴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을 사랑해 주시고 돌보아 주셨던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좋은 것, 사랑하는 것이 생겨서 버린 것입니다.
▶2.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겼습니다.
‘만홀히 여겼다’는 말은 업신여기고 깔보고 경멸이 여겼다는 뜻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소중히 여긴다면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권위와 인격을 무시하기 때문에 함부로 행동하는 것이며
무시하고 가치 없이 여겨 저버리는 것입니다.
▶3.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뒤 돌아서서 물러갔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멀리 도망가서 숨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매일 같이 그 앞에 나와서 인사도 드리고 알장거리며
섬기며 살아야 할 사람들이, 발을 끊고 나타나지를 않게 된 것입니다.
어찌 이런 자식을 자식이라 하겠습니까?
부모를 버리고 도망가서 숨어버리는 자식이 자식입니까?
이는 불효막심한 자식이며, 지금까지 정성 드려 길러주고 수고한 것이
후회스러울 뿐인 것입니다.
▶마치는 말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의 상태는 어떠하십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충성을 바치고,
그의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자식이 될지언정
하나님의 입에서 탄식소리가 나오게 만들어놓는 자식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삶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충성스러운 자식인지, 불효자식인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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