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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1

차원이 다른 인생 - 오카와 쓰구미치

LNCK 2011. 7. 14. 16:37

◈차원이 다른 인생                  마5:11~13                  인터넷 설교 녹취, 정리 

                                                                                                  일본 야마토 갈보리 채플/차원이 다른 삶 


◑5.을 꼭 읽어보세요!

 

 

◑1. 천국 백성의 삶.. 욕을 먹고도 기뻐한다.  


마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위의 마5:11~12절은,

마5:1~10절(팔복)의 말씀을, 요약한 내용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만사를 ‘하늘, 하나님 나라’ 관점으로 보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렇게 볼 때, 핍박을 받아도, 거짓으로 모욕을 당해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2절을 리빙바이블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뻐하라, 뛸 듯이 기뻐하라. 천국에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네 상이 기다리고 있느니라.’


▲매처럼 사는 인생

최근에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요,

매가 가끔 까마귀 떼에게 공격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매는 한 마리로 활동하지만, 까마귀는 수 십~수 백 마리 무리지어 활동하지요.


매가 까마귀 떼에게 공격을 받아서 위험에 처했을 때,

매는 까마귀 떼와 싸우거나 반격하지 않고, 선회하면서

까마귀들이 도저히 따라 올 수 없는 높은 곳까지 날아올라

까마귀 떼를 따돌린다고 합니다.


상대와 똑같은 수준에서 반격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수준으로 자신을 끌어 올리는 방법이 있다는 뜻이지요.


오늘 설교 제목이 <수준이 다른 인생>인데요,

말을 바꾸면 <차원이 다른 인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차원이 다른 인생을 살았던 사도바울

사도 바울은, 서신서 13권을 쓴 세계 최고의 철학가이자 신학자이며,

기독교 역사를 다시 쓴 인물입니다만,

그에게도 치명적인 문제점은 있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고후12:7


그 가시는, 그에게 있어서 치명적이었으며,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바울은, 셋째 하늘까지 이끌려 올라간 적도 있었는데요,

그 받은 은혜가 너무 크니까, 자고하지 말라고, 그에게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그는 세 번 주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주여, 이 가시를 뽑아 주옵소서!

내 트라우마인 이 가시가 사라진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더 멋질까요!

주님께 더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커다란 가시를 제거해 주십시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런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네가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바울은 이 말씀에 납득했고, 자신의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의 이 고백을 마5:11~12절과 연결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두 구절 다 '기뻐했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이것이 바로 <차원이 다른 인생, 사고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설교제목

    

▲천국 백성의 생활 방식.. 차원이 다릅니다.

<차원이 다른 인생, 수준이 다른 인생>이란..

비록 땅 위에서 발을 디디고 살고 있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처럼 사는 삶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게 별난 게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치신 산상수훈이 바로 ‘천국 백성의 생활 방식’인데,

진짜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사람은, ‘그렇게 살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그렇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사도 바울의 삶이 전혀 이상할 게 없지요.

 

우리 성도들, 천국 백성된 우리들의 삶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아니 그렇게 살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2. 천국 백성의 삶..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신다.


▲예수님은 <천국 시각>을 가지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욕을 먹거나 터무니없는 비난과 모욕을 당하면,

아무리 성자라도, 막 감정적으로 변하기 쉬운 데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에서 너희 하나님 아버지가 모두 보고 계시며,

모두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신 것 가운데,

참으로 혁명적인 발언이 몇 가지 있습니다만,

여기 12절에 나오는 하늘에서 라는 말씀도, 참으로 혁명적인 말씀입니다.

     마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사람은, 항상 땅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천국 백성이 된 사람은, 천국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천국 시각을 갖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땅만 생각하니까,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해 하는데,

예수님은, ‘천국 시각에서 바라보시고’

상 받을 것을 훤히 다 내다보시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늘에서 아버지가 <실시간으로 다 보고> 계시므로.. 원수를 사랑합니다.


마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이 얼마나 감사한 말씀인지요.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입니다.


역사 속에서 이런 발언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예수님뿐이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있는 예수님만 할 수 있는 발언이지요.


45절에서 특별히 ‘너희 아버지’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불러도 된다는 뜻입니다.


‘나의 아버지’께서 실시간 하늘에서 보고 계시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을 늘 지켜보니까요..

너희도 하나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운 자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는 말씀을,

하늘에서 실시간 내 아버지께서 지켜보시니까, ‘너희의 상이 큼이라’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늘에서 아버지가 지켜보십니다.

이어지는 마6:6절로 넘어가면, 이것은 사실입니다.


마6:6~8 너는 기도 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아버지는, 우리가 골방에 들어가 은밀하게 기도할 때에도,

다 지켜보시는데,


마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이때에는 안 지켜보실까요?

  아니, 골방기도 때보다 더 잘 지켜보십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하교 길에 골목에서,

다른 학생들에게 얻어맞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가 자녀를 안 지켜보고, 바쁘다고 지나칠까요?


예수님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마5:12

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지켜보셨기 때문에’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상 줄 때는 아무렇게나 안 줍니다. 지켜보고, 심사해서 상을 줍니다.



◑3. 천국 백성의 삶.. 기꺼이 용서한다.


이어서 마6:9절부터 그 유명한 ‘주기도문’이 나오는데요.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렇게 주기도문은 ‘Our Father in Heaven’으로 시작합니다.


이 말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는, 너무 좋아서,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고 싶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러도 좋다는, 확실한 허가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주기도문의 결론이 14~15절인데요, 이 또한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마6: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핍박과, 그에 대한 용서에 대해서,

예수님은 8복에서 말씀하신 후에도..  5:9~10

반복해서 복습하듯이 '용서'를 재차 말씀하셨고  5:11~12


그 ‘용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후에도..  6:12

반복해서 복습하듯이 또 강조하셨습니다.  6:14~15

주기도문 안에도 ‘용서’가 나오는데, 끝마치고 또 반복해서 '용서'를 가르치셨습니다. 마6:14~15


이 <용서>는 얼마나 엄격한 말씀인지,

6: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 말씀을 서너 번 천천히 읽어보십시오.


사람이 잘못 헤까닥 되면,

이런 중요한 말씀을, 위 산상보훈에서만 4차례나 반복해서 강조하는 말씀을,

수박 겉핥기로 지나쳐 버립니다.

그러다가 화를 당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삶

가톨릭 작가 소노 아야코 씨는

남편 분은 문교부장관을 지내신 미후라 슈몬 씨입니다.


부부는, 자신들의 묘비에 어떤 묘비문을 쓸지 함께 의논했습니다.

그래서 묘비 전면에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썼습니다.

생명주시고, 이 땅에서 살아가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린다는 뜻이었습니다.


그 묘비 뒷면에는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썼다고 합니다. 주기도문의 한 대목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라틴어로 적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괜히 오해할까 봐요.


소노 아야코氏 부부의 통찰력은 참으로 뛰어났습니다.

우리 인간에겐, 알고 짓는 죄도 있지만, 모르고 짓는 죄도 있습니다.


소노 아야코氏는, 존재 자체가 미움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다른 사람이 무조건 내 존재 자체를 싫다는데 어쩌겠습니까.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상대방이 내게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유 없이 무조건 내 존재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소신과 인기


소노 아야코氏가 묘비에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쓴 배경에는,

자신은 옳다고 한 행동도,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마음가짐입니다.


존 웨슬리는, 이는 죄가 아니나,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해야 된다고요!’


우리는 매일 밤 자기 전에,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님, 저는 오늘도 죄를 저질렀나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저지른 죄가

남에게 상처를 준 경우가 반드시 있었을 것입니다. 그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는 어젯밤에도 그 기도를 드렸는데요,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과 교제가 깊어질 것입니다.



◑4. 천국 백성의 삶..  나를 실족시키는 것을 스스로 버립니다.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영국의 세계적인 신학자 윌리엄 버클레이의 연구에 의하면,

기독교가 시작된 초대교회에서는 이런 의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세례까지 받고도 교회를 떠난 사람, 믿음을 버린 사람,

또는 하나님께 등을 돌린 사람이.. 믿음을 되찾아 교회로 돌아올 때는,

본문 13절에 의거, 그들은 맛을 잃어버려 쓸 데가 없어진 소금이었므로,


‘저는 맛을 잃은 소금입니다. 저를 밟아주십시오’ 하며 그는 바닥에 엎드렸고,

성도들이 그를 발로 밟고 안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만약 오늘날, 2천년 전에 있었던 이 의식을 부활시킨다면,

성도부터 목사까지 함께 엎드리는 바람에, 발로 밟고 지나갈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버려지다’는 단어와               ‘다만 밖에 버리워’  (헬, 발로)

동일한 헬라어가 5:29절에도 사용되었는데요..↓


마5: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헬, 발로)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헬, 발로)


이 말씀은, 소금이 맛을 잃고 버려지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잘 보여줍니다.

그것은 마치 지옥에 던져지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천국 백성이 된 사람은,

자기를 실족케 하는 것을 스스로 내어버립니다. 마5:29a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자기가 내어버려짐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소금처럼 버려지다가  마5:13

최후에는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마5:29b


정말 하나님의 백성이 된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삽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셔! 그러니까 우리가 웬만큼 죄 지어도 다 봐주시고,

우리를 지옥에 데려가지 않으실 거야!’ .. 이렇게 경외함이 없는 사람은,

아직 천국 백성이 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5. 천국 백성의 삶..  하나님을 구합니다.


마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아주 유명한 구절입니다.

그래서 자기 소원을 잔뜩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응답 받는다고 하는데요..

 

문맥을 주욱 읽어보면,

그 구하는 내용/목적/기도제목이.. 다름아닌 '하나님'입니다.

 

마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그 분/하나님을)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런데 이 구절을 영어 KJV로 보면,

If ye then, being evil, know how to give good gifts un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shall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give good things to them that ask him?

 

그러니까 밑줄 친 부분 him이 '개역성경'에 번역이 누락된 것입니다.

그 부분을 넣어서 번역하면 '하나님을' 구하는 자에게 이렇게 됩니다.

(그 분/하나님을)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헬라어 성경도, 영어 성경과 마찬가집니다. τοῖς(그들에게) αἰτοῦσιν(ask, aiteo의 현재능동분사) αὐτόν(him)

 

정리하면, 

그 유명한 구절 마7:11절은, 자기가 갖고 싶은 기도제목을 구하라/찾으라/두드리라.. 가 아니고,

'하나님을' 구하라/찾아라/두드리라.. 입니다.

 

병행구절인 눅11:13절도 마찬가집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아버지를)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11:13

 

눅11:13절에도 개역성경에 <한 단어-그 분 Him>의 번역이 누락되었습니다.

 

눅11:13절도 다시 번역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아버지를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 내용을 지적해 주신 오카와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